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90화 (290/293)

<-- 290 회: 7-39 -->

고개를 돌린 그녀는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용을 보았다. 유천주였다. 기적적으로 생존한 대리인과 함께 돌아온 유천주는 망인을 짓밟았지만 되살아나는 망인의 수가 많아서 땅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유천주라면, 용이라면, 이 참극을 끝낼 방법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 만큼 절망도 컸다.

시청을 둘러싼 망인들 사이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반우현은 바람의 갑옷을 두른 채 눈에 띄는 망인들을 모조리 박살내며 달려오는 단태를 알아보았다. 반극권을 익혀 강함을 숭상하는 그녀는 탄성을 터트렸다. 형식에 통달하면 더 이상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

단태는 이미 그런 무인이었다.

5절(대략 10미터)에 달하는 장벽을 단번에 뛰어넘은 단태는 몸에 묻은 망인의 체액을 손으로 털고는 창이나 칼, 방패를 든 채 놀라서 얼어붙은 경비대원, 병사, 무사들을 지나 시청 안으로 들어섰다. 거기로 나와 있던 반우현이 그를 맞이했다.

“…천마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이자 용병으로 치자면 5만 명 이상을 거느린다는 신무의 경지에 오른 무사라니, 대체 정체가 뭐죠?”

“이 재앙을 끝낼 방법, 있습니다.”

“…….”

“도움이 필요합니다.”

“…말해 봐요.”

반우현에겐 붙잡고 빠져나갈 밧줄이 필요했다. 자신도 모르게 다급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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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천파는 단태가 쉽게 망인들을 물리치고 시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두려움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막강 그 자체였다. 그 자신도 단태에게는 당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불사의 군대가 패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태가 왜 시청으로 향했을까?

반우현이 도와달라고 했을까?

누천파는 생각을 거듭했지만 이거다 싶은 통찰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명령을 내려 군대를 후퇴시켰다. 시청은 마지막에 처리하자. 그러면 된다. 생존자들이 모여서 처절하게 저항하는 다른 거점을 하나씩 무너뜨리면 시청은 고립될 것이다.

강력한 방어에 점령하지 못해도 포위하여 기다린다면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인간은… 결국 포기하고 말 것이다. 불사의 군대는 절대 포위를 풀지 않을 터였다.

어디가 좋을까?

누천파는 자신을 업신여겼던 당고를 떠올렸다. 그 기억이 결정을 내렸다.

불사의 군대는 당가를 잿더미로 만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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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은 밧줄을 타고 시청 옥상으로 내려갔다.

무룡의 날개가 만들어내는 강풍에 몸이 흔들려 하마터면 밧줄을 놓칠 뻔했다. 몸이 공중에서 돌아가는 바람에 밧줄이 팔과 다리 사이에서 엉켰고, 소영은 밧줄을 천천히 놓으며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다. 고통을 참으려 밧줄을 풀려고 했으나 애쓴 보람이 없었다. 옥죄는 밧줄에 묶인 채 아래를 쳐다 본 소영은 시청을 중심으로 수만 명의 망인들이 크게 원을 그리며 진을 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시청이라고 해도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래에서 사람들이 외쳤지만 소영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공포에 질렸고, 무룡의 날갯소리 때문이었다.

보다 못한 단태는 주저앉았다가 발에 힘을 주고 바닥을 차면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바람의 칼로 소영의 위쪽 밧줄을 잘라버린 그는 추락하는 소영을 두 팔로 안고 가볍게 착지했다. 양지란이 다가와 부들부들 떠는 소영의 상태를 살폈다.

륜사, 명국영, 일중 그리고 철무가 용봉고의 여인들을 아래로 안내했다.

풍갑의 방향과 세기를 바꾸어 하늘로 날아오른 단태는 무룡의 등에 타자마자 생존자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향했다. 상공에서 본 도시는…… 무수한 개미 떼의 습격에 엉망진창이 된 숲의 귀퉁이 같았다.

망인들은 건물은 놔둔 채 거기 숨은 사람들을 찾아내어 고통스럽게 죽였다. 아직 망인들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곳은… 당가, 백율가, 명가, 구가, 유가, 정가와 시청뿐이었다. 윤가는 닷새 전에 무너졌고, 도가와 답가는 어제 망인들의 공세에 밀려 힘을 잃고 말았다. 단태는 무룡을 동원해 부지런히 생존자를 물의 도시에서 가장 튼튼하고 공간도 넓은 시청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단태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하던 콧대 높은 가문들도 파멸이 코앞에 다가오자 자존심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빨리 구해달라고 수정구로 쉬지 않고 연락을 해오는 가주도 있었다. 그 때문에 무룡은 귀찮은 일을 하느라 쉴 틈도 없었다.

“조금만 참아.”

단태는 무룡의 뿔을 어루만졌다.

용봉고에 이어 명가, 구가, 유가, 정가의 생존자들을 시청으로 무사히 옮긴 단태는 백율가로 날아갔다. 백율가의 규모를 고려한 단태는 무룡 혼자는 무리라는 판단을 내리고 극천황룡까지 데려갔다. 륜사가 극천황룡을 조종하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미리 약속한 대로 후원에 모여 있었다. 방어마법진으로 둘러쳐진 높은 담벼락 너머에는 셀 수도 없는 망인들이 바글대고 있었다. 후원은 거대한 용 두 마리가 내려앉을 만큼 넓지 않았다. 무룡이 혼자 내려갈 수 없을 만큼 좁았다.

결국 극천황룡이 착지해서 생존자들을 무룡에게로 옮기기로 결정이 났다.

“조심하십시오.”

“알았다.”

륜사는 극천황룡을 움직여 백율가의 후원으로 내려앉았고, 단태는 무룡의 발톱을 이용해 몰려드는 망인을 공격했다. 백여 명의 생존자들을 두 번째 태우고 극천황룡이 날아오른 순간, 방어마법진이 깨지며 담벼락이 와르르 무너졌다. 망인들은 남은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단태는 휘파람을 불며 뛰어내려 풍갑의 압력으로 수십 명의 망인들을 날려버렸다.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이미 늦었다. 피와 살에 굶주린 망인들에 의해 이미 죽었던 것이다.

몰려드는 망인들을 박살내던 단태는 후원의 정자 지붕으로 올라가 발을 구르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날개를 편 무룡이 그를 태웠다. 거대한 그림자에 뒤덮인 망인들을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나 곧 그들은 백율가 곳곳을 뒤지며 한 명의 생존자라도 찾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세 겹의 방어벽 중 두 개가 뚫리고 만 당가를 구한 건, 자정을 넘긴 밤중이었다. 오랫동안 전통을 고수하며 지켜온 가문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들은 이런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단태는 풀 죽은 백율운현 앞에 섰다. 그 옆에 용혈에서 고생하다 올라와 개과천선한 백율청현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철썩.

일중이 다가와 백율운현의 뺨을 후려쳤다.

놀란 백율운현의 눈에 독기가 차올랐다. 따귀는 그녀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뭐죠?”

“그 눈빛입니다. 잊지 마세요. 우린 아직 죽은 게 아니니까요.”

그 말을 남긴 일중은 가버렸고, 단태는 가만히 있었다. 분노라는 불이 다시 붙은 백율운현은 이를 악물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살피고, 자극하고, 하나로 묶기 시작했다.

명국영이 단태 옆에 섰다.

“저 친구, 대단하지?”

“…놀랐어요.”

단태는 진심이었다.

살아남은 백중파의 사람들을 이끌고 시청으로 들어온 일중은 어느새 사람들로부터 지도자로 대접받고 있었다.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인 순응에 가까웠다. 일중이 보여주는 능력과 확신이 그들에게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보다, 지하에서 건설되는 그 마법진… 가능할까?”

명국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능해야죠. 마지막 방법이니까요.”

“정말 그 마법진이 발동되면, 죽지 않는 자들이 사라질까? 뿔뿔이 흩어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황제는 물론 팔마탑의 마법사들도 속수무책인 모양이던데.”

“용족 특유의 방식이니까요.”

“…그래?”

명국영은 단태가 무언가를 숨긴다고 생각했다. 마법진이 발동되기만 하면 망인은 사라질 거라는 말을 반복할 뿐, 왜 사라지는지, 어떻게 문제가 해결되는지 단태는 알려주지 않았다.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그 답을 알고 싶은 동시에 알기 싫었다. 겁이 났다. 단태가 숨길 정도면…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할 터였다.

수탄왕령이 이 재앙을 잠재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 소원으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수탄왕령은 아예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게 쉽다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명국영은 고민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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