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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거대한 숲 전체가 기이한 힘으로 뒤덮인 계림이라면 안전하겠지만 그곳으로 간다면 용금탄을, 제국을 버린다는 의미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마냥 용금탄의 상공에 떠 있을 수는 없었다. 황제가 올라탄 용은 벌써 지친 상태였다. 극천황룡이라면 이보다 월등히 오랫동안 날 수 있지만, 망할 륜사가 설희를 데리고 극천황룡을 가져가는 바람에 황제는 승상의 용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좋소. 계림으로 가겠소.”
황제의 명령에 백여 마리의 용들이 일제히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용에 탄 관료, 귀족 들은 두 번 다시 용금탄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수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제도 그들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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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럭무럭 김이 나는 밥에 단태는 군침을 삼켰다. 백중이라는 걸출한 인물로 가는 곳마다 대접을 받았을 때 먹었던 산해진미도 어머니가 직접 해준 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잘 먹겠습니다.”
“단태야, 스승님 먼저 드셔야지.”
어머니의 말에 단태는 명국영을 힐끔 살폈다. 명국영이 웃으며 먹기 시작하자, 단태도 음식을 입에 밀어 넣어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켰다. 아무리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어도 백중거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기 위해 그가 아는 방어마법진을 모조리 설치하느라 바닥이 드러나도록 마력을 써버리자, 허기가 위장을 쥐어짜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사흘 동안의 작업으로 백중거는 망인들조차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견고한 성채가 되었다. 망인들은 불꽃이 튀고 몸이 얼어버리는 방어마법진 근처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밥을 다 먹은 단태가 배를 어루만지며 만족한 미소를 짓는 순간, 천둥 같은 포효가 울려 퍼졌다.
즉시 일어난 단태는 복도로 나갔다. 일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묘홍이 무장 봉기 중에 목숨을 잃었기에 단태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가 백중파를 이끌고 있었다.
“북쪽에서 용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추명이 합류를 요청해왔습니다.”
“받아들이세요.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하니까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를 지나치려던 단태는 진지한 분위기를 감지한 순간, 몸을 멈추고 돌아섰다.
“…이제 그만 물러나고 싶습니다.”
“안 됩니다.”
“제 잘못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제 잘못, 백중의 잘못이지요. 백중이 여기 있었다면 묘홍 그 작자가 날뛸 수는 없었겠지요. 지금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한 시기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간다? 그건 절대로 안 될 말입니다.”
“…그렇다면 단태가 곧 백중임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것도 안 됩니다.”
“주군!”
“조금만 참아주세요.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단태는 서둘러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무룡이 거대한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중이었다. 옥상 난간을 차고 도약한 단태는 무룡의 등에 올라탔다. 도시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작아지자, 북동쪽에서 점 하나가 보였다.
눈에 마력을 집중한 단태는 입을 벌렸다. 황금 빛 용의 정수리에는 륜사가 서 있었고, 그 옆에…… 설희가 있었다.
무룡은 극천황룡을 향해 날아갔다. 극천황룡이 무룡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지만 용천마 륜사의 조종을 거부할 수 없었다. 무룡이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 주위를 맴돌 뿐 공격하지 않자 극천황룡도 평정을 되찾았다.
단태는 극천황룡을 향해 뛰어내렸다. 가볍게 착지한 그는 설희를 꽉 안았다.
“…오빠.”
“무사했구나. 다행이야. 엄마는 잘 계셔.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험험, 나는 보이지 않는 거냐?”
륜사였다.
설희를 놓아준 단태는 즉시 절을 함으로 3년 만에 재회한 사부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제자가 사부님을 뵙습니다.”
“…명 선생으로부터 이야기는 들었다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는데, 유천주를 보니 믿지 않을 수도 없구나.”
설희를 데리고 탈출하기로 결심했던 륜사는 수정구를 통해 명국영에게서 단태가 어떤 존재인지 들었던 것이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
륜사는 파괴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도시 곳곳에 생존자들이 모여서 망인들을 막아내는 섬 같은 장소가 흩어져 있었다. 워낙 망인들의 수가 많고 공격적인데다 죽지 않아서 생존자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점도 눈에 역력히 보였다.
여화가 다가왔다.
“…그동안 힘들었지?”
“힘든 만큼 자란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누나보다 훨씬 큰 것 같아요.”
단태의 말에 여화는 웃음을 터트렸다.
곧 백중거 상공에 다다른 극천황룡. 단태는 설희를 안고 옥상으로 뛰어내렸고, 륜사는 여화와 자신이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도록 감중수를 펼쳤다. 소식을 듣고 올라온 어머니가 설희를 본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설희가 다가가 어머니를 안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소리 없이 울었다. 단태가 팔을 펼쳐 그 두 사람을 한꺼번에 안았다.
륜사는 명국영을 향해 눈짓했다. 명국영이 난간으로 다가오자 륜사는 북쪽을 가리켰다.
“어마어마한 수의 망인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네.”
“…얼마나 되나?”
“수십만이야. 여화는… 백만이라고 하더군.”
“…….”
명국영은 할 말을 잃었다.
“이 건물을 보호하는 방어마법진, 저 녀석의 솜씨지?”
“그래.”
“나를 뛰어넘은 게 분명하군. 하긴, 용의 심장을 가졌으니.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해. 게다가 버티기만 해선 이 재앙을 끝낼 수 없어. 이런 식으로 가면… 대지 위에서 인간은 사라지겠지.”
“…방법을 찾는 중이야.”
명국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독한 절망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암탄주가 공들여 만든 이 거대한 음모는 한 명의 인간이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는 난제 중의 난제였다.
명국영은 은연중 단태에게 의지를 했고, 단태가 그 해답을 찾아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태만이 재앙을 끝낼 수 있는 존재임을 확신했다. 단태가 할 수 없다면, 인간은 이대로 멸망할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빨리 찾아야 해.”
“그래야겠지.”
“…미안하네. 자넬 위험에 빠뜨려서.”
륜사는 망설이다 그 이야기를 꺼냈다.
“괜찮네. 나도 언젠가 자네를 위험에 빠뜨릴 테니까.”
“뭐?”
“빚이라고 생각하게.”
명국영의 말에 륜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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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을 대비하여 만든 첫 번째 장벽은 망인들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준비를 했음에도 밀려오는 망인들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시청이 자랑하는 방단은 전멸했고, 경비대는 일부만 남아 있었으며, 반가에 속한 무사들이 미약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집무실 창가에 선 반우현은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도시가 이런 식으로 파괴될 지는 상상도 못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은… 현실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물의 도시가 아니라, 죽음의 도시였다.
수백 명의 망인들이 광장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다. 두 번째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망인들은… 죽지 않는다. 그 장점을 살려 몸으로 장벽에 충격을 가하고 있었다.
맹수처럼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 전략, 전술과는 거리가 멀었던 망인들이 조직적으로 장애물이나 방어마법진을 무너뜨리고 생존자를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은… 그의 귀환 때문이었다.
죽음의 마법에 손을 댄 이유로 기율옥에 갇혔다가 탑주의 명령에 따라 북쪽으로 옮겨지던 누천파는 어수선한 틈을 타서 탈출했고, 쉬지 않고 달려 혼란에 빠진 유타루체도 돌아왔다. 죽음의 왕을 알아본 망인들은 즉시 그의 뜻에 복종했다.
죽음의 군대는 드디어 지휘관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자신이 갈증과 파괴적 충동에 시달렸기에 누천파는 불사의 군대를 움직여 유력 가문이 쌓아올린 방어 체계를 하나씩 무너뜨려, 공포에 질린 생존자를 유린했다. 비교적 세력이 약한 조직은 하루 만에 누천파의 군대에 정복당했다. 정복의 대가는 참혹했다. 죽음이었던 것이다.
반우현은 누천파가 망인들을 조종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몇 번이나 그를 제거하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팔이 잘려서도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는 누천파는… 망인과 다를 바 없었다. 보통의 망인과 달리 전략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점만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