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60)

그렇다는 건 형이 말한 그 말도 안 되는 페로몬 시스템이 실제로도 작동한다는 거다.

하지만…….

[그런데 다들 왜 이래요?]

실질적으로 알파는 드물고 오메가는 더욱 드물다. 더더구나 이 회사 직원 대부분이 베타인 걸로 아는데, 대체 왜 다들 이러는 거냐고 황당해하자 형이 휴대폰을 확인하며 웃는다.

그러곤 곧장 답문을 보낸다.

[사람에게는 눈치라는 게 있으니까.]

페로몬을 감지하는 능력은 없어도 사람에게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육감이라는 것과 눈치라는 게 존재한다는 말에 형이 오늘 하루면 다 해결될 거라고 했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현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대충 눈치를 챘다면 오늘 내로 대표님한테까지 보고가 올라갈 거다. 그리고 내일쯤이면 우리 집까지 연락이 갈 게 뻔하다.

대표님도 우리 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으니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저 이제 연애 못 하는 건가요?]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불안함에 그렇게 문자를 보내자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안쪽에 서던 형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움직인다.

[네가 지금 그런 거 가릴 처지가 아닐 텐데?]

어제 뭐든 하겠다고 한 건 너 아니었냐, 난 분명히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충고했다, 라는 내용의 문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렇게 짤막한 답문을 보내려는 순간 다시 삼촌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점심에 좀 볼 수 있어?]

“어…… 점심 안 되겠는데요?”

갑작스러운 문자에 놀라 메시지로 대화 중이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말로 그렇게 내뱉자 휴대폰을 확인하던 형이 자연스럽게 되묻는다.

“왜?”

“삼촌이 점심때 보재요.”

“해준 형?”

“네.”

아마 삼촌도 이쯤이면 결혼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 대책 회의를 하자는 걸 거다. 그리고 현규 형도 그걸 곧바로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럼, 같이할까?”

“네?”

“점심.”

“삼촌하고 형이랑 저, 셋이요?”

“응. 바쁘실 테니 이쪽으로 오시지 말고 우리가 간다고 해.”

“……그쪽 사무실로요?”

“응.”

그 답에 수현은 노골적으로 싫다는 얼굴을 했다.

“그럼 큰형도 나올 텐데요…….”

큰형하고 삼촌뿐이면 다행이지 둘째 형도 나올 수 있고 재수 없으면 우리 아버지까지 합류할 수 있다고, 수현이 귀찮다는 얼굴로 현규를 바라보자 현규가 가볍게 고갯짓한다.

“이 김에 인사드리면 좋지.”

인사를 왜, 라고 생각하다 대화를 멈추곤 주변을 돌아봤다. 빼곡하게 들어찬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들은 모두 문을 바라보는 채였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과 형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건 현재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벌써 12층인데 아직도 내린 사람이 하나도 없다.

태어난 날 이후 이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이게 형이 원했던 그림이었다면 완벽하게 성공했기에 자신 역시 장단을 맞추기로 했다.

“……문자 보낼게요.”

어차피 터트릴 거면 자잘하게 미사일을 쏘는 것보다는 한 번에 핵폭탄을 터트려 초토화하는 쪽이 좋다.

그렇게 판단 내린 순간 재빨리 삼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그쪽으로 갈게.]

오로지 자신의 문제에만 집중한 채 그렇게 문자를 보낸 수현은 휴대폰을 들어 현규에게 보여 주었다.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잠시 당황한 것 같았던 현규도 메시지 내용을 확인한 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데, 진짜 시간 되세요? 요즘 바쁘던데, 전기팀.”

“전기?”

“전략기획팀이요.”

아직 한국 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됐으니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 줄임말을 풀이해 주며 말 나온 김에 한 가지를 더 알려 줬다.

“우린 시발팀이에요.”

시개팀은 너무 개 같아서 시발팀이라고 한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린 순간 여태 못 들은 척하던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 중 하나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말을 줄일 필요는 없지.”

“그래도 시스템개발팀이랑 전략기획팀은 너무 길잖아요.”

“뒤에만 쓰면 되지. 개발팀, 기획팀.”

“그럼 너무 약해 보이잖아요.”

“시발팀보다는 약해 보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비슷비슷하다면 어감이 좋은 게 좋지만, 시발팀은 엄청 세 보이잖아요.”

전기팀도 감전될 것 같아서 세 보이지 않냐고 하려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렸다.

19층이었다.

“꺼…… 내려.”

꺼지라고 하려다 차마 듣는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었던지 다정하게 내리라고 하는 형에게 서둘러 인사를 마쳤다.

“그럼 이따 뵐게요.”

시스템개발팀 사무실이 있는 층에서는 단 한 명도 내리지 않아 엘리베이터 안에 꽉 찬 사람들을 헤치며 나아가 복도에 내려섰다. 그러곤 오늘도 활기차게, 어기적거리며 사무실을 향해 걸었다.

바로 1시간 이후에 몰려올 폭풍을 예감하지 못한 채.

* * *

일이 마무리된 후 사무실 안은 더없이 고요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키보드 치는 소음만이 가득했지만 일이 끝난 직후라 더는 키보드를 칠 필요가 없어서인지 몇은 휴대폰으로 주식을 확인하고 있고, 몇은 책상 위에 엎어져 자고 있고, 또 몇은 자리를 아예 비워 버렸다.

아직까지는 노트북에 커피를 쏟거나 데이터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없어 느긋한 오전이었다.

어제까지 바빴던 만큼 오늘은 유독 더 늘어지는 느낌에 책상에 기대앉은 수현은 느긋하게 휴대폰으로 매트리스를 검색했다.

“저녁은 뭘 할까…….”

이제 슬슬 가을이니 생선 요리도 좋고 묵은지찜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니면 해물탕을 메인으로 해 나물과 전들을 좀 부치고 그 김에 계란장과 새우장도 할까, 고민하며 가을 요리 레시피를 확인하고 있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머리통을 간질이는 그 시선에 고개를 들자 저 먼 자리에 있던 직원이 휙 하니 파티션 아래로 고개를 숙인다.

분명히 눈이 마주쳤는데,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에 그쪽을 빤히 보는데 이번엔 또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처럼 무던한 타입이 눈치챌 정도라면 상당히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는 거다.

그 시선에 휙 하니 옆을 돌아보자 이번엔 눈이 마주친 녀석이 갑자기 눈을 감더니 코를 곤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유치원에서나 할 법한 짓을 하는 녀석을 보다 다시 사무실 안을 둘러보고 있자니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겉보기에는 각자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여도 다들 이쪽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처럼.

그러고 보니 우리 팀에 오메가는 나 하나지만 알파는 둘이 있는데 그 둘이 출근을 했던가, 하며 다시 한번 천천히 사무실 안을 확인하는데 갑자기 박력 있게 문이 열리며 고함이 울려왔다.

“이 대리, 결혼해?”

뜬금없는 그 소리에 수현이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라는 얼굴로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오늘은 모처럼 양복을 입고 출근한 윤 팀장이 수현에게 빠르게 걸어오며 말을 건넨다.

“이 대리, 진짜 결혼해? 오늘 상견례까지 한다며?”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제가 결혼을 왜 해요?”

“무슨 소리긴? 벌써 팀장들 채팅방에 소문 다 났어. 블라인드에서 난리 났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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