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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을 말하겠소. 그대는 후령사탑의 탑주이니만큼 날뛰는 망인들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소?”
“…평범한 망인이 아니옵니다.”
“무슨 뜻이오?”
“사혈지 밖으로 나와 천하를 어지럽히는 그 괴물은 죽음의 마법사가 각고의 노력 끝에 일으켜 세우는 망인과 다르옵니다. 평범한 망인은 보통의 사람보다 느립니다. 그리고 사람을 공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을 일으켜 세운 마법사 뿐 아니라 죽음의 마법을 익힌 다른 마법사의 말에도 복종합니다. 허나, 사혈지에 갇혔다가 밖으로 나온 망인들은… 빠르고, 강하며, 죽음의 마법사의 지시에 불응합니다. 이미 후령사탑에 속한 백여 명의 마법사를 보냈으나, 단 세 명만 살아서 돌아왔사옵니다.”
“…방법이 없소?”
“천마의 경지에 오른 사령마께서 이 자리에 있다면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릅니다만, 제게는 방법이 없습니다.”
“대체 사령마는 어디로 갔단 말이오?”
“…송구하옵니다, 폐하.”
그때, 천광탑 탑주 천장야가 천막 안으로 들어와 즉시 분위기를 눈치 채고 사두단 옆에 무릎을 꿇었다.
“빛의 마법도… 그 망인들에게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폐하.”
“…백휘섬선은 어디 있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물러가시오!”
두 마법사가 사라지자, 황제는 손가락으로 눈 옆을 꾹꾹 눌렀다. 천년 이상 잠잠하던 사혈지의 장벽이 왜 갑자기 무너졌을까? 사사건건 제국의 정책을 놓고 트집을 잡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천마들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그들이 여기 있다면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텐데.
사혈지의 망인은… 이제 골칫거리 수준을 넘어섰다. 치명적인 재앙이며, 막지 못할 경우 제국이 무너질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였다.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자신의 대에서 제국의 운명이 끝날 수도 있었다.
석장명이 그리웠다.
그리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명국영.
그자가 여기 있다면 방법을 내놓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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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었구먼.”
아레마고가 말했다.”
“때라니요?”
명국영은 누군가에게서 지속적으로 감탄하는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워낙 명석해서 책 외에 따로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그에게 아레마고는 지적인 면을 포함하여 여러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런 스승을 만났다면 삶 자체가 달라졌으리라.
“세상으로.”
아레마고의 입가가 멋지게 주름졌다.
그 말에 명국영은 이곳으로 오기 전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었다. 벌써 몇 년은 지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엔 적응이 쉽지 않았다. 수탄왕령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정신을 차리니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 앞이었다. 그 노인이 오래 전에 죽은 대마법사 아레마고라는 사실은 이곳에서 사흘을 보낸 뒤에 알 수 있었다.
“왠지 가고 싶지 않습니다.”
“가야 한다네.”
“…압니다.”
“그동안 내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겠네. 자넨 참 끈질긴 사람이야.”
“감사합니다, 어르신.”
명국영은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했다.
“쾌둔이라는 마법, 들어보았나?”
“…유하탑의 마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 난 쾌둔을 펼치고 있네. 이곳은 시간이 묘하게 요동치는 공간이라네. 과거와 미래가 뒤섞여 있지. 자네에겐 과거겠지만, 내게는 미래라네. 난 오지 않은 미래를 보는 중이고, 자넨 지나가버린 과거에 한쪽 발을 담고 있는 셈이지. 어떤가?”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나? 보통은 오래 살기 위해 시간을 조작하려 든다네.”
“저라면 순간에 집중하겠습니다. 찰나를 늘릴 수 있다면 뭐든 다 하고 싶으니까요.”
“오호, 지혜로운 걸. 자네가 마법사였다면 하둔을 알려줄 수도 있을 텐데. 아쉽군.”
“그런 마법이 있습니까?”
“현자는 지금에 주목하고, 우자는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는 법이라네. 자넨 현자로구먼.”
“…과찬이십니다.”
“자넨 시야가 넓은 사람이네. 그러니 신중히 행동하게. 그래야 자네는 물론 자네가 아끼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잘 가게.”
노인이 주름진 손을 흔들자 주위가 흐릿해졌다. 소리와 냄새까지 지워버린 그 기이한 감각이 사라질 즈음, 코를 찌르는 악취에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시력이 회복된 명국영은… 할 말을 잃었다.
입구에서 본 광장은… 시체로 덮여 있었다.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새까만 날개를 퍼덕거리며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시체를 뜯어먹고 있었다. 분명 이곳은… 명국영이 수탄왕령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했던 그 상아별로의 광장이었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속에 든 것을 게워낸 명국영은 시체 더미 옆에 주저앉았다. 도저히 서서 생각할 힘이 없었다. 아레마고에게서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는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단태가 인간이면서 용이라는, 오히려 용에 가깝다는 말은…… 한동안 받아들이기 어려웠었다.
힘을 내어 몸을 일으킨 명국영은 광장을 빠져나오다 팔을 늘어뜨린 채 거리를 메운 무리를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였다. 같은 곳을 보고, 같은 동작으로 걷고, 같은 방식으로 몸을 흔들었다. 그들이 명국영을 발견했다.
“우어어어.”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그들이 달려왔다.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은 명국영은 몸을 돌려 달아났지만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들이 내뿜는 악취에 코가 시큰거리고, 저벅저벅 바닥을 울리는 소리에 가슴이 내려앉기 직전이었다.
그때, 옆으로 무언가 다가와 그들을 들이받았다. 팔과 다리가 몸에서 떨어지며 사방으로 날아갔고, 그 중 팔 하나가 명국영 앞으로 떨어졌다. 손에 닿는 것을 꽉 움켜쥐려는 그 팔을 발로 걷어찼다가 구두가 잡히자 구두를 벗어버린 명국영은 맹렬한 바람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무엇인가가 저 시체 같은 놈들을 박살내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멀쩡한 놈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사방으로 흩어진 몸의 일부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악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장면이었다.
“…단태?”
바람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던 사내의 얼굴을 본 명국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여긴 차근차근 이야기 할 곳이 못되니,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 그래.”
수백 개의 팔, 다리가 꼼지락거리며 자기 몸을 찾으려고 기어 다니는 곳은 확실히 대화의 장소로 적합하지 않다. 골목으로 접어든 단태는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이라면 당분간은 안전할 터였다.
“…황제가 스승님을 죽인 줄 알았습니다.”
“그보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설명하기엔 길어요.”
빙긋 웃는 단태.
“네가 인간인 동시에 용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 그 다음부터 이야기 해봐라.”
“…….”
웃음기가 사라졌다.
“어서.”
“알았어요. 빨리 말해야 스승님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겠지요?”
“잘 아는구나.”
두 사람은 억지로 웃었다. 곧 단태가 입을 열어 도시가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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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용의 등에 서서 수도를 내려다보았다.
시꺼먼 연기 수십 개가 도시 전역에서 하늘로 솟구쳤고, 화염은 바람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건물을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개미처럼 작은 백성들은 짐을 지고 달아나고 있었고, 그 뒤를…… 기이할 만큼 몸이 빠른 망인들이 뒤쫓고 있었다. 곧 망인들은 소녀의 손을 잡은 아버지를 덮쳤다.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는 노인의 팔을 뜯어냈다.
수도 방위군은 무너진 지 오래였고, 용금탄의 경비대도 본분을 잊고 달아나버렸다.
치안은 무너져 있었다. 이 틈을 타서 귀족이나 부잣집에 들어가 보석과 예술품을 훔치는 도둑들이 기승을 부렸는데, 그 어리석은 결정의 대가로 해일처럼 밀려든 망인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황제는 눈물을 흘렸다.
나의 도시가, 나의 제국이…… 무너지고 있었다.
“…폐하.”
“어디로 가야 하오?”
“계림으로 가셔야 합니다. 망인은 계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보고가 들어왔사옵니다.”
승상이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