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새끼야! 너 왜 우리 집 막내 목을 조르고 있어?”
“누가 목을 졸라? 후드 잡은 게 목 조른 거면 지금은 네가 네 아들 목 조르고 있는 거냐?”
“어떻든! 큰아들, 막내 챙겨.”
말과 동시에 앞으로 나선 진원이 수현의 후드를 인계받자 수현은 질색했다.
“아, 왜?”
“시끄러워. 넌 오늘 눈물 쏙 빠지게 혼날 줄 알아. 이제 결혼까지 했으니 알아서 하라고 봐줬더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기어 올라? 응?”
“내가 뭘?”
“내 전화 안 받았잖아!”
“미팅 있었다니까.”
“점심시간까지 미팅을 해? 이 회사 근로 기준법 안 지켜? 노조 없어? 악덕 기업이야?”
“비슷해.”
일 많을 때는 가차 없이 부려 먹는다고 수현이 단호히 답한 순간 이번엔 강 대표가 황당해하는 얼굴로 수현을 바라본다.
이건 또 무슨 모함이냐는 얼굴이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우리 회사가 뭐? 이정현, 넌 대체 아들을 어떻게 키웠길래 애가 저 모양이야?”
“너, 왜 자꾸 우리 막내 욕해? 내가 내 파트너나 첫째, 둘째는 욕하는 거 참아도 나랑 우리 막내 욕하는 건 못 참는다고 했냐, 안 했냐? 쟤가 얼마나 힘들게 낳아 곱게 기른 아들인데! 내가 쟤 낳으려고 덮쳤다 갈비뼈 두 대나 나갔다고!”
그 이야기에 수현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갈비뼈가 나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너, 갈비뼈도 나갔었냐? 팔만 부러진 게 아니라?”
“팔도 나갔고 갈비도 나갔어.”
“맞고 사는 게 자랑이냐?”
“걔 다리 힘이 얼마나 좋은데? 축구도 잘해.”
거기다 강골이라 부딪치면 자기 뼈에 금이 간다는 아버지의 하등 쓸모없는 자랑에 대표님의 표정이 아주 안 좋아졌다.
질리고 지긋지긋하고 더럽게 짜증 난다는 얼굴이었다.
“그래, 다리 힘 좋은 파트너한테 걷어차여 늑골 나가면서 사니 참 행복도 하겠다, 한심한 새끼야.”
“왜? 부럽냐?”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너 정윤겸 좋아했잖아.”
“돌았냐, 내가? 얼굴이 예쁘니 좀 관심 있던 거지, 고2 때 걔한테 물린 다리가 아직도 비만 오면 쑤시는데 미쳤다고 걔를 좋아하냐? 나한테 그 새끼는 그냥 쌈닭에 미친 개야.”
“그건 네가 발정기 직전에 예민한 녀석을 건드니까 그렇지!”
“야! 냄새 풀풀 풍기는데 어떻게 안 건드려? 그리고 더럽게 예쁜데!”
그 말에는 수현도 동의했다. 확실히 어머니가 끝내주는 미인이긴 하다.
성격이 외모를 너무 많이 배신해서 그렇지.
“멍청아, 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얼굴만 예쁘면 다 덤비냐? 정윤겸 소문 다 듣고도?”
“설마 그 얼굴로 그렇게 성질 더러울 줄 누가 알았냐? 그 성격에 그 얼굴이 말이 돼?”
“야, 너 이번엔 내 파트너 욕하는 거야?”
“파트너 욕은 해도 된다며?”
“그래도 하면 안 되지! 넌 내가 윤준성 욕하면 좋겠냐?”
“해! 알 게 뭐야? 네가 욕을 하든 말든.”
“야, 이 새끼야. 그래도 네 파트너는 네가 보호해야지.”
“자기도 안 하면서 왜 나한테 지랄이야?”
“우리 윤겸이는 보호할 필요가 없으니까 안 하지!”
거칠게, 오가던 대화가 거기서 막혔다.
그렇지, 우리 어머니는 보호할 필요가 없지. 다들 알아서 피해 가니까, 라고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는데 뒤통수에 손이 날아왔다.
“넌 뭘 잘했다고 웃어?”
“나, 잘못한 거 없는데?”
갑자기 왜 나한테 화를 내냐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가운데, 으르렁거리며 주고받던 아버지와 강 대표님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그중 특히 강 대표님의 시선이 사나웠다.
“네가 잘못한 게 왜 없어?”
싸우느라 잠깐 잊고 있던 수현을 떠올린 듯 강 대표가 호통을 치자 이번엔 정현이 곧장 받아친다.
“너 왜 자꾸 내 아들 물고 늘어져? 알파 가진 유세냐? 오메가 무시해? 쟤가 저래 봬도 우리 집 금지옥엽 막내야!”
“금지옥엽인지 금지 구역인지 네 아들이 무슨 사고 쳤나 들어나 봐.”
“무슨 사고? 우리 막내는 애가 멍청해서 소소한 사고는 쳐도 큰 사고는 안 쳐!”
“그러니까, 네 아들한테 물어보라고! 네 아들하고 내 아들이 무슨 짓을 했나?”
강 대표가 지금 중요한 게 성질 더러운 네 파트너가 아니라며 수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모든 이들의 이목이 수현에게로 쏠렸다.
현규와의 결혼 발표 이후 처음 받아 보는 과한 관심에 수현은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저, 전 근무 시간이라 이만…….”
그들 중 누구와도 시선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선을 내린 채 재빨리 빠져나가려 했지만 여전히 큰형에게 후드를 잡힌 채였다.
“아, 나 근무해야 한다고!”
“저게 무슨 소리야? 너랑 현규랑 무슨 짓을 했는데?”
이번엔 큰형에게 바통이 넘어왔다.
너, 제대로 말 안 하면 이번엔 진짜 죽을 줄 알아, 라고 위협하는 큰형의 눈빛에 작은형을 바라봤지만 그쪽은 여전히 아무 생각 없어 보였다.
그저 이 상황을 흥미진진해할 뿐.
“뭐야? 뭐? 너랑 현규 뭐? 빨리 말해!”
“그…….”
기억력과 응용력은 좋지만 순발력은 극단적으로 떨어지는 터라 처음 겪는 이 상황에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모른 척 묵비권을 행사해야 할지 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해야 할지.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귀에서 피가 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아버지와 형들에 이어 그들 못지않은 강 대표님까지 합세한 이상 절대 멀쩡하게는 못 빠져나간다.
지금이라도 현규 형에게 SOS를 쳐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활짝 열린 사무실 문으로 아주 반가운 얼굴이 들어서는 게 보였다.
삼촌이었다.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 헉헉거리며 들어서는 삼촌을 보자 눈앞에 광명이 깃들었다.
형들한테 다구리당하고 있는데 드디어 엄마가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순간 세상에서 제일 보고 싶었던 그 얼굴에 잠깐 큰형이 방심한 틈을 타 후드를 빼냈다. 그러곤 재빨리 삼촌에게 달려가 그 뒤에 숨었다.
그러자 한순간에 이 아수라장의 한복판에 서게 된 삼촌이 마치 광견들을 조련하듯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자, 일단 다들 진정하시죠.”
달려온 듯 숨을 헐떡거리며 차분히 대화부터 해보자는 삼촌의 제안에 강 대표님이 턱짓한다.
“해준이, 넌 빠져.”
“우선…… 우선, 자리에 좀 앉으세요. 그리고 문도 좀 닫고요. 아무리 대표실이라도 보는 눈이, 많습니다.”
눈치 빠른 비서들은 이미 자리를 피해 복도를 지키고 선 채였다. 그래도 사원들 있는데 다 큰 어른들이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해준이 숨을 몰아쉬며 따끔하게 질책하자 곧장 강 대표가 받아친다.
“지금 보는 눈이 문제야? 네 뒤에 있는 이정현 아들이 대형 사고를 쳤다고!”
순간 해준이 너 그새 또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묻듯 수현을 돌아봤다. 하지만 수현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이 건에서는 수현도 피해자였다.
삼촌은 알지 않냐고 수현은 해준의 트렌치코트 자락을 세게 쥔 채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모르는 해준은 그 신호를 단순한 ‘No.’로 알아들었다.
“……사고 친 거 없다는데요?”
“그게 사고가 아니면 뭐가 사고야? 현규랑 이놈이 사기 결혼을 했다니까!”
수현의 자신 없어 하는 태도에서 확신을 얻은 듯, 강 대표가 쩌렁쩌렁하니 그렇게 내뱉자 사무실 안의 전원이 설마 하며 수현을 응시했다.
저게 지금 무슨 소리냐고 추궁하듯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수현은 소라게처럼 후드를 뒤집어쓴 채 해준의 뒤로 완전히 숨어들었다.
말로 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자백이었다.
순간 바로 해준의 바로 앞에 서 있던 진원이 윽박지른다.
“이수현! 너 사실대로 말해! 지금 강 대표님 말이 사실이야?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사기 결혼이라고?”
강 대표를 대신한 진원의 닦달에 이번엔 해준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걸 벌써 어떻게 알았지?’ 내지 ‘금방 들킬 줄은 알았지만 벌써 들킨 거냐? 현규 올 때까지만이라도 버티지.’라는 눈빛이었다.
어떻게 봐도 명백한 자백이었다.
그리고 해준과 친형제처럼 자란 진원과 지수는 그 눈빛을 정확히 알아봤다.
“뭐야? 삼촌은 알고 있었어?”
“알았네! 얼굴 보니 알았어! 그래, 이수현이 삼촌한테까지 거짓말을 할 리 없지! 둘이 짜고 친 거야? 아니, 둘이 아니라 셋인가? 잠깐, 설마 서주영 씨까지 넷이 짠 거야?”
이수현 저 모지리 새끼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생각이라며 지수까지 펄펄 뛰자 그때까지 조용하던 정현이 수현을 향해 묻는다.
“이게 무슨 소리야? 막내, 너 진짜 사기 결혼한 거야?”
“……그게, 어떻게 보면 사기 결혼이 맞지만 엄연한 의미에서 사기 결혼은 아니고요…….”
내가 사기당한 건 맞지만 어쨌든 나중에는 합의했으니까, 라고 중얼거리던 수현은 잔뜩 몸을 움츠린 채 작게 덧붙였다.
“계약 결혼이라고 하시는 게 정확한 표현인데요…….”
물론, 저도 몰랐던 계약이지만요, 라는 말은 생략한 채 수현이 웅얼거리자 강 대표가 버럭 호통을 친다.
“사기 결혼이고 계약 결혼이고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하지! 사기는 아니라잖아!”
우리 막내가 사기꾼은 아니라고 이번엔 정현이 또 화를 냈다.
끔찍한 아들 사랑에 강 대표는 기가 차는 듯 정현에게 삿대질을 했다.
“야! 지금 네 아들하고 내 아들이 우리한테 사기를 쳤다고!”
“친족상도례 몰라? 가족은 특수 관계라 사기죄가 적용 안 돼! 그리고 너희 아버지 평생 골수 빼먹고 뒤통수치면서 산 주제에 너는 아들한테 안 당할 줄 알았냐? 그리고 계약 결혼이나 정략결혼이나 그게 그거지! 넌 네 아들 정략결혼시키려고 했잖아!”
“너도 네 아들 해준이랑 결혼시키려고 했잖아!”
“우린 정략결혼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