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시는데 죄송한데요…… 주무실 거면 좀 놔주시면 안 될까요?”
제 심장 상태가 그다지 좋지가 않거든요, 내일 아침 눈떴을 때 송장 치우고 싶으신 거 아니면 좀 놔주시면 감사하겠는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형은 숙면에 든 상태였다.
그사이에도 심장은 미친 듯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술은 입에도 안 댔는데 속이 울렁거리고 머릿속이 어지러운 기분에 다시 한번 형의 팔을 밀어냈다.
“형, 저 진짜 좀 놔주…….”
……세요, 라는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잠들었던 형이 전신을 휘감은 채 몸을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귀찮고 시끄러우니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듯 등 뒤에서 팔다리로 몸을 휘어 감아 내리누르는 힘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세 탓에 배스 가운만 걸치고 있던 형의 알몸이 바로 등에 닿아 왔다.
심지어 거기까지…….
“미치겠네…….”
바로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곤한 숨결과 피부 위에 닿는 뜨거운 체온, 그리고 허벅지 위를 휘감은 다리 사이에서 확연하게 느껴지는 그것…….
아침에는 단지 민망하기만 했을 뿐이었다면 지금은 심장이 뛰고 체온이 오르고 식은땀까지 흘러 미칠 것 같았다.
아랫배까지 지끈거리는 게 진짜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았다.
“형, 이러다 제가 형 덮칠지도 몰라요…….”
그러니 나중에 서로 법적으로 피곤해지기 싫으면 좀 떨어져 주세요, 라고 애원했지만 형은 완전히 잠든 채였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망한 것 같다.
아니, 이미 망했다.
그렇게 지옥의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과음한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차려진 12첩 반상을 본 감상을 말하자면…….
“이건 대체 뭐지?”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지난밤 10시가 겨우 넘어 잠든 탓에 주말임에도 이른 시각 눈을 떠 버린 현규는 아슬아슬하게 식탁을 가득 채운 접시들을 보곤 미간을 꾹 눌렀다.
과하다, 너무.
얘도 중간이 없다.
“형 속 안 좋으실 것 같아서 간소하게 차렸어요. 어서 드세요.”
이 식탁에 가장 안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면 그게 바로 ‘간소하게’일 거라고 현규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콩나물오징어국과 낙지찜, 명란 계란찜, 톳나물 두부 무침에 장떡, 잡채, 장어구이와 불고기 기타 등등.
이쯤 되면 일류 한정식집 정식 메뉴다.
그것도 저녁 만찬이다. 절대 조찬이나 점심 특선은 아니다.
어쩐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아 눈앞에 놓인 진수성찬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자 수현이 현규에게 자리를 권한다.
“국만이라도 드세요. 황태를 넣으려고 했는데 황태 싫어하셔서 대신 오징어 넣었어요.”
갑자기 나온 황태 이야기에 급격한 갈증을 느낀 현규는 일단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속이 안 좋아 국을 한 모금 넘긴 순간 순식간에 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에 서둘러 국을 떠넘겼다.
그 덕에 울렁거리던 속이 가라앉아 가기 시작했다.
“간은 괜찮으세요?”
“괜찮아. 그런데, 재료는 어디서 난 거지?”
어제 오전에 냉장고를 봤을 때 이런 해물은 없었는데, 이게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고 현규가 지극히 합리적인 의문을 던지자 수현이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냐는 얼굴로 답한다.
“나갔다 왔죠.”
“……밤에?”
“아뇨. 아침에요.”
“어디로?”
“새벽 시장이요.”
“……왜?”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아침부터 한정식 공격을 받고 있자니, 현규 역시 그간 수현이 하면 가장 빡치는 말 넘버2에 랭크된 ‘왜?’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모처럼 늦잠을 자도 되는 토요일 아침에 굳이 새벽 시장에까지 나가 이런 상을 차린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보니 애 눈이 퀭하다. 겨우 희미해졌던 다크서클까지 다시 늘어진 게, 상태가 아주 안 좋아 보였다.
“너 잠은 잔 거야?”
“아뇨.”
지나치게 빠른 답에 낙지를 한 마리 앞접시에 옮기던 현규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번뇌가 찾아와서요.”
“번뇌?”
그건 또 무슨 소리냐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수현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수현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인다.
너무 티가 나게.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분명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 후 간 건 기억하는데…… 그 후에 뭔가 있는 건가 의아해 다그치듯 묻자 수현이 고개를 더 푹 숙인다.
그게 굉장히 기분 나빴다.
“이수현, 무슨 일이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데 왜 나랑 시선을 못 마주치는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요.”
“무슨 사정?”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끝까지 시선을 피하는 수현을 현규는 집요하게 바라봤다. 얼굴 위로 모든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녀석이라 어떻게든 그 투명한 머릿속을 읽어 내려 시선을 마주치려 했지만 수현 역시 고집스레 시선을 피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고 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였는데 오늘은 애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약간 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뚫어져라 수현을 바라보고 있자 그 시선을 의식한 듯 수현이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러다 또 눈이 마주치자 휙 하니 시선을 내린다.
그게 너무 거슬렸다.
이상하게 열받는다.
“……뭐야, 너?”
“…….”
“왜 시선을 피하는데? 나 자는 새 무슨 사고 쳤어?”
간식을 훔쳐 먹은 뒤 시선을 피하는 개처럼 계속해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수현에게 이실직고할 기회를 줬지만 이번에도 역시 수현은 그 기회를 거부했다.
“이수현?”
“…….”
“우린 이제 법적으로 부부이자 앞으로 비즈니스를 함께해야 하는 파트너야. 혼인 신고까지 하는 강수까지 둬 가며 손을 잡기로 한 이상 서로에게 숨기는 일은 없어야겠지?”
“…….”
“응?”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조금 강하게 되묻자, 그제야 슬쩍 고개를 든 수현이 슬금슬금 이쪽을 힐끔거린다.
그 눈빛이 아주 불손하다. 물론, 수현의 눈빛이 고집스럽고 건방져 보이는 건 디폴트지만 지금은 특히나 버릇이 없어 보였다.
거기다, 할 말이 아주 많아 보이는 눈빛이었다.
“뭐든지, 말해도 돼요?”
“뭐든지 말해도 되는 게 아니라 말해야지.”
너와 나는 부부니까, 라고 다시 한번 혼인 신고의 중요성을 강조한 현규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어서 얘기하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이자 숟가락을 입에 문 수현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어제, 기억하세요? 삼겹살집 나온 뒤에?”
“기억해. 네가 운전해서 집으로 왔고 집에 와서 샤워 후에 네가 탄 꿀물을 마시고 잔 것까지. 그런데, 그게 뭐?”
그 외에 뭐가 더 있었냐고 되묻자 수현이 헉, 하고 숨을 삼킨다.
“진짜 다 기억하시네요?”
“술 먹고 필름 끊어진 적 없어.”
내가 넌 줄 아냐는 현규의 비난에도 수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렇게 취했는데도요?”
“많이 취한 건 아니었어.”
“아니에요. 많이 취했어요.”
“적당히 취한 거지.”
“절대 아니에요. 형 어제 눈 완전히 풀렸었어요.”
“그런 기억 없어.”
“아니에요. 형은 원래 이런 눈인데…….”
라며 양손의 검지로 V 자를 만든 수현은 곧장 다시 말을 이었다.
“술에 취했을 때는 이랬어요.”
라며 이번엔 八 자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그 말에 현규는 가만히 수현을 바라봤다.
대체 네가 뭔 소리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러니까, 형이 주사가 있는데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현규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난 주사 없어.”
스무 살 성인이 된 이후 10년간 술을 마셔 왔지만 그간 단 한 번도 취한 적도 없고 주사를 부린 적도 없다.
그건 확실하다. 다른 친구들도 보증할 거다.
현규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수현 역시 본인의 눈으로 본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