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팀인데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안 받아도 돼.”
“무슨 일 있는 걸지도 모르잖아요.”
“사촌 형이야.”
“……아…….”
현규 형이 전화를 안 받으니 결국 사촌 형을 호출하셨구나, 하고 수현은 납득했다.
그 모든 행동에서 수현은 아주 진한 향수를 느꼈다.
진원 형하고 하는 행동이나 생각이 너무 비슷하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아버지와도 비슷하다는 의미였다.
진원형은 아버지의 클론 수준이니까.
“저희 아버지랑 대표님이 왜 사이가 안 좋은지 지금 확실히 이해했어요.”
유니콘 변호사님이 동족 혐오라고 했는데 그게 딱이었다. 너무 똑같다. 아주 작은 성격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좀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기질이 너무 비슷하다.
저러니 사이가 나쁠 수밖에.
저 불같고 자존심 강한 데다 지배욕까지 과한 성격들이 그 기질까지 똑같다면, 자신의 목숨을 건 사랑 아니면 상대의 목숨을 건 살인밖에 할 일이 없다.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둘 중 하나다. 중간이 없다.
이러니 한 번 싸우기 시작하면 잠도 안 자고 일주일을 넘게 싸우지…….
“자의식 과잉과 비대한 자아가 만들어낸 비극이지. 그분들은 겸손이라는 걸 배울 필요가 있어.”
“……그건 형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형은 인성에 문제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자아와 자의식이 하늘을 뚫어 뭐든 자기 멋대로인 게 형인데,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그 말은 다 할 수 없었다.
앞에 앉은 형이 오랜만에 자신을 바라보며 아주 예쁘게 웃어 보인 탓이다.
입술 끝을 올린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아주 예쁘게 웃는 그 얼굴은 얼마든지 더 지껄여 보라는 미소였다. 더불어 그 뒷일은 보장 못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현명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대신 커피를 한 모금 넘기자 형이 이번엔 아주 만족스러운 듯 눈을 내리깐 채 커피를 마신다.
눈치는 없어도 대가리는 잘 돌아가는구나, 라는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하는 말인데…… 혹시 눈 안 좋아?”
수현을 그래도 꽤 오래 알아 왔는데 안경 쓴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라 의외라는 듯 현규가 묻자, 그제야 수현은 본인이 안경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안경을 치켜올린다.
“아뇨, 눈이 많이 안 좋은 건 아닌데 피곤할 때는 난시가 심해져서요. 모니터 오래 볼 때나 아주 피곤할 때만 써요.”
오늘은 특히나 극악의 난도를 자랑하는 원격 조정까지 하느라 오전부터 안경을 쓰고 있긴 했다.
작업할 때도 막바지 작업 때나 쓰는 게 보통인데 CS 알바가 시작되면 저도 모르게 쓰게 된다.
그 정도로 CS 알바는 극한 작업이었다.
CS센터 직원들은 진짜 대단한 분들이라고 수현이 새삼 놀라워하는 사이 현규가 문득 엉뚱한 말을 던진다.
“안경까지 쓰니 완전 공대생 너드 같아서 귀…… 아니 멍청해 보여.”
“안경 썼다고 다 너드 같아 보인다는 편견을 버리세요.”
“그럼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지 말았어야지.”
검은색 후드티에 검은색 조거팬츠 , 거거다 이제는 추워 운동화지만 기본으로 착장하는 신발은 슬리퍼에, 한동안 이발도 하지 않아 덥수룩한 머리에 검은색 뿔테 안경이라니.
공대생 너드가 어떤 건가 궁금하면 고개를 들어 수현을 보면 된다.
존재 자체가 너드 그 자체였다, 수현은.
현규의 눈에는 그래도 귀엽고 예뻐 보이긴 하지만 아무리 예뻐도 객관성을 유지해야 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어떻게든 수현에게서 저 후드 티를 빼앗아야 한다.
저 정도면 옷이 아니라 문신이다. 몸에 달라붙어 벗겨지지도 않을 것 같다.
대체 어떻게 해야 저걸 벗길 수 있을까, 고민하는 현규의 날카로운 시선에 수현이 움찔하며 현규의 눈치를 살핀다.
위협을 느낀 듯 커피를 손에 든 채 슬금슬금 옆으로 돌아앉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현규의 눈이 악동처럼 빛난다.
이것 봐라, 라고 말하는 듯한 그 눈빛에 수현이 현규를 힐끔거리다 눈을 피하던 수현은 때마침 스마트워치가 빛나는 걸 보곤 화들짝 놀랐다.
식사를 하는 내내 메시지와 전화 공격을 받은 터라 또 대표님인가 해 빛이 나는 화면을 확인했지만 아니었다.
이번엔 팀원이었다.
[대리님, 오류 하나 나왔어요. 확인해 주셔야겠어요.]
“어, 저 그만 가야 할 것 같아요.”
“……왜?”
“오류 난 부분이 있대요. 가서 파일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윤 팀장님은 진짜 일 안 하시나?”
“네.”
대표님 일정 관련이나 대표님에게서 도망치는 일은 도와주지만 절대 이런 일은 안 도와준다고 수현은 확신에 차 답했다.
너무나 당당한 그 답에 현규도 더는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만의 기브 앤 테이크가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주식 정보라든가, 내기 정보라든가와 관련된.
사실 윤 팀장 같은 타입과 일을 할 거라면 차라리 저렇게 오가는 게 확실한 거래 관계가 편하긴 하다. 본인이 얻을 게 확실한 관계에서는 윤 팀장 같은 타입은 절대 먼저 배신하지 않으니까.
“그래, 그만 가야지.”
그건 두 사람의 문제니 둘이 알아서 하게 두기로 하고 같이 자리에서 일어선 현규는 빈 도시락이 든 쇼핑백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리곤 수현과 함께 회의실을 나섰다.
두 사람이 함께 문으로 향해 가던 중 수현이 뭔가 떠오른 듯 “아!”라며 작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맞다. 윤 팀장님하고 차 실장님이 형 향수 궁금하대요. 냄새 좋다고.”
“……향수?”
“네. 아직 저한테서 향이 많이 나나 봐요. 그래서 형한테 물어본다고 했어요.”
“나한테?”
“네. 점심에 형하고 샤워해서 그런 거니까요.”
“……그걸 얘기했어?”
“네.”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냐는 수현의 반응에 현규는 말없이 수현을 내려다봤다.
알파나 오메가뿐 아니라 베타들에게까지 마킹을 들키다 못해, 점심시간에 뭘 하고 왔는지 본인 입으로 떠벌리고 다니는 중이라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수현을, 현규는 진심으로 대견해했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무신경했다, 수현은. 어린 시절부터 한결같이.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모처럼 흔쾌히 답해 주었다.
“블루 드 샤넬(Bleu De Chanel).”
“그루밍 제품도 다 같은 거죠?”
“오늘 쓴 거는.”
샤넬이었구나, 라고 하던 수현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신기해요.”
“뭐가?”
“전 베르가못이라고 생각했는데 윤 팀장님은 프롬이래요. 그리고 레인 어코드도 향도 난다고 하고요.”
“베르가못이 맞아.”
탑 노트(Top Note)도 여러 가지긴 하지만 일단 베르가못이 맞는다고 현규가 답한 뒤, 부연 설명을 더해 준다.
“하지만, 사람의 체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다른 느낌이라도 이상할 건 없지. 넌 향수도 아니라 보디 제품이었으니…….”
네 체향이 섞였을 거라던 현규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순간 수현 역시 놀라 멈칫하자, 현규가 인상을 쓴 채 수현을 내려다본다.
순식간에 싸늘해진 시선으로 자신을 관찰하듯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에 수현이 놀라 눈을 껌벅이자 현규의 표정이 사나워진다.
원래도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지만 유독 신경질적인 그 반응에 수현이 움찔하자 바로 수현의 뒷 머리카락을 쥔 채 끌어당긴다. 그러곤 곧 고개를 숙여 바로 옆에 선 수현의 목덜미의 냄새를 맡는다.
갑작스럽게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현규의 숨결에 수현은 오싹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곧 몸을 움츠리는데 현규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라…….”
뜻을 알 수 없는 그 말에 수현이 겨우 눈을 뜨고 현규를 돌아보자 여전히 수현의 목덜미에 코를 박은 채 그게 숨을 들이마신다.
그러곤 역시나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작게 중얼거린다.
“더 달콤하고 맑아……. 머스크 향도 있고…….”
평소보다 훨씬 낮아진 그의 음성에 섬뜩한 느낌에 몸을 뒤틀려던 수현은 순간 뭔지 알겠다는 듯 탄식했다.
“아…… 그거, 박 대리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
저도 모르게, 이상하게 재빨리 변명하듯 말을 건넨 수현이 어깨를 경직시킨 채 현규를 바라보자 그제야 현규가 수현의 머리카락을 놓은 채 떨어진다.
그러곤 의아한 듯 되묻는다.
“……박 대리?”
“12층 영업팀에 가서 새 시스템 사용법 알려줬거든요. 제가 뒤에서 작업을 했는데 오늘따라 유독 향수 냄새가 심하긴 했어요.”
그래서 아마 옷에 냄새가 밴 것 같다는 말에 현규가 신경질적인 손길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그가 자주 하는, 습관 같은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예민해 보였다.
과하게 날이 선 냉랭한 그의 분위기에 수현이 조금 기가 죽어 그의 눈치를 보자 현규가 그제야 아차 한 듯 표정을 푼다.
“너한테 화내는 거 아냐. 영업팀 박 대리라고?”
“……네.”
“그 녀석, 알파지?”
“네.”
일단 그렇게 들었다는 수현의 답에 현규는 겨우 표정을 풀고는 최선을 다해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일단 수현이 겁먹지 않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는 있지만 사실 화가 난 건 맞았다.
수현이 아니라, 그 눈치 없는 박 대리라는 새끼한테.
그 정도로 페로몬을 뿌려놨으면 알아서 먼저 피했어야지, 만약을 대비해 벌레가 꼬이지 않게 페로몬을 듬뿍 묻혀놨는데도 눈치 없이 접촉을 하다니.
겁이 없는 건지 뇌가 없는 건지…… 솔직히 이 정도 되면 가상하다고 봐줄 수도 있을 정도다.
지금 수현의 상황은 온몸으로 바이오하자드 표시를 내뿜고 있는 핵폭탄과도 같았다.
알파와 오메가라면 근처에 지나가기만 해도, 수현이 누구 건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마킹을 해놨다.
감히 손도 대지 말고 쳐다도 보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