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가 아니고?”
“그럴지도요?”
그 답에 형이 귓가에서 웃는다. 간지러운 듯 그리고 재미있다는 듯.
그 웃음소리조차 너무 섹시해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형에게 들릴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아직은 안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태어나서 두 끼 이상 같은 음식을 먹은 적은 없지만…….”
“진짜요?”
워낙 손이 커 토핑만 바꿔 일주일 내내 카레만 먹은 적도 있는 자신에게 형의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놀라 그게 말이 되냐고 되묻자 형이 또 웃는다.
“우리 집 도우미는 양을 조절할 줄 아니까. 그리고 나도 할 수 있고. 그리고 이 김에 너도 양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해.”
“……일단…… 노력은, 할게요.”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는 요리의 양은 스트레스의 양과 비례하는 터라 사실상 폭주하는 기간의 요리양을 조절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평소에라면 할 수 있을 거다.
아니, 해야 한다.
솔직히 일주일 내내 카레만 먹었던 건 좀 그랬다. 그 이후로 한동안 카레를 안 먹었으니까.
“모처럼 말을 잘 듣네. 어쨌든 만둣국은 맛있으니 참을게. 그리고 오늘은 내가 끓일 거고.”
“……형이요?”
뜻밖의 이야기에 놀라 휙 하니 뒤를 돌아보자 형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는 할 줄 알아. 오늘은 그냥 쉬어. 출근 안 해도 돼.”
“회사는 가야 돼요.”
“너 없다고 회사 안 돌아가지 않아. 병가 내고 쉬어.”
물론, 그렇긴 하다. 특히나 시스템 개발팀은 사실 아주 큰 서버 오류 같은 게 일어나지 않는 이상 팀 차제가 없어도 무관하긴 하다. 아니, 사실은 없어도 된다, 평소에는.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오늘은 안 돌아갈 수도 있어요.”
“왜?”
“새 프로그램 적용되는 날이거든요. 오늘부터 CS 알바 뛰어야 돼요.”
농담처럼 던진 CS 알바라는 말을 형은 정확히 알아들었다.
“다른 직원들도 있잖아.”
“다른 직원들은 처리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서요.”
“꼭 출근해야 돼?”
“네.”
안 그러면 팀장님이 또 사직서를 낼 거고 그럼 일은 다 내 몫이 되는 터라 어쩔 수 없다고 하자, 형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대신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조퇴해. 나한테 꼭 연락하고.”
“네.”
“좋아. 오늘은 아주 착하네.”
모처럼 마음에 든다며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린 형이 뒤에서 떨어져 나가자 안도하면서도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그대로 있어도 될 것 같았는데…….
“먼저 씻고 나와. 샤워는 하지 말고.”
“괜찮아요.”
“감기 걸려.”
“……형, 꼭 우리 삼촌 같아요.”
그러니까 엄마, 라고 하려고 입을 벙끗하려는데 형이 싱긋 웃으며 먼저 말을 막는다.
“닥쳐.”
라고.
“……네.”
“빨리 준비해.”
“……네.”
평소와 같이 가차 없는 형의 태도에 얌전히 침대에서 내려서 먼저 창문을 활짝 열자 차가운 공기가 몰아쳤다.
하늘이 투명한 게 오늘의 미세먼지 농도는 좋은 편인 듯했다.
개운한 기분만큼 상쾌한 가을 아침이었다.
* * *
“벗어.”
식사 후 모처럼 정장 출근을 위해 드레스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던 중, 갑자기 들려온 그 말에 놀라 움찔했다.
그 말의 내용이 의외라기보다는 그 말을 한 게 현규 형이기 때문이었다.
“……왜 벗어요?”
아침부터 뭘 하려고, 라며 몸을 가리곤 형을 바라보자 형이 살짝 인상을 쓴다.
괜히 열받는다는 얼굴이었다.
“셔츠, 벗으라고.”
“왜요?”
이 셔츠와 넥타이는, 쇼핑을 하던 중 형이 직접 골라 준 거였다. 대표님한테서 도망 다니려면 눈에 띄지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몰개성한 정장 출근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형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곤 곧장 양복 전문숍으로 가서 옷을 골라줬다.
그것도 2시간에 걸쳐, 디자인과 사이즈뿐 아니라, 색감과 옷감, 그리고 촉감에 광택까지 고려해 가며.
사실 바로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은근슬쩍 후드 티를 입으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대표님이 출장 중이시니까, 정장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손이 후드 티에 닿기도 전에 바로 옆에 선 형이 어디 입기만 해 봐라, 라는 얼굴로 쳐다봐 그 손을 거두고 셔츠를 입은 차였다.
덕분에 너무너무 싫어하는 넥타이까지 매고 취직한 뒤 처음으로 머리까지 빗어 넘겼는데 이제 와 벗으라니…….
내가 왜 이 귀찮은 옷을 입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황당하다는 얼굴로 형을 바라보고 있자 형이 우악스럽게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린다.
“그냥 후드 티 입어. 안 어울려. 그리고, 머리도 너무 안 어울려.”
고등학생이 아빠 양복 입고 올백한 것 같다며 정신없이 머리카락을 내린 현규가 손을 떼자 수현은 주섬주섬 넥타이를 풀어 내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거봐요, 제가 양복 안 어울린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후드 티 입게 두지, 라고 중얼거리며 진열장에 내려 뒀다. 그리고 곧장 셔츠의 단추를 풀고는 셔츠를 벗는데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목덜미와 어깨 위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는 날카로운 뭔가가 피부 위를 스쳐 가는 것 같은 느낌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뒤에서 옷을 입던 형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특히 자신의 등을.
그 시선이 어쩐지 소름이 끼쳐 작게 항의하듯 물었다.
“왜 그러세요…….”
“뭘?”
“너무 보시잖아요.”
“내 눈으로 내가 보는데 왜?”
뭐 문제 있냐며, 아예 대놓고 자신의 몸을 훑듯이 바라보는 형의 시선에 후다닥 셔츠를 내려놓고 자신의 피부 같은 검은 후드 티를 입었다.
가을 겨울용의 조금 두꺼운 천이 목덜미부터 상체를 완전히 가리자 그제야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역시 자신에게는 이 옷이 가장 잘 맞는다.
절대 양복이 입기 귀찮고 불편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안 어울리는 옷을 입으면 어색함과 불편함 탓에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냥 대표님 눈에 띄고 말까 하고 고민하는데 바로 뒤에서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불만에 가득 찬 그 음성에 다시 휙 하니 뒤를 돌아보자 형이 무슨 일 있냐는 듯 바라보며 커프스를 찬다.
“왜?”
“방금…….”
혀 차지 않았냐고 하려는데, 내가 찼으면 어쩔 건데 하고 답할 것 같은 형의 눈빛에 곧장 꼬리를 내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작게 중얼거린 뒤 이번엔 바지를 갈아입으려 검은색 면바지를 꺼내 드는데, 형이 그걸 손으로 막는다.
“조거팬츠로 입어.”
“트레이닝복 입지 말라면서요?”
“상관없잖아, 어차피.”
“……그건 그런데요…….”
조거팬츠에 운동화 신고 가면 오늘은 팀장님한테 혼날 것 같은데, 라는 말을 삼키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형이 입으라고 한 거예요.”
“그래.”
“나중에 다른 말 하기 없기.”
“난 한 입 갖고 두말 안 해.”
바로 방금 한 것 같은데, 라고 하려다 그럼 말이 또 길어질 것 같아 논쟁은 거기서 멈추기로 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슬슬 나가야 할 시각이라, 어제 입고 잤던 바지를 벗으려는데 또다시 등골이 오싹해져 왔다.
이번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훑어내리는 형의 시선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 감각이 너무 불편했다.
시선이 아니라 손으로 피부를 더듬는 느낌이었다.
“형…… 전 나가서 갈아입을게요.”
아무래도 이대로는 위험할 것 같다는 판단에, 바지를 손에 들고 좁아터진 드레스룸에서 나가려 돌아서는데 바로 정면이 막혔다.
그래, 여긴 드레스룸이었다. 옷장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이 좁은 곳에서 나가려면 필연적으로 형을 통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