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60)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인 방의 단체 메시지였다. 큰형의 메시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한편 너무 조용한 형의 반응에 불안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제 집에 들르라는데 가지 않고 형의 전화와 메시지까지 씹었으니 큰형의 성격상 새벽부터 휴대폰에 불이 났어야 정상인데 너무 조용하다.

일례로 처음 독립했을 때 왜 네 마음대로 독립하냐고 전화를 하도 해 일부러 안 받았더니 새벽 4시까지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다 새벽 5시에 기어이 집까지 찾아온 사람이다. 그러곤 3시간을 붙잡고 잔소리를 해, 그때 다음에 사고 칠 때는 아예 이민을 가 버려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런 형이 여지껏 아무 연락이 없다는 건 너무 이상하다.

아니, 애초에 어젯밤에 메시지가 끊긴 것부터가 불길하다.

마치 폭풍의 핵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왜?”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급격히 어두워지는 수현의 안색에 현규가 안 좋은 소식이라도 있냐는 듯 묻자 수현이 심각하게 중얼거린다.

“큰형이 너무 조용해서요.”

밤새 메시지 100통과 전화 100통쯤은 왔어야 하는데, 라고 미간을 좁힌 채 혹시 내가 못 본 메시지가 있나 찾고 있자 옆에 선 형이 무심히 대꾸한다.

“바쁘겠지.”

“바쁜 것과 별개로 진원 형 성격에 이렇게 조용한 건 말도 안 돼요. 성격 자체가 아주 집요하거든요. 뭐 하나 거슬리면 일하는 틈틈이 쉬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잠도 안 자고 전화하고 메시지 보내서 사람을 쥐 잡듯이 잡아야 하는 사람인데…… 너무 조용해요.”

그래서 큰형은 수사관이나 검사가 천직이라고, 다른 사람 괴롭히지 말고 범인이나 괴롭히라고 다들 법대나 경찰대를 권했을 정도인데…… 이 고요함은 말도 안 된다.

애초에 우리 집안 남자들이 이렇게 진중하고 조용한 사람들이 아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사방팔방에 전화를 해 대며, 공사장 저리 가라 하는 데시벨로 고함을 질러 가끔 어머니가 집을 나가 버릴 정도였는데 이럴 리가 없다.

그러고 보니 둘째 형도 너무 조용하다. 이쯤 됐으면 전화해서 왜 삼촌이 너 같은 반편이 모지리랑 결혼을 하냐, 삼촌이 불쌍하다, 양심 있으면 지구에서 꺼져라 등등 온갖 구박과 비난과 인신공격을 일삼았어야 하는 둘째 형이 조용하다는 건, 두 가지 가능성뿐이다.

큰형하고 같이 청첩장 만들고 있거나, 아직 큰형에게 아무 얘기를 못 들었거나.

그리고 아무래도 이번엔 후자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작은형도 너무 조용한데…….”

“당연히 그렇겠지…….”

의미심장한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재미있다는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띤 형이 재빨리 말을 돌린다.

“점심 같이할 테니 시간 비워.”

“점심은 왜요?”

나 오전에 퇴근할 수도 있는데, 라는 생각에 막 건물로 들어서며 주머니에 있던 사원증을 꺼내 출입구를 통과하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원증을 꺼내 목에 걸던 형이 왜겠냐, 라는 시선을 보낸다.

“아…… 점심 먹어야죠……. 뭐 사 주실 건데요?”

“왜 내가 살 거라고 생각하지?”

“형이 먼저 말했으니까요.”

먼저 권한 사람이 사는 게 암묵적인 룰 아니냐는 수현의 물음에 현규가 침착하게 두 사람 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바를 알려 준다.

“아침은 내가 했으니 점심은 네가 사야겠지?”

기브 앤 테이크, 라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현규의 발언에 수현은 곧장 수긍했다.

“그렇긴 하네요. 그럼 뭐 드실래요? 구내식당도 맛있긴 한데 전 아직 숙취가 남아서 해장국이 먹고 싶은데요.”

“상관없어.”

“한 정거장 정도 걸어가면 재래시장 안쪽에 맛있는 황태 해장국집이 있어요. 저 중학교 때부터 삼촌이랑 다니던 덴데 거기 해장국 진짜 맛있어요.”

시장 내에서도 워낙 구석진 곳에 있어, 시장 사람들과 이 일대에서 오래 산,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노포라고 수현은 자신 있게 권했지만 현규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조금 기분이 상한 얼굴이었다.

“다른 곳 찾아.”

“황태 싫어하세요?”

“안 먹어.”

“황태 냉면 맛있는데…….”

어떻게 그걸 안 먹을 수 있냐는 수현의 반응에 현규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바라본다. 물론 현규의 식성은 자신과는 상관없지만 앞으로 같이 식사할 일이 종종 있을 텐데 식성이 안 맞으면 조금 곤란하지 않나, 생각하던 수현은 당분간이니 그냥 참기로 하곤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그럼 콩나물 해장국집으로 갈까요? 여기 옆의 옆 건물인데, 맛은 무난해요. 옆 블록 쪽에 24시간 하는 순댓국집이 있는데 거긴 점심시간에 터지고요, 그 옆의 뼈 해장국집도 괜찮은데 거기는 간이 좀 세요. 매운 거 좋아하시면 괜찮을 거예요.”

“너 매운 거 못 먹잖아?”

“작은형하고 삼촌이 좋아해서 가끔 포장해 달라고 해서 가는 편이에요.”

그런데 난 매워서 못 먹는다고 현규 형이 빠르게 말을 자른다.

“매운 건 안 먹어.”

“그건 다행이네요. 저도 못 먹으니까 요리할 때 별문제는 없겠어요. 그럼 콩나물 해장국집으로 갈게요. 우리 오피스텔 옆 건물 1층이에요.”

“1시 5분에 데리러 갈게.”

“왜요?”

1층 로비에서 만나면 되지, 라며 막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수현은 친구에게 ‘당분간 바빠. 비상 중.’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니 시간을 비워 두려 일정을 확인하는데 바로 옆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자꾸 사람이 여러 번 말하게 할 거냐는 짜증 어린 눈빛에 수현은 일정을 확인하다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냥 거기서 만나면 되잖아요. 먼저 가는 사람이 주문해 놓으면 먹는 것도 빠르고…….”

뭘 굳이 둘이 같이 움직이냐고, 난 12시에도 나갈 수 있는데, 라는 수현의 주장에 엘리베이터 앞에 선 현규가 한숨을 쉬며 막 울려온 휴대폰을 확인한다.

“네가 왜 연애를 못 했는지 이제 알겠어.”

“별로 하고 싶지도 않으니 괜찮아요.”

“다행이군. 어차피 앞으로도 할 일 없을 테니. 그럼 1시 5분에 네 사무실에서 봐.”

“네, 뭐…….”

마음대로 하세요, 라며 엘리베이터 앞에 선 수현은 다른 알림들을 확인하다 문득 든 의문에 고개를 들어 현규를 바라봤다.

“제가 매운 거 안 먹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너 중학교 때 별로 맵지도 않은 라면 먹고 운 적 있어.”

중학교 때라면 아마…….

“둘째 형이 먹인 거죠?”

“응.”

그걸로 납득했다. 어릴 때는 둘째 형이 종종 이 매운 것도 못 먹는 모자란 놈아, 라면서 억지로 매운 걸 먹이곤 했으니까.

“그럼, 기다릴게요.”

또다시 울려온 메시지 알림음에 다시 휴대폰을 확인하던 수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화면을 확인했다.

이번엔 삼촌이다.

[일 끝났어?]

걱정이 조금 담긴 짤막한 메시지에 곧장 ‘OK’라는 커다란 이모티콘을 보내며 아무 답이 없는 형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오늘 저녁은 어쩌실 거예요?”

“…….”

“오늘 저 일찍 끝나는데 형도 일찍 퇴근하시면 저녁은 제가 할게요. 황태 빼고 못 드시는 거 있으세…….”

이상하게 조용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자 바로 옆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현규 형의 눈빛에 놀라 움찔했다.

눈빛이 과하게 다정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진짜 사랑을 하는 사람 같은 그 눈빛에 눈을 껌뻑거리자 형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다 잘 먹으니 아무거나 해도 돼.”

“……갑자기 왜 이러세요?”

형이 웃으면 무섭다고 몸을 슬쩍 피하려 하는데 형이 눈웃음을 치며 다시 살벌한 시선을 보낸다.

조금 전과 완전 다른 그 눈빛에 한 걸음 더 옆으로 피하며 그를 올려다보자 형이 다시 웃으며 이마를 툭 친다.

“사람 많으니 나중에 얘기하자.”

“사람이 뭐가…….”

많냐고, 하며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본 순간 조금 거리를 두고 빼곡히 모여 선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일 붐비는 시간에 맞춰 나왔는데도 이상하게 한산하다 했는데 한산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주변에만 사람이 없는 거였다.

형과 자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선 사람 중 몇몇은 휴대폰을 보는 척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고, 몇은 커피를 마시며 필사적으로 다른 곳을 보는 척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분명 다들 이쪽에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그래서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보통 이 시간대에 엘리베이터 앞에 선 사람들은 다들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바라보느라 45도 각도로 고개를 들고 있어야 정상이다.

절대 시선을 내리거나 다른 방향을 보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게 너무 기괴했다.

[이건 뭐죠?]

그 자리에서 형한테 이 사람들 왜 이러냐고 물어볼 정도로 눈치가 없진 못해서 형에게 재빨리 메시지를 보내자 곧 휴대폰을 확인한 형이 빠르게 문자를 썼다. 그러자 곧 자신의 휴대폰이 울려왔다.

[보이는 대로.]

빠른 그 답변에 이쪽도 빠르게 문자를 써 발송 버튼을 눌렀다.

[진짜 다들 눈치챈 거예요?]

그렇게 설명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하며 묻자 다시 빠르게 답이 온다.

[알파와 오메가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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