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건가 걱정하며 수현이 그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현규가 아차 한 듯 서둘러 휴대폰을 든 손을 내린다.
“괜찮아. 별일 아냐.”
“별일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형 화 많이 난 것 같은데요, 라는 말을 돌려 하며 수현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현규를 힐끔거렸다.
관찰하는 듯한 그 시선에 현규는 그냥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별로 숨길 일도 아니다.
“아버지가 입원하셨다고 연락이 와서.”
비서팀에서 방금 메시지가 왔다고, 현규가 말을 건넨 순간 수현은 놀라 되물었다.
“대표님이요?”
“응.”
“어…… 오늘 포럼 후에 귀국하시는 걸로 아는데…… 그럼 아직 태국에 계신 거예요?”
“아니. 일찍 들어오셔서 한국에 계셔.”
“아…….”
그나마 한국이라니 다행이라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포럼 중에 들어오실 정도면 많이 안 좋으신 거 아니에요?”
“아니. 검사 결과는 이상 없다고 했어.”
“……그럼 입원을 왜 하시는 건데요?”
“그러니까, 말이지…….”
바로 그 부분이 나도 마음에 걸렸다고 현규는 입 안으로 중얼거렸다.
최 변호사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뭔가 찝찝하다 느꼈던 이유가 바로 그 부분 때문이었다.
아무리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발작할 정도로 성격이 더럽다 해도, 겨우 그 정도로 입원까지 한다는 건 좀 이상하다.
분명히 몸이 안 좋은 건 아니다. 어머니의 첩보뿐 아니라 담당의와도 직접 연락했는데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전혀 없다고 했다. 방금 온 비서팀의 연락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 검사, 엑스레이, MRI, CT, 초음파 검사 등등. 뭘 해도 정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대체 왜 입원을 하려는 걸까?
그것도 사흘이나.
지금 시기에 사흘이나 입원한다면 아무리 문제가 없다고 발표해도 주가에는 영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굳이 멀쩡한 사람이 입원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자신에 대한 항의의 표시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기엔 사흘간의 입원은 너무 리스크가 크다. 주식 문제도 있지만 자신의 부친은 절대 병원에 얌전히 처박혀 있을 성격이 못 된다.
5년 전엔가 스키를 타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절대 입원은 못 하겠다고 난리를 쳐 결국 상주 의사와 간호사를 데리고 퇴원했을 정도로 병원을 싫어한다.
그런 분이 멀쩡한 몸으로 병원에 드러누웠다는 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그 꿍꿍이가 뭐냐인데…….
“그런데, 병원에는 안 가 보셔도 돼요?”
“멀쩡하실 테니 안 가도 돼.”
“그래도 입원까지 하셨잖아요.”
“걱정 마. 건강하니까.”
아버지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이 걱정할까 병이 있어도 숨길 가능성이 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신의 부친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엿 먹이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없는 병도 만들어 낼 사람이다.
그럼, 대체 무슨 속셈일까…….
“혹시, 대표님 감옥 가세요?”
컵의 입구 부분을 이로 물어뜯으며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들려온 엉뚱한 물음에 현규는 놀라 옆을 돌아봤다.
대체 왜 이 포인트에서 감옥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 해 수현을 보자 수현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디서 그런 걸 많이 본 모양이었다.
어이없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멀쩡한데 입원해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거다.
큰 사고를 친 뒤 지병을 핑계로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구치소에 안 가기 위해서 쇼하는 거라고.
“다행히도 그런 건 아냐.”
“그럼요?”
“그냥, 검진 목적이야. 진짜 짜증 날 정도로 건강하시니 신경 쓰지 마. 그보다 너희 팀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된 거냐고 묻자 수현이 커피를 홀짝거리며 중얼거린다.
“곧 끝날 것 같아요. 간단한 거라 대충 10시까지는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형은요?”
“나도 그 시간쯤이면 끝날 거야.”
원래는 밤을 새워야 할 정도로 일이 쌓여 있긴 하지만 퇴근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수현과 함께 퇴근하려고 기다리던 거라 언제든 시간은 맞출 수 있다고 하자 커피를 마시던 수현이 다시 현규를 힐끔거린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 눈빛에 현규가 할 말 있으면 하라는 듯 내려다보자 수현이 조심스레 묻는다.
“끝나면 제가 형 사무실로 갈까요?”
“응?”
“항상 형이 오니까 저도 가 보고 싶어서요.”
전략기획팀 사무실도 궁금하고, 라며 수현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략기획팀에는 그다지 오갈 일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니, 수현뿐 아니라 대부분의 직원들이 다른 팀 사무실에는 갈 일이 없다. 특히나 수현처럼 아예 엔지니어로 스카우트된 경우는 다른 팀으로 옮길 일도 없으니 더더욱.
“전략기획팀 사무실이 궁금했어?”
“네. 형 사무실도요.”
“그럼, 와서 봐.”
현규의 흔쾌한 초대에 수현이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자 현규는 손을 뻗어 수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강아지를 쓰다듬는 듯한 그 손길에 수현이 기분 좋은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사내 커플이 이런 건가 봐요.”
“왜?”
“저흰 철야나 야근이 많은데 늘 혼자서 퇴근했거든요. 그런데, 야근하면서 같이 저녁 먹고 같이 퇴근하는 게 신기해서요.”
해사한 얼굴로 이게 너무 좋다고 웃는 수현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러곤 수현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걸어가는데 또다시 휴대폰이 울려 왔다.
별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무실에서 온 연락일 수도 있어 일단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이 맞아떨어지는 법이었다.
* * *
- 드디어 통화가 되네?
사무실로 돌아온 직후 현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의 번호를 수신 차단 목록에서 해제하는 일이었다.
그러곤 모처럼, 아마 태어나서 한 다섯 번째쯤으로 아버지께 먼저 전화를 걸자 나온 답이 그거였다.
이제 겨우 쫄리냐는 듯.
“긴말 않겠습니다. 내일 오전 중에 퇴원하세요.”
- 안 해.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 안 하면?
“올겨울 시원하게 나시겠죠.”
- 응. 내가 몸에 열이 많아서 시원한 걸 좋아해.
내가 이제 와서 그걸 무서워하겠냐는 반응이었다. 그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반응이었다.
설마, 네가 진짜 날 내쫓을 거냐, 하고 계실 테니까.
“괜한 데 기운 빼지 마시고 오늘 밤은 병원에서 푹 주무시고 내일 오전에 퇴원하신 뒤에 얌전히 비행기 타시죠. 전용기가 안전하게 샌프란시스코까지 모셔다드릴 겁니다.”
- 응, 안 가. 아직도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말이지.
“쓸데없는 데에 머리를 쓰시니 과부하로 머리가 터지죠.”
- ……쓸데없는 데?
“아무리 화가 나셨다 해도 자기 아들한테 흥신소를 붙이는 건 좀 아니죠.”
그 시간과 머리와 돈을 좀 더 유용한 데 사용하라는 충고였다, 그건.
아무리 돈이 썩어난다지만 그런데 쓰기엔 아깝다. 그리고 실제로 시간은 그렇게 많지도 않은 양반이 이런 일에만 정력이 넘쳐 시간을 낭비한다.
언제까지 그따위로 살 거냐고, 이제 철 좀 들라는 그 말이 아픈 곳을 찔렀는지 의외로 반응이 격렬하다.
- 이 자식아! 내가 어지간하면 흥신소를 붙였겠어? 너희 둘이 사귄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혼인 신고만 하면 다야? 내가 그렇게 호구로 보여?
“말 안 될 이유는 뭔데요?”
- 네가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게 7년 만이야. 거기다 그 녀석은 한국에서 나가 본 적도 없는 녀석이고. 아무리 친구 동생이라고 해도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사귄다는 게 말이 돼? 그것도 네가?
내가 그따위 거짓말에 넘어갈 것 같냐는 부친의 울분에 찬 고함에 현규가 혀를 찬다.
“그래서 확인하셨잖아요.”
사진으로, 라는 말에 너 말 잘했다는 듯 목소리가 높아진다.
- 아무리 위장을 해도 적당히 해야지. 내가 그거 받고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둘이 절대 비즈니스 관계라고 확신했기에,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일부러 사람을 붙여 놓은 건데 토요일부터 흥신소에서 보내온 사진들은 모조리 진짜 신혼부부 같은 사진뿐이었다.
같이 장을 보거나, 공원을 걷거나, 차를 타고 가거나, 하다못해 출근하다가도 키스하는 사진이 찍혀 와 오는 족족 지워 버렸는데, 하다 하다 점심시간에는 두 녀석이 대낮에 거실에서 얽힌 장면이 찍혀 부정맥까지 와 버렸다.
맞은편 건물에서 찍은 사진이다 보니 거리가 있어 형태만 보이는 정도였지만 뒷목이 뻣뻣해지며 머리까지 아파 포럼 중에 거의 실려 나왔다는 아버지의 분노에 현규는 비웃음으로 받아쳤다.
“누가 위장이래요?”
- 위장이 아니면? 너희가 진짜 사귀기라도 한다고?
너처럼 온갖 오메가들 다 갖다 붙여도 눈도 깜빡 안 하던 눈 높은 녀석이 그 평범의 극치에 달하는 오메가랑, 이라는 말투에 현규가 조금 불쾌하다는 듯 대꾸한다.
“왜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 네 취향을 내가 모를 것 같아? 네가 지금 나한테 반항하느라 치킨 게임 하는 모양인데, 괜한 데 힘 빼지 말고 빨리 이혼 소송이나 해.
듣던 중 황당한 그 발언에 현규는 실소했다.
본인 때문에 수현과 혼인 신고까지 했을 거라니.
역시 자아가 너무 비대하다.
“여전히 자의식 과잉이시네요. 전 아버지한테 그 정도로 관심 없습니다. 제가 관심 두고 있는 사람은 이수현뿐입니다.”
그러니 이제 아버지도 나한테서 관심 좀 끄라는 현규의 진심을, 이번엔 상대가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