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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알파 황태자가 날 너무 좋아함-43화 (43/150)

43화

* * *

“린드버그의 마흔두 명의 영주 중, 서른둘이 구금당했습니다. 나머지 열 명은 주로 변방의 영주들로, 제각기 다른 각서에 서명을 받았고요.”

달칵, 달칵, 두 돌이 맞부딪혔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한순간에 황태자의 손으로 시선을 주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키치너의 행방은 묘연하지만 마지막 흔적이 린드버그에서 파르만으로 넘어가는 지역에 있어서 파르만에 따로 신병 인도 요청을 미리 보내 놓은 상태입니다.”

버번 백작의 말에 헤네켄 공작이 화들짝 놀랐다.

“파르만이라고요? 키치너가 언제부터 그쪽과 유착이 있었습니까?”

파르만은 헤네켄과 린드버그, 양국과 경계를 맞추고 있는 소국으로 린드버그보다 더 폐쇄적인 나라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양한 민족이 모여 한 나라를 이룬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딱 한 민족이 천년 가까이 한 왕족만 모시며 저들끼리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깥과 단절되었다는 점에서 린드버그와 비슷하긴 했지만, 필요에 따라 문을 여는 린드버그와는 달리 왕조가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오죽하면 산 자가 아무도 없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할까.

“이번에도 전령은 단 한 명만 들어갔습니까?”

버번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헨드릭 공작이 한숨을 푹 쉬었다.

키치너가 정말 파르만으로 도망갔으면, 아주 큰일이었다.

외부의 국가들과 교역을 하지도 않고 전쟁도 하지 않는 곳이라, 날고 기는 헤네켄에서도 그곳에 만큼은 첩자를 보내지 못했다.

전령을 보낼 때조차 성문을 빠끔 열고, 딱 한 명만 들여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었다.

“영영 찾지 못하면 큰일이겠죠?”

벨프리가 아버지에게 작게 물었으나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파르만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숨어 살면 다행이지.”

“그럼요?”

다른 젊은 제후들도 궁금하다는 듯 헨드릭을 바라보았다.

“문제는 키치너가 거기서 뭔가 쓸데없는 짓을 하려고 기어 나올 때 생기지.”

“파르만이 비밀 병기라도 키우고 있습니까?”

누군가 손을 들고 물었다.

언젠가 기사들 중 하나가 말했던 제도 서쪽령의 토마스 자작이었다.

그는 작위는 낮아도 평민 중 드물게 알파로 발현한 데다 그에 걸맞은 마력까지 타고 났다. 그 덕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서 지난해, 자작위를 하사받고 비옥한 영지까지 받았다.

‘꽤 미남이고, 아직 짝도 없지.’

토마스 자작은 아드리안이 저를 뚫어져라 보는 시선에 찔끔하며 손을 내렸다.

“그들이 무얼 숨기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키치너가 그쪽으로 숨어 들어간 것이 사실이고 린드버그를 탈환하기 위해 다시 나온다면…….”

버번 백작이 말을 하다 말자 제후들이 일제히 침을 꿀꺽 삼켰다.

“동맹국들이 파르만과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

여태 가만히 있던 글렌 황제가 말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침묵했다.

벨프리가 끙, 하고 속으로 앓는 소리를 했다.

제도보다 작은 나라, 파르만.

사람 키의 수십 배나 되는 성벽으로 국경을 전부 둘러싸고, 나라 전체에 ‘지붕’을 덮어놔서 공중에서도 안을 들여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꽁꽁 싸맨 곳이었다.

물론 진짜 지붕은 아니었다.

구리로 끈을 만들어 동서남북의 망루를 연결해 놓은 것이었는데, 모양새가 새장을 연상케 했다.

낮에는 태양이 구리 끈을 반사해서 완전히 가까이 내려가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

밤에도 등을 켜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밤에 지켜보기는 더욱 어려웠고.

그런 파르만이 지금까지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은 이유는, 워낙 나라가 작아 침략할 이유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그들이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의도한 건지 의도하지 않은 건지는 몰라도 파르만의 폐쇄성은 오히려 자국의 평화를 지켰습니다. 안 그래도 모추 산맥이 헤네켄으로 넘어오며 술렁이기 시작한 국제 사회에, 파르만이 린드버그의 재상을 도왔다는 게 소문이 나면 너도나도 파르만의 성벽을 무너뜨리려 할 것입니다.”

버번 백작이 이마를 문질렀다.

이른바, 괘씸죄라는 거다.

린드버그와 헤네켄의 관계는 좀 복잡했다.

과거에는 형제의 나라였고 린드와이어 제국에서 린드버그 왕국으로 격하된 후에는 모추 산맥의 마정석 거래와 더불어 나름대로 우호적인 헤네켄의 정책 때문에 그 둘 사이에 끼어들려는 나라는 없었다.

이번 일도 어쨌든 두 나라 간의 일이고, 린드버그 왕가의 후계자인 남매가 요청해서 헤네켄이 받아들인 이른바 ‘거래’였기 때문에, 못마땅해도 참아 넘긴 나라들도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제삼국, 그것도 약소국이 끼어든다?

지금까지 참고 있던 동맹국들은 그 화살을 파르만에게로 돌리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키치너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그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버번 백작이 말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글렌은 잠시 생각하다 레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키치너가 나타나기 전에, 빠르게 린드버그를 공국으로 독립시키려고 하네만. 공주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레아는 글렌이 린드버그의 문제에서 빨리 손을 떼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키치너가 파르만의 도움을 받아 린드버그를 재탈환하러 오기라도 한다면…….

아니, 재탈환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원래도 린드버그는 키치너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린드버그를 침략, 하려고 한다면.

레아가 린드버그에 있고 린드버그가 헤네켄의 정치적 치세 아래 있다고 모두가 이해하는 동안에는 헤네켄이 국제 사회의 평화를 깨면서까지 전쟁에 등판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레아는 그럴 바에는 공국으로의 독립이 아니라 원래부터 독립된 왕국을 유지하는 것이 어떤가 생각했다.

“그냥 린드버그 공국, 지금의 왕국을 유지하고 제가 차기 왕으로 앉는 것은 어떻습니까?”

회장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글렌 황제는 오호라,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레아 공주를 바라보았다.

벨프리는 공주가 칼 린드버그가 사라진 이때를 틈타 모추 산맥의 채굴권도 무마하려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렌 황제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그녀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레아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모추 산맥의 마정석은 헤네켄의 것입니다. 정치 참여권도 여전히 유지될 것이고요.”

칼 린드버그가 헤네켄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을 때, 왕권 유지를 포기해야 하지 않나 하고 말했던 건 레아였다.

“저나 칼이나 정치를 하고 린드버그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에는 경험도 지혜도 모자랍니다. 결국에 이렇게 큰 도움을 받게 되어서 감사할 따름이죠.”

그녀의 말에 좌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망국이라곤 하지만 그녀는 한 왕국의 첫 번째 후계자.

누리던 걸 전부 내려놓고 타국의 정치적 간섭을 요청하거나 대놓고 감사를 표하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에 큰 타격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담담했다.

“그렇다면 왜 왕국의 유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떤 제후가 물었고 레아는 고개를 저었다.

“린드버그가 헤네켄의 정치적 간섭에 의해 공국으로 격하되는 것은 어쨌건 헤네켄의 속국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혹시나 파르만을 등에 업은 재상이 린드버그와 전쟁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녀가 잠시 말을 골랐다.

린드버그에 전쟁이 발발하면, 평민들 중 누가 나와서 싸워 줄 수 있을까.

오랜 굶주림과 폭정에 지쳐서 삽자루 들기도 어려웠던 그들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동시에 불가피하기도 했다.

“헤네켄은 어쩔 수 없이 지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일지도 모릅니다만, 책임의 무게가 다릅니다. 왕국이 전쟁을 하든지 말든지 무시하고 지나가거나, 어설피 발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다른 나라를 돕기 위해 파병을 하는 것과 속국을 지키기 위해 병사를 배치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의미가 달랐다.

“하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었을 텐데요. 헤네켄이 내정 간섭에 들어갔다는 것을.”

벨프리가 말하자 그녀가 벨프리를 보며 싱긋 웃었다.

벨프리는 왠지 가슴이 선뜩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더욱 지금은 린드버그의 왕권을 유지해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어리고 모자란 린드버그의 왕이 헤네켄의 도움을 받는 것이지, 헤네켄이 먼저 적극적으로 시작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아, 그러니까.

‘대놓고 친한 척은 하지 말자는 말이구나.’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글렌 황제가 껄껄껄 웃었다.

“과연 맞는 말이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네.”

레아가 의아하게 황제를 돌아보았다.

내정 간섭은 여전히 하면서 정치적으로 언제건 발을 뺄 기회를 갖는 것. 그게 국제 사회에서 얼마나 괜찮은 건지 모르지 않을 텐데?

다들 황제에게 왜 이렇게 좋은 기회를 걷어차냐고 묻는 듯했다.

특히 헨드릭 공작이 목소리를 낮추고 “폐하.” 하고 불렀다.

그러나 글렌은 웃음기를 지우고 이어 말했다.

“헤네켄을 우습게 보지 말게, 레아 린드버그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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