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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알파 황태자가 날 너무 좋아함-46화 (46/150)

46화

* * *

쫄깃하고 결대로 잘 찢어지는 납작한 빵에 신선한 우유를 넣고 만든 고소한 스튜뿐인 소박한 밥상이지만, 말레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먹어 봐요.”

말레는 송구하다는 듯. 숟가락을 들고 한 입 떠먹어 보더니 이내 푹푹 숟가락질을 해 가며 금세 한 그릇을 비웠다.

잘 먹는다, 잘 먹어.

흐뭇하게 웃으며 더 줄까 물었더니 더 먹겠단다.

세상에 금수저, 은수저도 많다지만 눈앞의 수더분한 총각은 낙농수저다.

이 근방에 가장 큰 젖소 무리를 이끄는 집의 후계자로 부지런하기도 마을 일등이었다.

“눈이 많이 와서 올라오기 힘들었을 텐데, 고맙습니다.”

“뭘요. 매일 아침마다 오시는 분이 안 오셔서 걱정했거든요.”

말레는 또 얼굴을 붉혔다.

“혹시 눈 때문에 내려오지 못하고 계신 건 아닌가 해서요.”

아이고, 이 착한 녀석.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아직 그 정도까지 친하진 않았기 때문에 참았다.

“겨울인데 여물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 괜히 궁금해서 물어봤다.

말레가 그런 걸 물어봐 줄 줄은 몰랐다는 얼굴로 빵을 집었다.

“미리 수확한 보릿대나 짚을 말려 두었다가 사용하고 있어요. 다행히 이 일대는 매년 풍작이라 겨울에 여물이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요.”

“그렇군요.”

내 대답에 말레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눈을 질끈 감고 물었다.

“혹시, 젖소를 키우거나, 우유를 짜는 것에 관심 있으세요?”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우유에도 관심 많고 버터나 치즈를 만드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 엊그제 수제 치즈를 만들어 봤는데 좀 먹어 보실래요?”

처음 만들어 본 거라 별맛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내 손을 말레가 턱 잡았다.

“저, 괜찮으면 우, 우리 농장에 놀러 오실래요? 젖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제, 제법 귀엽고. 또.”

아, 이런.

눈치를 밥 말아 먹었어도 지금 말레가 하는 말이 뭔지는 눈치챘다.

말레는 송아지를 구경하러 오라고 권유한 게 아니라 데이트 신청을 하고 있었다.

그의 타는 것처럼 붉어진 얼굴과 더듬거리는 말투, 시선을 피하는 몸짓이 딱 첫사랑의 그것이었다.

결정적으로 손바닥에 심장이 달린 듯 두쿵 두쿵 뛰고 있는 손바닥의 열기가 확신을 심어 주었다.

“송아지가 귀엽고, 또, 직접 우유를 짜 볼 수도 있고, 또…….”

이젠 횡설수설하기까지 한다.

이 얼굴이 문제인가. 말레는 알파가 아닐 텐데.

“견학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말레. 혹시 제게 다른 관심 있습니까?”

게다가 이 청년은 열여덟 한창때의 남자아이였다.

덩치가 내 두 배는 되니까 청년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말레가 우물쭈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남자의 연애 상대가 되는 건 내게는 한 사람으로 족한데.

가볍게 머리를 짚었다가 말레와 눈을 마주쳤다.

“미안합니다. 난…….”

돌려서 거절하려는데 말레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압니다, 카르덴은 오메가고, 또 모종의 이유로 도피 중이시라는 걸요.”

예?

순간 카르덴이 내 가짜 이름이라는 것도 까먹을 뻔했다.

내가 도피 중이라고?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그전에 오메가인 건 어떻게 알았는데.

냄새가 나나?

눈을 휘둥그레 뜨자 말레는 쓰게 웃었다.

“오메가가 알파를 피해 도망 다니는 건 흔한 일이잖아요? 귀족 나리들이 정략혼을 할 때 빼고는 평민 오메가들은 알파 나리들께 두려움을 느낀다던데.”

저희 마을에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도피한 오메가가 찾아옵니다, 하고 말레는 말했다.

“유행이랍니까?”

어이가 없어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당황스러웠다.

“아닙니까? 카르덴, 당신은 평민 오메가라, 귀족 알파 나리와 결혼하기 싫어 도망친 것 맞죠?”

마을 전체가 쉬쉬하면서도 다 아는 사실이란다.

“도망이라면 도망이지만, 그런 건 아닌데요.”

일단 나는 평민도 아니었고, 황태자랑은 정략혼을 하는 게 맞았지만 복합적인 이유로 잠시 곁을 떠난 것뿐이었다.

사실 떠날 때도 영원히 그의 시선을 피해 살 수 없을 거란 생각도 했고.

다만, 원작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레아와 마르코, 엘리자벳 때문에라도 한 번쯤은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야 깨달은 거지만, 만약 벨프리가 오메가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의리 때문에라도 아드리안하고 결혼을 해야만 했다.

그게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고 그가 내게 바라는 유일한 한 가지였기도 했으니까.

“아름다운 오메가 남성이 혼자 이곳에 나타났을 때는 도피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어서요. 그래서 저는 혹시나 하고, 카르덴이 원한다면 저, 저라도 짝을 맺어서 같이 농장을 꾸리면 좋겠다고…….”

베타랑은 짝을 못 맺잖아.

“일단 약혼을 하나 결혼을 하면 귀족 나리들도 청혼을 할 수 없으시니.”

아 그렇게…….

말레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카르덴 님은 혹시 귀족이십니까?”

“……그건 아닌데요.”

귀족이 아니라 왕족이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말레는 결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귀족은 아니어도 좋은 집안의 오메가겠지요. 마정석을 고를 때 지켜봤습니다만. 마치 거기 있는 모든 마정석의 용도를 아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그 바쁜 아침 시장에서 별걸 다 관찰했구나.

“말레, 나는…….”

“그렇다면 저와 혼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말레는 대놓고 물었다.

어수룩하다 생각했던 청년은 강한 힘으로 내 팔을 움켜쥐었다.

“저희 집에도 돈은 많습니다. 지금껏 누리던 것을 단 하나도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혼인 후에 그대가 원한다면 제도의 중심에 별채를 구입하겠습니다.”

아니, 저기요.

“당신처럼 곱게 자란 오메가가 이런 낡고 왕래하기 불편한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것도 일주일이면 질릴 테죠. 아무도 같이 먹어 주지 않는 요리를 혼자 만드는 것도.”

“말레.”

“제게 일부러 식사를 대접하며 흐뭇해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느꼈습니다. 많이 외로울 거라고.”

그건 좀 정곡이라 더 당황스럽다.

“베타이긴 해도 알파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힘도 좋으니 히트 사이클이 와도 얼마든지 잘 달래 줄 수 있습니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냐.

열여덟 꼬마애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힘들죠? 외로운 밤을 혼자 지새우고 타는 듯한 몸을 쓰다듬는 것도.”

말레의 눈빛은 점점 탁해져 갔다.

그는 오메가에 대해 뭔가 환상을 품은 것처럼 보였다.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악력의 차이가 남달라 쉽게 뿌리쳐지지도 않았다.

와락 겁이 났다.

말레가 바짝 몸을 붙이고 목덜미에 이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그게 더 말레의 신경을 건든 것 같았다.

“왜 거부해요! 사랑 없는 결혼이 하기 싫어 도망친 거잖아요! 귀족 나리와 결혼해서 얻는 재물과 명예보다 그게 숭고해서 도망친 거잖아. 내가 해 줄게요!”

무슨 소리야.

혼자 소설 쓰고 자빠졌네.

머리가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갑게 식었다.

말레는 이제 바지춤에 손을 밀어 넣으려는 모션을 취했다.

나는 별수 없이 주먹으로 그의 뺨을 후려쳤다.

퍽 소리가 나고 말레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말레는 설마 내가 자신을 때릴 줄은 몰랐는지 약간 손에 힘을 뺏고, 나는 그 틈을 타 말레에게서 빠져나가 뒤로 물러섰다.

그의 뺨을 때린 주먹이 얼얼하게 아파 왔다.

“당신이, 어떻게…….”

“내가 무엇에서 도망쳤든 그게 널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잖아.”

냉정하게 쏘아붙이자 말레가 눈을 부릅뜨고 나를 벽으로 밀쳤다.

나름대로 단련을 했다 생각했는데 몸이 힘없이 밀리고 등이 벽에 부딪히자 서글픔이 밀려왔다.

이렇게 약할 필요는 없잖아.

이를 악무는 내게 말레가 핏발 선 눈으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럼, 왜 그랬어? 왜 웃어 줬어? 왜 좋은 냄새를 풍기면서 엉덩이를 흔들고 다니냐고!”

“개소리하지 마. 네 앞에서 웃은 건 친절이었고 좋은 냄새를 풍기는 건 내 자의도 아니었어. 과대망상도 적당히 해.”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역겨웠다.

혼자 망상하고 흥분하고.

“오메가가 좋은 냄새를 풍기는 건 다 상대를 유혹하기 위한 거라고 했어! 내가 그 유혹에 응해 주겠다고 하잖아!”

아, 그만 좀 해라.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지고, 이 순간에는 말레를 죽이고 싶었다.

말을 하면서 어찌나 몸을 흔들어 대는지 부딪힌 등이 이젠 멍이 든 것처럼 아팠다.

“누가 네게 그런 엉뚱한 상식을 심어 줬냐? 내가 좋은 냄새가 나는 건 잘 씻어서 그런 거야. 그리고 유혹이라 생각한 것도 내가 대놓고 너랑 자겠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다 네 착각일 뿐이야.”

귓구멍이 막힌 놈 같았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말레가 나를 바닥으로 메다꽂고 그 위에 올라탄 것이다.

가슴에 바위가 얹힌 것처럼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너! 읍!”

소리를 지르려는 내 입을 말레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틀어막았다.

“날 집에 왜 들였어? 이건 다 네 잘못이야. 너는 내가 가질 거야.”

다리를 들어 고간을 걷어차려는 시도도 저지됐다.

말레의 행동은 마치 진짜 공포가 무엇인지 알려 주려는 것만 같았다.

좋은 놈 연기는 집어치우려는 듯 말레가 한쪽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너, 내 포커 친구들이 다 널 노리고 있는 건 알아? 오메가는 처음 한 사람에게 각인이 되면 평생 그 사람만 본대. 눈길을 마다하고 올라온 보람이 있어.”

이, 개자식이.

숨이 모자라 머리가 어질했다.

내가 오메가가 되고 싶어서 됐냐?

아니, 적어도 너 같은 개자식한테 쪽도 못 쓰고 당하라고 된 건 아니야.

내 몸 어딘가에 있다는 망할 마력은, 이런 때조차 잠잠했다.

말레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명백하게 목덜미를 노리고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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