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알파 황태자가 날 너무 좋아함 (105)화 (105/150)

초가 흘러내리며 방이 한껏 어두워졌지만 아드리안에게는 칼 린드버그의 발그레한 뺨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네 얼굴이랑 목소리가 좋아. 남자를 연애 상대로 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거든. 근데 이상하게 네게 안길 땐 네가 남자이고 나도 남자란 게 상관없더라고. 네가 날 이렇게 안을 때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 있는 것 같아서 너를 만난 후에 단 한 번도 외롭다는 생각 해 본 적 없어. 심지어 네가 떠나 있을 때조차.”

아드리안의 온몸에 기쁨이 차올랐다.

칼 린드버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태도를 보면 모를 수 없지. 머뭇거리며 키스하고 몸을 내어 주고 어깨를 도닥이는 그 손길에 거짓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씩, 부족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칼 린드버그는 아드리안이 그를 생각하는 것만큼 절실한가. 그것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근데 지금.

자신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칼 린드버그는 아드리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음, 사실 한 번 널 의심하긴 했지만.”

“무슨 의심?”

감격에 몸을 떨던 아드리안이 뜻밖의 말에 웃다 말고 그대로 굳었다.

“벨프리가 갑자기 오메가가 됐길래 혹시 너 때문인가 하고.”

아드리안의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칼이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도적인 기세로 페로몬이 그를 덮쳤다.

아드리안의 페로몬을 인지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위협을 느낀 적 없는 몸인데 찔리는 게 많아 이번엔 좀 무서웠다.

“그게 무슨 말이야?”

칼이 아드리안에게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몸을 수그리고 양손을 모았다.

“미안해. 나는 베타가 오메가가 되려면 누구랑 꼭 잠을 자야 하는 줄 알았거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밖에 없어서. 또 소설에서는. 네가 벨프리랑. 헉!”

칼 린드버그가 푹신한 침대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래 봐야 아드리안 헤네켄의 팔뚝에 머리를 살짝 부딪히는 수준이었지만 그 팔뚝이 몽둥이에 가죽 씌워 놓은 듯 단단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말해 봐. 누가 누구랑 잠을 자?”

아드리안 헤네켄이 이를 악물었다.

“화내려고? 그럼 말 안 할래.”

칼이 눈물을 쓱 닦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후환이 두려워서 말하기 싫었다.

“말해. 왜 헨드릭 소공자가 나 때문에 오메가가 되어야 하는지.”

사방팔방 핏대를 세우고 험악한 기세를 감추지 못하는 아드리안의 밑에 깔린 칼이 끙끙거렸다.

물렁살 하나 없는 남자의 신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몰라서 그랬어. 그리고 질투 나서. 난생처음으로 질투로 이성이 마비돼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칼이 울상을 지었다.

“방금 전엔 고백으로 사람을 천국에 보내 놓더니. 왜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어?”

“미안해. 아드리안. 정말로.”

아드리안은 자기 허벅지로 칼의 옆구리를 단단히 틀어막고서는 제 얼굴을 가렸다.

“……내 마음이 부족했나.”

“아니, 아니야.”

아드리안이 꼭 우는 사람 같아서 조급해진 칼이 아드리안의 손목을 붙들었다.

“소설에서는 벨프리와 네가 사랑하는 사이라기에, 혹시 그대로 가는 건 아닌지 두려워서 그랬어.”

칼이 낑낑거리며 상체를 들어 올렸다. 아드리안의 허벅지를 벗어나는 일에는 꽤나 힘이 들어갔지만 아드리안에게 지금 입 맞추지 않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 * *

“아드리안, 날 좀 봐 줘.”

화가 단단히 난 아드리안은 평소처럼 애 달래듯 하는 칼의 입맞춤에도 꼼작하지 않았다.

칼 린드버그는 잠시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의심을 했던 것도 사실이고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다 다짐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온통 네 생각뿐이었는데.”

그는 입술 끝을 일그러뜨렸다. 칼이 그를 껴안고 아이를 달래듯 등을 토닥일 때 아드리안은 정말 울고 싶었다.

“다시는 그런 의심 하지 않을게. 네 마음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무지했던 탓이야.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벨프리 헨드릭, 그가 내 젖형제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소문에 시달렸는지 넌 모를 거야. 네가 벨프리에게 날 보내려는 것처럼 굴었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는지도 모르겠지.”

아드리안은 칼의 어깨를 으스러트릴 기세로 힘주어 안았다.

이 사람은 자신을 진창에 빠트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미안해. 응?”

칼 린드버그는 아드리안을 앉혀 놓고 그 위로 스스로 올라갔다. 그의 머리를 감싸고 서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입술에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가슴을 짓누르는 페로몬의 압박이 서서히 사그라들면서 그것은 새로운 흥분을 유발했다.

칼 린드버그는 아드리안의 굳게 닫힌 입술을 치아로 더듬었다.

화가 많이 났나 봐. 입술을 열어 주질 않네.

근데 왜 이렇게 기쁘지.

기시감이다. 솔직하게 부딪혀 오는 아드리안을 보며 애정을 확인할 때마다 이상한 흥분감이 발끝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해.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아. 절대로 나를 외롭게 만들지 않아.

하는 자신감은 안도와 평안을 주었다.

상황이 전혀 평온하지 않은데도 그랬다.

정복욕과 결이 비슷한 느낌이었다.

칼 린드버그는 지금이라면 아드리안이 자신의 목을 졸라도 왠지 기쁠 것 같다는 미친 생각을 했다.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입술을 빤 뒤 칼은 조금씩 주름이 펴지는 아드리안의 미간을 보며 손을 내렸다.

두툼한 가슴을 감싼 얇은 천이 손바닥에 닿았다.

목의 단추를 잠그지 않는 것은 습관인 듯 이미 벌어진 옷깃 사이로 핏줄이 바짝 섰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가만히 입술을 내린 칼이 자신의 목 주변에 키스를 하는 것을 내려다보던 아드리안의 눈은 유례없이 무감각해 보였지만 칼의 옷깃을 쥔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두 번째 단추를 열고 드러나는 가슴에 손을 집어넣어 더듬는 칼은 묘하게 능숙했다.

아드리안이 칼의 손을 잡고 다시 침대에 내리눌렀다.

그의 동공이 어느새 샛노랗게 변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칼의 허벅지 안쪽이 간질간질했다.

당장 맨살의 감촉을 느끼고 싶었다.

다소 거칠어도 좋으니 강하게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아드리안은 평소처럼 덤비지 않고 칼을 내리누른 채로 입술을 열었다.

“미안하면 하나만 약속해.”

“두 개도 약속해 줄게.”

네가 원한다면. 뭐든.

이게 아드리안이 늘 내게 보여 주는 마음이구나. 사랑스럽고 좋아서 뭐든 내어 주고 마는 그 마음.

칼 린드버그가 눈을 치켜뜨고 아드리안을 올려다볼 때 아드리안은 그의 척추뼈가 오싹할 만큼 흥분했다.

잘못하면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아드리안은 이성을 잃기 전에 칼에게 말했다.

“다시는 그깟 소설 따위 생각하지 않기로. 내 앞에서 벨프리나 다른 누구와도 나를 엮을 생각도 하지 마.”

꼭 받아 내고 싶은 약속이었다.

“약속할게.”

칼이 고개를 끄덕이며 새끼손가락을 올렸다.

아드리안은 그 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거는 대신 깍지를 끼고 칼 린드버그의 몸을 꽉 틀어 안았다.

생생한 살냄새와 더불어 치솟는 정복욕에 입맛을 다신 아드리안은 칼을 씹어 먹는 대신 자신의 볼살 안쪽을 깨물었다.

“너도 마찬가지야. 너 자신과 다른 누구도 이제 엮을 수 없어. 꿈도 꾸지 마, 상상도 하지 마.”

고개를 끄덕이는 칼을 본 아드리안이 으르렁거리며 입술을 맞부딪쳤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흡입력으로 칼의 입술과 혀를 먹어 치웠다.

칼 린드버그가 바르작거릴 시간도 안 주고 셔츠의 단추를 모조리 뜯어내어 드러나는 유실을 더듬으며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다.

눈이 마주치면 입술이 빨리고 고개를 돌리면 뺨이 깨물렸다.

아드리안에게서 페로몬이 쏟아져 내려왔다.

반대로 칼 린드버그의 페로몬이 아드리안의 온몸을 달구었다.

히트도, 러트도 아니었지만 두 사람 다 눈이 반쯤 돌았다.

“네가 소설 밖 사람이든, 사실은 칼 린드버그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어.”

목덜미가 피멍이 들도록 짓이겨지고 허벅지가 한계까지 벌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칼은 미소 짓고 있었다.

“사랑해. 내 눈앞에 있는 너를. 그러니까 다시는 혼자 쓸데없는 고민하지 마.”

그리고.

아드리안은 칼 린드버그의 허벅지에 손자국을 남기며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머리카락 끝에서 땀방울이 똑똑 흘러 칼 린드버그의 가슴팍으로 떨어졌다. 인내하고, 또 인내했지만 오늘 밤은 양보할 생각이 이만큼도 들지 않았다.

허리를 곧추세워 유감없이 흥분을 드러내는 아드리안을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칼 린드버그가 한 것은 여느 때처럼 그만두자고 외치는 것이 아니었다.

아드리안은 받은 숨을 내쉬는 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무섭다고 하지 않네. 끝까지 허락한다는 말인가?”

그만하라고 해도 멈출 수 있을지 장담은 못 하겠지만.

칼 린드버그는 무섭다고 말하는 대신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자꾸만 침이 고였다. 충만한 성애의 감각이었다.

옷도 시트도 다 엉망진창이다. 아드리안이 얼마나 더 격렬하게 휘젓든 오늘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름이 아니라 온전한 자신을 주겠다고 결정한 건 자신이었다.

천천히, 서서히 열어 달라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두려움보다 사랑스러움이 뇌리를 지배했다.

배꼽 아래가 벌써 빠듯했다.

아드리안의 눈에 선명히 비치는 헐떡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는 생각도 온데간데없었다.

“괜찮을걸. 아마도.”

“아마도는 뭐야.”

아드리안이 피식 웃으며 칼의 발등을 깨물었다.

칼 린드버그의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힘겹게 뻗어 나온 손이 아드리안의 턱을 감쌌다.

“좋을 거야.”

아드리안은 지체하지 않았다.

이제 물릴 수 없었다.

칼 린드버그의 몸을 한계까지 열어 그곳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드리안 헤네켄뿐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아윽!”

칼 린드버그는 눈을 부릅떴다.

상상보다 더한 고통이다. 세상에 이런 고통이 또 있을까.

하반신부터 몸이 갈라지는 느낌이 생경했다.

아드리안은 온몸으로 칼 린드버그를 안았다.

부수고 싶은 욕구, 보듬고 싶은 욕구, 밀어붙이고 싶은 욕구와 다정히 끌어안고 싶은 욕구.

남김없이 먹어 치우고 싶은 욕구, 온전히 남겨 두고 싶은 욕구.

이중적인 온갖 욕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리를 바꾸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아드리안의 눈이 생생하게 빛을 발했다.

그것은 칼 린드버그도 마찬가지였다.

격통을 참지 못해 아드리안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얽고 방울방울 눈물을 쏟아 내면서도 그가 밉지가 않았다.

마음속 비어 있는 어느 한구석이 차서 흘러넘칠 정도였다.

행복해. 좋아. 사랑해.

입 밖으로 나오는 중얼거림은 나오는 족족 아드리안에게 삼켜졌다.

두 사람은 밤새 서로의 눈에 사로잡혔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사로잡혀 있었겠지.

난잡하게 흐트러진 모양새의 아드리안은 어울리지 않는 정중한 키스를 했다.

달빛에 반짝 빛을 내는 송곳니를 입술 아래로 감추었다.

“이제, 정말 내 거야.”

칼 린드버그의 고백은 주박이 되어 아드리안과 칼을 하나로 엮었다.

체취와 페로몬이 뒤섞여 머무는 밤이 지나 동이 터 오를 때 칼 린드버그는 정신을 놓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홀로 깨어 있게 된 아드리안은 칼에게 완전히 지배당하는 감각을 오롯이 즐기며 앞으로의 나날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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