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현규의 목에 매달린 수현이 천천히 현규의 위에서 허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곧 어설프게나마 최선을 다해 허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체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다리에도, 허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자 현규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힘들어?”
“……네…….”
“그럼, 내가 할까?”
그 말에 수현은 현규를 꼭 끌어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어떻게든 해 달라는 답을 얻어 낸 현규는 수현의 허리와 엉덩이를 받쳐 안아 들었다. 그리고 곧 몸을 일으켜 수현의 등을 벽에 밀어붙였다.
공중에 붕 뜬 채 벽과 현규 사이에 끼인 수현은 본능적으로 현규의 어깨에 매달렸다.
혹시라도 떨어질까 필사적으로 그의 어깨를 안은 수현은 떨리는 음성으로 작게 속삭였다.
“형, 떨어져요…….”
“걱정 마. 안 떨어져. 기분 좋을 거야.”
기분은 좋았다. 그건 수현도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달리 삽입은 너무 깊었고 자세가 좋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몸을 지탱하는 건 현규를 끌어안은 자신의 팔과 엉덩이를 받쳐 준 현규의 두 손, 그리고 아래쪽으로 들어온 성기뿐이었다.
체격 차이가 나서인지 안정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아래로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점도 그렇지만 삽입된 각도가 너무 아슬아슬했다.
금세 빠질 듯 위태롭지만 그러면서도 너무 깊은 이상한 자세였다.
“형, 이거, 이상해요…….”
“괜찮아. 이것도 곧 좋아질 거야.”
아니라도 꼭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듯 허리를 움직인 현규가 안쪽을 찔러 오자 짤막한 교성이 터졌다.
내벽 전체를 밀어 올리는 힘에 신음을 내뱉으며 그의 성기를 세게 조이자 현규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흥분한 듯 거칠어진 현규의 움직임에 수현 역시 점점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현규가 한 번 쳐올릴 때마다 어깨뼈와 등뼈가 벽과 부딪쳐 아팠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정신없이 빠르게 안쪽을 헤집다 자궁까지 닿을 듯 깊이 들어온 성기가 사정없이 내벽을 찌른 순간 수현은 높은 교성을 내뱉으며 현규의 어깨에 손톱을 세웠다.
그와 동시에 내부에 남겨진 정액을 느끼고 수현은 숨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전신을 가늘게 떨며 현규를 꼭 끌어안고 있자 현규가 입을 맞춰준다.
아직 호흡이 가쁜 상태라 가슴이 아프긴 했지만 기분 좋은 키스에 수현은 몸에서 힘을 뺐다.
그리고 마치 후희를 즐기듯 키스를 나누는 사이 현규의 것이 빠져나갔다.
“으, 응…….”
느릿하게 몸 안에서 빠져나가는 성기의 감촉에 수현이 작은 신음을 내뱉는 사이 수현을 가뿐히 안아 든 현규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드레스 룸을 빠져나갔다.
슬슬 해가 져 가는지 침실 안은 어둑해진 채였다.
새삼 해가 짧아졌다는 걸 실감하며 침대 쪽으로 다가선 현규는 조심스럽게 수현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다시 한번 입을 맞추며 수현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와 함께 또 허벅지 안을 더듬는 손길에 수현은 경악한 듯 눈을 부릅떴다.
“형, 잠…… 응…….”
계속되는 키스 중 간간이 숨을 내뱉던 수현이 설마 하는 얼굴로 현규를 바라봤지만 현규는 왜 그러냐는 듯 예쁘게 눈웃음을 흘렸다.
너무 뻔뻔했다.
“응?”
“……더는, 진짜 못 해요…….”
그사이 다시 발기하고 있는 현규의 성기에 수현은 이를 딱딱 갈았다.
또 할 생각인 거다.
“진짜, 더는 안 돼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더 이상 하면 나 큰일 난다고 했지만 현규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괜찮아. 난 할 수 있어.”
“……전 못 해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피곤하면 자도 돼.”
넌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 없다며 허벅지를 벌리는 현규를 본 수현은 그제야 오래된 의문을 해결했다.
어린 시절부터 현규가 자신을 바라보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눈치는 없지만 본능으로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언젠가 이 형이 날 죽일지도 모른다는 걸.
[수현이 괜찮아? 진짜 억제제 없어도 되겠어?]
2시간째 답이 없는 메시지 창을 내려다보며, 해준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퇴근 후 그래도 혹시나 해서 메시지를 보내 본 건데…… 답장이 오기는커녕 옆에 붙은 숫자 ‘1’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예상한 대로의 반응이라 그다지 놀라울 건 없지만 알고 있었다고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수현아, 너 진짜 괜찮은 거냐?
“왜 하필 고르고 골라서…….”
아무리 알파와 오메가가 드물다 해도 그건 평범한 세계의 이야기다. 뭐든 있는 데는 모여 있기 마련이라 상류층의 절반 이상은 알파들이었고 그들의 파트너는 당연히 모두 오메가들이었다.
다행히도 수현은 태생적으로 상류층에 속해 있었으니 알파와 접하기 어렵지 않았고, 아직 발현하지 않았다는 걸 제외하면 수현의 조건은 상류층 내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조건이었다.
그러니 본인이 원한다면 누구든 골라 만날 수 있었는데, 연애에는 전혀 관심 없고 먹는 거에만 관심이 있어 귀엽다고 마냥 내버려 뒀더니 이상한 녀석을 주워 와 버렸다.
수현이도 나이가 들 대로 들었고 독립도 했으니 이젠 수현이 뭘 하든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두겠다고 다짐했는데 연애, 아니 결혼 상대가 너무 좋지 않다 보니 간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지간해야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시선을 내려 지금 본인이 앉아 있는 진한 회색의 칙칙한 소파 베드를 심란한 듯 바라보는 해준의 옆모습에, 막 방에서 나와 소파로 다가오던 주영이 조심스레 묻는다.
“아직 연락 안 돼요?”
현규가 던져 놓고 간 짐 정리를 마치고 나온 주영이 바로 옆자리에 앉자 해준은 서둘러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대충 얼버무렸다.
“아예 꺼 놨나 봐.”
“바쁜가 보네요.”
그래, 바쁘긴 할 거다. 그것도 아주…….
“짐 정리는 다 끝났어?”
“네. 별거 없어서 금방 끝났어요.”
오래 있던 것도 아니라 옷가지 몇 개랑 세면도구가 다라며 웃는 주영의 눈가에는 진한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것도 전부 강현규 덕이었다.
얼마나 애한테 겁을 줬으면 밤새 수현이 이불 덮어 주느라 잠을 못 잔 탓에 얼굴이 반쪽이 됐다.
하루 더 있었으면 애 잡을 뻔했다.
“현규가 뭐라든 무시하지. 아직 날도 안 추운데.”
수현의 잠버릇을 고치기 위해 온갖 민간요법까지 다 써 봤던 해준의 입장에서는 이 날씨에 이불을 살피느라 애쓴 주영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덮어 줘 봐야 5분 후에는 귀신같이 이불을 걷어차는 애인데 그걸 잠도 안 자고 2시간 단위로 챙겨 줬다니, 주영도 참 미련하다.
“자기 잠버릇 잘 알아서 수현이도 추우면 알아서 난방 올리는데, 그냥 내버려 두지 그랬어? 다크서클 너무 심하네.”
주영의 눈가를 손으로 문지르며 해준이 걱정을 내뱉자 주영이 쓰게 웃는다.
주영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사실, 그 정도 요령은 있다.
다만…….
“그랬다간 현규 형 생령이 나타날 것 같아서요…….”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못 하겠다…….”
귀신이니 엑소시즘이니 저주니 하는 심령학적인 현상은 전혀 믿지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현규라면 생령으로 나타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하여간, 걔도 좀 이상하다.
“미안. 괜히 너만 고생했네.”
“형이 왜 미안해해요?”
“수현이랑 현규 때문에 고생했잖아.”
“잠을 못 자서 좀 피곤하긴 했지만 친구랑 합숙하는 기분이라 재미있었어요. 저 발정기가 불규칙해서 친구들이랑 같이 여행 같은 건 못 가 봤거든요. 아, 맞다. 수현이가 시간 나면 같이 여행 가자고 했어요. 해외는 멀어서 싫다고, 국내로 같이 캠핑 가자고 하더라고요.”
보수적인 주영의 집안 분위기로 보아, 친구들과 여행도 못 가 봤다는 거에 그다지 이상할 건 없었다. 사실, 그다지 보수적이지 않더라도 오메가가 친구들하고 여행 다니고 학교 이벤트에 다 참석하는 일은 드물다.
수현이 아주 특이한 케이스였던 거다.
“그래, 더 추워지기 전에 같이 가자. 물론, 수현이랑만 말고 나랑도 같이 가는 걸로.”
“좋아요.”
눈을 반짝이며 아이처럼 기뻐하는 주영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해준은 문득 그들이 앉은 소파가 거슬린 듯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넌 진짜 괜찮겠어?”
“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주영이 뭐 문제 있냐는 듯 되묻자 해준이 바로 아래의 소파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 소파.”
주영이 집에 돌아와 보니 주영의 짐과 함께 복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는 소파를 내려다보며 해준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작게 혀를 찼다.
애초에 이걸 보냈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럴 거면 사람 있는 시간에 맞춰서 보내든가, 굳이 집이 빈 시간대에 짐과 함께 이 커다란 소파를 복도에 내팽개친 부분에서 현규의 심술이 느껴졌다.
아무리 좋게 봐 주려고 해도 성격이 너무 안 좋다.
“괜찮아요. 저한테 연락도 없이 복도에 갖다 놔서 좀 놀랐지만 마침 급히 집 구하느라 소파도 못 샀는데 잘됐죠, 뭐. 이거 편했거든요. 그리고 어차피 곧 형하고 같이 살 텐데 새 가구 사는 것도 그렇고…….”
거기까지 말하던 주영은 순간 뭔가 떠올랐는지 금세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손등으로 뺨을 비비며 왜 이렇게 덥지, 라고 중얼거리는 주영을, 해준은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 같은 해준의 다정한 눈빛에 주영은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했다.
이상하게 부끄럽고 민망한 기분이 들어 얼굴이 타오르는 듯했다.
그래서, 재빨리 말을 돌렸다.
“수현이 걱정되네요. 첫 발정기면 힘들 텐데. 전, 약을 먹었는데도 약이 안 맞아서 발정기 내내 고생했거든요.”
“현규가 알아서 할 거야. 그 녀석 나한테 극성이라고 하더니 자기는 더하니까.”
감정이 많이 실린, 해준의 험담에 주영은 간지러운 듯 웃었다. 드디어 노비의 몸에서 풀려난 터라 지금은 마음껏 현규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