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91화 (29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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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출신과 계급의 차별을 넘어서서 함께 이뤄낸 위업이었다. 시청 지하 깊은 곳에 대형 마법진을 만들기 위해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3교대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노예도, 하녀도, 유력 가문의 수장도 같은 시간, 같은 힘으로 자기 몫을 담당했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그들 모두의 가슴을 부드럽게 적시고 있었다.

단태는 어머니와 설희를 따로 불렀다. 두 사람의 손을 꽉 잡은 그는 말없이 빙긋 웃었다.

“무슨 일이야? 나, 주방에 가봐야 해.”

설희는 공녀라는 신분보다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방을 더 좋아했다.

“그냥.”

단태는 어머니와 설희를 안았다.

어머니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마법진에 문제가 있는 거니?”

“그런 거 아니에요.”

단태는 올라오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마지막이라는 말,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고민해도 암탄주가 용족의 운명을 걸고 만들어낸 저 재앙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결존계 뿐이었다.

사람의 피와 살에 갈증과 허기를 느끼는 죽지 않는 존재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존재들의 왕이 되어 명령을 내리는 것뿐이었다. 수십만 명의 망인들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누천파에게서 그 방법을 떠올렸다. 망인 하나하나는 일벌이나 일개미였다. 누천파가 사라진다면, 누천파에게서 그 통솔권을 빼앗는다면 망인은 더 이상 날뛰지 못할 터였다.

결존계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단태는 잘 알았다. 용의 심장이 두 개라 해도 하족으로 삼은 망인들의 영향에 그 자신이 변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두 번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 설희와 무언의 인사를 나눈 그는 명국영, 륜사, 일중, 여화, 소윤, 창수, 위연미, 철무, 반우현, 백율운현 심지어 당고에 이르기까지 아는 사람들을 만났다. 좋든 싫든 그들을 기억 속에 담고 싶어서였다.

단태는 혼자 마법진이 건설된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짧으면 사흘, 길면 열흘 동안 아무도 내려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기에 지하 공간은 공허하고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법진 중앙에 망인들이 묶여 있었다. 열 개의 쇠사슬 중 세 개는 이미 부서져 있었다.

“자, 시작해볼까?”

단태는 결존계에 마력을 쏟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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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탄주는 파멸 직전의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흡족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인간족의 파멸은… 곧 용족의 끝이기도 했다. 망인들이 도시를, 제국을, 세상을 휩쓰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단태라는 기이한 인간을 떠올리는 횟수가 늘었다.

단태는 인간일까?

아니면…… 용일까?

그동안 단태를 유심히 관찰했고, 진실의 일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유천주라고 철썩 같이 믿는 그 용은… 껍데기였다. 가축처럼 부리는 다른 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진짜는… 단태라는 놈이었다. 단태에게서 용투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그도 알 수 없었다. 그 아이에게 용의 유산 중 일부를 씨앗으로 물려준 건 바로 암탄주 자신이었다. 이런 결과는 상상조차 못했다.

“인간보다는 용에 가까워…….”

부정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그 순간, 여전히 예리한 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부윤성이라 불렸던 청마주가 망인들 사이에 있었다. 아니, 청마주 역시 망인으로 광기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가슴 안쪽의 심장을 차가운 손이 꽉 쥐는 느낌. 위대한 존재가 저 더러운 운명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다니. 할 수만 있다면 죽여서 영원히 쉬게 만들고 싶지만, 그로서도 망인을 죽일 방법이 없었다.

그때, 묵직하면서도 익숙한 진동이 그를 스치고 지나가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용족이라면 단 한 번 경험하는 그 진동을 잊을 수 없다!

결존계였다!

대체 누가……?

암탄주는 단태라는 녀석이 찾아낸 해결책이 무엇인지 즉시 깨달았다. 영민한 놈이었다. 재앙의 본질을 간파하다니. 내버려둘 수 없다. 불완전한 용이 결존계를 성공할 수 없겠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게 후회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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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천파는 동쪽 성문 위에 서서 유청림과 그 너머 북동쪽으로 멀리 솟은 운면산맥을 쳐다보았다. 세상은 광활했다. 유타루체가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얼마 남지 않은 놈들이 저항하고 있지만 내버려둬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터였다.

“그 얼굴, 보고 싶다.”

형의 죽음을 은연중 동생의 잘못으로 전가시켰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모습에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마둔수탑의 탑주는 어디에 있을까? 일단 용금탄으로 가보자. 그러면 무언가 알 수 있을 테니까.

누천파는 그를 따르는 불사의 군대, 무적의 군대에 명령을 내렸다. 일부만 남겨 놓고 모두 유타루체를 떠나 북상하라고. 수도로 가면서 눈에 띄는 마을이나 도시는 가볍게 먹어치울 생각이었다.

두통이 몰려왔다. 머릿속에서 뜨거운 바늘이 돌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 앞에서 진실이 폭로된 후, 스스로 죽음의 왕이 되기로 결심했던 그에게 통증은 낯선 현상이었다.

왜 아플까?

죽을 수조차 없는 몸인데.

성문을 에워싼 망인들이 양쪽으로 갈라졌고, 그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왔다. 멀쩡한 사람인데… 왜 망인들이 비껴 설까?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누천파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애를 썼다.

잘 생긴 그 남자가 성벽 위로 올라와 누천파 앞에 섰다.

“북쪽으로 가려고?”

“…어떻게 그걸?”

“휴우, 그건 아니지.”

“…….”

철딱서니 없는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그 표정에 아버지를 떠올린 누천파가 달려들었으나 남자의 손짓 한 번에 튕겨나간 누천파는 첨탑의 벽에 처박혔다. 몸 전체가 아우성을 쳤다. 겨우 거기서 빠져나온 누천파는 이 사내가 인간이 아님을 깨달았다.

죽음의 마법사인가?

그때, 사령종인과 관련된 내용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적당한 시체에게 패혈력을 쏟아 부으며 죽음의 마법인 사령종인을 펼치면 시체는 되살아난다. 뻣뻣한 자세로 일어서는 시체는 자신에게 패혈력을 나눠준 죽음의 마법사를 주인으로 받아들인다. 마법사의 몸에 깃든 패혈력과 시체의 몸을 흐르는 패혈력이 같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제 깨달았나? 넌 내 노예다. 영원히.”

“…말도 안 돼.”

“망려환을 손가락에 끼운 순간, 넌 네 운명을 결정했다.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을 말이야.”

누천파는 달려들었고, 사내의 힘을 온몸으로 느꼈다. 팔이 잘려도 아프지 않았건만, 이제는 사내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몸 안쪽에 불이 붙은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나?”

“…날 죽여라.”

“망인을 어떻게 죽여?”

키득키득 웃는 사내.

“…….”

고개를 들어 흥분과 광기로 가득한 사내의 눈을 올려다본 순간, 누천파는 상대가 누군지 깨달았다. 잊을 수 없는 주홍색 눈! 위대한 존재의 유산을 남기고 죽어버린 그 용, 암탄주였다!

“이제 깨달았군. 그러면 시청으로 돌아가서 당장 장벽을 무너뜨려라. 시청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라. 특히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놈을.”

암탄주가 명령했다.

누천파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 명령은…… 머릿속으로 들어와 그의 생각이 되었다. 마치 스스로 생각해낸 기가 막힌 계책처럼 느껴졌다. 생각까지 지배당하고 있다는 끔찍한 자각은 번개처럼 번쩍 주위를 밝힐 뿐 금세 사라졌다. 천둥은 들리지도 않았다.

누천파는 북쪽으로 이동하던 불사의 군대를 되돌려 시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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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뾰족한 나무창이 박힌 구덩이 위로 망인들이 몸을 날렸다. 단단한 나무창이 망인의 몸을 꿰뚫었지만, 그 위를 망인들이 덮는 바람에 더 이상 나무창은 보이지 않았다. 망인들은 그 위를 밟고 장벽과 장벽 사이의 함정을 빠르게 통과했다.

장벽 위에 선 륜사는 기다란 물의 채찍 훤편을 휘둘러 다가오는 망인들의 머리를 뽑아 뒤로 날려버렸다. 우연히 발견한 이 방법은 꽤 효과적이었다. 머리를 잃은 망인들이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몰려오던 망인들과 부딪혀 대열이 엉망이 되었던 것이다.

륜사가 알아낸 그 사실은 곧 다른 사람들에게로 퍼졌고, 오래지 않아 대응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용천마님, 저기 좀 보십시오.”

여화가 광장 뒤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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