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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알파 황태자가 날 너무 좋아함-21화 (21/150)

21화

헤네켄의 황실 기사단은 헨드릭 가의 장남인 주니퍼 헨드릭이 이끄는 제1 기사단과 윌리엄 호가스가 이끄는 제2 기사단, 이렇게 총 두 곳이었는데.

황제와 그 직계 가족을 지키는 제1 기사단이 본성 동쪽의 연무장을 쓰면, 성문과 성벽을 지키는 제2 기사단은 외성 서쪽의 연무장을 사용했다.

린드버그 남매는 외성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제2 기사단과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특히 공주인 레아가 황태자의 허가를 받아 제2 기사단과 함께 훈련을 시작하자 왕자는 연무장에 따라 나와 뜀박질을 하며 좀 더 거리를 좁혔다.

기사단에서는 처음에 오메가 왕자가 자꾸 좋은 냄새를 풍기며 나타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왕자의 털털한 행동거지와 친근한 말투 때문에 금방 적응했다.

연무장 반도 채 돌지 못하고 주저앉아서 셔츠로 땀을 닦거나 굴러다니는 사과를 옷에 쓱 닦아서 바로 먹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약과였다.

기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쉬고 있으면 옆에서 자기도 끼워 달라 눈빛을 쏘아 대는 통에 말이라도 걸면 신이 나서 질문 세례를 펼치곤 했다.

“심하게 조심성이 없으시더라고.”

단장은 여기가 황성이었으니 왕자님도 저러고 다닐 수 있는 거라고 했지만, 벨프리는 황성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질에 상관없이 기량만 보고 뽑는 기사단이지만 그래도 알파의 비율이 높았던 탓이다.

특히 한미한 귀족 가문의 자제들은 기사단 입단을 정치 등용문의 첫 번째 관문으로 삼았다.

그 친구들은 어리고, 혈기 왕성하며, 짝이 없었다.

벨프리는 왕자님께 경고 한마디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요. 없는 조심성을 흘리고 다닌다는 말은 아니시겠고, 그 흘린다는 게 뭔지 정확히 대답해 주시죠.”

“핸드릭 소공자, 린드버그의 왕족이 받는 교육에 대해 들은 바가 있으십니까?”

뜬금없는 부단장의 말에 벨프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교육이야 많지.

대륙 공용어.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그리고 마력운용학. 마정석 감별 및 정제, 그리고 수식 입력.

그러나 그중 하나도 지금의 린드버그 남매에게 교육된 과목은 없었다.

레아 린드버그의 영민함은 타고난 거였고 도둑 공부의 결과였다 치지만, 칼 린드버그의 지식은 도무지 어디에서 기인한 건지 그도 의문이었다.

“저번에 말이죠, 기사 중 하나가 갑자기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졌어요. 비상용 마정석은 바닥나고, 본성까지는 거리도 있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데…….”

부단장이 대단한 비밀을 말한다는 듯 벨프리에게 속삭였다.

거 코피는 마저 닦고, 아니면 좀 씻고 오든가.

벨프리가 뒤로 물러나자 머쓱해진 부단장이 머리를 긁는 사이에 단장이 잽싸게 말을 가로챘다.

“칼 린드버그 왕자님이 딱 와서는 똑바로 눕히고 살피더니 종이봉투를 가지고 오라고 소리를 치는 게 아닙니까. 가슴이 아프냐고 묻고, 머리가 아프냐고 묻고. 하여간 의원 뺨치게 잘해 주셔서 금방 정신을 차렸답니다.”

둘이 서로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응급 의료학을 배운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만.”

놀란 벨프리에게 단장과 부단장이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훈련 중 땅벌집을 건드려서 난리가 났을 때도 혼자만 침착하게 쏘인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벌침을 제거하고 깨끗한 물과 차가운 얼음으로 찜질을 하며 기사들을 진정시켰고요.”

그날 젊은 기사 서너 명 정도는 왕자님을 상대로 상사병을 앓을 정도였다고 부단장이 귀띔했다.

그 외에도 열사병 증세로 쓰러진 기사를 도왔다거나, 염좌로 퉁퉁 부은 다리에 탄성이 있는 천으로 통증을 약화시키는 매듭을 지어 준 것 하며 미담이 줄줄 쏟아져 나왔다.

어느새 기사들이 벨프리를 둘러싸고 ‘미담 제조기 칼 린드버그.’ 일화를 늘어놓았다.

저만치서 아직도 검을 휘두르는 황태자는 이제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벨프리는 믿을 수가 없어 점점 구겨지는 미간을 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들이 말하는 ‘칼 린드버그’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검술도 잘 못 하신다는 분이, 기초체력 단련에 좋은 운동은 죄 꿰고 계십니다.”

이쯤 되면 왕자의 존재 자체가 린드버그의 음모임에 틀림없었다.

열아홉 해, 하고도 반을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몸단장을 하는 데 소모한 칼 린드버그가 어디서 응급처치를 배웠다는 건지.

왕자의 완벽한 문장 구사력을 확인했을 때부터 느꼈던 괴리감이 또 느껴졌다.

기사들은 구름 떼처럼 모여 떠들었다.

단장은 오늘 훈련은 공쳤다고 생각하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께는 안 그러실 겁니다만, 여기서 저희랑 대화하실 땐 말투가 꼭 우리 형님 같고 그렇습니다.”

“저번엔 수도에 맛있는 맥줏집을 추천해 달라 하시더라고요.”

“뭐야, 그거 너한테도 물어봤어? 나한테도 물어보셨는데.”

두 기사가 미묘한 신경전을 펼쳤다. 그때 다른 기사가 제 허벅지를 탁 쳤다.

“아, 뭐라더라. ‘맛집’은 여러 사람에게 추천받아야 한다고 하셨어.”

“맛집?”

생소한 단어에 벨프리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기사가 신나게 설명을 덧붙였다.

“맛있는 집을 줄여서 ‘맛집’이라고 표현하신대요.”

나라에서 최고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주방장을 제집에 갖추고 있으면서 무슨 맛집을 밖에서 찾는지, 벨프리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성의 음식이 맛이 없어서 그러신답니까?”

벨프리가 묻자 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데, 가끔은 자극적이고 푸짐한 양이 그리우시다고.”

왕자가 언제부터 음식을 푸짐하게 먹었다고?

겸상해 본 적이 없어 확실하진 않지만 양 팔목이 황태자 한 손에 잡힐 정도니 얼마나 입이 짧은지 짐작이 가는데.

눈을 가늘게 뜬 벨프리가 말도 안 된다고 중얼거렸지만 기사들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아무래도 황성 밥은 심심한 맛이 있으니까요.”

“……심심.”

기사단의 식사를 책임지는 수석 조리장이 들으면 땅을 치고 열 낼 소리다.

모든 재료에 신비한 힘이 깃들었다고 믿으며 요리를 할 때마다 그것이 바로 마법이라고 주장하시는 분인데.

“아, 그런 것도 물으셨어요. 수도에서 자리 잡는 데 초기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인건비가 얼만지 같은 거요.”

그야말로 귀가 번뜩 뜨일 만한 정보였다.

린드버그 왕성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헤네켄 황성에서 생을 마감할 왕자가 성 밖 생활에 대해 지나치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벨프리는 좀 더 자세히 말해 보라고 기사를 재촉했다.

그리고 칼 린드버그에게는 불행하게도 그 대화를 엿듣게 된 황태자의 관심도 이쪽으로 완전히 쏠려 버리고 말았다.

“자리를 잡으려면 수도보다는 도성 외곽에 있는 알짜배기 땅이 좋다고 귀띔해 드렸었지. 분할불이 가능하냐 물으시기에 우리 삼촌을 소개시켜 드리겠다고 약조해 드렸더니 아주 기뻐하시던걸.”

부단장인 알렌 자작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왕자님이 볼을 이렇게 발그레하게 물들이면서 좋아하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가슴이 찡했다.

“아, 거기 말입니까? 강을 끼고 있는 거기요. 저도 거기 출신인데 참 살기 좋아요.”

“거기보다는 저기, 호가든 백작님의 영지가 더 비옥한 토지가 많지 않나?”

“왕자님은 고즈넉하고 사람 냄새 나는 시골이 좋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서쪽의 토머스 자작님의 영지를 추천…….”

“칼 린드버그 왕자가, 사업이라도 벌이고 싶어 하는 모양이지?”

떠들던 기사들과 경청하던 벨프리의 얼굴이 누렇게 떴다.

안광을 형형하게 밝힌 황태자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기사들을 대표해 부단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모양입니다. 빵을 굽는다나 뭐라나. 하하하.”

그놈의 빵!

노기를 감추지 못한 황태자가 주먹을 불끈 쥐고는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왕자님에 관해서는 웬만한 건 함구하십시오.”

그 뒤를 쫓으며 벨프리가 단장에게 경고했다.

자기가 부추겼으면서.

억울하긴 했지만 찔끔한 기사들이 황태자의 등 뒤로 거수경례를 붙였다.

* * *

기사들이 뭐라 떠들어 댔는지 알지 못한 칼 린드버그는 레아와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너는 왜 이렇게 고집이 세?”

“누님이야말로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세요.”

레아의 시녀인 제니스와 마르코가 난감한 표정으로 각자의 주인 뒤에 시립해 있었고 엘리자벳이 초조한 듯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며 낑낑 울었다.

“뭐 하러 말 타는 법부터 배워 가며 고생을 하냐고. 그냥 내가 훌쩍 갔다 오는 게 낫지.”

“옥새 위치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저였습니다. 그리고 누님이 가시는 게 더 위험해요.”

다툼의 이유는 단순했다.

레아가 갑자기 칼이 린드버그에 가는 것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칼보다는 레아가 가는 게 나았지만 칼이 자꾸만 자신이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니 레아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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