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늘 잘 먹고 이불 못 걷어차게 침낭에서 잘게요. 걱정 말고 비행기 타세요.]
제발, 이라는 단어는 뺀 채 발송 버튼을 누른 순간 옆에 탄 남자가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저기, 버튼 좀 눌러도 될까요?”
남자의 예의 바른 부탁에 바로 자신이 계기판 앞에 서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물러섰다.
그러곤 막 도착한 메시지를 다시 확인하는데 계기판으로 다가서던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텀블러 안의 커피를 쏟았다.
하필 내 옷에.
“어…….”
“괜찮으세요?”
“네…….”
텀블러 안에 있었음에도 다행히 커피는 뜨겁지 않았다. 덤으로 검은색 후드 티라 커피가 묻었는데도 그다지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걱정되는 듯 다가와 손수건으로 커피가 잔뜩 묻은 티셔츠를 닦아 주는 남자에게서 나는 냄새가 너무 역했다.
아니, 이건 이 남자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방금 사고를 낸 사람도 그렇고 박 대리도 그렇고, 이 남자까지 이상할 정도로 냄새가 거슬렸다.
한 번은 그럴 수 있다지만 같은 상황이 세 번이나 반복된다는 건 상대가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거다.
냄새에 이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확실히 이상하다.
“커피가 뜨겁지 않아서 다치진 않았으니 괜찮습니다. 옷은 갈아입으면 되니까요.”
그러니 이제 좀 떨어지라고 그의 손길을 거절했지만 그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포기하기는커녕 이상할 정도로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아, 옷 갈아입으셔야 하는데 제가 사다 드릴까요? 근처에 매장이 있으려나…….”
“아뇨, 괜찮아요. 집이 근처라 갈아입고 오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상대가 너무 가까이 서 있어서인지 주차장에서보다 더 거북했다.
쏟아진 커피 향 때문에라도 어느 정도 그의 냄새가 상쇄돼야 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커피 향이 덮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음 층에서 내려야 할 것 같아 계기판을 확인하는데 그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반대쪽 벽에도 계기판이 있는데 왜 굳이 이쪽 버튼을 누르려 했을까?
“혹시 모르니 피부도 확인하셔야 할 것 같아요. 옷이 젖어서 화상을 입었을 수 있으니까요.”
“아뇨, 미지근한 정도니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온 화상이라는 것도 있으니 일단 같이 병원으로 가시죠.”
“진짜 괜찮습니다.”
그러니 제발 좀 떨어져 달라고 손을 들어 퍼스널 스페이스를 확보하려는데, 남자가 그를 무시한 채 바로 앞으로 바싹 다가선다.
자신을 코너로 미는 그의 몸짓으로 인해 얼결에 엘리베이터 구석에 처박힌 수현이 놀라 그를 보자 그가 눈을 맞춘 채 빙긋 웃는다.
“그냥 보내는 건 제가 마음이 안 좋아서 그래요. 이렇게 귀여운 사람의 몸에 화상 자국이 남으면 너무 슬프잖아요.”
은은한 눈빛에,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상투적이면서도 굉장히 과장된 멘트.
그를 본 순간 쭈뼛하니 소름이 끼쳐 수현은 저도 모르게 ‘징그러워.’라는 말을 내뱉을 뻔했다.
그래, 진짜 징그러웠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전 이 인연을 우연으로 끝내고 싶지 않은데요…….”
말과 동시에 벽에 손을 짚는 남자를 본 순간 수현은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
이번 건 뭔지도 모르겠다. 온갖 냄새가 다 섞여 아주 지독했다.
예전에 학교 선배의 자취방에 책을 가지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맡았던 냄새와 비슷했다. 향수와 방향제와 니코틴 쩐 내와 알코올 냄새, 그리고 정액 비린내 같은 냄새까지 섞인 지독한 악취.
아무리 숨을 멈췄다 해도 참을 수 없는 냄새에 속이 울렁거려왔다.
토할 것 같다.
하지만 진짜 토하는 건 못 할 짓이라 꾸역꾸역 구역질을 참으며 조심스레 그에게 요청했다.
“저기, 좀 피해 주시겠어요?”
“싫은데요?”
“아니, 진짜 피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피하고 싶지 않다면요?”
계속해서 능글거리는 남자의 태도에 이번엔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내장 안이 울렁이며 명치에서 넘어오려는 뭔가에 서둘러 입을 손으로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욱!”
* * *
“사실대로 말해 주세요.”
“……”
“저, 얼마 남았나요?”
남자의 얼굴에 토할 뻔한 색다른 경험을 한 뒤 놀라 곧장 병원을 찾은 수현은 두근두근한 심정으로 주치의의 얼굴을 바라봤다.
다행히 헛구역질을 한 순간 문이 열려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나올 수 있었고 그 덕에 남자의 얼굴 위에 토하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 직후 속도 완전히 가라앉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헛구역질을 했다는 사실에 수현은 패닉 상태였다.
뭐든 대충대충 하고, 귀찮은 걸 싫어하는 습관 탓에 감기는 꽤 자주 걸리지만 위장 관련 장애는 일으킨 적이 없기에 지금 상황이 꽤 충격적이었다.
태어나 장염은커녕 그 흔한 위염이나 식도염도 걸린 적이 없는데 헛구역질이라니…….
“저 암인가요?”
가슴을 누르며 수현이 그렇게 묻자 ‘최진호’라는 이름이 새겨진 가운을 걸친 중년의 남자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수현을 바라본다.
가지가지 한다는 얼굴이었다.
개나 소나 툭하면 다들 암 타령이냐고 짜증을 내는 그 얼굴에 수현은 서둘러 변명했다.
“저 진짜 토할 뻔했어요.”
“토할 뻔했지, 토하진 않았잖아.”
“……그건 그렇지만…….”
“지난번 건강 검진 결과는 아주 멀쩡했어. 뭐, 굳이 원한다면 위내시경을 해 봐도 좋지만 냄새 때문에 토할 뻔한 거라면 그냥 그 냄새가 역했던 것뿐이겠지.”
네가 그렇게 섬세한 녀석은 아니지만, 이라며 남자는 수현을 쭈욱 훑어봤다. 확실히 수현처럼 무던함과 둔함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선 녀석이 고작 싫은 냄새 좀 맡았다고 토할 뻔했다는 건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걸 건강과 직결시키기엔 너무 단서가 희박하다.
“최근 위가 쓰리거나 더부룩했던 적 있어?”
“아뇨.”
“그럼 식사량이 줄었다거나 잘 못 먹는 일은?”
“없어요.”
“스트레스는?”
그 질문에서 수현은 처음으로 답을 망설였다. 다른 질문에는 빠르게 답할 수 있었지만 이런 질문은 좀 애매하다.
스트레스가 있냐, 없냐라고 묻는 거라면 ‘있다.’지만 그 스트레스가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조금 일이 있긴 했는데……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을 일은 아니었어요.”
원래 일이 터지고 나면 금세 포기하는 성격이라 근래 몰아친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그 강도가 ‘강’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약’과 ‘중’ 사이의 스트레스였다.
한창 작업 때문에 철야를 하는데 팀장님이 점심 메뉴를 마음대로 정했을 때보다는 덜한 스트레스였다.
“그럼, 잠은?”
“머리만 대면 자요.”
시간이 없어서 못 자요, 라는 답에 피 검사 결과를 확인하던 진호는 다시 수현을 바라봤다.
“역한 냄새를 맡았을 때 외에 또 토할 뻔한 적 있어? 식사할 때나 운전할 때나, 일하던 중에나.”
꽤 구체적인 질문에 곰곰이 기억을 더듬던 수현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없어요.”
수현이 확신에 차 그렇게 답하자 진호가 그럼 됐다는 듯 빠르게 진단을 내렸다.
“그럼, 현재로서는 큰 이상은 없어 보이니 이틀 정도 지켜보다 악취가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갑자기 토할 것 같으면 위내시경을 해 보자. 피 검사 결과를 보면 약간 호르몬 변화가 있기는 한데…… 정밀 검사를 해야 할 정도는 아냐. 아마 호르몬 수치가 미묘하게 변하면서 예민해졌을 수도 있으니 일단 두고 보자고.”
그러니까, 별문제 아니라는 게 진호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 사실에 수현은 안도한 듯 길게 숨을 내뱉었다.
“진짜 괜찮은 거죠?”
“현재 검사 결과로는 그래.”
“다행이네요.”
“다행이지.”
“그럼, 저 이만 가 볼게요.”
이미 너무 늦어 수현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서자 진호가 문득 떠오른 듯 인사를 건넨다.
“아, 맞다. 결혼 축하한다.”
어린 시절부터 수현을 봐주던 진호의 인사에 수현은 바로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상대가 현규라고 했지?”
“네. 현규 형도 아세요?”
“알지, 강민혁 대표님 아들이니까. 그러고 보니 현규라면…….”
순간 뭔가 떠오른 듯 진호가 말을 멈췄다. 그러곤 중요한 뭔가가 기억난 듯 다급히 컴퓨터 화면을 확인한다.
“수현아, 너 혹시…….”
거기까지 말한 진호는 이번에도 역시 다음 말을 잇지 못한 채 말을 끊었다.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오랫동안 봐 온 주치의 선생님의 모처럼 심각해 보이는 표정에 수현은 멀뚱하니 그를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