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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알파 황태자가 날 너무 좋아함 (126)화 (126/150)

린드버그 왕성에서 마르코와 숙제를 하던 루루는 문득 등골이 오싹해서 고개를 들었다. 

“루루?”

창밖을 내다보아도 고요하기만 했다.

파르만과 제국은 전투로 정신없을 텐데 여기만 조용하다는 것이 모순적이면서도 불안했던 것이다.

“오빠가 또 터무니없는 짓을 한 것 같은데. 불길한 예감이 들어.”

하도 오빠, 오빠, 자연스레 불러 대어 이제는 그것이 왕자님을 지칭하는 것인 줄 인식하고 있는 마르코가 덩달아 밖으로 초조한 듯 흔들리는 시선을 던졌다.

엘리자벳도 히융, 히융, 울었다.

매일 같이 있는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엘리자벳은 계속 자라고 있었다.

쫑긋 선 귀에서부터 두툼한 발끝까지의 길이가 마르코의 가슴팍을 넘어 턱에 닿을 정도였다.

엘리자벳이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며 방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분이 무모한 일을 하려 해도 아드리안 전하께서 두고 보지만은 않으실 텐데.”

“너희 왕자님이 특정 상황이 닥치면 얼마나 무지성이 되는지 몰라서 그래.”

눈앞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죽으면 그는 발악하듯 그곳으로 향했다.

그게 오빠의 유일한, 전재영이 아는 선에서는 아주 큰 단점이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오빠는 유별났다.

재영은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때에, 부모를 눈앞에서 잃었던 탓일까.

‘우린 왜 엄마 아빠가 없어?’

어릴 땐 재영도 그런 질문을 종종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오빠가 제 가슴을 움켜쥐고 꺽꺽거리며 숨도 못 쉬었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때부터 재영은 질문하기를 그쳤다. 아예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전우영이 이 쓰레기 같은 집구석, 더는 볼일 없다며 그 집 상을 뒤엎었던 날에 처음으로 재영은 부모의 사인을 알게 되었다.

흔해 빠진 이야기였다. 오빠가 학교에 간 후 홀로 남아 있던 어린 딸이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울고불고하니 달랜다고 드라이브를 나가다가 사고가 났다.

생각해 보니 전재영이 죽은 것도 버스 사고 때문이었고, 오빠가 일찍 재영이 뒤를 따르게 된 것도 사고. 이 집안은 엔진 달린 것과는 상극 중의 상극이었다.

빈말로도 좋았다고 할 수 없었던 사촌은 재영이 브래지어를 차기 시작한 때부터 이상하게 접근해 왔다.

그 속내를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재영은 학교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들어와서는 방문을 잠그는 것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결국 사촌의 키가 커진 뒤에 일은 벌어졌다.

‘야, 너는 우리 집에서 쫓겨나면 갈 곳 없어. 그러니까 내 말 잘 듣는 게 좋을 거야.’

‘병신, 초딩도 아니고.’

그때 얻어맞은 데가, 루루가 된 지금도 쓰라렸다. 몸보다 마음이.

‘형이 왜 집에 안 들어오는데? 너 때문이잖아. 너만 아니었으면 네 부모가 죽을 일은 없었을 테니까. 아, 불쌍하네. 형은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텐데. 너만 아무것도 모르고.’

맞아. 그 말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전재영은 당찬 아이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짓을 당한 것이 자신에게도 상처가 아니듯 오빠에게도 상처가 아닐 거라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알렸다.

무뚝뚝한 척해도 상냥했던 오빠는 그날 처음으로 재영이 앞에서 어른에게 쌍욕을 하며 난동을 부렸다.

그 후로 오빠는 마치 누군가를 구하지 못하면 자기가 스스로 죽어 버릴 사람처럼 굴었다. 재영이 매번 잔소리를 하고 핀잔을 줘도. 현장에 나갈 때마다 다른 사람처럼 변해서는 다쳐 오기 일쑤였다.

“평소에는 겁쟁인데.”

루루는 창가에 서서 어둑어둑해지려는 하늘을 바라보며 곁에 나란히 선 엘리자벳의 머리통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아, 제발 앞으로는 쓸데없이 나서지 못하도록 누가 감금해 버렸으면 좋겠다!”

루루의 말에 마르코가 화들짝 놀랐다.

그 ‘누가’가 될 사람은 다름 아닌 아드리안 헤네켄이었으니까.

“무서운 소리 하지 마. 그러다가 정말로 왕자님이 황성에 갇히기라도 하면 어떡해?”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그래 봐야 오빠가 살랑거리며 구슬리면 아드리안은, 아니 전하는 또 지고 말걸.”

하지 마, 이러지 마, 라는 말로 멈추면 그게 어디 집착광공이겠냐. 루루의 기준에서 아드리안은 이미 집착광공 키워드는 버린 캐릭터였다.

혹시 몰라.

“머리끝까지 돌아 버릴 정도로 큰일이 생기면 모를까.”

루루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마르코는 손을 모으고 여신님께 기도를 드렸다.

‘제발 왕자님이 감금당하지만은 않도록.’

평소 같으면 이른 봄을 축하하는 새 지저귀는 소리로 가득했을 정원이 오늘만큼은 정적이었다.

불길한 밤의 시작이다.

* * *

맥켈런 후작은 칼 린드버그가 성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말을 끌고 파르만으로 향했다.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누군가 뒷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제국에 힘을 보태야 하지 않나 하고 안달하게 되어서다.

린드버그와 레바 왕국을 포함하여 파르만의 지하 소굴이 출몰한 여러 소국들은 그 자리를 정리하고 정화하느라 정작 파르만과 직접 싸우는 일에는 힘을 보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왕자가 주요 거점을 이어 완성한 수식이 지하 소굴의 위치를 파악하기 쉽도록 도왔기 때문에 일은 느리지만 진척되고 있었다.

왕자는 이 마법진의 완성으로 보이는 파르만의 왕을 직접 격퇴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이 불필요한 희생을 막고 이다음의 수습을 원활하게 한다는 단순한 이유였지만 후작으로서는 사실 탐탁지 않았다.

파르만은 도대체 이 거대한 마법진을 발동시킬 마력을 어디서 끌어오려고 하는 걸까.

텐지라와 마수들? 갱도를 채우고 있는 인간의 생명력? 그러나 그것들은 지금 당장 미미한 효과를 낼 뿐이었다.

무지차 파르만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라 여태 파르만을 지키고 있는가.

마법의 완성은.

거기까지 고민하던 후작은 망설이지 않고 파르만으로 향했다.

이 진이 발동되면 그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될 국가들은 스무 곳에 가까웠다.

제국과 동떨어져 있지만, 계획대로 흡수하기만 한다면 제국과 힘을 비등하게 키울 수 있는 곳들, 심지어 그 안에는 모추 산맥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왕비 괴물이 데려가려고 했던 건 왕자. 보고에 따르면 그렇게 주인님을 찾아 울부짖었다는데 그게 키치너가 아니라 무지차일 가능성이 지금은 높았다.

왕자를 제 성에 가두고 진을 발동시키면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전부 무지차를 주인으로 섬기겠고. 쓸데없이 줄다리기를 할 필요가 없이 왕자는 무지차에게 귀속되겠지. 그가 각인을 마친 오메가라고 할지라도.

번뜩 그 안에 절대 포함되지 말아야 할 한 사람을 떠올린 맥켈란이 말의 엉덩이를 때렸다.

말은 히이잉, 하고 한번 울다가 가상의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칼 린드버그가 활약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등을 떠밀려고 했지만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제국의 충신이었다.

파르만에 황태자가 있다.

무지차는 일부러 왕자와 황태자가 각인하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알파의 집착과 구속, 상대를 향한 집념은 각인 후에 더욱 강렬해진다.

본능이라 어쩔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황태자는 왕자가 잘못되지 않게 하기 위해 뒤쫓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제 발로 걸어갔던 납치가 되든 간에.

후작이 이를 악물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에도 그녀는 훅훅 더운 김을 뿜어내었다.

맥켈런이 품에서 영상구를 꺼내 들었다.

발동시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헨드릭 공작이 직접 연통을 받았다.

아드리안 헤네켄과 칼 린드버그, 그리고 버번 백작까지 전부 파르만으로 가 있으니 황성에서도 긴장 상태로 대기 중인 모양이었다.

공작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맥켈런의 초조한 음성이 먼저 허공을 갈랐다.

“황태자 전하께서 지금 파르만에 계시면 안 됩니다.”

- 그게 무슨 말이오?

“파르만에서 두 분이 오시기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조용했던 건 마력이 차기를 기다린 게 아니라 마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작이 미간을 주물렀다.

“무지차 파르만은 강한 마력의 인간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길 기다린 겁니다! 일단 왕자가 자신의 손에 있으면 황태자 전하께서 파르만으로 향할 거라는 것을 짐작한 것이지요.”

왕자가 지닌 잠재력이 얼마나 강하든 간에 어차피 무지차는 왕자를 쉽게 죽이거나 마법의 재료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왕자는 우성 오메가였으니까. 저도 대가리가 제대로 박혀 있고 알파로서의 본능이 살아 있다면 그러지 않겠지.

그러나 황태자는 다르다. 알파는 같은 알파를 쉽게 적대시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가 무지차가 우성이라면 같은 우성의 알파인 황태자를 결코 살려 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듣고 계십니까? 두 분을 거기로 보내는 것 자체가 실수였다고요!”

공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가 탄 맥켈런이 소리를 버럭 질렀으나 공작은 관자놀이를 주물렀을 뿐이다.

“공작님!”

- 하아, 듣고 있네.

“당장 버번 백작에게 연락을 취해서 모든 작전을 취소한 뒤 황태자 전하를 모시고, 할 수 있다면 왕자님까지 모셔 헤네켄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공작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맥켈런은 그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 번에 해석하지 못했다.

다만.

“공작님.”

맥켈런의 말이 허공에서 천천히 서행했다.

-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어. 칼 린드버그 왕자님께서 이미 파르만 왕성 안으로 들어가셨네.

“예? 황태자 전하께서도 함께라는 말씀이십니까?”

눈썹을 아래로 축 내려뜨린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후작의 눈꼬리가 뾰족하게 올라가고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홀로 들어가셨습니까?”

- 홀로, 그것도 제 발로 들어가셨다.

히이잉!

격한 후작의 페로몬에 감화된 말이 허공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다리를 휘적였다.

“그런 무모한!”

- 덕분에 황태자 전하께옵서 지금 미쳐 날뛰고 계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분 곁에 있는 형질자들은 전부 후방으로 밀려났고 마수 시체가 산처럼 쌓여 더는 전투를 지속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와, 왕자님은 어쩌고 계십니까?”

- 왕자님이 성안으로 들어간 이후부터 파르만 성 주변으로 듣도 보도 못한 강력한 결계가 쳐졌어. 새로운 마물이 나타나 그 앞을 막고 있다고 하네.

이런 젠장. 왕자님. 어째서.

후작은 제자리에서 다리를 움직이기만 하는 말을 다독였다.

- 파르만의 국왕이 왕자님을 산채로 원한다는 것을 인지하시고 벌인 일이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처음으로 마력을 남용하고 계시지.

황후 폐하께는 절대 이 보고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에 맥켈런은 이를 악물었다.

- 왕자님이 무사하시기만을 바랄 뿐이지만, 문제는 왕자님이 안전하게 거길 빠져나오시고 일이 일단락되더라도 아드리안 전하께서 왕자님을 용서치 않을 텐데. 그것이 걱정이군.

짝을 이룬지 얼마 안 된 내 오메가가 제 발로 적진으로 들어갔다. 나를 홀로 두고.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새빨갛게 물든다.

아드리안 전하의 분노가 공명하듯 느껴졌다.

맥켈런은 일단 파르만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 글렌 폐하께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계시고 버번 백작과 성기사단도 함께하니 큰일이 생길 일은 없는데, 결계를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야. 왕자님은…….

공작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후,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영상구가 종료된 뒤에 맥켈란이 허공에서 ‘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괜히 순수 마법이다 뭐다 해 가며 충동질 하는 게 아니었는데. 선택은 왕자가 한 것이고 황제가 공인하긴 했지만 뒤에서 계속 왕자의 기를 세워 준 것은 자신이었으니 제 잘못이 분명했다.

“이 벌은 왕자님을 무조건 구한 뒤에 받겠습니다.”

후작의 말이 밤하늘에 긴 호선을 그리며 쏜살같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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