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160)

너 양심 어디에 팔아먹었냐, 라는 미소였다.

“그럼 오늘 집에서 막걸리 마셔도 돼요?”

“들어갈 때 주류 전문점에 들러. 요즘은 스파클링 막걸리도 많이 취급하니까.”

처음 듣는 그 말에 수현이 눈을 반짝인다.

“그래요? 난 매일 편의점에서 사다 먹었는데.”

“그래. 이번에 알아 둬.”

“네.”

그럼 이제부터 새로운 주류 시장을 개척해야지, 하며 웃는 수현의 얼굴에 현규가 그 속내를 알아채곤 혀를 찬다.

“그렇다고 단골 될 생각은 하지 말고.”

술 좀 작작 마시라는 말을 대신한 그 표현에 수현은 서둘러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하며 대화의 방향을 돌렸다.

단골 되고 싶다는 의미였다.

“아까 나왔던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고등학생 때 삼촌하고 제가 삼촌이랑 결혼하겠다고 떠들고 다녔던 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사정?”

“그때 삼촌한테 스토커가 붙어 있었거든요.”

처음 듣는 그 이야기에 현규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전혀 놀랍지는 않았다. 해준은 스토커가 잘 붙을 관상이다.

“삼촌이 대학원에 다니면서 조교를 했는데 우리 삼촌이 기본적으로 굉장히 다정하고 세심하고…… 그걸 뭐라고 하죠? 뽀송뽀송하고 기분 좋은 수면 같은 느낌이잖아요. 삼촌이 쳐다보면 달달해서 막 꿀 떨어지는 느낌이고요. 둘째 형은 삼촌의 유일한 문제점이 바로 그 눈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을 되게 사랑스럽게 보거든요. 형하고는 완전히 달리요.”

물을 따른 뒤 손을 물수건에 닦던 수현의 설명에 막 재킷을 벗고 소매를 걷어 올리던 현규는 어디 얼마든지 지껄여 보라는 듯 웃었다.

나중에 한 번에 몰아서 혼내 주겠다는 그 미소에도 수현은 해맑게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걸 그 사람은 삼촌이 자기를 좋아해서 그렇게 보는 거라고 착각했나 봐요. 마침 그 사람이 우리 집 근처에 살아서 오다가다 인사를 몇 번 했는데 그것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진짜 그냥 안부만 묻는 사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새벽 늦게 전화해서 삼촌을 불러내더라고요. 자기 취했으니 데리러 오라고.”

그러니까 그건 거의 우리 큰형이 새벽에 뜬금없이 형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한 순간 형이 이해한 듯 “아!”라고 탄성을 내지른다. 그러곤 곧 그걸 살려두냐라는 투로 중얼거린다.

“그럼 착신 거부를 걸면 되지.”

“그게, 아까도 말했다시피 우리 삼촌은 형하고 달라서 거절을 잘 못 하거든요.”

되게 마음이 약하고 착해요, 생불이자 천사 강림 그 자체예요, 라고 처맞을 말을 건넨 수현을 현규는 지금만은 아주 너그러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너무 귀여워서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니 어디까지 하나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하고 집 주변에 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이 집까지 따라오는 걸로 모자라 삼촌 휴대폰 연락처를 멋대로 지우거나 삼촌이 가는 모임까지 따라다니기 시작한 거예요. 나중에 알았지만 연극성 성격 장애? 뭐 그런 병명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무슨 병인지 또 해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현규는 이번만은 차분하게 수현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로 했다.

결혼기념일이니까.

“……그래서?”

“그래서…… 어, 여기 놔 주세요.”

점원이 들고 온 고기와 그리들팬을 본 수현은 부지런히 테이블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자기만의 규칙이 있는지, 점원이 놓은 그릇들을 야무지게 다시 정리하는 모습에 현규가 빨리 다음 얘기나 하라는 듯 턱짓하자 수현이 고기 옆에 나물들을 정렬하며 이야기를 이어 간다.

“그쯤 되니 삼촌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 사람한테 너와 난 아무 관계도 아니고, 난 네게 특별한 감정이 없다고 딱 잘라 거절을 했나 봐요.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이 그 얘기를 듣고는 자해한 채로 우리 집에 찾아온 거예요. 그때 제가 문을 열어 줬고요.”

“……네가?”

“네. 그때 마친 삼촌과 저 둘이 집에 있어서 문을 열고 나갔더니 그 사람이 손이 피범벅이 된 채 삼촌을 찾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마침 삼촌이 나오다 그걸 보고는 너무 놀라 기절을 한 거예요. 다들 이쯤 되면 이건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결론을 내렸죠. 저랑 삼촌을 결혼시키기로.”

잘 이어지던 스토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결혼 이야기에 현규는 혼란스럽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잠깐 멈췄다.

“……잠깐, 잠깐만! 대체 왜 얘기가 거기로 튀는데?”

그 집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애를 결혼시키는 걸로 해결하냐고, 너 그 집 친자식 맞냐고 현규는 화를 냈지만 수현은 조금도 그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게, 또 사정이 있어요. 그쪽 집안에서는 그 사람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걸 알았거든요. 그래서 그 김에 삼촌하고 결혼시켜서 삼촌을 보호자로 유학을 보내 버리려고 했던 거예요. 어차피 고아니까 감지덕지할 거라고요. 그런데 또 그 집 아버지도 입이 싸서 그 얘기가 우리 아버지 귀에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그날 집이 뒤집혔죠.”

그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현규는 처음으로 수현의 부친이 분노한 이유에 공감했다.

모든 일에 화를 내는 사람이지만 그 일은 화낼 만했다.

“……그래서?”

“그래서, 그 집부터 처리해야 하니 저랑 삼촌이 약혼한 관계고 저 고등학교 졸업하면 결혼할 거라고 소문내고 다니기 시작했죠. 마침 그 형 동생이 우리 학교에 다니길래 수시로 삼촌이 저 데리러 와서 자랑하고 동네에도 소문 다 내고 다니고요.”

“아, 그래서…….”

순간 주말마다 수현을 데리러 오던 해준의 모습을 기억해 낸 현규는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메가의 경우는 아예 어릴 때 약혼자를 정해 두는 경우가 많으니 약혼자가 있다는 건 이상할 건 없지만 그 정도로 요란하게 티를 내고 다니는 경우는 드물어 이상하다 했는데 그런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진짜 결혼할 건 아니었다는 거야?”

“어…… 그게요…….”

마침 뜨거워진 팬 위에 삼겹살을 얹은 수현은 잠시 이야기를 끊었다, 다시 이었다.

“그게 사실은 어릴 때부터 얘기는 있었어요. 얘네 둘이 크면 결혼시키자, 뭐 그런. 그런데 사실 너무 어릴 때라 심각하게 생각은 안 한 거죠.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주변에 소문이 다 나고, 그렇게 떠들고 다니다 보니 이 김에 그냥 결혼시켜도 좋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아버지가. 마침 삼촌을 우리 집안에 입적하는 걸 인생 과업으로 여기시던 할아버지까지 합류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결혼 진행하자고 했는데 삼촌이 제가 너무 어리다고 거절한 거죠.”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된 거죠, 라며 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대충 이렇게 된 이야기라는 수현의 설명에 현규가 다시 묻는다.

“……넌?”

“네?”

“그때 네 의견은 어땠냐고?”

그게 궁금하다는 현규의 질문에 수현은 그리들 안쪽이 김치를 놓으며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뭐, 어릴 때부터 하도 어른들이 그렇게 노래를 불러서 언젠가 내가 결혼을 하면 삼촌하고 하겠구나, 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별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안 하길 잘했고요. 그때 결혼했으면 그런대로 잘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다 다른 사람을 좋아했으면 좀 불편했을 것 같긴 해요.”

결혼했다면 서로에게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사람 마음이 항상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다 보니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바로 그 좋은 예로 삼촌은 결국 유학 중 생각도 못 했던 주영이와 사랑에 빠졌으니까.

만약 결혼 후에 그랬다면 진짜 큰일이었을 거라 결혼 안 하길 잘한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던 수현은 열심히 고기를 뒤집다, 다시 현규를 바라봤다.

“형, 소주 한 병만 시키면 안 돼요?”

삼겹살 소리를 들으니 소주가 고프다고 수현은 애절하게 현규를 바라봤지만 현규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닥치고 고기나 구우라는 현규의 눈빛에 수현은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집게로 고기를 뒤집었다.

“대충 그렇게 된 얘기예요. 그런데 한번 얘기가 나오니 어른들이 포기를 못 하고 자꾸 결혼을 시키려고 하시더라고요. 원래는 삼촌 유학 갈 때 저도 같이 따라갈 예정이었는데 그때까지 발정기가 안 와서 패스했거든요. 타국에서 갑자기 발정기가 오면 너무 위험하다고요. 그런데, 그것도 진짜 잘한 것 같아요. 삼촌이 유학 중에 주영이를 만났으니까요.”

거기에는 현규도 모처럼 동의했다.

“사람 인연은 따로 있다고 하니까.”

“그런 게 진짜 신기하긴 해요. 주영이가 나랑 친해서 삼촌하고 몇 번 봤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해외에서 하필 제 동창이 삼촌하고 친해진 건지. 둘이 대학도 달랐잖아요.”

둘이 사귄 뒤에 주영이가 나랑 동창인 거 알고 놀랐다며 수현은 고기를 뒤집었다. 그러곤 지글지글 맛있게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에 만족하며 이번엔 쌈장 제조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사이 사이다를 잔에 따르던 현규는 수현의 의문에 답해 주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소개해 줬으니까…….”

그 말에 고기에 집중하던 수현이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형이요?”

“주영이가 나랑 같은 대학이었는데, 유학생들은 서로 다 연락하고 지내니 알고 지내면 좋을 것 같아서. 주영이는 특히 오메가라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으니까.”

“어, 맞아요. 우리 삼촌이 되게 매너도 좋고 착하긴 하죠.”

알파지만 다른 알파들하고는 달리 신사라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런 문제로 주영이가 곤란해할 때 삼촌이 여러 번 도와준 걸 계기로 연애를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의외네요. 형은 다른 사람한테 전혀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그건 맞아.”

저도 모르게 튀어 나간 본심에 수현은 그건 무슨 뜻이냐고 현규를 바라봤다. 순간 현규는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소주 시킬래?”

“네!”

수현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집중시킨 뒤 재빨리 소주를 주문한 현규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난 당연히 너랑 해준 형이 결혼할 줄 알았어. 해준 형이 유학 왔을 때 너도 곧 따라올 거라고 했으니까.”

“아…… 맞아요. 원래 그러려고는 했어요. 그런데 발정기가 안 와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영원히 밀린 거죠.”

결혼도, 유학도, 라고 중얼거리며 수현은 현규가 건넨 사이다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곤 소주랑 사이다랑 섞어도 맛있는데, 라고 아쉬워하며 다시 집게를 움직이는 사이 이번엔 현규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갔다.

“4년, 아니 햇수로는 5년 전쯤엔가? 한 번 왔었잖아.”

현규가 정확히 시기까지 언급한 순간 수현은 그때를 떠올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죠.”

정확히 5년 전 겨울, 졸업 학기를 마친 뒤에도 진로를 정하지 못해 무작정 삼촌을 보겠다고 미국에 갔던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조건 반사 같은 걸로, 자신의 진로는 늘 삼촌이 정해 줬기에 취직을 할지, 대학원에 진학을 할지, 아니면 유학을 갈지 결정하기 위해 삼촌을 만나러 간 거였다.

하지만 때마침 미국 대학은 시험 기간이라 삼촌이 자신을 가이드해 줄 시간이 없어 혼자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녔었다.

그 외에는 혼자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으니 현규 형은 그때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요?”

“그때…….”

“그때요?”

“그…….”

할 말이 있기는 한데 그 말을 내뱉기가 어려운지 형이 입술을 달싹인다. 그사이 소주잔 두 개와 소주 한 병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응?”

다 익은 삼겹살을 들고 자르기 시작한 수현이 할 말 있으면 하시라고 현규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차마 다음 말을 내뱉지 못한 현규가 말없이 소주병을 들곤 뚜껑을 연다.

“아무것도 아냐.”

“아무건 거 같은데요?”

“아냐.”

거기서 대화를 마무리한 현규는 그의 앞에 놓인 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걸 보곤 서둘러 그에게 손을 내밀려던 수현은 그가 단숨에 술을 비운 순간 소리쳤다.

“어? 형이 마시면 안 되죠! 내 건데!”

“누가 네 거래?”

내가 주문했는데, 라는 말에 수현이 그대로 받아친다.

“저한테 물어봤잖아요.”

“시킬까, 라고 물어본 거지 마실래, 라고 물어본 기억은 없는데?”

……그러고 보니 그러긴 했다.

“그럼 운전은 누가 해요?”

“너.”

너 말고 누가 하겠냐, 는 현규의 눈빛에 수현은 억울해하는 눈빛을 한 채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럼 아예 시키지를 말지, 왜 희망 고문하냐고 구시렁대면서도 서둘러 고기를 자른 수현은 고기를 현규의 앞접시에 놓아 줬다.

“고기 먹으면서 마시세요. 속 버려요.”

“넌 그냥 먹으면서?”

“전 보통은 안주 잘 챙겨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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