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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알파 황태자가 날 너무 좋아함-51화 (51/150)

51화

* * *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던 그 달콤한 시간에 홀로 지옥을 거니는 사람이 있었다.

토마스 랭커스터.

유일한 평민 귀족으로 자부심과 더불어 부담도 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랭커스터라는 성은 황제가 직접 하사한 것으로 세습제인 귀족의 유일한 특권이다.

서쪽 영지는 규모는 작으나 영지 중앙을 관통하는 강과 산을 끼고 있어 밭농사와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제도 끄트머리에 위치 해있어 젊은 사람들이 제도 중심으로 옮겨 가는 탓에 인구가 점점 줄고 상업이 쇠퇴하는 문제가 있었다.

토마스가 영지를 이어받은 뒤 그를 지지하는 평민들이 영지로 이주해 오며 점차 활기를 띠어 가고 있었다.

강 근방에 수로를 놓고 어업으로 연명하던 사람들에게 이동권을 부여하여 선박 무역을 실행에 옮긴 건 토마스였다.

발베니 대공작의 상단이 거의 모든 상권을 휘어잡은 탓에 중심으로 몰리는 상업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데 일조한 셈이어서 글렌 황제도 흡족해하며 지켜보았다.

그렇게 조선 사업에까지 줄을 대려던 이 중요한 시점에.

하필이면.

“린드버그의 왕자를 건드렸다고!”

토마스가 쾅, 책상을 내려치자 부관이 딸꾹질을 했다.

“황제 폐하께서 그분을 차기 황태자비로 인정하신 것이 바로 오늘 오전이었다! 그분이 지나가듯 하는 한마디의 무게가 얼마나 큰 줄 알아?”

부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젊고 혈기왕성한 영주는 평민인 제 처지를 망각하는 법이 없어 매사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아랫것들에게 함부로 언성을 높이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그런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이 사안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지금 당장 황성 기사단이 쫒아와 관련 인물들을 모두 죽이라고 해도 나는 손쓸 재간이 없어.”

황제의 검 끝은 누구에게나 공명정대했다.

그것이 귀족이어도 그랬고 평민이어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그 죄의 무게만큼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무거운 것이, 겁탈과 살인이다.

정상 참작이 존재하는 살인의 경우에는 사형을 면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겁탈의 경우엔 미수로도 이유 불문 사형이 집행되었다.

토마스는 제 안일함을 탓했다.

신중을 기한답시고 유지들을 좀 더 세게 틀어 쥐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금 감옥에 들어앉은 다섯 명의 청년들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이 영지에 자리 잡고 있는 유지의 후계자들이었다.

베타고, 평민이었지만 재산의 규모도 크고 인맥도 넓었기 때문에 토마스도 쉽게 건들 수 없었다.

게다가 겉으로는 새 영주를 환영하며 적극적으로 나서 줬던 통에, 이때까지 부러 책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그 종목도 다양해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그런 그들을 황태자가 모두 죽인다면, 차마 황태자를 욕할 수 없는 유족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자신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릴 터였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연신 한숨을 쉬던 상관에게 부관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혹시 심증이거나 위증은 아닐 런지요?”

성주의 방보다 화려한 손님방에서 황태자는 제 예비 배우자를 쉬게 한다고 틀어박혀 나오질 않고 있었다.

부관은 직접 본 사람이 없으니 적당히 황태자를 구슬릴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말레가 그 집으로 올라간 건 아침이고 황태자는 점심나절에나 도착했다고 했다.

그러니 적어도 황태자는 사건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황태자가 직접 봤다면 이미 말레는 저세상 사람이었겠지.

아무리 공명하고 정대하다고는 하나 제 오메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알파는 눈이 도는 법이었다.

그렇게 책으로 배운 부관이 더듬더듬 말했고 토마스는 제가 부관을 잘못 뽑았구나 생각하면서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위증도, 만만찮게 큰 죄이니 감안하여 달라 요청하면…….”

“미친 소리 작작해.”

“예?”

상관의 거친 언동에 충격을 받은 부관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심증은 우리에게 있고 황태자는 확증이 있을 거다.”

토마스가 으득 이를 갈았다.

“황태자가 어떻게 제 오메가를 한번에 찾으러 왔다고 생각하는가, 향기를 따라서? 그거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지. 황태자에겐 마도구가 있네, 반려의 신체 상태를 소상히 알 수 있는.”

“그, 그런 마도구도 있습니까?”

“마정석과 수식을 다루는 데에 아주 소년 시절부터 천재라 칭송받았던 분이야! 그분이 못 만드는 게 있을 것 같아? 그분이 목에 걸고 다니는 거. 왕자님에게도 똑같은 게 있을 것이다. 그분은 왕자님이 느낀 위협을 감지하고 이쪽으로 온 거라고!”

부관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워낙 정신이 없어 마도구 따위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하물며 위증이라 한들, 황제 폐하께서 듣고 그냥 넘기시겠는가? 그 개자식들이 몰려다니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걸 본 사람만 수십이야. 잘못하면 쉬쉬한 마을 사람들까지 연좌제로 끌려갈 거야.”

감옥에 들어찬 놈들에게 추궁을 하자 심지어 술술 털어놓기까지 했다.

왕자가 진술할 필요도 없었다.

토마스는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귀족 사회에 퍼지고 나면 누구도 이 영지를 곱게 보지 않을 거였다.

수십 년간 천천히 간격이 좁아지던 평민과 귀족의 사이가 다시 벌어져 평민의 정계 진출의 문마저 닫힐지도 몰랐다.

“나비 효과처럼……..”

토마스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 이를 어찌합니까? 더불어 황태자 전하 개인의 원한까지 짊어지게 됐으니.”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부관이 덜덜 떨며 물었다.

토마스는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타계할 것인가.

인생 최고의 고비였다.

* * *

칼 린드버그는 숨이 막혔다.

답답하거나 불쾌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제 마음을 자각한 뒤 첫 번째 걸음으로 비밀 한 가지를 털어놓기로 한 그에게 아드리안의 침묵은 불안과 기대를 동반했다.

“널 만나기 전까지 내가 남자의 몸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줄 몰랐거든.”

“……네가 베타인 줄 알아서?”

칼이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 아드리안을 올려다보았다.

“알고 있었어?”

아드리안은 놀란 칼의 눈이 정말 토끼와 똑 닮아서 한입에 삼키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어쨌든 그래서,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고, 그다음은 두려웠다가 좀 더 복잡한 생각이 들었어.”

“내가 개처럼 네 페로몬을 쫓아다니는 걸까 봐?”

‘개처럼’이라는 비유는 듣기 거북하다고 칼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드리안의 입장에서는 ‘고작 그런 일’이었지만 칼의 입장에서는 많이 두려웠겠다. 생각했기 때문에 칼을 안심시키고 싶어 일부러 웃어 보였다.

“어, 린드버그에 가기 전부터 헤네켄으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 그 생각만 했거든. 타인의 페로몬을 맡아 본 것도 처음이었고, 그게 내 몸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도 처음 느껴 봐서…….”

칼 린드버그의 연애관은 상당히 고리타분했다.

누가 소개를 시켜 주건 우연히 만나건, 두세 번은 더 만나고 자연스레 서로에게 익숙해진 후 마음이 맞으면 손도 잡고 입도 맞췄다.

그러다 더 깊어지려면 깊어지고 아니면 조용히 떠나보내 주는 얌전한 연애.

그런 그에게 아드리안 헤네켄과의 만남은 자연스럽지도 않았고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불처럼 화르륵 타올라서 갑자기 재로 변할 것만 같은 느낌 혹시 알아?”

아드리안은 칼이 말하는 두려움이 헨드릭 공작이 말하는 두려움과는 결이 다르단 걸 깨달았다.

그리고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내가 두려운 게 아니라, 마력적 작용으로 어설프게 시작한 사랑이 끝났을 때 식어 버리는 게 두려운 거. 맞아?”

칼이 고개를 끄덕이며 볼을 발그레 붉혔고 아드리안은 입을 맞추고 싶어 침을 삼켰다.

“그런 건 상상도 못 해 봤거든. 연애는 그렇다 치고 아이라는 결과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무서웠어.”

아드리안은 코에서 무를 뽑는다는 벨프리의 표현을 상기시켰다.

그래, 갑자기 코에서 무를 뽑으라고 하면 누구나 무섭지.

“우리 아직 어리니까 아이에 대해서는 천천히 생각하자.”

“그래도 되는 거야?”

칼은 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계자가 빨리 필요해서 국혼하자고 한 거 아니었어?”

황후 폐하가 임신 중이니까, 혹시 아들이 태어나면 견제라도 해야 하니까?

아니, 아드리안은 이미 황태자고 그런 분위기의 황실은 아니긴 했다.

혼란스러웠던 칼은 횡설수설했다.

아드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칼을 거의 든 채로 침대로 다시 걸었다.

종알거리는 이 입술을 빨리 막아 버리고 싶었다.

상상력이 과해도 너무 과했다.

자기가 오메가인 걸 알기 전까지는 그래도 이성적이었던 편 아니었나.

나름대로 린드버그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마치고 아드리안을 끌어들인 건 적절한 행동이었다.

“정말 세상에 나만큼 괜찮은 오메가가 없어서 그런 거야?”

푹신한 침대 위에 칼을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는 대신 옆에 팔을 괴고 누우며 아드리안은 말했다.

“그냥, 네 발을 묶어 두고 싶었어.”

“왜?”

아드리안은 천천히 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욕망은 배제하고 애정이 담뿍 담긴 손길에 칼의 입이 다물어졌다.

“너는 또 페로몬 얘기냐고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칼이 고개를 저었다.

아드리안은 고개를 가까이하고 칼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 향기가 좋아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맡게 하고 싶지 않았어.”

페로몬은 도화선일 뿐이었다.

서로의 존재를 알아채고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시작점.

칼 린드버그가 된 후 처음으로 페로몬과 애정의 상관관계를 알아낸 작은 입술이 열리며 빼꼼 혀가 마중 나왔다.

그것이 무언의 허락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챈 아드리안이 입술을 마주 대는 것으로 화답했다.

처음으로 연인다운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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