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알파 황태자가 날 너무 좋아함 (131)화 (131/150)

“첫 번째, 아래에 달린 몽둥이로 죽을 만큼 혼난다. 두 번째, 호화로운 방에 감금당한 뒤 아래에 달린 몽둥이로 혼난다. 세 번째, 혼도 안 나고 감금도 안 당하지만 평생 발닦개가 된다.”

셋 중에 뭐가 될 것 같냐?

루루가 손가락을 꼽으며 하는 말에 마르코가 칠색 팔색을 했다.

“셋 다 이상하잖아! 남사스럽고 끔찍해!”

“많이 순화한 건데, 너도 아직 멀었구나.”

비엘 소설 주인공이 되기에 멀었다는 소리였지만 마르코는 왠지 무시당하는 것만 같아서 볼을 불퉁하게 불렸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루루와 마르코의 눈가가 아직도 거뭇거뭇했다.

일이 종료된 지 만 하루가 지나 버번 백작으로부터 왕자도 아드리안도 무사하고 무지차 파르만은 사포에 가까운 생포로 헤네켄으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와중에 칼 린드버그가 인사도 없이 헤네켄으로 먼저 가게 되었다는 소식도 곁다리로 전달되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현재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염려로 입맛이 떨어져 종일 굶었던 두 사람과 한 마리는 이제야 첫 끼니를 먹는 중이다.

왕자 바라기 마르코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왕자님이 뭘 잘못하셨다고 그래. 무사하시면 된 거 아냐?”

“으르르, 컹컹!”

엘리자벳도 옳다구나 마르코의 편을 들며 루루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이것들이 뭘 모르네. 자고로 무모함엔 대가가 따르는 법.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 넘어가기엔 심각한 사안이잖아. 너와 나를 포함해서 레아 공주님, 벨프리 소공자 외 여러 명이 속 끓였지. 게다가 아드리안 전하의 마음을 생각해 보렴.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요행이 지나쳐 살아남았다지만 일이 잘못 풀렸으면 그대로 저세상행이었을걸?”

신랄한 어투로 쏘아 대고 티라미수를 퍼먹는 루루가 얄미워서 마르코가 눈을 흘겼다.

시종에 불과한 자신도 속이 새카맣게 탔는데 아드리안 전하라고 오죽할까 싶겠냐마는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왕자님께선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그러셨던 거라니까. 너는 오빠, 오빠 하면서 잘 따르는 척하더니 왜 이제 와서 황태자 전하 편을 들고 난리야?”

“그르르르.”

마르코가 무슨 말만 하면 철썩 붙어서 추임새를 넣는 엘리자벳이 얄미워 루루는 겁도 없이 그 코에 손가락을 튕겼다.

“아드리안의 속이 타다 못해 재가 됐을 걸 생각하면 그렇다고. 그리고 이 정도 혼나는 건 괜찮아. 오빠, 아니 왕자님께도 때론 극약처방이 필요해.”

맞는 말이라 마르코와 엘리자벳이 동시에 입을 꾹 다물었다.

루루는 먹던 포크를 들어 두 사람을 콕콕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유의 벌이야 어차피 오래가지도 않아 오빠도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을 거고. 지금쯤 아드리안한테 미안해서 눈물 쏙 빼면서 ‘명하시면 다 들어드려야죠, 암요.’ 상태가 되어 있을걸.”

아드리안 헤네켄에게 “칼 린드버그는 고삐다.”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루루는 오빠에게도 아드리안이 훌륭한 고삐가 되어 주길 바랐다.

네가 나서지 않아도 괜찮을 강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애쓰지 않고도 사랑받으며. 너는 누려도 된다고 몸으로 알려 주는 그런 사람이 아드리안 헤네켄이길 바랐다.

감금이라 해봐야 눈뜨면 밥 나와 간식 나와, 얼굴로 배도 채울 수 있을 만큼 잘난 남편이 사시사철 붙어 있는 호화 생활이다.

‘지하 감옥에서 발목이 절단된 누군가 들으면 가슴 펑펑 치고 피눈물 흘리겠지.’

제국으로 추포되어 간 된 무지차의 근황이었다.

‘파르만 왕국의 상황이나 추후의 자세한 계획이 우리 같은 민간인에게까지 전해질 일은 아니니까.’

루루는 티 나게 풀이 죽어 버린 엘리자벳의 털을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사랑꾼이 흑화해 봐야 거기서 거기다.

적당히 휘둘려진 칼 린드버그가 반성을 했네 어쩌네 하면서 구슬리면 사르르 녹아서 또 칠렐레팔렐레하겠지.

루루의 취향을 살짝 벗어나는 루트가 눈에 선해 그녀는 보복하듯 디저트 한 접시를 더 비웠다.

우물쭈물하던 마르코는 루루를 보자 괜히 식욕이 동해 똑같이 디저트 한 접시를 더 요청했다.

“암만 그래도 왕자님이 벌을 받을 이유가 하등 없다는 것이 내 입장이야. 왕자님은 뭐라고 해도 영웅이라고. 제니스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마르코가 동의를 구하듯 나란히 앉은 제니스를 돌아보았다. 엘리자벳도 동그란 눈으로 마르코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푸훗, 하고 웃은 제니스가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글쎄요. 이번만큼은 레아 공주님도 아드리안 황태자 전하의 편을 드셔서.’

마르코와 엘리자벳의 귀가 축 내려가고 루루는 의기양양하게 두 사람을 보았다.

“너는 왕자님이 벌을 받는 게 그렇게 좋냐?”

“응, 개꿀맛.”

역경과 고난을 지나 단단해지는데 감금이 빠지면 섭섭하지. 무엇보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것을 하는 데 합법적 고립만큼 좋은 기회가 더 있나.

루루가 희희낙락하며 마르코의 티라미수 반을 덜어 갔다.

마르코가 왈칵 짜증을 내도 개의치 않았다.

마르코나 엘리자벳은 이대로 왕자님을 영영 못 볼까 걱정한 모양인데, 루루의 예감으로는 한 일주일 정도면 감금 생활을 청산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런 뒤엔 헤네켄에서 두 사람의 알콩달콩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되겠지.

루루는 엘리자벳 콧잔등의 주름을 살살 폈다.

* * *

“왕자님이 운신이 불가할 정도로 다쳤다고?”

“예, 그래서 급히 헤네켄으로 모셨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병사들의 말에 따르면 마력을 아주 유감없이 발휘하셨다던데 그 때문이 아닌지요.”

서류를 우수수 떨어트린 벨프리가 시종의 말에 희게 질렸다.

‘이럴 줄 알았어. 내가 그렇게 왕자님은 왕자님이라 간언드렸건만.’

벨프리는 좀 더 완강하게 그에게 왕자로서의 책임감과 바른 몸가짐에 대해 가르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얼마나 무섭고 힘드셨을까.

이마를 짚고 선 벨프리는 순간 아드리안 헤네켄이 왕자를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혔다.

왕자가 홀로 적진에 뛰어들었다는 말은 일단 비밀에 부쳤으므로 시종은 그가 다쳤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벨프리가 퍼뜩 고개를 들고 시종에게 외투를 가져오라 말했다.

“제국으로 갈 채비를 하게!”

당장 가서 아드리안 전하를 말려야 한다. 잘못하면 왕자가 그가 저지른 일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상처를,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얻을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가, 발베니 대공에게 어떤 ‘넘치는 사랑’을 받았는지 아는 벨프리는 가슴이 선득했다.

벨프리가 꾸물거리는 부관을 재촉했다.

말을 대령하라 짐은 꾸리지 마라 아주 법석을 떠는 통에 그는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그 소란을 지켜보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 지금요?”

“그래, 지금 당장.”

아니, 공자님께서 가서 뭘 하시려고요?

유수의 의원과 마법사들이 줄지어 왕자의 용태를 살피려고 줄을 서 있을 텐데.

새파란 얼굴로 허둥지둥거리는 벨프리를 보며 부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때 레아 공주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동생의 안위보다 벨프리의 반응이 궁금했던 레아의 참을성이 조금씩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서 어쩌려고?”

화들짝 놀란 벨프리가 횡설수설했다.

“왕자님의 상태도 확인하고 아드리안 전하를 말려야 합니다. 좀처럼 이성을 잃지 않는 분이십니다만 지금은 사안이 사안인지라.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야.”

레아는 팔짱을 끼고 벨프리를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대비는 헤네켄 황실에서 알아서 하실 걸세. 두 분 폐하께서 자기 아들이 황태자비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을 두고 볼 심성도 아니시고.”

이 공주님은 왜 갑자기 하대를, 아니, 그전에도 종종 섞어 쓰긴 하셨지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하대하지는 않으셨는데.

“하지만 진짜 화가 난 전하는 아무도 말릴 수 없습니다. 그나마 제가 있으면,”

그래도 젖형제라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대가 아드리안 황태자에게 칼 린드버그보다 더 중한 인물인가. 부모도 못 말리는 그의 격한 감정을 그대가 다스릴 수 있을 거라고? 당치도 않지.”

벨프리의 얼굴이 발긋하게 상기되었다.

레아가 벨프리의 앞에 바짝 다가왔다. 두 사람의 눈높이는 얼추 비슷했다. 다만 바닥이 평평하고 낮은 신발을 주로 신는 벨프리에 비해 굽이 높은 스웨이드 재질의 장화를 신은 공주 때문에 벨프리는 그녀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꼈다.

새파란 불꽃이 눈앞에서 팡팡 터지는 것만 같아서 벨프리가 데로록 눈을 굴렸다.

레아는 그의 귀에 나지막하니 속삭였다.

“그냥 그대가 칼 린드버그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해 달려가고 싶은 것은 아닌가.”

정곡을 찔린 벨프리는 외투를 집은 팔을 늘어뜨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얼굴을 맞대고 서 있었다.

벨프리의 곁에 가까이 있던 탓에 날 선 레아의 말을 듣게 된 부관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사용인들을 내보내고 자신은 문가에 기대어 섰다.

“……맞으면 어쩌시게요.”

벨프리가 체념한 것처럼 대답했고 레아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쉬이 접히는 마음이 아니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는 듯 고개를 떨군 벨프리의 앞에서 레아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대가 지금 헤네켄으로 가도, 칼 린드버그의 머리카락 하나 구경할 수 없을 거야. 왕자는 연금당했고. 황태자 또한 함께 있어. 최소한의 필요에 의한 사용인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의 방문도 허락하지 않는다 하셨다.”

단호한 레아의 말에 벨프리는 어깨를 잘게 떨었다.

“그러니 더욱 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주님께선 걱정도 안 되십니까?”

“그대와 내 걱정이 현재의 두 사람에겐 도움이 되지 않아. 영향도 끼칠 수 없고.”

레아는 죽상을 한 벨프리를 보며 속이 뒤틀렸지만 그래서 더 냉정히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아버님을 뵙고 오는 것도.”

“허락하지 못한다.”

찔러보는 식으로 내민 벨프리의 마지막 청도 거절당했다. 주먹을 쥐었다 편 레아가 한숨을 쉬며 뒤돌아섰다.

“……칼 린드버그를 걱정하지 말고, 제발 그대 걱정부터 해.”

레아가 돌아서 나가는 것을 눈으로 멀거니 쫓은 벨프리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던지는 부관에게 손을 저었다.

부관은 말없이 레아를 따라 밖으로 나가고 홀로 된 벨프리는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벨프리는 제국 사람이다. 린드버그 왕국의 공주가 자신에게 가라 마라 명령할 권리 따위 없을 것이었다.

레아 공주가 그걸 모를 리 없는데, 그녀는 마치 벨프리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그는 요즘 다양한 감정의 파도에 부딪혀 갈팡질팡하고 있었고 그중 가장 큰 원인은 거리낌 없이 거리를 좁히는 레아 공주에게 있었다.

툭하면 찾아와서 밥 먹자, 차 마시자 하는 건 둘째치고 그럴 때마다 아일라 레바 공주가 나타나는 건 무슨 영문인지.

어색하게 자리를 뜨려는 벨프리의 행동을 대놓고 저지하는 공주의 행동에 아일라 공주의 눈망울이 살짝 젖는 것을 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소파에 길게 누워 버린 벨프리가 한쪽 팔로 눈을 가렸다.

“저와 뭘 하고 싶으신 겁니까. 공주님.”

공주를 생각하는 동안, 제국에서 고초를 겪고 있을지 모를 왕자의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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