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않아도 아침에 목에 남은 잇자국을 본 팀원들이 본을 뜬 것처럼 진짜 잘 나왔다고 다들 놀라워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달고 가면 커피 사라고 놀릴 거다.
“그건 어제 거고 오늘은 오늘 거.”
그렇게 말하며 목 뒤쪽을 세게 빨아들인 현규는 수현의 후드 티 안으로 손을 넣어 등을 더듬었다.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손끝으로 등을 두드리는 그 손길에 수현은 아찔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대낮부터 이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 이렇게 자극하면 아랫배가 간질간질해져 온다.
그리고 자꾸 형을 만지고 싶어진다.
“형, 이제 나가야 돼요.”
발기한 채 공항에 갈 수는 없으니 이제 그만 만지라고 수현은 현규의 손을 잡아 눌렀다.
하지만 역시나 현규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악력의 차가 너무 컸다.
간지럽다는 듯 수현의 손을 먼지 떨듯 털어낸 현규는 조거팬츠의 허리춤에 손을 댔다.
허리에 밴드가 들어간 면 소재의 조거팬츠는 아주 쉽게 벗겨질 준비를 마친 채였다.
조금만 힘을 줘도 아래로 흘러내릴 것 같은 상태에 수현은 재빨리 현규의 손을 잡았다.
“회사에서는 안 그런다고 했잖아요.”
“안 해. 그냥 만지기만 할 거야.”
“……어디를요?”
“네 가슴하고 엉덩이랑, 허벅지만.”
노골적인 그 단어에 수현은 질색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요.”
“왜?”
“제가 일을 못 해요. 자꾸 이러면 저 내일부터는 청바지 입고 출근할 거예요.”
그 와중에도 슬금슬금 바지를 끌어 내리려는 현규의 나쁜 손에 수현이 경고하자 현규가 뭔가를 떠올린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다.
그 표정에 수현은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잘 안 벗겨지는 청바지 벗기는 것도 재밌겠는데? 허벅지까지만 벗긴 채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말과 동시에 바로 자신의 허벅지 안쪽을 더듬는 현규의 손길에 수현은 화들짝 놀라 현규의 어깨를 밀어냈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역부족이었다.
허리를 세게 끌어안은 채 입을 맞추는 현규의 위에서 수현은 다시 현규의 어깨를 안은 채 눈을 감았다.
입천장을 핥듯 애무하며 타액을 빨아들이고 다시 방향을 틀어 달콤한 숨을 내쉬며 혀를 빠는 깊은 키스에 다시 아랫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피부 안쪽을 간질이며 아랫배로 몰리는 피에 수현은 저도 모르게 현규의 위에서 몸을 뒤틀었다. 그러곤 그의 허벅지 위로 몸을 비비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수현은 재빨리 현규에게서 떨어져 옆에 섰다. 그리고 거의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며 상체만 사무실 안으로 들이민 남자가 현규에게 말을 건넸다.
“팀장님, 지금 나가셔야 합니다.”
처음 보지만 누군지 알 것 같아 수현이 슬그머니 한 걸음 더 옆으로 물어지자 현규가 짜증스러운 듯 이마를 꾹 누른다.
“그 전에 사과부터 하셔야죠. 상대 허락도 받지 않고 문부터 여시는 건 무슨 매너죠?”
이 회사도 터가 안 좋은지, 사원들이 왜 이렇게 버릇이 없냐고 현규는 혀를 찼다. 하지만 상체만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네가 뭐라든 알 게 뭐냐는 태도였다.
“그건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으셔서요. 대표님께서 팀장님께 메시지를 보내도 반응이 없으면 다른 짓 하는 거니 무조건 문부터 열고 들어가라고 신신당부하셔서 그대로 한 것뿐입니다.”
무표정한 남자의 답에 현규는 입 안으로 “아버지…….”라고 중얼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입원까지 하시더니 아버지가 아주 많이 심심하신 모양이었다. 회사를 비운 동안에도 사람들을 이용해 할 수 있는 방해는 다 하고 있다.
역시 바쁘게 해 드려야 할 것 같다. 다른 짓 할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지금 출발해야 하니 3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대리님도 사무실로 돌아가시죠. 윤 팀장님이 찾으시던데요.”
갑자기 자신으로 바뀐 타깃에 수현은 뜨끔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너무 오래 있긴 했다. 오늘 각 팀별로 교육 일정이 빽빽한데 현규가 놓아주질 않아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네, 곧 가겠습니다.”
“그럼, 3분입니다.”
정확히 시간을 지정한 뒤 사무실 내로 들어와 있던 상체를 다시 쑤욱 뺀 남자가 문을 닫자 현규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어서 가세요, 형.”
“……갈 거야.”
좋았는데 아깝게 됐다며 현규는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엄지 끝으로 눌러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뒤 곧 가방을 챙겨 들고는 재킷을 걸쳐 입는 그의 옆에서 수현은 여전히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조심은 내가 아니라 파일럿이 해야지.”
“어쨌든요. 시차도 있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요.”
방금 키스하느라 살짝 틀어진 현규의 넥타이를 본 수현은 손을 뻗어 바로 잡아 주었다. 그 손길에 수현을 응시하던 현규가 묘한 미소를 짓는다.
살짝 눈을 내리깐 채 입술 끝만 올려 웃는, 현규가 주로 아주 안 좋은 생각을 할 때의 그 미소에 수현은 말없이 넥타이에서 손을 떼고는 스르르 뒤로 물러섰다.
마치 도망치듯.
“그만하고 나가세요. 사람들 기다리겠어요.”
괜히 나까지 혼난다고 수현이 두 손으로 공손하게 문을 가리키자 현규가 다시 수현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속삭인다.
“진짜 신혼 같아서 웃은 거야.”
“신혼은 맞잖아요.”
“그래, 신혼이지.”
자꾸만 풀리려는 안면 근육을 제어하지 못한 듯 현규가 모처럼 자연스러운 미소를 띤 채 막 다시 입을 맞추려는 순간, 여지없이 노크 소리가 울려왔다.
빨리 안 나오고 뭐 하냐고 다그치는 듯한 그 소리에 수현은 현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만 가세요.”
그렇게 아주 짧은 신혼이 끝나고 더 짧은 이별이 시작되었다.
* * *
현규 형이 이상하다.
아니, 이상한 건 늘 이상하긴 하지만 지금은 특히나 이상하다.
바로 눈앞에 놓인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수현은 심각하게 작금의 사태에 대해 차분히 돌아봤다.
진짜 비행기 타러 가면서도 이렇게 메시지를 보낼 줄은 몰랐다.
이걸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의처증? 혹은 분리 불안?
학창 시절의 강현규라면 냉함과 무심의 상징이었는데 지금의 형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의외로 결혼하면 상대한테 집착하는 스타일이었는지, 좀 심하게 귀찮게 한다.
아주 잠깐, 이혼 사유에 이런 부분을 넣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또 메시지가 도착했다.
[왜 답장이 없지?]
왜 없겠어요. 형이 메시지를 너무 빨리 보내니 답장할 타이밍이 안 생겨서 그렇죠.
내가 아무리 손이 빠르다 한들 형보다는 느릴 것 같아요. 형 의처증 같아요.
이 말을 그대로 형에게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차 돌려서 다시 회사로 올 것 같아 수현은 느릿느릿 휴대폰을 쥐곤 천천히 내용을 적어 넣었다.
[지금 근무 중이]
바로 거기까지 문자를 적은 순간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점심은 먹었어?]
또다시 변한 화제에 수현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지금까지 형이 보낸 메시지들을 쭈욱 확인해 봤다.
모든 질문이 중구난방이고 일관성이 없다. 불안한 듯,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적은 게 분명한 산만한 질문들에 수현은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을 한 번에 적기 시작했다.
[지금 근무 중이고 곧 홍보팀에 교육 들어가야 하고 점심은 윤 팀장님하고 구내식당에서 먹었고 메뉴는 비빔밥이었어요. 저녁은 주영이랑 군만두 먹을 건데 오늘은 정시 퇴근해서 소파 받고 창문 필름 작업할 거예요.]
순식간에 적어 넣은 내용을 보며 혹시 뭐 빠진 거 없나 확인하는데 그새 새 메시지도 도착했다.
순간 재빨리 한 문장을 더했다.
[이제 교육 들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