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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알파 황태자가 날 너무 좋아함-47화 (47/150)

47화

칼 린드버그는 이를 악물었다.

절망스러워도 이까짓 걸로 눈물은 흘릴 수 없었다.

누구 앞에서는 잘만 나오던 눈물이었는데.

……누구보다 강하고, 모든 걸 쥐고 있으면서도 칼 린드버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누구 씨가 떠올라서 이대로 더 당할 순 없었다.

눈을 부릅뜨고 말레를 노려보며 온몸에 힘을 줬다.

“가만히 있어!”

뒈져라. 너 같으면 가만히 있겠냐.

칼은 자신의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숨겨진 마력을 찾아보려 애썼다.

레아 공주가 연초에 불을 붙일 때처럼.

나와, 나오라고. 뭐든 좋으니까 나오라고.

바르작거리는 칼 린드버그를 억누르고 말레가 이를 세우는 그때, 칼 린드버그는 제 몸에서 어떠한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가슴에서 불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듯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타오르는 장작.

순간 손을 뻗은 곳에 놓여져 있던 마정석을 들고 잽싸게 말레의 정수리에 내리꽂았다.

“뭐야! 으아아악!”

말레는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정수리에 마정석이 닿아서가 아니었다.

칼 린드버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마정석으로 순식간에 흘러 들어가며 정수리부터 척추까지 타는듯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칼 린드버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붉게 변해 있었다.

마치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모습에 말레가 벌벌 떨며 몸을 물리다가 엄습하는 고통에 다시 몸을 배배 꼬았다.

“너, 힘 조절 좀 해. 개자식아.”

찌뿌둥하고 욱신거리는 몸을 추스르고 말레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는 칼 린드버그에게서 황홀한 만큼 좋은 냄새가 났다.

그러나 말레는 더 이상 그 향기가 자신을 유혹하려는 목적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자신을 죽이려고 등장한 사신 같았다.

말레가 엉거주춤 피하자 칼 린드버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왜? 무서워? 아까의 기세등등하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 봐.”

칼이 제 손에 쥐고 있던 〈타오르는 장작〉을 고쳐 쥐고는 말레의 눈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무슨, 이게 무슨…… 짓.”

“무슨 짓? 아까 네가 하던 것처럼 위협해 보려는 건데.”

말레는 당장이라도 그 마정석이 제 머리에 꽂힐까 두려웠다.

칼 린드버그는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이 조종하는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혼자서 망상 병에 빠진 것도 모자라 감히 실행에 옮겨 무고한 사람을 겁탈하려던 애송이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 싶었다.

“짝사랑은 혼자 하라고. 응? 힘이 있으면 다른 데다 써. 왜 엉뚱한 짓을 해서 남의 인생도 망치고 네 인생도 망치려고 하냐고.”

마력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한 해에 한두 명, 이 마을로 도망쳐 왔다던 오메가들은 다 어떻게 된 걸까.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가 호감을 사고 그의 마음이 똑같은 크기로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좋은 방법도 있는데. 왜 이런 짓을 했어?”

호기심? 육체적 욕망? 아니면 그냥 어디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싶어서?

칼 린드버그의 분노는 고통과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말레를 보며 더욱 커져 갔다.

이 자식도, 이 자식의 포커 친구들이라는 그치들도 전부 잡아다가 똑같이 해 주고 싶었다.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했던 이 동네에서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사람에게 큰일을 당할 뻔한 터라 배신감이 배가 됐던 탓이다.

“괴, 괴물.”

너울너울 춤추기 시작하는 머리카락과 동시에 빛나기 시작하는 마정석을 보며 말레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칼 린드버그가 저를 밀치는 통에 바닥으로 쓰러져야만 했다.

“형질자가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몰랐나 봐. 이렇게 놀라는 것 보니.”

말레는 더듬거렸다.

“있,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쓰는 사람은 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새 울먹이며 말투도 공손해진 말레는 칼의 손에 쥐여진 마정석을 힐끔거렸다.

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아도 직접 마법을 썼다.

아드리안이 마법을 쓰는 건 아직 본 적 없지만, 그는 명실공히 헤네켄 최고의 마법사라고 했고.

벨프리는 오히려 오메가인 칼 린드버그가 마법을 쓰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고 이야기했다.

아, 하고 칼이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말했다.

“너, 진짜 오메가 본 적 없지?”

이게 거짓말을 하고 있어.

“아, 아닙니다. 그것만큼은 거짓이 아닙니다. 손에 꼽을 정도긴 했지만 본 적 있습니다.”

형질자가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상식처럼 취급되던데, 말레가 만난 형질자 중 단 한 명도 마법을 쓴 적이 없다고?

“대, 대부분 열성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사실 그 사람들은 베타가 향기를 맡을 수도 없어 분위기나 외모나, 그. 발정기의 유무로…….”

칼이 눈을 번뜩였다.

더듬거리는 꼴을 보니 히트 사이클이 온 오메가에게 눈독 들였던 게 분명했다.

쾅.

“아악!”

가랑이 사이에 마정석이 내리꽂혔다.

나무로 된 마룻바닥이 번개를 맞은 것처럼 그을리자 혼절할 듯 구는 말레의 멱살을 잡았다.

“그들을 어떻게 했지? 말해!”

“모, 모릅니다!”

고개를 흔들며 잡아떼는 말레에게 마정석을 검처럼 휘두르며 코 밑에 가져다 댄 칼이 이를 갈며 물었다.

“거짓말하면 한 대씩 칠 거야.”

말레가 억, 하고 고꾸라졌다.

맨주먹에 명치를 맞은 탓이었다.

아까는 비실비실하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아프고 드센지 모르겠다.

칼은 재차 질문했다.

“그들을 누가 데려가고 어떻게 했는지 지금은 어찌 됐는지 소상히 밝혀라.”

“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는데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

말레의 설명은 그러했다.

말레와 포커를 같이 치는 이 마을에 유지들은 네다섯 정도였는데. 그들은 가끔 흘러 들어오는 오메가들을 노렸다.

알고 보니 이 집의 아들도 그 무리 중 하나였고.

가끔 도망친 듯 보이는 오메가들의 예쁜 외모에 홀려, 그들이 히트 사이클이 올 때쯤 내기에서 이긴 사람이 침범하는, 일종의 놀이였다.

이 대목에서 칼은 대차게 말레의 코를 들이받았고, 코가 깨진 말레가 줄줄 울며 한번도 성공한 적 없다 말했다.

오메가들은 히트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끈질기게 저항했고, 시간이 흐르면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기절을 했다고 했다.

푹 잠이 든 그들이 아침에 빈방에서 눈을 뜨면, 오메가는 사라지고 없었다고.

“그럼 그만뒀어야지!”

“저는 진심이었단 말입니다!”

말레는 억울한 듯 눈꼬리를 내렸다.

“뭐?”

“진짜 마음에 들었다는 말입니다!”

칼이 귀를 후볐다.

더 듣고 싶지도 않았다.

“난 진심이었어요. 매일 웃어 주고 그러니까.”

엉엉 우는 말레에게 칼이 차갑게 말했다.

“나는 지나가는 개한테도 잘 웃어 줘.”

울던 말레는 냉정한 칼을 보며 이 사람이 정말 매일 아침 찾아와 제게 다정하게 말을 걸던 그 사람이 맞나 했다.

“그 오메가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고?”

“정말 모릅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며 말레는 이제 그만 저를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나만 더 묻자. 너 이게 무슨 마정석인지 알아?”

칼이 〈타오르는 장작〉을 들어 보이자 말레는 보기도 두렵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똑바로 봐. 이게 무슨 마정석이냐.”

“보, 보온 마법이 걸려 있는 마정석입니다.”

칼이 눈을 흘겼다.

“이름이 뭔지 모르고?”

“마정석에도 이름이 있습니까?”

그런 건 마정석 판매상들도 설명을 해 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마정석에 입력된 수식이, 마정석의 정체성이라 생각했던 건 칼 린드버그뿐인 것 같았다.

“이 마을에서는 매번 똑같은 마정석을 보온 용도로 구입하나?”

“저는 수식 따위 읽을 줄 모르는 평민이라 잘 모릅니다.”

규칙이 있는 건 아니구나.

칼 린드버그는 마정석의 맹점을 파고들 작정이었다.

아드리안은 다양한 종류의 마정석을 평민들이 구입하고 사용하기 편한 방법을 고안 중이었다.

그러나 수도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마정석의 가격이 비싸지며 구할 수 있는 마정석의 종류도 별로 없는 게 이상했다.

어쩌면 중간 판매상들이 떼어먹는 것이 많을 거고, 그 배경에는 구매하는 사람들이 마정석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 깔려 있겠지.

아드리안 곁에서 떠난 주제에 뭐 그런 게 다 궁금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차하면 돌아갈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칼 린드버그의 인생 신조는, 기술은 많을수록 좋다고. 플랜도 많을수록 좋다였으니까.

감정적인 부분은 제외하더라도 벨프리가 오메가가 되지 않았다면 칼은 돌아갈 생각이었다.

물론 아드리안이 받아 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잠깐 슬픈 표정을 지은 칼은 움직이려는 말레에게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수식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면 마정석은 어떻게 구입해?”

“그, 마정석 판매상에게 용도를 설명하면 알아서 내어 줍니다.”

“가끔 만났다는 형질자들도 주는 대로 그냥 구매하던가?”

“마, 마정석을 다루는 법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래서 마정석 상인들이 형질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도 있다고 우물우물 뱉어 낸 말레는 제발 살려 달라고 빌었다.

칼 린드버그는 그제야 제 위화감을 알아차렸다.

휴대폰을 매일 들고 다니면서도 정확한 구조나 쓰임의 기전을 모르듯이, 마정석을 매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저 주는 대로, 설명하는 대로 써먹기만 할 뿐이었다.

심지어 마정석은 기계가 아니라서 고장도 나지 않고 그냥 소모되면 버릴 뿐이고.

대놓고 마정석의 용도를 써 놓은 수식은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한테는 그냥 그림이나 마찬가지였던 거다.

그러다 보니 문장도 단어도 아닌 애매한 수식이 탄생하고 디테일을 조절하기도 어려웠겠지.

대부분이 좋은 집안의 자제들이고 마력을 탑재한 형질자들조차 수식을 알아보는 것만큼은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아드리안은 수식을 전부 이해하고 있을까?

이게 언어라는 걸 알고 제작하는 걸까.

“이제 그만 좀 놔 주십시오. 없었던 일로 해 주시면 더 이상은 허튼짓하지 않겠습니다!”

말레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칼이 이 녀석과 그 포커 친구들까지 전부 경비대에 넘길까 고민하던 차에 문이 뻥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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