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160)

“왜요?”

“이리 와 봐.”

막무가내로 서버실로 자신을 끌고 간 윤 팀장을 보며 수현은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서버실에 커피 들고 들어오면 안 돼요.”

“기계 근처로 안 갈 테니 상관없잖아.”

“그래도요.”

“아, 됐고! 그보다, 혼외자라니 뭐야?”

역시나 그것 때문이었나 하며 수현은 심드렁하니 반응했다.

“찌라시잖아요. 그중 아홉 개는 거짓이에요. 한 개만 사실에 근접하고.”

‘사실’이 아니라 ‘사실에 근접하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한 개도 결국 되는대로 던진 것 중 하나가 우연히 맞아떨어진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찌라시란 일종의 점사나 예언 같은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사실을 베이스로 한 열 가지 상상 중 한 가지 정도는 실제로 이루어지기도 하니까. 20년 전 공상과학영화에 나왔던 기기가 과학의 발전에 따라 현실 세계에서 상품화되는 것처럼.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하나에 열광하며 찌라시를 신봉한다.

찌라시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그거였다.

“이 대리, 모른 척하지 말고. 저거 진짜야?”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지만 그 사실은 유전자 검사를 해 봐야 정확해지는 결과기 때문에 노 코멘트입니다.”

말 그대로 대표님의 혼외자를 슈뢰딩거의 혼외자라고 부르게 된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알파와 오메가들은 극히 드물고, 그렇기에 그들의 커뮤니티는 작다. 그 커뮤니티 안에서 보통 본인의 혼외자와 마주칠 확률은 0에 수렴하지만, 대표님의 경우에는 혼외자가 많기에 오히려 그럴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그 탓에 대표님이 만나는 알파나 오메가 중 상대가 그의 혼외자일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가 아니라 ‘알 수 없다.’ 혹은 ‘개체의 유전자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 수현은 그들을 ‘슈뢰딩거의 혼외자’라고 불렀다.

실로 어마어마한 번식력이었다.

더불어 이해할 수 없는 바람기였다.

“이 대리야, 솔직하게 말해. 이미 주총까지 소집된 마당에 뭘 숨겨?”

“……주총이요?”

뜬금없이 웬 주총이냐고 수현은 눈을 껌뻑였다.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

“주총을 왜 해요?”

“나도 모르지. 그런데 소문이 파다해, 주총 연다고.”

뭐, 그럴 수도 있다. 정기 주총도 있으니까……라고 하기엔 정기 주주 총회는 1월 1일부터 3월 31일 사이에 하는 게 일반적이다. 10월에 여는 주주 총회는 대부분 임시 주주 총회다.

“……그건, 모르겠네요. 전 이 회사 주주가 아니라…….”

그렇게 물어 봐야 소용없다고, 저보다 윤 팀장님한테 이 회사 주식이 더 많을 거라고 답한 순간 윤 팀장이 고개를 들이민다.

“강 팀장은 아무 말 없었어?”

“……현규 형이요?”

“응. 주총이라든가 대표님 해임안 상정이라든가, 블라블라 하는 그런 얘기 말야.”

“우린 그런 얘기는 안 해요.”

“사업 얘기 안 해?”

“재미도 없는데 뭐 하러 해요?”

그 시간에 만두를 싸는 게 낫지, 왜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냐고 수현은 정색했다.

아버지도 집에서는 절대 사업 이야기는 안 하셨다. 아니, 애초에 집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규율이 절대 집 밖에서의 일은 집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럼 어머니한테 죽는다.

그래서 아버지도 절대 사업 관계의 이야기는 집에서 꺼내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는 외부 이야기는 오로지 강 대표님 욕뿐이었다.

“진짜 전혀 몰라?”

“네. 몰라요. 전혀요.”

“……그럼, 뭐지? 이 정도 속도로 결정된 거면 대주주 작품인데…….”

“뭐 중요한 안건이 있나 보죠.”

“그 중요한 안건이 뭔데?”

“곧 소문 돌지 않겠어요?”

어차피 곧 알게 될 걸 뭐 하러 시간 낭비하냐며 수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윤 팀장 역시 그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안건 상정은 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가시죠.”

팀장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수현은 곧 추운 서버실을 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그때까지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 * *

전개가 시작된 건 법무팀과의 미팅을 위해 막 사무실을 나서던 순간이었다.

CS 업무도 슬슬 마무리돼 오전 중의 사무실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고 스파이임이 분명한 박지훈 씨는, 역시나 눈치가 없고 더럽게 연기를 못해 금세 정체를 드러냈다.

근무 시간 내내 이쪽을 힐끔거리는 시선에 오히려 다른 직원들이 짜증을 내며 작작 하라고 하자 꼬리를 말아서 별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고요하게 오전을 보내고 법무팀과의 미팅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조용하던 휴대폰이 모처럼 울려 왔다.

아버지다.

순간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손이 멈칫했다.

현규 형과의 결혼 이후 너무 짜릿하고 행복해 잠도 안 자고 사방에 자랑 전화 중이시라, 정작 자신과는 연락 두절 상태였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연락이라니…….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 대리, 안 가?”

“……저 전화 좀 받고 갈게요.”

“그래.”

아주 잠깐 이걸 받을까 말까 망설였지만 이내 받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안 받으면 결국 회사까지 찾아오실 거다.

큰형은 아버지의 거울이었다.

아버지의 성정을 너무 잘 알기에 미리 백기를 들고 사무실을 나가, 복도 구석에 서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곤 휴대폰을 멀찍이 들고 답했다.

“네.”

- 너, 당장 짐 싸서 집으로 들어와!

역시나 통화가 시작되자마자 터져 나온 고함에 질색하며 휴대폰을 더 멀리 떨어뜨렸다.

시끄러운 건 둘째 형하고 똑같고, 기승전 다 빼고 결만 말하는 것도 큰형하고 똑같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무작정 짐 싸서 들어오라니.”

과정을 좀 설명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지만 역시나 그런 요청을 들을 분이 아니었다.

- 말 그대로 우리 집으로 들어오라고!

“그러니까, 왜요?”

- 왜겠냐? 강민혁이 아침부터 전화해서 너희 반드시 이혼시키고 말 거라고 지랄을 하잖아! 오리 새끼처럼 꽥꽥거리면서 자기가 그렇게 쉽게 떨어져 나갈 것 같냐고 소리를 지르길래 웃기지 말라고 했어. 너희 내가 다 데리고 살 거라고. 그 새끼가 이혼시킨다는데 내가 너희가 이혼하게 둘 것 같아? 강민혁이 원하는 건 단 한 가지도! 절대로! 안 돼! 너도 알아 둬! 앞으로 너희 인생에 이혼은 없어! 빨리 임신 준비나 해! 그, 호르몬? 아니 페로몬 치료라고 했나? 아무튼 그거 해, 그거!

페로몬 치료고 호르몬 치료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버지, 솔직히 말씀하세요.”

- 뭘?

“강 대표님 아들 이름 모르죠?”

- 그 자식 아들이 몇인데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해?

그래도 호적상의 아들은 둘뿐이고, 그나마 둘째는 친자가 아닌 데다 첫째는 아들의 파트너니까 이름 정도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무슨 말을 해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강 대표님 외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결혼이든 이혼이든 임신이든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어른들끼리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한강 둔치에서 직접 만나서 머리채 잡으세요.”

우리한테는 상관 마시고, 라는 말에 아버지가 버럭 고함을 지르신다.

- 그건 너무 없어 보이잖아!

그러니까 하고는 싶다는 뜻이었다. 다만 없어 보여서 못 할 뿐.

“지금 이러는 게 더 없어 보여요. 한강 둔치에서 맞장을 뜨든, 쇼 미 더 머니라도 나가서 랩 배틀을 하시든 두 분이 직접 만나서 해결하세요. 전화로 떠들어서 주변 사람들 귀에 피 나게 하지 마시고요. 그럼, 근무 중이라 이만 끊을게요.”

- 아니, 그 자식이 먼저…….

시비 건 거라는 아버지의 레퍼토리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막 휴대폰을 무음으로 전환하려는데, 다시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화면에 뜬 이름은 ‘스토커’다.

“아…….”

큰형이다.

아버지와 형들이 시간 차 공격을 할 때는 대부분 같은 주제이므로 형의 용건도 데릴사위 건일 게 뻔했다.

“……귀찮아…….”

집을 나와서도 이 정도인데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간다니, 말도 안 된다.

애초에 이러니까 집을 나온 거다.

“그냥, 이민 가 버릴까…….”

IT 업계면 미국이나 인도가 괜찮을 텐데, 요즘 러시아는 한물갔나?

이번엔 진지하게 이민 갈 나라까지 골라가며 고민하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나오던 윤 팀장님이 손목시계를 오른손 검지 끝으로 두드린다.

늦었다는 제스처였다.

더없이 반가운 그 신호에 신이 나 답했다.

“갈게요.”

마침 잘됐다 싶어 큰형에게 ‘회의 중이니 잠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부재중 메시지를 보낸 뒤 휴대폰의 전원을 아예 꺼 버렸다.

그러곤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함께 걷던 팀장님이 흘깃 이쪽을 살핀다.

눈치를 보는 듯한 그 표정에 먼저 가드를 올렸다.

“노 코멘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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