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프리와 레아가 어찌 되던, 이제는 정말 두 사람만의 일이니 칼과 아드리안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안식을 즐기게 되었다.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곳에 제법 규모가 큰 배가 띄워졌다. 갑판에 선 아드리안이 제멋대로 흔들리는 칼을 단단히 붙들었다.
“대박! 돌고래가 있어. 저거 진짜야?”
칼 린드버그가 믿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자 그것을 들었는지 예닐곱 마리의 돌고래 한 무리가 그들이 타고 있는 배 근처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어서 와, 유지니 해협은 처음이지?’ 하고 말하며 실컷 구경하라는 것처럼 너도나도 해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매끈한 몸체가 햇빛을 반사하고 지느러미는 인사를 하듯 물보라를 흩뿌린다.
“아기 돌고래도 있어! 귀여워!”
한껏 신난 칼이 방방 뛰었고 아드리안은 그 목덜미에 실컷 입을 맞추며 귀엽기는 네가 더 귀엽다고 중얼거렸다.
배를 타는 것도 처음, 연인과 여행을 하는 것도 처음이라는 칼의 말에 아드리안의 아랫배는 아까부터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스물두 살 아드리안이 모르는 세상에서 스물일곱 해를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모든 것을 독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단숨에 사라졌다.
한참 신나게 놀던 돌고래들이 저만치 멀어지고 나서야 칼은 푹신한 좌석에 앉아 아드리안의 옆에 몸을 기댔다.
“아아, 바람 좋다. 하늘도 예쁘고 바다는 더 아름답네.”
눈을 지그시 감으며 연신 기분이 좋다고 되뇐다.
아드리안은 그의 귓불을 입술로 더듬었다. 동시에 은근슬쩍 소매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그의 팔목 안쪽을 매만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름답긴 누가 더 아름답다고.
아드리안의 눈에 주변 풍광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들이 전부 칼 린드버그를 꾸며 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듯 흐릿했다.
그에게는 오직 칼 린드버그만이 선명했다.
“앗, 저거 날치지?”
그때 번쩍 눈을 뜬 칼이 순간적으로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에 관심을 보였다.
“몰라.”
아드리안은 몽롱한 눈빛으로 제 입술을 핥았다.
그저 무슨 핑계를 대고 칼 린드버그의 단추를 풀 것인지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어 날치가 뭐고 무슨 연유로 날아오르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쪽, 쪽.
입맛을 다시던 아드리안은 칼의 목덜미를 잡고 다소 헐렁한 셔츠 위로 드러난 쇄골을 빨았다.
“아흐,”
아까부터 지분거리는 데 여념이 없는 아드리안이 이를 세우자 칼이 저도 모르게 신음을 뱉었다.
“으응. 자, 잠깐만.”
“왜, 싫어?”
어느새 허리 아래에 꼼꼼히 넣어 두었던 셔츠 밑단이 빠져나왔다. 손이 빠른 아드리안은 그 아래로 거침없이 파고들어 봉긋하게 솟은 가슴을 더듬었다.
“으읏!”
칼의 것이라면 날숨도 훔치고 싶어 하는 아드리안이 잽싸게 그의 신음을 삼켰다.
제 위에 올라탄 아드리안이 오늘따라 존재감이 거대해 덜컥 겁을 집어먹은 칼이 그의 어깨를 필사적으로 밀었다.
좌석이 조타석 뒤편이라 누가 보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무엇보다 어젯밤에도, 그제 밤에도 시달린 터라 몸이 아팠다.
“아드리안,”
“응, 칼.”
건성으로 대답한 아드리안이 온몸으로 칼을 내리눌렀다.
아드리안의 목뒤에 손을 얹자 뜨끈하게 열이 올라 있었다.
“아, 설마.”
그의 페로몬 상태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칼 린드버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러트가 왔어.
이즈음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배 위에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주변이 온통 푸르른 물 천지인 바닷가에 난데없이 숲의 향기가 퍼졌다.
“아아, 칼 린드버그. 날 봐. 응? 날 좀 봐 줘. 나만 봐 줘. 내 하나뿐인 짝.”
끈적이는 목소리에 칼의 몸도 홧홧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드리안, 여기. 여기 봐.”
“응, 칼.”
아드리안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아는 걸까.
그의 양 뺨을 만지는 손에 아드리안이 이를 세웠다.
콱,
“앗!”
“나빠. 자꾸 왜 다른 데 눈을 돌려?”
불시에 깨물린 손가락이 얼얼했지만, 이내 다정히 핥으며 어리광을 부리는 아드리안 때문에 어느새 통증은 가셨다.
두쿵 두쿵.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거기 누구 없습니까?”
침착해야 했다. 이성을 잃은 아드리안은 칼 린드버그를 늘 먹어 치우고 싶어 했다.
짝을 맺은 오메가의 페로몬은 그 짝인 알파에게만 영향을 끼쳐도, 아드리안처럼 강한 알파의 페로몬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짐승들은 더 예민해서 계속 배를 띄우고 있는 것은 위험했다.
날치가 뛰어오른 건, 아마 그것 때문이었겠지.
“예, 왕자님. 앗!”
“아드리안의 러트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전속력으로 달려서 정박한 뒤에, 사람은 모두 물려 주세요.”
칼 린드버그의 외침에 부리나케 달려온 시종이 엉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볼을 붉혔다가 왕자의 말에 허둥지둥하며 조타실로 달려갔다.
배가 그의 바람대로 전속력으로 해안가를 향해 움직였다.
아드리안에게 깔려 어느새 알몸이 된 칼은 양 팔로 그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페로몬을 제어하는 법은 아직 익숙지 않았지만, 해안에 배가 닿을 때까지는 아드리안에게 냄새 한 자락도 줄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진짜 미쳐 날뛸 테니.’
“하기 싫어? 응? 칼. 나는 하고 싶어. 네 안에 들어가고 싶어. 죽을 것 같아.”
맨살에 닿는 아드리안의 이마가 불덩이 같았다.
칼 린드버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붙이고 아드리안이 촉촉한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드리안의 러트를 겪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각인에만 신경이 쏠려 몰랐는데, 아드리안은 러트 중에 어리광이 심했다.
애가 타서 칼의 냄새를 맡으려고 하고 제 품에 있는데도 칼 린드버그를 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일단 허락하고 나면 미친개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칼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그를 달랬다.
“죽으면 안 돼. 조금만 참자? 응?”
“싫어.”
콱!
“아아!”
어린애처럼 군 아드리안이 칼의 한쪽 허벅지를 대차게 깨물었다.
오금이 저리도록 아프고 짜릿했다.
칼의 비명 소리에 조금 풀이 죽은 듯 아드리안은 입술로 그가 물었던 자리를 문질렀다.
“나, 많이 참았잖아. 지금까지 참았잖아.”
네가 언제 참았다고 그래.
아, 아니지.
자기 딴에는 참은 거다.
공부하느라 바쁘고, 여기저기 간섭할 게 많은 칼 린드버그를 이해하며 인내했다.
아드리안이 허벅지 안쪽에 다시 이를 세우는 감각에 칼이 다리를 바짝 긴장시켰다.
다행히 이번엔 야금야금 귀여운 수준이었다.
칼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헐떡거리다가 아드리안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부드럽게 매만졌다.
“조금만 기다려, 다 줄게.”
‘형 믿지?’ 하는 말투로 아드리안을 달래자 그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언제?”
“글세…….”
칼이 흘긋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배는 멈췄다. 아래층이 시끌시끌한 걸 보니 물건을 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러트 기간에도 아드리안은 세네 시간 주기로 잠깐 정신을 차린다.
여기서 조금만 버티다 보면 낙조 전에는 그를 데리고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다.
아드리안이 언제, 언제. 하고 되풀이하며 손끝으로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 와중에도 주변을 살피는 칼이 영 꼴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시종 하나가 올라왔다.
그는 칼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깨끗한 물과 천. 그리고.
“아드리안.”
칼이 눈을 반으로 접었다. 상체를 들어 올려 아드리안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아드리안의 목구멍에서 그르릉 우는 소리가 났다.
코끝과 치아가 부딪히도록 격렬한 입맞춤을 하는 동안 노련한 시종은 잽싸게 그들이 누워 있는 공간에 캐노피를 쳤다.
차르르.
천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아드리안은 칼의 입술을 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양손으로 그의 귀를 가리고 칼도 조금씩 아드리안이 주는 쾌감에 몸을 맡기며 페로몬을 개방했다.
“하아.”
아드리안이 입술을 떼고 깊게 호흡했다.
순식간에 색을 달리하는 그의 눈동자에 칼의 아래턱이 덜덜 떨렸다.
배우자를 두려워해야 하는 건 슬픈 일이었지만, 생리적인 두려움이라 어쩔 수 없었다.
아드리안의 뾰족한 송곳니 끝을 보며, 칼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셔츠 단추를 풀어냈다.
“내가 무서워?”
“아니.”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아드리안은 돌연 슬픈 표정을 하고 양팔을 축 늘어뜨렸다.
우람한 그의 상반신이 드러나자 칼이 꼴깍 침을 삼켰다.
아드리안의 셔츠를 벗겨 내고 가죽과 유연한 나무로 만들어진 벨트에 손을 올릴 때 아드리안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칼의 손을 붙잡았다.
“거짓말.”
“거짓말 아니고 진짜야.”
칼은 자유로운 한 손으로 아드리안의 볼을 쓰다듬었다.
나를 잡아먹겠다는 시커먼 사내가 왜 이렇게 귀엽게 보이는지. 콩깍지가 씌어도 제대로 씐 것 같았다.
무섭지만 싫지 않다는 건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하나.
“나 무서워하지 마.”
“안 무섭대도.”
“싫어하지 마. 내가 네게 심한 짓을 해도 미워하지 말아 줘.”
결국은 심한 짓을 할 거라는 선전 포고와도 같은 그 말에 결국 칼은 푸식, 웃어 버렸다.
기세등등한 허리 아래와 달리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아드리안의 허벅지로 올라간 칼이 아드리안의 어깨를 안았다.
“나도 어엿한 사내라고. 그리 쉽게 망가지지 않아, 알잖아? 네가 심한 짓을 한들 내가 널 미워할 날이 오기나 할까.”
조곤조곤 속삭인 칼의 허리를 아드리안이 움켜쥐었다.
그의 손바닥이 축축했다.
턱이 볼록 나올 만큼 인내한 아드리안의 더운 피부에 온몸을 붙이며 칼은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제서야 아드리안이 인상을 풀었다.
칼의 허리에 강한 손자국이 남았다.
아드리안이 입술을 열어 칼의 입술을 받아들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주도권을 빼앗긴 칼은 종이 인형처럼 나풀거리며 신음했다.
눈을 뜨면 아드리안이 눈알을 핥을 것처럼 돌진해서 칼은 눈을 꼭 감았다.
철썩철썩.
파도가 모래사장에 부딪치며 보글보글 거품을 내는 소리가, 자연의 소리인지 아니면 그들 스스로 내는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적나라한 소음만이 그 공간에 부유했다.
아드리안은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칼도 괜찮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양껏 울고 소리 지르면서 아드리안에게 매달리는 것만이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위였다.
그의 페로몬을 뒤집어쓰며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도 모르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그때쯤 되니 칼 린드버그의 머릿속도 엉망이 되었다.
모럴이나 부끄러움도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칼이 손톱을 세워 그의 등허리를 긁었다.
거센 입맞춤에 잔뜩 부풀어 오른 입술은 아드리안의 귀에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그의 진정제 역할을 했다.
“나도, 사랑해. 칼 린드버그.”
영원히 내 곁에 있어 달라고 아드리안의 까맣게 타 버린 이성이 중얼거렸다.
용케 그것을 들은 칼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아드리안은 늘 그의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이성을 잃고 있는 순간에도, 칼이 두렵다고 생각하자마자 일단 몸을 물리는 것은 아드리안의 다정함이고, 또 사랑이었다.
그래서 칼 린드버그는 결코 아드리안을 미워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