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종종 해요, 라고 하자 표정이 많이 안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형은 일단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겠지. 맛있기는 더럽게 맛있으니까…….”
“제가 만두를 좀 잘해요.”
“양은 줄여.”
“……네…….”
그제는 자기가 보기에도 너무 심하긴 했다고 인정하고 얌전히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가방 안에 있던 사원증을 꺼내 출입구를 통과한 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아니, 아예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남의 말은 사흘이라더니 주말이 지나자 금세 소문이 사그라들어 버렸다.
오늘 출근하면 형과 혼인 신고 소식이 다 퍼져 있을 줄 알았는데, 다들 자기 일로 바쁘다.
일단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엘리베이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형이 문득 말을 건다.
“수현아.”
너무 다정하고 상냥한 그 음성에 놀라 옆을 돌아본 순간 바로 입술이 겹쳐졌다.
갑작스러운 키스에 멍하니 서 있는데 형이 귀엽다는 듯 이번엔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러곤 마치 꿀이 떨어질 듯 다정한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봤다.
술에 취했을 때처럼.
“……형, 취했어요?”
아니, 술은 안 마셨는데 왜, 라고 형을 바라보자 형이 머리 위에 있던 형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닥치라는 의미였다.
두피를 세게 쥐는 그 힘에 얌전히 고개를 숙이자 형이 먼저 도착한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서며 부드럽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수고해.”
* * *
“현규 형이 이상해, 삼촌…….”
정신없이 바빴던 오전 시간.
새로 적용한 시스템과 애플리케이션 탓에 사원들의 불만과 민원은 폭주했고 더불어 예상한 대로 지옥 같은 3시간을 보낸 뒤 수현은 잠깐 사무실에서 옥상으로 도망 온 차였다.
그리고 도망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삼촌에게 오늘 아침 일을 보고하는 거였다.
현규 형이 너무 이상했다.
- 그 녀석도 요즘 제정신은 아닌 것 같으니 이상한 건 당연해 보이는데…… 그 전에 할 말이 있지 않아?
인사부터 해야지, 라는 그 말에 수현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미안. 정신이 없어서. 잘 지냈어?”
- 응. 바로 어제 보긴 했지만, 하루 사이 잘 지냈어. 넌 어제 오후에 아팠다면서, 몸은 괜찮아?
“어떻게 알았어?”
내가 아파서 정신이 없을 때 삼촌한테 전화했나, 고민하는데 뜻밖의 답이 나왔다.
- 현규가 전화했어. 너 병원 데려가야 하냐고.
현규 형이 많이 걱정했다는 삼촌의 말에 겨우 안심했다.
다행히 자신이 연락한 건 아니었다. 술 마셨을 때뿐 아니라 열이 올랐을 때도 기억이 사라지나 걱정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괜찮아. 그냥 과로였어. 푹 자고 나니 괜찮아졌어.”
- 다행이네.
“응.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 그래도 걱정은 돼. 너 추워도 옷 대충 입고 다니는 거 안 좋은 버릇이야. 현규가 알아서 챙기긴 하겠지만 걔도 바쁘니까 최소한 겉옷은 좀 챙겨 입어.
“응. 조심할게.”
- 그래. 착하네. 그래서, 현규가 뭐가 이상한데?
다시 돌아온 본론에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망설이다 자신의 빈약한 어휘 능력 안에서 가장 적절한 단어를 골라냈다.
“어…… 그게…… 자꾸 이상하게 쳐다봐.”
- 어떻게?
“그냥…… 좀 무섭게 봐.”
- 구체적으로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무섭게’라는 추상적인 단어 안에는 복합적인 여러 의미가 들어가니 어떨 때 어떤 눈빛으로 어떤 식으로 쳐다보는지 설명해 달라는 삼촌의 요청에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무섭다는 느낌 외에는 표현할 만한 다른 단어가 없어 수현이 우물쭈물하고 있자 해준이 수현이 알아들을 수 있게 질문을 구체화한다.
-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떨 때 그러는 건데?
“옷 갈아입을 때.”
- …….
“자꾸 무섭게 쳐다보다가 아까는 입맛까지 다셨어.”
- …….
“그거,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는 거지?”
- 그게 뭔데?
“나랑 섹스하고 싶다고…….”
순간 콰당 하며 뭔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이런.”이라고 낭패라는 듯한 삼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 ……텀블러를 떨어트렸어.
“안 다쳤어?”
물 뜨거울 텐데, 라고 걱정하자 삼촌이 괜찮다고 말해준다.
- 다행히 뚜껑이 닫힌 채였어. 그런데…… 네가, 그걸 용케 알았네?
“내가 생존 본능은 있거든.”
처음에는 혹시나, 설마 했는데 아까 옷을 갈아입을 때 형의 눈빛을 보곤 거의 맞는다는 쪽으로 기울어진 채였다.
그건 손으로 더듬는 정도가 아니라 핥는 수준의 눈빛이었다. 그래서 위협적이라고 느꼈던 거다.
그대로 계속 있었다면 어디로 끌려가 뭐라도 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 혹시, 현규가 강제로 하려고 해?
“……아니. 그건 아닌데…….”
- 위협적이라고 느껴지면 싫다고 정확하게 거절해야 돼.
“……싫은 게 아니면?”
사실 싫은 건 아니다. 그런 게 전부 처음이라 어색하고 어렵고 무서운 것뿐이다.
솔직히 내가 형을 덮칠 판이라 싫은 게 아니면 거부 안 해도 되냐고 묻자, 삼촌이 길게 한숨을 내쉰다.
- 수현아…….
그럼 어쩌라는 거냐, 라는 말투였다. 한심하면서도 어이없고, 그러면서도 또 걱정은 되는데 살짝 짜증도 난다는 아주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수현아’였다.
이런 건 또 오랜만이다.
- 너희는 성인이고 성인끼리 합의하에 하는 관계라면 문제 될 것 없지만…… 네가 싫다면 정확히 거부할 줄도 알아야 돼. 그리고 내가 어제도 말했지? 현규한테 휘둘리지 말라고.
어제 내가 그렇게 당부했는데 내가 한 말 어디로 들은 거냐는 의미였다. 아무래도 그 부분이 살짝 짜증이 난 것 같았다.
“노력은 하고 있어.”
- 노력만 하지 말고 네가 먼저 선을 그으라고. 시작을 네가 먼저 했을 뿐이지, 지금 더 급한 건 현규야. 그리고 그때도 그랬고.
“설마, 대표님 아직도 현규 형 결혼 포기 안 하셨대?”
그 난리를 치고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중혼이라도 불사하시려는 건가, 라고 의심하는데…… 그분이라면 하고도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충분히 할 수 있다. 솔직히 대표님은 잘 모르지만 그 부분은 확신할 수 있다.
왜냐면 우리 아버지가 그런 분이니까.
- 내가 그쪽 사정은 잘 모르니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현규가 훨씬 더 급한 상황이야. 그러니까 현규한테 휩쓸리지 말라고. 네가 현규한테 한 입 거리도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좀 버텨 봐. 제발…….
평이하게 시작한 내용이 끝에 가서는 애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말 그대로 제발 좀 현규 형한테 질질 끌려가지 말라는 의미라는 건 알았지만 이미 충분히 끌려갔고 사기당할 건 다 당했다. 솔직히 이제 더 당할 것도 없다.
“……삼촌이 걱정하는 건 알겠지만…… 설마 여기서 또 뭐가 있겠어?”
결혼에 혼후 계약서까지 나온 판에 이제 남은 게 뭐가 있을까, 싶다.
결혼 생활에 대한 어지간한 부분들은 모두 혼후 계약서에 명시돼 있으니 더는 뭐가 있을 수가 없다.
그나마 가능한 게 형이 자신이 증여받은 주식을 어떻게 하는 건데 혼후 계약서의 내용상으로는 절대 자신이 손해 볼 일이 없다.
애초에 자신의 명의로 된 주식도 얼마 안 된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데 삼촌의 의견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 그러니까, 굳이 그런 게 아니라도 현규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지 말라고. 너 지금 상태로 봐선 현규가 살살 꼬시면 그대로 침대로 끌려 들어갈 애라…….
거기까지 말한 뒤 삼촌은 본인이 한 말에 질색하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
- 하여간, 현규한테 결정권을 너무 주지 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말려들지 말라고.
“……침대에 들어가면 안 돼?”
지나치게 솔직한 그 질문에 이번엔 뭔가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떨어지는 소리가 종이 같았다. 그것도 다량의.
“삼촌, 아직도 종이 서류 써?”
- 오래된 도면들 정리하던 중이었어. 확인할 게 있어서…….
“왜?”
- 그건 됐고……. 그보다 현규 침대에 들어가고 싶어?
“아니, 이미 한 침대를 쓰니까…….”
그리고 애초에 침대에 끌어들인 건 나니까, 라고 웅얼거린 순간 삼촌이 잠깐 말을 끊었다 잇는다.
- ……같이 잔다고?
“응. 소파가 작아서 형이 잘 데가 없어.”
현규 형 성격에 절대 소파에서 잘 리 없고 그럼 내가 소파에서 자야 하는데, 그나마 소파도 작아서 안 된다고 답한 순간 삼촌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