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160)

사실 현 상황에서는 어떻게 봐도 자신과 주영이 문제지, 수현과 현규 쪽은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무신경한 수현과 30년 인생을 한결같이 싸가지 없고 이기적으로 살아온 뚝심 있는 현규라면 전혀 걱정할 게 없다.

어떻게 보면 천생연분이다.

주위 사람들이 좀 힘들어서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뿐해졌다. 더 이상 수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기로 결심한 해준은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이제 진짜 자신과 주영의 문제에만 집중해야 할 때였다.

* * *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특히, 엔지니어는 더욱.

수현은 드디어 그 진리를 깨우쳤다.

인간의 신체는 신비로웠고 엔지니어의 체력은 위대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감탄하며 눈을 껌뻑인 수현은 다음 순간 작게 속삭였다.

“좁아요, 형…….”

새벽녘에 겨우 잠들었다 깬 정오.

아직 남아 있는 발정기의 기운과 밤새 시달린 탓에 몸은 엉망인 채였지만 그래도 정신은 돌아와 있었다.

그러니까, 100%는 아니더라도 50% 정도의 이성은 돌아왔고 그래서 말할 수 있었다.

이 욕조는 너무 좁다고.

“응. 좁네.”

다리도 다 펴지 못한 채 욕조에 앉아 등 뒤에서 수현을 안고 있던 현규는 좁긴 하다고, 동의하며 수현의 목덜미와 어깨에 입을 맞췄다. 그러곤 가슴을 지분거리는 손길에 수현은 좁다고 말만 하지 말고 좀 나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규는 그나마 다리만 접은 정도지 자신은 말 그대로 구겨진 채였다.

애초에 이 욕조는 샤워할 때 밖으로 물 튀지 말라고 샤워부스 대용으로 설치해 둔 거지, 절대 몸을 담그기 위한 용도는 아니었다.

욕조에도 규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욕조는 규격 이하였고, 성인 남자 한 명이 들어가기도 좁은 크기였다. 그래서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욕조를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로 그 작은 욕조에 남자 둘이 앉아 있다는 것도 어불성설인데 그중 하나가 현규라면 수현이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물도 다 넘쳤다.

이 상태로 욕조에 앉아 있는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가 들 정도로.

“형, 저 그만 나가고 싶은데요…….”

“좀 더 있다. 근육 풀어야지. 그러다 다쳐.”

수현의 이마를 손으로 감싼 채 이번엔 뺨에, 귓불에 입을 맞추는 현규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울리지 않게 상냥하고 다정하다 못해 연신 눈웃음을 흘리며 몸을 지분거리는 게, 살짝 들뜬 것도 같았다.

하지만…….

“저기, 형 진짜…… 너무 좁아요.”

현규는 어떨지 몰라도 완전히 구겨진 자세의 수현은 너무 불편했다. 근육이 풀리기는커녕 더 뭉치게 생긴 상태라 수현이 불편한 듯 꼼지락거리자, 수현을 안고 있던 현규가 가슴 쪽으로 손을 뻗어 유두를 살짝 누른다.

그 손길에 몸을 구부린 수현은 본능적으로 가슴을 두 손으로 가렸다.

“하지 마세요…….”

“왜?”

“아파요.”

분명 흥분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픈 게 강했다. 계속해서 현규가 빨고 핥아 댄 탓에 유두 전체가 잔뜩 부은 데다 생채기까지 생긴 채였다. 그 위에 생긴 잇자국은 덤이다.

최소 며칠간은 쓰리고 아플 게 뻔해 가리려 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손이 스친 탓에 다시 지끈거리며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몸속이 화끈해 왔다.

발정기란 말 그대로 발정이 계속 이어지는 시기였다.

왜 이 시기에 억제제가 필요한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그렇게 가리면 더 만지고 싶은데…….”

가슴을 가린 수현의 손목을 잡은 현규의 한 마디에 수현은 퍼뜩 놀라 현규를 돌아봤다.

진짜 그럴 거냐는 물음과 원망, 그리고 두려움이 공존하는 그 눈빛에 현규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저렇게 쳐다보면 이상하게 더 하고 싶다.

그리고 수현 역시 현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채고 말았다.

눈치로 알아챈 게 아니라 현상으로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형, 섰어요…….”

완전히 벌어져 이제 영원히 안 닫히면 어쩌나 걱정하던 엉덩이 구멍은 다행히 탄력을 되찾았지만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현규의 성기는 양심도 없이 다시 발기하고 있었다.

순간 수현은 발정기가 시작된 게 사실은 내가 아니라 현규인 거 아닐까, 하는 의문에 빠져들었다.

분명 자신은 어제 오후부터 어느 정도 가라앉아 가고 있었는데 현규는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새벽까지 하도 해 대 진지하게 매트리스를 갈아야겠다고 다짐했을 정도인데 지금 또 발기하다니…….

아직 나올 게 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끝없는 그 체력과 정력에 수현은 진심으로 경악했다.

혹시 나 모르게 무슨 약 먹은 거 있냐고, 수현이 다소 질린 눈빛으로 현규를 바라보고 있자 그 눈빛이 마음에 드는지 현규가 수현의 눈가에 입을 맞춘다.

“응. 알아.”

알았으면 좀 치우거나 얘를 가라앉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말로 뱉으면 가라앉히겠다고 또 넣을 것 같아, 수현은 현명하게 말을 삼켰다.

눈치는 없어도 학습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

“저, 먼저 일어날게요.”

“벌써?”

“……좁아요…….”

아무리 자신이 좁은 곳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건 구석이나 막힌 곳을 좋아하는 거지, 이런 좁은 욕조를 선호하는 건 아니었다. 특히 몸을 풀어야 할 때는 더욱.

어떻게든 구겨진 몸을 펴기 위해 천천히 욕조에서 일어서는데 역시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공간도 좁은 데다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후들거리는 다리 탓에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낑낑거리고 있었더니 뒤에 앉아 있던 형이 웃는다.

간지러운 듯, 그리고 재미있다는 듯.

너무나 청량하게, 마치 사랑에 빠진 어린 소년처럼.

그래서 조금 설렜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무섭기도 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데,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다.

“안 일어나?”

“…….”

“응?”

괜히 심장 떨리게 애교를 부리는 음성에 수현은 천천히 현규를 돌아봤다.

슬래셔 영화에서 바로 뒤에 나타난 범인을 돌아보는 주인공처럼 느리게.

그러곤 말을 건넸다.

“형…… 제가 진짜……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요.”

“그럼, 하지 마.”

아주 상큼하게 웃으며, 살짝 들뜬 음성으로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 현규는 다시 수현의 머리카락과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 달달한 스킨십에 수현은 본심을 내뱉고 말았다.

“형, 무서워요…….”

미친 것 같아요, 라는 말 대신 가장 무난한 말을 건넨 순간 열심히 지분거리던 현규가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여전히 너무 어울리지 않는 상냥한 음성으로 되묻는다.

“뭐라고?”

“……무섭다고요.”

“……뭐라고?”

달콤한 음성과는 달리, 다시 한번 말해 보라고 협박하듯 엉덩이를 쿡 찌르는 성기에 수현은 재빨리 말을 바꿨다.

“……멋있다고요.”

옛다, 하고 던져 주듯 수현이 작게 내뱉자 현규는 아주 흡족하게 웃었다.

그게 딱 그가 원하는 답이었다. 앞의 말은 안 들은 걸로 하면 된다.

“보는 눈은 있네.”

이 대화를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현규의 앞에서 수현은 먹고 떨어지라는 듯 쿵짝을 맞춰줬다.

“……저는 남자 얼굴만 보거든요.”

“그래, 얼굴 하면 나지.”

진짜 얼굴 말고는 볼 거 없는 남자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수현은 빤히 현규를 바라보다, 이내 그 말에는 진심으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얼굴은 좋다.

아니, 얼굴만 좋다.

대신 인성에 문제가 좀 많긴 하지만, 어차피 알파들 인성은 다 거기서 거기다.

삼촌이 유니콘인 거지 알파들 대부분이 저런 성격이니 어차피 이거나 저거나 그게 그거라면 포장이라도 예쁜 게 좋다.

그리고 현규 정도면 나름 다정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최소한 수현은 그렇게 느꼈다.

다정해질수록 무서워져서 그렇지…….

“몸은 괜찮아?”

여전히 몸 여기저기를 매만지던 현규의 물음에 수현은 지금까지 무서워서 도저히 내려다보지 못한 몸을 천천히 확인했다.

‘괜찮냐’라는 게 전반적인 컨디션에 관한 물음이라면 답은 yes다. 나쁘지 않다. 발정기에 워낙에 기가 빨려서인지 이 정도면 괜찮다. 솔직히 살 것 같다.

하지만 진짜 몸 상태를 묻는 거라면 no다.

잔뜩 부어오른 유두나 여기저기 물어뜯긴 어깨와 가슴도 안 좋지만 아래 상황은 더 대단했다.

여기서 한 번 더 하면 죽지는 않겠지만 병원은 가야 할 것 같았다.

솔직히 지금도 아래가 너무 아파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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