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규 역시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이라 서둘러 수현의 엉덩이를 받친 채 아예 안아 들었다.
“오늘 일은 나중에 따로 설명 듣겠습니다. 아버지도, 해준 형하고 이 대표님도요. 그리고, 이지수 넌 나중에 나랑 따로 봐. 아주 할 얘기가 많으니까. 그럼, 지금은 바쁘니 이만.”
폭풍처럼 나타나 순식간에 수현을 안아 든 현규는 너희들하고는 더 볼일 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빠르지만, 흐트러짐 없는 우아한 자세로 걸음을 옮기는 현규를 바라보던 이들은 현규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긴장을 푼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와, 강현규 독기……. 성질머리만큼 지독하네.”
진짜 독침을 맞은 것 같다며 몸을 부르르 떤 지수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목뒤를 주물렀다.
중학교 시절부터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하며 어느 정도 현규의 독기 서린 페로몬에도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그 느낌에 지수가 몸서리를 치는 사이 저릿한 손목 위의 피부를 지그시 누르던 진원이 조심스럽게 해준에게 묻는다.
“삼촌, 수현이 괜찮은 거야? 우리가 이 정돈데…….”
진원 역시 저릿저릿한 감각이 몸에 남은 듯 살짝 인상을 쓰며 묻자 해준이 쓰게 웃는다.
“걱정 마. 괜찮아.”
“화난 것 같은데 수현이한테 뭐라고 하는 거 아냐?”
“우리한테나 이러지, 수현이한테는 큰소리도 못 쳐.”
그건 진원도, 지수도 봐서 안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어마어마한 페로몬을 뿌려 알파들까지 질리게 한 녀석이 수현이를 품에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다들 보긴 했다.
그래서, 더 헷갈렸다.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수현이는 계약 결혼이라고 하고 현규는…….”
그러고 보니 현규도 아니라고 하지는 않았다.
시작이야 어떻든 끝만 좋으면 된 거 아니냐는, 극히 무책임하지만 딱 알파스러운 말만 내뱉었을 뿐이다.
“잠깐, 이거 설마…….”
수현이한테 사기를 쳤다는 것도 그렇고, 그간 이상하게 위화감을 느꼈던 진원은 설마 하는 얼굴로 해준을 바라봤다.
“삼촌,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삼촌은 다 알지?”
“…….”
“수현이는 몰라도 삼촌은 알 것 같은데?”
아마 수현은 돌아가는 상황 자체를 잘 모를 거고 현규는 다 알지만 절대 말 안 해 줄 거다. 그러니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건 수현의 전 주인인 해준뿐이었다.
해외 유학 중에도 수현이에게 이상한 친구가 붙은 것 같다고 관리했던 극성맘이니 분명 다 알고 있을 거다.
“해준이 너 아는 대로 다 말해.”
이번엔 정현이 가세했다.
알면 아는 대로 이실직고하라는 네 사람의 무시무시한 눈빛에 해준은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사실 빠져나갈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슬슬 가족들도 알긴 해야 한다.
이 난장판을 정리하려면.
어차피 곧 어마어마한 소식도 들릴 테니 그 전에 교통 정리를 해 두는 쪽이 좋다.
“일단, 문부터 좀 닫고 얘기하자.”
* * *
“잠깐만요! 강 팀장님!”
대표실을 나와 성큼성큼 엘리베이터로 향해 가는 현규를 따르며, 비서팀의 서 팀장은 애타게 그를 불렀다.
“언제, 아니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전용기는 착륙 이력이 없는데 일반 항공으로 들어오신 거예요? 아니, 그럼 우리 전용기는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서 팀장의 질문 공세에도 현규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빠르게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갔다.
“아니, 일정은요? 오늘 일정들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리고 대체 장 대리는 왜 연락이 안 되는 건데요?”
우리 전용기랑 장 대리 어디 버리고 왔냐는 서 팀장의 안달에 엘리베이터의 하행 버튼을 누른 현규가 짜증스러워하는 시선으로 그를 돌아본다.
그거, 누가 안 훔쳐 간다는 얼굴이었다.
“장 대리한테서 곧 연락 올 테니 직접 들으시죠.”
“언제요?”
“곧.”
짤막한 답과 동시에 더 말하기도 싫다는 듯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현규는 수현을 안아 든 채 구석으로 들어섰다.
“강 팀장님! 잠깐만요!”
곧이 언제냐고 물으려던 서 팀장이 엘리베이터의 문을 잡으려 한 순간 쾅 하는 소음이 울려왔다.
계기판이 부서질 듯 팔꿈치로 1층 버튼을 내리친 현규가 사나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네 미래가 메인 로프 끊어진 엘리베이터가 될 거라고 말하는 듯한, 흉흉한 현규의 기세에 서 팀장은 입을 꾹 다문 채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혀를 찬 현규는 귀찮다는 얼굴로 다시 한번 주먹으로 닫힘 버튼을 내리쳤다.
순간 울려 온 쾅 하는 굉음에 서 팀장은 질린 듯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에게서 이내 시선을 뗀 현규는 문이 다 닫히기도 전에 수현과 입을 맞췄다.
입술을 물어뜯을 듯한 키스에 수현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현규의 목에 매달리며 그의 혀를 빨아들였다.
여기가 지금 회사 엘리베이터 안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능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현규에게 안긴 순간부터 모든 이성은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몸은 뜨겁고 머릿속은 어지럽다.
그저 어서 하고 싶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현규의 어깨를 세게 끌어안은 채 허리를 들썩이던 사이 조용히 하강하던 엘리베이터가 23층에서 멈췄다.
하지만 그를 인지할 여유도 없이 계속해서 키스를 하던 사이 문이 열렸다. 그제야 아차 한 현규는 서둘러 수현을 다시 품에 안으며 안으로 들어서려던 이들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다음 거 타시죠.”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당장 꺼지라는 말을 최대한 부드럽게 돌려 했지만 눈동자는 험한 말들을 일시에 내뱉고 있었다.
‘이 새끼들아, 왜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랄이야? 너희 근무 안 하냐? 왜 자꾸 근무 시간에 일 안 하고 쏘다니는데? 당장 그 눈 치우고 여기서 안 내릴래? 인생의 시련 한번 겪어 볼래?’
그 눈빛이 하도 노골적이라 그 시선이 육성으로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상냥한 척하지만 분노로 타오르는 듯한 현규의 흉흉한 눈빛에 두 사람은 조용히 뒷걸음질 쳐 물러섰다.
슬기로운 그들의 사회생활에 아주 만족한 현규는 흡족한 듯 웃으며 쾅, 하고 다시 닫힘 버튼을 두들겼다.
아무리 이성으로 억누르려 해도 성질 나는 건 참을 수가 없어 행동으로 짜증을 드러내자 움찔한 남자 둘이 뒤로 물러서면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왜 자꾸 우린 이런 것만 보냐?”
“쉿!”
눈치 없는 남자의 말을 막은 다른 남자가 서둘러 옆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는 걸 보며 현규는 그제야 그들이 언젠가 마주친 적 있는 직원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일부러 수현의 목에 키스 마크를 남겼을 때를 목격한.
같은 팀도 아니고 그저 한 번 스친, 같은 층의 직원일 뿐인 그들을 현규가 기억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날, 1시간도 안 돼 온 회사에 소문을 다 냈던 그들의 위아래 및 장르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인 사회생활과 자유분방한 손가락이 인상 깊어서였다.
오늘도 그들은 온 회사에 소문을 낼 거다.
최대 주주와 시스템개발팀 바퀴벌레가 회사에서 발정 났다고.
그건, 아주 좋다.
“형, 성기가 아파요.”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사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수현이 칭얼거린 순간 현규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조금만 참아. 집으로 갈 때까지만.”
“속옷도 다 젖었어요. 벗겨 주세요.”
처음으로 겪는 발정기를 감당하기 힘든지 허리를 들썩이며 성기를 비벼 대는 수현의 엉덩이는 말 그대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코트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꺼운 면으로 만든 천에 얼룩이 질 정도로, 애액이 흐르고 있었다.
그게 감촉으로도 느껴질 정도라 현규 역시 환장할 상황이었다.
발기한 성기가 눌린 고통을 참아 내며 간신히 이성으로 누르는 중이었는데, 그 말에 성기가 터질 것 같았다.
“수현아……. 조금만 참아. 집에 가면 다 벗겨 줄게.”
벗기 싫다고 해도 어떻게든 벗길 생각이었는데 마침 그렇게 말해 주니 매우 감사하고 기쁘지만, 지금은 그 말을 참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규는.
이러다 진짜 경찰에 끌려가겠다.
다른 것도 아니라 공연 음란죄로.
하지만 그것만은 진심으로 피하고 싶다.
그건, 너무 쪽팔린다.
“엉덩이 구멍이 쑤셔요. 빨리, 형 거 넣어 주세요.”
몸을 비비적거리며 어디서 배웠는지 계속해서 음담패설을 내뱉는 수현을 끌어안고 현규는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쉿, 괜찮아. 조금만 더 참아.”
그렇지 않아도 32층에서 내린 순간부터 느낀 수현의 체향에 환장할 것 같은데 거기다 말로 부추기니 진짜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아랫배가 너무 아파요, 형.”
“…….”
“그냥 여기서 넣어 주세요.”
말과 동시에 손을 내려 현규의 사타구니를 만지는 수현의 손에 현규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러곤 작게 속삭였다.
“아가…… 너, 이러다 오늘 정말 큰일 나…….”
그냥 엘리베이터를 멈추고 여기서 해 버릴까? 관리실에 알려 1시간 동안 이 엘리베이터를 멈추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머릿속을 떠도는 강렬한 충동에 시달리던 현규는 이내 1층에 도착해 열리는 문을 보곤 간신히 제정신을 유지했다.
“다 왔어. 집에 가자.”
이미 자신도 한계라 걷는 게 힘들었지만,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뻔뻔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고개를 들고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사이 한산한 로비 안의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코트로 덮긴 했지만 커다란 남자를 아예 안아 들고 걷는 모습에 보안요원들뿐 아니라 1층 카페의 직원들이 놀라워하는 시선이, 눈이 아닌 피부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차 바삐 걸음을 옮겨 봐도 오늘따라 20m의 거리가 2km처럼 느껴졌다.
사람 하나를 안아 든 것도 힘든데 목에 매달려 계속해서 목덜미를 빨고 몸을 비벼 대는 수현 때문에 더 환장할 지경이었다.
전생에 지은 죗값을 지르는 건지 그간 현생에서 쌓은 업보를 갚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진심으로 참회하고 후회하며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