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터진다는 말을 대신한 한숨이었다.
- 그렇지……. 오피스텔이지…….
그 자식, 분명히 그거 알고 들어간 거야, 라는 중얼거림과 함께 들려오는 앓는 소리에 수현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응?”
- ……아무것도 아냐. 일단, 너희는 집부터 알아봐야겠다. 거긴 너무 좁아.
“나도 부동산 사장님한테 얘기해 놨는데 지금 당장은 같은 건물에 나온 집이 없대. 오피스텔 위치가 좋아서 다른 데로 가기는 싫은데…….”
- 굳이 오피스텔이 아니라도 되잖아.
“여기가 출퇴근이 너무 편해서.”
그 부분은 해준도 이해했다.
미혼, 아니 기혼이라도 직장인들에게 가장 좋은 집은 직장에서 가까운 집이다.
- 현규는 뭐래?
“형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어차피 새집 알아보던 중이라 근처로 알아본다고는 했는데…… 형도 여기가 마음에 드나 봐. 그래서 일단 같은 건물에 좀 큰 평수 집 나오기 전까지는 버텨 보려고.”
- 그래. 너희 둘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 너희가 편한 게 우선이니까.
“그래도 옮기긴 해야 돼. 형이 너무 커서 걸리적거려.”
- 현규한테는 좀 작긴 하지. 원래 거긴 1인 가구용이니까.
“응. 진짜 몸이 크니까 집이 좁긴 하더라.”
형들도 삼촌도 모두 크지만 워낙에 큰 집에서 살아와 그들과 있을 때는 몰랐는데 작은 집에서 형들보다 더 큰 현규 형과 있다 보니 사실 좀 숨이 막히기도 한다. 자신이 이 정도라면 현규 형은 더할 텐데 용케 참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얼핏 듣기에 유학 중에도 가족용 저택을 통으로 빌렸을 정도로 좁은 건 못 참는 사람인데 그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정략결혼이 하기 싫었으면…….
“아, 나 이제 내려가야겠다.”
혹시나 해 스마트 워치로 시각을 확인하니 너무 오래 쉬었다.
슬슬 내려가야 한다.
- 그래. 일 잘하고. 그리고, 현규가 꼬셔도 좀 버텨 봐. 가잔다고 낼름 침대로 가지 말고…….
‘제발 좀’이 생략된 그 말에 삼촌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 재빨리 답했다.
“알았어. 버텨 볼게.”
- 그래.
통화를 마무리한 뒤 난간 앞에서 돌아선 수현은 조용한 옥상을 가로질러 옥상 문으로 향했다. 그러곤 곧 문을 열고 한 층 내려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휴대폰의 메시지 알림음이 울려왔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지만 예의상 확인을 하자 역시 사무실이다.
영업팀 박 대리 때문에 환장하겠다는 메시지에 막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곧장 메시지를 보냈다.
[가는 중. 킵해 두세요.]
끊으면 계속 전화할 테니 내가 갈 때까지 대기 중으로 돌리라는 말이었다.
오전에 몰아치고 잠깐 소강상태인가 했더니 역시 쉽게 끝날 리가 없다.
클레임 처리하는 건 좋은데 제발 처리 과정에서 치명적인 오류만 안 나오길 바라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당장 대리님이나 팀장님 바꾸래요.]
그사이 잠깐 멈춘 엘리베이터 안에서 곧 메시지를 보냈다.
[그럼, 팀장님 바꿔 드려.]
짤막한 메시지 후 발송 버튼을 누르는데 보내자마자 답장이 왔다.
[도망가셨어요.]
다행히 이번 메시지도 전혀 놀랍지 않았다.
솔직히 팀장님이 제대로 상담 업무를 해 줄 거라는 건 기대도 안 했다.
엔지니어링 외의 작업, 특히 서류 업무와 이런 상담 업무를 유독 질색하는 사람이기에 이 난장판에서 도망친 것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해 줄 수 있다.
그걸 다 알면서도 따라온 건 자신이니, 이조차도 자업자득이다.
[그럼, 그냥 대기로 돌려.]
그럼 혼자 수화기 들고 난리치겠지, 하며 발송 버튼을 누르는데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마치 찌르는 듯 날카롭게 자신을 응시하는 그 시선에 옆을 돌아보자 처음 보는 남자가 이쪽을 바라보다 다급히 시선을 돌린다.
차라리 눈인사를 하면 몰라도 시선을 피하는 게 영 신경 쓰여 사원증을 보니 법무팀 직원이다. 눈으로 천천히 그를 훑고 있는데 또 휴대폰이 울려왔다.
[박 대리님이 지금 사무실로 오신대요.]
역시나 이번에도 전혀 놀랍지 않은 상황에 이제 다 왔다고 하곤 엘리베이터 계기판을 바라보는데 또다시 시선이 느껴졌다.
탐색하는 듯한 그 시선에 그쪽을 돌아보자 그가 두 손을 들어 보인다.
“실례했습니다. 페로몬이 독특해서…… 아…….”
거기까지 말한 남자가 자신의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보더니 아는 체를 한다.
“……이수현 대리님?”
“그런데요.”
그게 뭐 문제 있냐고 하자 그가 낭패라는 듯 억지웃음을 짓는다.
“제가…… 실수했네요. 알파 페로몬이 뒤섞여 있어서 혹시나 했더니…… 실례했습니다.”
“네, 뭐…….”
형하고 이틀 내내 붙어 있었고 출근하면서도 같이 붙어서 왔으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19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다. 순간 다시 도착한 팀원의 메시지를 보곤 재빨리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향했다.
제발 점심은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며…….
* * *
“내가 이러려고 엔지니어가 된 게 아닌데…….”
예상은 했지만 시스템을 한 번 갈아엎고 난 후유증은 컸다.
설명서와 FAQ를 주면 뭐 하나.
세상은 넓고 컴맹은 많으며 컴맹이 아니면 활자 혐오증이고, 이도 저도 아니면 난독증에 걸린 사람들 천지였다.
아무리 설명하고 설명해도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들 덕에 아예 원격 작업까지 하고 나니 이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오늘부터 나는 엔지니어가 아닌 CS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임했지만 계속 전화를 받다 보니 이건 CS직원도 아니라 유치원 선생님이 된 기분이다.
팀장님이 왜 이 작업을 싫어하시는지 이제 겨우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팀장 되면 대리한테 떠맡기고 튀어야지, 라고도 결심했다.
이런 건 원래 중간 관리자가 하는 거니까.
“이제 소강상태니 식사하고 옵시다.”
설마 점심시간에 전화해서 또 난리치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어디선가 항상 의외성의 인간이 나타나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서둘러 손짓했다.
전화 오기 전에 어서 나가라고.
아예 자리를 비우면 전화를 안 받아도 되니까 어서 튀라고 손을 빨리 내젓자 기막히게 그걸 알아들은 팀원들이 후다닥 휴대폰만 챙겨 들고 사무실을 나선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수현 역시 사무실을 나와 직원들과 엘리베이터로 향하며 현규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 지금 사무실 나왔는데, 어디세요? 집에서 기다릴까요?]
평소 루틴이라면 현규 형이 1시 5분쯤 사무실로 올 것 같았지만 오늘은 문의 전화를 피해 조금 이른 시간에 사무실을 나온 채였다.
혹시라도 형과 길이 엇갈릴까 형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낸 순간 바로 벨 소리가 울려왔다.
역시 현규 형이다.
“네.”
- 지금 어디?
“어…… 이제 엘리베이터 앞이요.”
- 3호기 타.
“3호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