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160)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고 윤 팀장 역시 의아해한다.

“그러게? 그런데 지금은 나는데? 플럼? 아니, 샌달우드인가?”

구체적인 노트(note) 이름에 그제야 수현은 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 향수는 아니고 샤워 코오롱일 거예요. 샴푸랑. 냄새 좋죠?”

“응. 그런데 뭐지? 레인 향도 좀 섞인 것 같은데……. 레인 어코든가?”

물 향은 전혀 느끼지 못했던 터라 수현은 눈을 껌뻑였다. 자신이 맡은 향은 굉장히 상쾌하고 달콤한 플로랄 향이었다. 워터리 계열은 전혀 못 느꼈다.

“베르가못 아니에요?”

“베르가못? 글쎄…… 플럼이랑 레인 어코드 향이 섞인 것 같은데. 우디 계열도 있긴 한데 묵직하지는 않고……. 조향이 특이하네.”

무거운 느낌이 아니라 되게 상쾌하고 기분 좋다는 그녀의 말에 수현이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인다.

“형한테 뭔지 물어볼까요?”

“……형?”

“현규 형, 아니, 강 팀장님 향수예요.”

그러니까 자기는 모른다고 답하자 윤 팀장이 눈을 휘둥그레 뜬다.

“향수 아니라며?”

“정확히는 샤워 젤이랑 샴푸예요. 형, 아니 강 팀장님이 그루밍 제품도 향수랑 세트로 쓰셔서요. 아까 같이 샤워했거든요.”

“……같이 샤워를 해?”

“네, 시간이 없어서요.”

아침에 늦어서 밥을 못 먹었어요, 라고 하는 듯 해사한 수현의 반응에 뚝하니 입을 다문 윤 팀장이 눈을 굴려 옆에 선 차 실장을 쳐다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차 실장 역시 윤 팀장에게 은근한 시선을 던졌다.

말이 아닌 눈빛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두 사람의 기묘한 분위기에 수현은 의아함을 느꼈다.

두 사람 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자신의 앞에서는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어, 시선으로만 수군대는 느낌이었다.

“할 말 있으세요?”

그럼 얼마든지 하시라는 수현의 눈치 없는 배려에, 차 실장이 수현의 눈치를 보곤 서둘러 대화를 계속했다.

“아니, 뭐 할 말이 있겠어. 신혼이니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뭔지 궁금하긴 해. 아침에 쓴 게 향이 되게 오래 가네.”

“아…… 이거, 방금 해서 그럴 거예요. 그렇게 오래가진 않아요. 향 오래가는 거 쓰시려면 형수를 쓰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현은 재빨리 잘못된 정보를 정정해 줬다.

혹시라도 두 사람이 향의 지속성 때문에 제품을 구매할까 걱정해서 덧붙인 말이었지만 두 사람의 반응은 예상과 달리 격렬했다.

“방금? 그러니까 점심시간에 했다고, 샤워를?”

흥분해 갑자기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두 사람의 반응에 수현은 겁에 질려 점심시간에 샤워하면 안 되나요, 라는 얼굴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 작업이 바쁠 때는 종종 회사 샤워실에서도 시간 가리지 않고 샤워하는데, 그게 왜, 라는 수현의 표정에 윤 팀장과 차 실장이 동시에 수현을 에워싸듯 양쪽에 붙어 어깨동무를 해 왔다.

갑작스러운 포위에 놀라 수현이 두 사람을 내려다보자 차 실장이 어깨를 툭툭 친다.

“자, 이 대리, 우리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할까?”

아주 길게, 라며 차 실장님이 웃는데…… 그 기세에 수현은 어쩐지 섬뜩함을 느꼈다.

현규가 웃을 때처럼, 기분이 이상했다.

“저 사무실로 돌아가 봐야 하는데요. 저희가 지금 바빠서…….”

이제 진짜 가 봐야 한다고 수현이 슬쩍 빠져나가려 하자 윤 팀장이 수현의 어깨를 세게 잡는다.

“일이야, 일. 상담, 아니 PT라고. 우리가 이번 시스템에 대해서도 아주 할 말이 많거든. 특히 회계 쪽 인터페이스에 대해 말이지.”

“두 분 식사하셔야죠.”

“그러니까, 식사하면서 얘기 좀 하자고. 수현 씨도 점심 못 먹었을 거 아냐?”

내가 점심 안 먹은 건 어떻게 알았지, 라고 놀라워하는데 누군가 어깨를 잡아 왔다.

두 사람의 손이 아닌 제삼자의 손이 어깨, 아니 정확히 목덜미를 잡는 순간 놀라 멈춰섰다.

그러곤 살짝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 괴롭히시죠. 자꾸 그러시면 우리 수현이 웁니다.”

아주 잘 아는 그 음성에 뒤를 돌아보자 현규 형이 후드의 목 부분을 잡은 채 자신을 세게 당기고 있었다.

마치 쭉정이를 뽑아내듯이.

“강 팀장님,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현규에 대한 이야기 중이었던 탓에 두 사람이 반색하자 현규가 아주 가식적인 미소를 흘린다.

“요즘 자주 뵙네요, 차 실장님, 윤 팀장님.”

“그러게요. 요즘 전기팀하고 회계팀하고 일이 많죠, 참? 오늘은 또 무슨 일이실까요?”

윤 팀장님의 말투에 가시가 있다.

그러고 보니 전략기획팀하고 회계팀 사이에서 뭐가 있었다던 얘기를 설핏 들은 터라 수현은 조심스레 두 사람을 살폈다.

확실히, 두 사람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오늘은 회계팀이 아니라 다른 볼일입니다. 우리 수현이가 여기 있다고 해서요.”

말과 동시에 수현의 어깨를 끌어안은 현규가 살짝 수현을 뒤로 당겨 두 사람에게서 거리를 두자 그걸 눈치챈 듯 윤 팀장이 싱긋 웃는다.

“아무리 공인된 파트너라도 회사 안에서는 이 대리라고 하셔야죠.”

“네. ‘우리’ 이 대리요.”

“어쩜, 정말 스위트하셔라. 강 팀장님은 진짜 부족한 게 뭐예요?”

재벌가 출신의 우성 알파에 스펙도 좋고 잘생긴 데다 성격마저 스위트하다니, 라고 어떻게 들으면 비꼬는 듯한 말에 수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인성…….”

마치 조건 반사처럼 나간 그 말에 무조건 반사처럼 현규가 수현의 어깨를 부술 듯 세게 쥐었다.

그게 닥치라는 뜻이라는 걸, 수현은 잘 알아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도 그걸 알아들은 듯했다.

“우리가 아니라 강 팀장님이 너무 괴롭히신 것 같은데요? 파트너가 인성에 문제 있다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점심시간에 좀 힘들게 했더니 그러네요. 그래서 대화 좀 하려고 왔으니 실례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좀 보내 달라는 현규의 요청에 윤 팀장이 아주 기묘한 미소를 띤 채 그를 바라본다.

“진짜 대화요?”

“네. 진짜 대화만요.”

다른 대화도 하려는 거 아니고, 라는 말을 대신한 두 사람의 음흉한 미소에 현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화답했다.

“회사에서는 일을 해야죠.”

“그렇죠. 일을 해야죠. 특히, 우리 건물은 CCTV가 많으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내가 그거 신고한다고 했는데…….”

“……네?”

“19층 수면실 문이 고장 났더라고요. 미닫이문인데 안에서 들어 올려서 닫으면 문이 안 열려요. 원래 일부러 잠금장치를 안 해 둔 문인데 누가 장난질을 쳐 놓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거기 CCTV가 없어서 누가 그랬는지 못 찾았거든요.”

그거 빨리 고쳤으면 좋겠어요, 라는 윤 팀장의 뜻 모를 소리에 수현은 왜 그걸 관리실이 아니라 현규한테 얘기하냐는 듯 그녀를 바라봤지만 현규는 그 말을 아주 잘 알아들은 듯했다.

“그런 게 있었네요. 곧 수리하라고 하겠습니다.”

“언제요?”

“언젠가요.”

“제가 잘 신고한 건가요?”

“네. 정확히 잘 신고하셨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강 팀장님. 아니, 최대 주주님. 저희 팀 인원이 아주 부족하거든요.”

“네, 경력직 모집 때 그 부분은 충분히 고려해 보겠습니다.”

“새 팀장님은 말이 통해서 다행이네요.”

“저도 말이 잘 통하는 두 분과 일하게 돼 다행입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다음에 봬요.”

처음의 살벌했던 분위기가 무색하게, 갑자기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서 끝난 대화에 수현도 일단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네, 식사하세요.”

얼결에 두 사람에게 인사를 마친 수현은 현규에게 질질 끌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어? 저 지금 사무실 들어가 봐야 되는데요…….”

“식사부터 하고.”

“식사요?”

이 시간에, 라는 얼굴로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 현규가 상행 버튼을 누르는 걸 본 수현은 순간 경계하듯 현규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현규가 기가 찬 듯 웃는다.

“……그 눈빛은 뭔데?”

“절 어디로 데려가시려고요…….”

갑자기 나타나 끌고 가는 것도 이상한데 밥 먹으러 가자면서 상행이라니 그건 더 이상하다고 수현은 잔뜩 경계한 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규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끌고 갈 것 같아서였다.

예를 들어, 19층 수면실 같은…….

“수면실에는 안 가.”

네 속은 빤하다는 듯 현규의 답에 수현이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 움찔한다.

노골적인 그 태도에 “그럼 모르겠냐?”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현규는 말을 하기보다 먼저 움직였다.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으로.

그를 따라 수현이 얌전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현규가 곧 23층 버튼을 누른다. 그걸 본 순간 수현은 그제야 안도했다.

솔직히 현규가 안 간다고 해도 안 믿었는데 진짜 19층 수면실은 아니었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다른 팀들을 돌아?”

갑작스러운 현규의 질문에 처음에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내 그 의도를 알아챈 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필요할 때만요. 보통은 원격 작업 정도면 다들 이해하는데, 그래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럴 때는 PT도 해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수현은 강조했다.

저 박 대리가 좀 심하게 기계치인 거다.

“그래, 그럼 잘됐네. 시스템개발팀에 전략기획팀 쪽으로 PT하러 간다고 연락해.”

“……왜요?”

또 지긋지긋한 ‘왜요?’가 등장했지만 이번의 ‘왜요?’는 좀 달랐다. 진짜 왜라고 묻는 게 아니라 ‘형도 기계치세요?’란 뜻을 담은 질문이었다.

이쯤 되니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아져 현규는 짤막하게 본론만 말했다.

“연락이나 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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