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160)

“다음에도 해 줄까?”

- …….

“거기다 쌌을 때도 좋아했잖아. 가슴에 정액을 문지르면…….”

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장 대리가 더는 못 참겠는지 입을 열었다.

“팀…….”

팀장님이라고 입을 열려는 그에게 현규는 재빨리 왼손을 들어 올려 조용히 하라는 경고를 보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닥치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다행히도 장 대리는 그 뜻을 잘 알아들었다.

- 형, 방금 무슨 소리 들렸는데요…….

혹시 옆에 사람 있냐고 묻는 수현의 작은 음성에 현규는 들어 올린 왼손의 검지를 들어 보이며 장 대리에게 한 번 더 닥치고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마디라도 하면 네 미래가 아주 고달파질 거라는 눈빛으로.

“괜찮아. 사람 없어.”

- 사람 목소리 같았는데요?

“사람이 아니라, 쥐새끼 한 마리가 부스럭거린 거야.”

그 말에 순간 장 대리의 머리와 어깨와 무릎이 동시에 미묘하게 흔들렸다.

이것도 아주 잘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래, 너한테 쥐라고 한 거다.

- 쥐가 있어요?

요즘에도 쥐가 돌아다니냐는, 도시 촌놈 같은 그 말에 현규는 이내 수현이 진짜 도시 촌놈이 맞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도 유학하기 전에는 쥐를 본 일이 없었으니 수현이 쥐를 본 적이 없는 건 당연했다.

서울에서 멀리 떠나 본 적 없는 수현에게 쥐란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공룡 같은 존재일 거다. 이미 멸종되어 사라진.

“생각보다 미국엔 쥐가 많아. 쥐만 따로 잡는 공무원이 있을 정도니까.”

- 그래요? 차 안이나 고속 도로에도 있는 거예요?

“응. 어디나 다 있지.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역병을 옮기고 다니거든. 소문도 같이.”

말과 동시에 현규가 자세를 바꾸는 척 그의 왼손 검지 끝으로 장 대리의 휴대폰을 가리켰다.

지금 네가 뭘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의미의 몸짓에 장 대리가 주먹을 세게 쥐며 어깨를 움츠린다.

진짜 솔직하다. 과하게.

그 반응에 현규는 모처럼 기분 좋게 웃으며 옆에 앉은 장 대리를 돌아봤다.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았냐, 너 줄 잘 서라, 라고 말하듯.

아주 환하게 웃으며, 살벌한 시선으로.

- 소문이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잖아.”

- 음…… 그럼 잡아야 하지 않아요?

쥐가 병 많이 옮기는데, 라는 수현의 걱정에 현규는 염려 말라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응. 우리 회사 안에도 몇 마리 있는 것 같길래 이번에 모조리 잡아 씨를 말려 놓을 생각이야.”

다시는 같은 짓 할 생각도 못 하게, 라고 굳이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장 대리는 그 말의 속뜻을 잘 알아들었다.

- 우리 회사에도 있어요?

“응. 먹잇감만 보이면 모여들더라고. 평소에는 숨어 있어서 모르는 거지, 네 주변에도 많을지 몰라.”

- 어, 큰일이네요. 쥐약을 놓을 수도 없고.

그거 다른 동물이 먹으면 위험하니까, 라고 수현이 중얼거리자 현규가 여전히 장 대리를 바라본 채 싱긋 웃는다.

“그럼, 맨손으로 때려잡아야지.”

- 병 걸려요, 형.

쥐와 박쥐가 온갖 질병들의 숙주라며 쥐가 옮기는 질병들을 일일이 읊을 듯한 수현의 기세에 현규는 일단 수현을 안심시켜 줬다.

“그래……. 병균 옮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지. 그냥 깔끔하게 잘라 버려도 되니까.”

그렇게 말하며 현규가 한 번 더 장 대리의 휴대폰을 콕 찌르듯 손끝으로 가리키자 장 대리가 서둘러 휴대폰을 손에 든다. 그러곤 뭔가를 정신없이 누른다.

드디어 녹음 애플리케이션을 끄는 듯했다.

오래오래 회사를 다니고 싶긴 한 모양이었다.

“그럼, 다시 이어서 어딜 만져 주는 게 좋은지 얘기해 볼까?”

- ……그거, 꼭 말해야 돼요?

“앞으로의 성생활을 위해서야. 이렇게 서로 하나씩 알아 가면서 레벨 업 해야지.”

- 어…… 전 다 좋았는데요.

“그래도, 구체적으로?”

- 음…….

딱히 떠오르는 바가 없는지 수현이 말을 끌자 현규가 목소리를 낮춰 작게 속삭인다.

“회음부에 비벼 주는 건?”

노골적인 그 표현을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장 대리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 현규의 직함을 외쳤다.

“팀장님!”

녹음 애플리케이션도 껐는데 제발 작작 해 달라는 그의 애원에 현규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 수현이 다시 묻는다.

- 형, 사람 목소리 들리는데요?

“응. 이번엔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네?”

‘내가 호박 마차를 탔나, 쥐새끼가 사람으로 변하게?’ 라고 현규는 짓궂게 비웃었다.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침묵하던 수현은 이내 그 말의 뜻을 알아채곤 탄성을 내질렀다.

- 형, 아까부터 사람 있었죠?

“아니, 아까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때는 쥐새끼였고, 지금은 사람이라고 현규가 딱 잘라 말하자 수현이 원망하듯 그를 부른다.

- 형…….

나도 그 정도는 안다고, 내가 진짜 그 정도로 눈치가 없는 줄 아냐고 항변하는 그 음성에 현규가 재빨리 상황을 설명해 준다.

“진짜 방금까지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녹음해서 아버지한테 보고하는 쥐새끼였어.”

졸지에 쥐새끼가 된 장 대리가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현규는 즐거운 듯 웃었다.

그나마 저 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은 상쾌해졌다. 물론, 수현이 보고 싶다고 해 준 덕이 제일 컸지만.

어쨌든 비행기를 탄 이후로 최고로 기분이 좋았다.

- 녹음이요? 어, 감청인가요?

“비슷해. 나한테 스토커를 달려 보내셨더라고.”

아버지가, 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주어가 누구인지는 수현도 알아들었다.

- 대표님이 생각보다 치밀하진 않으신가 봐요. 그냥 형 차나 옷에 도청기 하나 달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휴대폰에 어플 하나만 깔면 되는데.

접근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기계 하나만 설치하면 다 해결되는 세상에, 뭐 하러 비싼 인력을 쓰냐는, 엔지니어다운 수현의 날카로운 지적에 현규는 동의했다.

수현의 말대로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이나 휴대폰에 손을 썼다면 모르고 당했을 거다. 그런데 괜히 사람을 써서 너무 티가 났다.

그것도 장 대리 같은 아마추어를.

새삼 떠올려 보니 아버지가 하는 짓들은 다들 조금씩 허술했다. 그건 업무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워낙에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와 박력 있는 성격으로 상대를 압도해 허술함을 커버했을 뿐, 일 처리는 많이 대충대충이었다.

그래서 이번 교섭에도 자신이 직접 나서 고생했고.

새삼 아버지가 하는 짓에 비해 인복이 많다고 현규는 실감했다. 그 사람은 진짜 인생을 날로 먹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든 깨진 바가지를 때워 준 덕에 뭐든 대충 해도 완성품은 좋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요즘은 도청기 값이 시급보다 싼 세상인데.”

확실히 애플리케이션을 사서 깔아도 인건비보다는 싸다. 무엇보다, 말이 샐 염려도 없다.

물론, 이건 그런 애플리케이션의 존재를 아는 경우의 얘기지만.

- 그렇죠. 다음에 뵈면 알려 드리세요.

도청당할 대상이 도청할 사람에게 돈 쓰지 말고 도청기나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라고 가르쳐 주는 건 좀 이상하지만 재미있긴 할 것 같았다.

이쪽의 의도가 뭐든 그걸 본인에 대한 도전이나 협박이라고 생각하실 분이니.

“그래, 꼭 알려 드릴게. 옛날 분들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니까.”

- 그러니까요. 요즘 같은 세상에 스토킹은 효율이 안 좋아요. 상황까지 보시려는 거면 드론 쓰셔도 되는데, 굳이…….

역시나 수현은 공대생이었다. 효율을 최고 가치로 생각하는. 그래서 가끔 게으르고 말 안 통하고 속 터지지만, 어쨌든 합리적인 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여기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혹시 모르니 너도 조심해. 사무실에도 스파이 심어 놓으셨을 수도 있어.”

농담으로 던진 그 말에 장 대리의 어깨가 또 한 번 들썩였다.

순간 현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 빌어먹을 아버지가 진짜 저쪽에도 사람을 심어 둔 모양이다. 어쩐지 빨리 복귀했더라니…….

“수현아, 회사에서 조심해. 아니, 오늘 그냥 사무실에 있지 마. 아버지가 너한테도 사람을 붙여 놓은 것 같아.”

- ……스파이요?

“응.”

- 아…… 뭐…… 그래도 괜찮아요. 어차피 일만 하니.

“그래도 혹시 몰라.”

- 괜찮아요. 사무실 내의 대화 내용을 통째로 녹음해서 보고해도 저흰 서로 얘기도 잘 안 해서 괜찮아요. 기껏해야 근무 시간에 자기 노트북 들고 와 게임 하고 주식 하는 것만 걸리는데 전 둘 다 안 하거든요.

오히려 그거 보고하면 걸릴 사람들이 더 많을 텐데, 감사팀 뜨려나 하며 수현은 팀을 걱정했지만 현규에게는 시스템개발팀 같은 건 회사 안에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걱정돼.”

미남계가 전부 격퇴당했으니 이번엔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아버지는 한없이 허술한 주제에 또 근성은 있는 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지간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어떤 비열한 수라도 쓸 거라고 걱정하자 수현이 잠시 뜸을 들이다 작게 속삭인다.

- 그럼, 빨리 오세요.

가벼운 그 인사말에 현규는 주먹을 세게 쥔 채 이를 악물었다.

당장 차를 돌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강렬한 유혹을 뼈를 깎는 심정으로 참아 냈다.

그래, 일단 할 일은 해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가 트집을 못 잡는다. 아니, 트집을 잡혀도 상관없지만 이건 자신이 시작한 일이니 마무리도 자신이 해야 한다.

그래, 반드시 이건 자신이 마무리할 거다. 다시는 아버지 손이 필요 없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