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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알파 황태자가 날 너무 좋아함 (113)화 (113/150)

같은 마력을 가지고도 누군가를 해치기로 결심했으면 흑마법이고 누군가를 지키기로 결심했으면 백마법이라고 드람뷔 자작은 말했다.

그러나 맥켈런 후작은 말했다.

흑마법이든 백마법이든 그것은 신전에서나 구분하는 것이라며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 조언했다.

칼 린드버그는 맥켈런 후작의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 못했었다.

애초에 흑마법과 백마법의 경계가 칼에게는 모호한 영역이기도 했지만 단지 공격용 마법을 써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거부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수식을 쓰는 족족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가 원하는 대로 발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걸 먼치킨이라고 하는 거 아냐?”

얼어 죽어도 찬 음료를 마시는 루루가 얼음을 씹으며 말했다.

치킨 중 제일이라는 먼치킨수가 우리 오빠라니. 이런 감격이.

그러나 칼 린드버그의 얼굴은 우중충하기만 하다.

저 성격에 달갑지 않기도 하겠다.

“먼치킨이 뭔지는 나도 아는데. 그래도 좀 심하지 않아?”

무슨 수식이 만능열쇠처럼 쓰이냐고.

이제는 마정석에 다이아를 갖다 대기만 해도 숨이 가빠지려고 했다.

“뭐가 심한데? 고작 수식을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게 되어서? 뭐 어때. 그런 능력 하나쯤 탑재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소설 내용 하나도 모르고 빙의해서도 날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뭘.”

“그건 소설 얘기잖아. 이건 현실이고.”

얼그레이 파운드케이크 위에 있는 바닐라 크림을 푹푹 떠먹던 루루가 헛웃음을 쳤다.

“오빠, 정정해야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땅은 소설 같은 현실이고 현실 같은 소설이야.”

칼 린드버그가 이마를 덮고 속눈썹을 지날 만큼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동안 꼬박꼬박 머리를 잘라 주던 마르코가 최근 기사단 수습생으로 들어간 관계로 기르기만 했더니 어느새 이만큼이다.

또 칼 린드버그의 고뇌의 시간이 그만큼 길었음을, 헤네켄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손에 피를 묻히기를 주저하지 않는 레아와 아드리안 헤네켄을 포함한 제국의 미래를 위해. 칼 린드버그는 무엇이든 하기로 결심했으나 그 결심이 가지고 올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안했다.

맥켈런 후작은 그런 칼 린드버그가 답답하다고 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빙 돌아가는 것이.

다소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대의를 이루어야 한다지만 그 희생에 억울한 생명이 포함되는 것에 대의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범위만큼만 영향을 미치는 수식을 쓰고 싶어. 그런데 무섭다고, 연습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야. 그게 잘못되면 어떡하냐. 아니면 내가 그 맛을 보고 일이 안 풀릴 때마다 마법에 의존하게 되면 어떡해?”

아니면 나도 모르는 새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거나.

주관 없는 능력자의 말로는 늘 그런 것이 아닌가.

“겁쟁이.”

“맞아, 나 겁쟁이야.”

루루는 한숨을 쉬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불쌍한 오빠는 아직도 현실의 그림자를 다 못 벗어난 것 같았다.

“오빠. 지금 오빠를 잘 봐.”

루루는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커다란 거울 앞에 흰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남자와 귀여운 외모의 소녀가 나란히 섰다.

“어때?”

“살이 좀 빠졌네.”

칼의 말에 루루가 큭큭 웃었다.

이 풍성한 금발과 바다 같은 눈을 보면서 하는 말이 고작 살이 좀 빠졌다니.

“여기 서 있는 건 칼 린드버그야.”

루루가 무슨 말을 하나 칼은 멀뚱히 서서 거울 속 루루만 보고 있었다.

“칼 린드버그, 직업, 왕자, 특이사항, 오메가.”

연극배우를 소개하는 것처럼 루루가 칼의 턱에 양손을 탁 받쳤다.

“린드버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거기에서 자신이 누리던 게 합당치 않다고 판단하여 성을 떠났고 그러다 헤네켄 제국의 황태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

멀뚱히 서 있던 칼 린드버그의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아니 뭐, 볼 장 다 본 사이에 아직도 저런 반응이라니. 매번 부끄러워하는 것도 재주다.

“마법적 기량이 뛰어난 데 비해 아직 어리숙한 자신이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해. 하지만 그것은 그의 기우일 뿐.”

뜻밖의 말에 칼이 움찔 떨었다.

기우일 뿐이라고.

루루는 이제 칼 린드버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폈다.

이런 건, 어릴 때 전우영이 전재영의 기분을 풀어 줄 때나 했었는데.

“그에게는 수습해 줄 다정한 남친도 있고, 친부모보다 더 그를 생각하는 따듯한 남친의 부모님도 있고 든든한 누나도 있지.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한다면 막을 사람이 한 트럭이라. 결국에는 그가 바라는 해피엔딩을 맞는 인물.”

그게 뭐야.

칼 린드버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캐릭터시트를 짜 봤어.”

루루가 말했다.

새로운 칼 린드버그. 그리고 전우영.

그녀는 슬픔이 살짝 가라앉은 눈을 하며 오빠의 손을 가만히 잡아 보았다.

과거에도 단 한 번 잡았던 오빠의 손에는 더 이상 상처도 티끌도 없었다.

“돈 없고, 백 없고, 어린 동생의 부모 노릇을 하느라 청춘을 다 바친 전우영은 저 밑에서 쿨쿨 자고 있어. 아마 다시는 깨어나지 않겠지.”

루루가 칼의 배꼽 언저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쳤다.

마르코나 벨프리가 봤으면 벌써 분기탱천해서 달려왔을 거다.

“재영아.”

“오빠. 나도 이제 알아. 주변에 폐를 끼치면 내가 부모 없는 새끼라 욕먹을까 봐 매사 조심하며 살았던 거.”

어리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는 시기는 전우영에게 없었다. 그러니 강박적으로 실수를 줄이는 것에 목매는 거지.

“근데 지금의 오빠는 그렇지 않아. 여기 오빠를 좋아하는 사람들 한둘이게? 오빠가 마법을 남발해도 욕할 사람 없지만 혹여 그것으로 세상을 망치게 된다면 내가 책임지고 말릴게. 아드리안 헤네켄도 레아 린드버그도 오빠가 그런 인생 원하지 않는다는 거 모르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

칼 린드버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재영이가 어느새 이렇게 자랐을까. 하고 감격하는 것이 눈에 빤히 보였다.

“고마워.”

“알면 내일은 바삭바삭한 크로아상으로 보답해 줘.”

알았다고 대답한 칼 린드버그는 루루에게도 자신이 보던 지도를 보였다.

“이게 ‘다스릴 리(理)’라는 한자인데. 여기 부수의 꼭짓점이 파르만이야. 아무리 고심해도 지상에서 지하를 폭파시키거나 하는 방법만 떠오르는데. 여기가 전부 주요 도시라서 인명 피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돼. 너라면 어쩌겠어? 혹시 이 중 딱 한 군데만 끊어서 이 한자가 무의미한 그림이 된다면 말이야.”

루루는 턱에 손등을 대고 눈을 깜빡인 뒤. 입을 열었다.

“이게 ‘다스린다’라는 뜻이라고? 나는 이거 ‘이치에 맞다’ 혹은 ‘섭리’라는 한자에 쓰이는 ‘이치 이(理)’로 알고 있는걸?”

* * *

칼과 아드리안 사이에 부는 차가운 바람에 유모는 화색이 됐고 아일라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성의 주인인 레아 린드버그가 자리를 비운 터라 칼 린드버그가 그녀를 응대해야 했는데, 아드리안 헤네켄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못마땅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것이다.

문제는 황태자가 그러고 있을 땐 백이면 백 칼 린드버그 때문이라 칼 린드버그가 적당히 주무르면 알아서 풀리곤 했는데. 오늘은 칼 린드버그도 황태자를 풀어 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린드버그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부디 편히 있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갑작스러운 요청을 받아 주셔서 제가 감사드려야지요.”

일명 비즈니스 미소를 띤 칼 린드버그의 해사한 웃음에 아드리안의 표정은 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머무실 방과 시녀는 미리 배정해 두었습니다. 본관이 아직도 보수 중이어서 별관으로 짐을 미리 보내 두었고, 안내는 이분이 도와주실 겁니다.”

왕자는 그녀 뒤에 시립한 시녀를 가리켜 보였다.

흘깃 시녀를 바라본 아일라는 우물쭈물하다가 유모의 눈치를 한 번 보고 입을 열었다.

“저, 혹시 레아 린드버그 공주님은 언제 돌아오시는지.”

유모가 뒤통수가 따갑도록 그녀를 쏘아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일라는 돌아보지 않았다.

“누님은 이번 주 내로 일을 마무리 짓고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오시면 다 함께 만찬을 들고 그때 아일라 공주님의 환영식도 치를까 해요.”

이번 주라고 해도 주말까지 포함해 고작 나흘이 남았을 뿐이니 레아의 얼굴을 보는 것은 곧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했다.

아일라가 안도했고 아드리안은 쓸데없이 다정한 왕자의 말투에 이를 갈았다.

자신에게는 눈길 한 번 손 한 번 주지 않으면서 공주에게 사근사근 구는 꼴이라니 속이 뒤틀렸다.

“많이 피로하실 텐데 먼저 가서 쉬세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알려 주시고요.”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아일라와 유모가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응접실 안쪽에서 무어라무어라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렸고 시종들이 잽싸게 문을 닫아 소리를 통제했다.

“둘이 죽고 못 산다더니 그것도 과장된 말이었나 봐요?”

유모가 소곤거리며 아일라에게 하는 소리를 들은 시녀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유모 입 조심해. 여기 린드버그 왕성이야.”

앞서 걷는 시녀의 표정이 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아 민망해진 아일라가 유모에게 일갈했다.

“아니 뭐, 이렇게 되면 그냥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해서.”

복도 창에 비친 시녀의 옆모습이 일그러졌다.

“조용히 해. 뒷방에서 잊히지나 않으면 다행이니까.”

황태자가 왕자에게 닿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꼴이 사랑싸움하는 보통의 연인 같은데 무얼.

아일라는 두 사람의 관계 따위 어찌 되어도 좋으니 레아 린드버그가 빨리 환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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