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160)

이제, 절대, 다시는, 형하고 하지 말아야지. 저게 들어오면 난 죽을 거라는 망상에 연쇄 살인마에게서 도망치듯 후다닥 침실을 나가며 문을 닫으려다, 문득 멈췄다.

아직 형에게 커피 기호에 대해 묻지 않았다는 게 떠올라 다시 조심스레 문을 밀어 열고는 막 침대에서 내려선 형에게 물었다.

“형, 커피…… 어떻게요?”

“오늘은 연하게.”

“네…….”

다행히 에스프레소가 아니구나 하며 물러서려는데 상의는 탈의한 채 하의만 걸친 형의 아래쪽으로 다시 시선이 갔다.

그건 그냥 본능 같은 거였다. 절대 거길 보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어떤 형체를 볼 때 으레 모서리나 튀어나온 부분에 시선이 가듯 그곳이 눈에 걸렸을 뿐이다.

마치 튀어나온 못처럼 방금보다 더 꼿꼿이 선 그 물건에 본능적으로 문을 쾅 하고 닫았다. 그러곤 그게 나올까 무서워 봉인하듯 등 뒤로 문을 누르고 있는데 문고리가 움직인다.

철컥철컥하는 소리에 놀라 문고리를 잡자 황당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수현?”

너 지금 뭐 하냐, 하는 그 음성에도 두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버티자 이번엔 좀 짜증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켜.”

다소 높고 신경질적인 그 음성에 화들짝 놀라 문고리를 손에서 놓고 물러서자 곧 문이 열리며 거실로 나온 형이 얘는 또 왜 이래, 라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린 채 욕실로 향해 간다.

여전히 그걸 세운 채.

그래서 도저히 형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저렇게 발기한 채 어떻게 저렇게 느긋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통은 어기적거리지 않나, 알파는 다른 건가, 라고 머릿속을 도는 수많은 의문과 의심에 빤히 형의 하반신을 바라보고 있자 막 욕실로 들어서려던 형이 멈칫한다.

그러곤 이쪽을 돌아보며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는다.

눈 안 치울 거냐, 라는 그 시선에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갔다.

“잠깐 보기만 하면 안 될까요?”

만지거나 뭘 어쩌겠다는 생각은 없는데, 이쯤 되니 실측해 보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솟구쳤다. 그러니까 손으로 재 보기만 하겠다고 제의한 순간 형이 아무 말 없이 이쪽을 바라본다.

잠에서 막 깨서인지 유독 불쾌감이 가득한 그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 미쳤지?’라고.

말하기도 귀찮고 시간 아깝다는 듯 형은 이젠 표정과 눈빛으로 생각을 전하고 있었다.

그제까지만 해도 형은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커피 내릴게요.”

얌전히 돌아서 몇 걸음 안 걸어도 되는 곳에 위치한 주방으로 가 커피 캡슐을 꺼내는 사이 작게 혀를 찬 형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욕실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그 등을 힐끔거리며 커피를 내리기 위해 물을 받으면서도 이상하게 시선은 욕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심장의 두근거림 역시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정신 사나운 아침이었다.

* * *

“너는 요리할 때 양을 좀 생각하는 게 좋겠어.”

아침부터 12첩 반상은 좀 심하지 않냐고 식탁을 가득 채운 그릇들을 본 현규는 다소 질렸다는 눈빛으로 반찬을 훑어봤다. 양도 양이지만 아침에 된장찌개와 송이버섯구이까지는 그렇다 쳐도 꽁치는 대체 언제 구운 건데…….

“그런 얘기 자주 들어요…….”

그런데 막상 하다 보면 양도 가짓수도 많아진다고, 요리는 이상하게 적당히가 안 된다는 수현의 자백에 현규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는 거야. 아침은 간단히 해.”

“지금은 일 쉬는 중이라 괜찮아요. 그리고 이건 그냥 스트레스 해소용이라…….”

“……스트레스 해소?”

“네. 12첩 반상이면 무난한 거예요. 대학 입시 앞두고는 일주일 내내 36첩 반상을 차려서 지수 형이 이 새끼가 우리 집 거덜 내겠다고 걱정했어요.”

그 정도로 거덜 날 집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게 수현의 습성인 모양이었다.

12첩 반상을 시작으로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갈 때마다 반찬 수가 늘고, 그 최고점이 36첩 반상이었던 거다.

“지금도?”

스트레스 수치가 높은 거냐는 물음에 수현이 솔직하게 대꾸한다.

“지금은 일 마무리된 직후라 그간 쌓인 스트레스 풀이 하는 거고요. 아마 한 일주일 갈 거예요.”

“그래…….”

일주일이면 참을 수 있는 정도고 수현에게도 큰 리스크가 없는 기간이었다. 그러니 그 정도면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인 현규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6시 30분에 일어나 7시 조금 넘어 12첩 반상으로 아침 식사를 하는 삶은 몹시 낯설었다. 좋게 말하면 충실한 거고 나쁘게 보자면 쓸데없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아침 식사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을 텐데 오늘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수현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몇 시에 퇴근할 예정이지?”

“출근한 뒤에 상황 보고요.”

형하고 한집에서 산다는 걸 과시해야 하니 같이 출근은 하겠지만 퇴근은 쌓인 업무량을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하던 수현이 문득 그건 왜 묻냐는 듯 현규를 바라본다.

“퇴근 후에 같이 갈 곳이 있으니 약속 잡지 마.”

“저녁은요?”

“외식할 거야.”

“시간 있을 때는 집에서 해 먹고 싶은데요…….”

“주말에 100첩 반상을 해도 상관없으니 오늘은 외식해.”

먹을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라고 하며 현규가 막 계란말이에 손을 대는데 현규의 휴대폰이 울려 왔다.

아침부터 발랄하게 울려 대는 벨 소리에 힐끔 휴대폰을 본 현규가 인상을 찌푸린다.

대놓고 받기 싫어하는 표정에 꽁치 살을 바르던 수현이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자 현규가 수저를 내려 둔다. 그러곤 ‘먹고 있어.’라고 말을 건넨 뒤 자리에서 일어서 침실로 들어선다.

통화하나 보다 하고 넘기며 열심히 꽁치를 발라 먹는데 침실 쪽이 조용하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에 느낀 형의 인상이나 주변인들이 말하는 이미지는 말이 없고 목소리도 낮고 차분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은형이 “저 새끼는 화가 나도 말을 안 해. 눈으로만 욕하는데 그게 더 기분 나빠. 차라리 쌍욕을 하라고!”라고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나랑은 진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긴 하다.

뭐, 기분 안 좋을 때는 여전히 눈으로 말하지만…….

모처럼 잘 구워진 꽁치를 순식간에 다 발라 먹은 수현은 깔끔하게 가시만 남겨 옆으로 밀어 둔 뒤 이번엔 집게를 들고 현규의 꽁치의 살을 발랐다. 생선을 잘 못 먹는 것 같아 가시와 뼈를 깔끔하게 분리해 살만 접시에 두곤 치우자 마침 침실을 나온 현규가 식탁으로 돌아와 앉는다.

그러다 살만 남은 꽁치를 보곤 놀라 묻는다.

“너, 생선구이집에서 아르바이트한 건 아니지?”

“원래 이런 거 잘해요. 용접도 잘해요.”

기계 고장 나면 가져오세요, 어지간한 건 다 고칠 수 있어요, 라며 수현이 해맑게 웃는 모습에 현규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뭐든 잘하면 좋지.”

의미 없는 말을 작게 중얼거리던 현규는 이내 시선을 들어 앞에 앉은 수현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말을 건넨다.

“점심시간에 같이 갈 데가 있으니 시간 내.”

“점심요?”

“응.”

“어디요?”

“가 보면 알 거야.”

“그럼 저희 사무실로 오실 거예요?”

“그래야지. 그리고 신분증 준비해.”

“신분증이요?”

“응.”

보통은 차 키와 휴대폰만 들고 다니면 충분하지만, 오늘은 꼭 신분증을 챙기라는 말에 수현이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뜨다 멈칫한다.

“……신분증은 갑자기 왜요?”

혹시 대출받게 하려는 건가, 경계하며 수현이 되묻자 그 속내를 금세 알아챈 현규가 혀를 찬다.

“내가 설마 너한테 대출 같은 걸 시킬까?”

내가 가진 주식이 얼만데, 라는 현규의 표정에 수현은 곧장 납득했다. 현규 형이 증여받았을 때 둘째 형이 배 아파 죽으려고 했을 정도로,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도 어마어마하게 증여받았다고 듣긴 했다.

아니, 사실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하나씩 증여받아 성인이 됐을 때는 이미 자산이 상당했다. 그런 면에서 결혼 전에는 절대 증여 안 한다는 이쪽 부모님들과는 대조적이라 작은형이 엄청 부러워했다.

진짜 장염에 걸릴 정도로.

“대출이 아니면 신분증은 왜요?”

부동산이나 휴대폰 계약, 그리고 대출 아니면 요즘 신분증 쓸 일이 있던가 하며 수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현규가 시간을 확인한다.

“출근해야 하니 일단 식사하고 출근 준비해. 자세한 건 그때 얘기해 줄 테니 점심시간 비우고 신분증 챙겨 나와.”

대체 신분증을 뭐에 쓰려고, 라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일단 돈 문제 때문은 아닐 거라는 현규의 확답에 수현은 다시 수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부지런히 식사하던 중 문득 현규가 수현에게 한 마디를 더한다.

“그리고, 잊지 말고 반지 껴.”

“아…….”

그제야 본인의 왼손을 본 수현은 어제 샤워하느라 반지를 빼놨다 깜빡했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 안 하던 거라 자꾸 잊는다.

솔직히 좀 불편하기도 하고…….

“꼭 끼고 다녀.”

“그런데 손을 많이 써서…….”

귀찮다고 하려는데 여지없이 엄한 현규의 시선이 날아왔다.

네가 손을 많이 쓰든 발을 많이 쓰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라고 말하는 그 시선에 수현은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네……. 껴야죠…….”

순종적인 답변과 함께 수현은 서둘러 밥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서 빈 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담가 둔 채 재빨리 욕실로 향했다.

언제나와 같은 아침이었다.

아침을 먹고 씻고 그릇들을 식기세척기에 넣어 둔 뒤 옷을 갈아입고 아슬아슬한 시간에 출근하기.

지난 두 달간은 정신없이 바빴던 탓에 잠만 자고 나가기 바빴고 그제 어제는 결혼 문제로 정신이 없어 잠시 잊고 있던 일상이 드디어 돌아왔다.

두 차례의 폭풍이 몰아쳤다 사그라졌으니 이제 당분간은 이 평화가 유지될 거라는 생각에 수현은 기분 좋게 웃으며 금요일 아침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온 태풍이 토네이도라면 오늘 닥칠 폭풍은 허리케인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한 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