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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혈막을 통해 감지된 진동을 미루어 본다면 저들 중에는 용마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가 있다. 한둘이 아닐 것이다. 꽤 오랫동안 용혈막을 흔들어댔으니… 저 부윤성이라는 작자를 제외한다면 세 명이 용마일 테고, 아니면 넷 다 마법사일 터였다.
단태는 소요왕령을 소환했다.
공간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나타난 소요왕령을 즉시 청무주를 알아보았다. 청무주가 희귀하다는 이유로 바람의 하급 정령을 소환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곧 정령왕은 용이었으나 인간이 되어버린 기이한 존재의 비밀을 파악해버렸다.
- 청무주, 아닌가?
청무주는 당황했다.
“청무주라니?”
단태가 물었다.
소요왕령은 기다렸다는 듯 어떻게 용이 인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단태는 깜짝 놀라 청무주를, 나머지 셋을 노려보았다. 시선을 교환한 그들이 일제히 마법을 펼쳐 공격하기도 전에 단태는 움직이고 있었다. 반지에 저장한 마력이 손을 통해 발출되기도 전에 단태는 그들의 손목을 꺾어버렸다. 마법은 펼쳐지지도 않았다.
그들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 화로에 던져 넣은 단태는 소요왕령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공손한 태도를 보고 흡족한 소요왕령은 묻지 않은 부분까지 알려주었다. 바로 저주에 걸려 죽어가던 용이 인간의 몸을 취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었다.
소요왕령을 돌려보낸 단태는 한때 위대한 존재였으나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그들 앞에 섰다.
“…정말 용이었나?”
“…….”
“대답해라!”
“…한낱 인간 따위에게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청무주가 고개를 들어 단태를 노려보았다. 광기가 서린, 그러나 평범한 인간의 눈이었다.
“그대 눈에는 내가 인간 따위로 보이는 건가?”
“…….”
단태가 뿜어낸 용투기에 청무주는 몸을 덜덜 떨었다. 용족 특유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암탄주에게서 느껴지는 기운보다 월등히 강했다. 청무주는 단태의 말투에서 용족의 오만한 태도를 발견했다.
설마?
“재미있는 일이야. 인간은 용이 되고, 용은 인간이 되다니 말이야.”
“…말도 안 돼.”
예명주였다.
눈에 단검을 꽂고도 꿈틀거리는 망인을 걷어찬 단태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보다 통쾌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위대한 존재라고 불리던 용족이 이런 꼴이 되다니.
“그렇게 좋아할 필요는 없다.”
청무주였다.
웃음을 뚝 그친 단태는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무슨 뜻이지?”
“당신이 용이라면, 당신 역시 저주를 피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
단태는 속이 뜨끔했다.
“용이 될 수도 없지만, 인간도 될 수 없을 거야.”
이번엔 세탐주가 말했다.
단태는 기다렸다. 이들은 뭔가를 알고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유도 없이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오래지 않아 모든 인간은 저렇게 될 테니까.”
청무주는 손가락으로 망인을 가리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망인이 이 녀석들과 관련이 있음을 직감했다. 무너지는 소학당이 자신을 덮치기 직전 지하 통로로 겨우 몸을 피한 단태가 하마터면 물릴 뻔했던, 겨우 피해서 보통 사람이라면 죽어야 정상인 타격을 가했는데도 여전히 팔팔한 망인들이 용족과 관련이 있을 줄이야.
단태의 마음을 읽은 청무주가 답을 주었다.
단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망인이 서쪽 지역에 있었던 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엄포윤이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망려환이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한 누천파가 저 녀석들의 농간에 빠져 평범한 인간을 끔찍한 괴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이야기, 빠르게 번지는 흑액병에 걸리면 죽었다가 결국 망인으로 깨어난다는 설명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당장 죽이고픈 충동을 억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치밀한 계획이었다.
“사혈지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지? 머지않아 이 도시도… 어리석은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도… 사혈지처럼 변할 거다. 시체들이 영원히 떠도는 땅으로 말이야.”
청무주는 예언하듯 말했다.
“…막을 방법은?”
“없다.”
청무주와, 세탐주, 예명주가 동시에 답했다. 미약한 가능성도 없다는 자신만만한 단언이었다.
단태는 버둥거리는 망인의 눈에서 단검을 뺐다. 단검을 던져 벽에 꽂은 그는 주혈의 입구로 걸어가 닫힌 돌 벽에 손을 올렸다.
“이래도?”
“…….”
처음으로 그들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그들은 이제 용이 아니었다. 허약한 인간이었다.
“망인에게 물어 뜯겨서 죽으면 망인으로 되살아난다면서? 영원히 시체로 떠돌고 싶어?”
“…우리는 몰라.”
겨우 정신을 차린 영고주가 피 냄새를 맡고 기어서 다가오는 망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입 다물어!”
청무주가 외쳤다.
단태는 바람처럼 달려가 그 망인을 물의 마법 훤편으로 묶고 영고주 앞에 섰다.
“계속해.”
“…암탄주님은 아실 거야.”
“암탄주? 설마, 그 용도 살아 있다는 거냐?”
“그분이 이 모든 계획을 세우셨으니까.”
“…….”
단태는 할 말을 잃었다. 암탄주가 죽었다고, 그래서 유산을 남겼다고 의심 없이 믿었다. 인간들을 모아 놓고 마지막을 화려하게 보여준 뒤, 인간의 몸으로 이 끔찍한 짓을 하고 있었다니.
훤편을 풀어버린 단태는 그들을 남겨 두고 주혈 밖으로 나왔다. 단태가 유인하는 대로 이곳까지 쫓아온 망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풍갑을 펼친 단태에게서 튕겨나간 그들은 좀 더 쉬운 먹잇감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몰려갔다.
단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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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만든 망인들이 흑야궁에서 사라져버려 당황했던 암탄주는 종탑 위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무장 봉기 세력과 시청이 거느린 군대, 경비대 그리고 용병단이 광장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는 살육의 현장에서 짙은 죽음의 기운이 흘러나와 도시를 덮고 있었다. 그 기운은… 지난 3년 동안 은밀히 사들인 건물 지하를 중심으로 만든 거대한 마법진을 자극하고 있었다. 천륜방과 유사하나 그 작용 방향이 정반대인 초대형 마법진은 물의 도시를 죽음의 도시로 바꾸는 중이었다.
“저 정도면 충분해.”
이제 ‘참혼폐황진’이 본격적으로 발동하면 흑액병으로 죽어 땅에 묻힌 시체들이 되살아나 영원히 물의 도시를, 인간들이 제국이라 부르는 땅 위를 돌아다닐 것이다. 마법으로도, 칼로도 죽일 수 없는 망인들의 세상이 도래한 셈이다. 그러니 용족을 비웃을 인간은 세상에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참혼폐황진이 내뿜는 죽음의 기운이 짙어지자 광장은 피아가 구별되지 않는 끔찍한 공간이 되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칼을 휘둘렀다. 어제까지만 해도 농담을 주고받던 친구의 심장에 칼을 박았다. 가문을 위해 전투에 참가한 아들이 아버지의 뒤통수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들은 죽음에 취해 있었다. 죽음에 만취한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죽이고 또 죽였다.
그때, 한 사람이 맹렬하게 달려와 광장으로 뛰어들더니 발군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오호, 드디어 죽음의 왕이 나타나셨군.”
암탄주는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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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황제를 보필하는 환관 하나가 기침을 했다. 주위 환관들이 그를 끌고 천막 밖으로 데려갔다. 멀리서 비명이 들렸지만,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북쪽에서 날아온 비보를 읽는 중이었다.
지원군과 합류한 5만의 군대는… 단 사흘 만에 전멸했다. 천년이 넘도록 사혈지에 갇혀 있던 망인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줄잡아 일곱 개의 크고 작은 도시가 망인들에게 무너졌다. 죽은 자들이 되살아나는 바람에 병력의 손실은 고스란히 놈들 전력의 강화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황제는 유타루체를 향한 증오심, 백중파를 가리키는 파괴적 충동을 버릴 수 없었다.
“부르셨사옵니까?”
“들어오시오.”
황제의 말에 화려한 천막 안으로 들어선 후령사탑의 탑주 사두단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