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160)

이래서 내 친구들이 나랑 연락을 끊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은 수현의 표정에 현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아주 예쁘게.

“내가 늘 말하지만, 넌 생각을 좀 하고 말을 할 필요가 있어. 뇌가 혀끝에 달린 것도 아니고…… 떠오르는 걸 필터 없이 즉각 내뱉지 말라고.”

감정을 담아 현규가 볼살을 세게 꼬집자 아픈 듯 뺨을 문지른 수현이 억울하다는 투로 중얼거린다.

“아니…… 그래서, 좋다고요.”

“그건 당연한 거고. 내리자.”

먼저 운전석에서 내리는 현규를 따라 다급히 차에서 내린 수현은 보도에 선 채 현규에게 물었다.

“사리로 버섯이랑 샤부샤부 고기 추가해도 돼요?”

“해.”

“해물전도 먹고 싶은데 시켜도 돼요?”

“먹어.”

“그럼, 만두도 추가로 시켜도 돼요?”

찐만두, 라며 웃는 수현을 본 현규는 막 보도로 올라서려다 걸음을 멈췄다.

“……만두전골을 먹으면서 만두를 또 시킨다고?”

“고기만두요.”

“……너…….”

만두에 환장했냐고 하려던 현규는 순간 말을 멈췄다.

발정기에는 에너지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그 기간 중 식사할 만한 여유는 없기에 발정기 이후에 폭식을 하는 케이스도 많다고 들었다.

오메가들이 대체적으로 슬림한 체형인 건 발정기 탓이 컸다. 섹스 자체가 어마어마한 열량을 소비하는 육체 노동이니까.

그러고 보니 겨우 찌워 놓은 볼살이 조금 빠지기는 했다. 엉덩이는 다행히 아직 통통하지만.

“……적당히만 먹어. 너무 많이 먹다 체하지 말고.”

“괜찮아요. 속 안 좋으면 토하고 먹으면 돼요.”

듣던 중 무식한 발언에 현규는 질색하며 되물었다.

“토하고 왜 먹어?”

“어머니가 토할 것 같으면 토하고 와서 먹으면 된다고 했어요.”

너무나 그분다운 이야기에 현규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골치 아프다는 듯 인상을 썼다.

최소 25기 차이가 나는 동문인 자신도 알 정도로 유명한 분이셨다, 수현의 모친은.

워낙에 괴팍한 성품으로 유명해 무슨 말을 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분이지만…….

“역시, 그 학교 터가 안 좋아…….”

아무리 그래도 토하고 먹으라는 게 애한테 할 소리냐고 현규가 한숨 짓는 순간 수현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갑자기 웬 풍수지리냐, 하는 얼굴이었다.

“……네?”

“……아무것도 아냐. 들어가자.”

수현의 머리를 스치듯 쓰다듬으며 막 문을 연 현규가 재촉하듯 고갯짓하자 수현이 안으로 들어서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형, 오늘 오후에는 곱창 먹고 싶은데요…….”

“점심부터 먹고 말해.”

“아니, 아니, 소맥 말아도 되냐고요.”

직원에게 “두 사람이요.”라고 말하며 먼저 안쪽 테이블로 향하던 수현의 뒤에서, 현규는 꿈도 꾸지 말라는 듯 단호히 답했다.

“응, 안 돼.”

“한 잔만요.”

“안 돼. 넌 당분간 술 금…….”

거기까지 말한 현규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는 수현을 스캔하듯 쭈욱 훑어봤다.

살짝 살이 빠지긴 했지만 나쁜 컨디션은 아니다.

하는 동안 많이 재웠고, 먹는 것도 나름 챙겨 먹였으니 아주 심하게 몸이 축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럼, 상관없다.

“……아니, 마셔.”

“……네?”

“마시라고. 마시고 싶다는데 마셔야지. 여기 만두전골 중…….”

갑자기 관대해진 채 막 자리에 앉은 현규가 주문을 하려는데 막 맞은편 자리에 앉던 수현이 그 말을 막는다.

“아니, 대요.”

“……그래, 대 사이즈에 사리로 버섯모둠, 샤부샤부 고기 2인…….”

“4인분이요. 여기, 고기 양 적어요.”

직원 앞에서 대놓고 양이 적다는 이야기를 해도 직원은 그냥 웃기만 했다. 수현을 잘 아는 눈치였다.

“4인분 드시면 맞으세요.”

이분은, 이라는 직원의 설명에 현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창때인 20대 남자의 기준에서 생각하면 결코 많은 양은 아니다.

“……그래, 4인분하고 해물전하고 만두 1인분 주세요. 고기만두로.”

“네. 그럼 전골 먼저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싹싹한 태도로 주문서 작성을 마친 직원이 카운터로 빠진 뒤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던 수현은 앞에 앉은 현규를 힐끔거렸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만 움직여 현규를 살피는 그 눈빛에 막 물티슈 봉투를 찢던 현규가 그쪽을 보지도 않은 채 툭 하니 말을 던진다.

“할 말 있으면 해.”

안 어울리게 눈치 보지 말고, 라고 현규가 혀를 차는 걸 본 수현은 다 쓴 물티슈를 차곡차곡 접어 옆에 내려 두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냥 안 마실래요.”

“응?”

“소맥 안 마실래요. 곱창만 먹을게요.”

대신 막창도 같이요, 라며 젓가락을 세팅하는 수현의 앞에서 물잔을 건네주던 현규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왜?”

“……형이 마시라고 하니까 이상해서요.”

뭔가 꿍꿍이가 있는 눈빛이었다고, 수현이 여전히 경계하듯 현규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본 현규는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그런 건 귀신같이 알아챈다.

의외로 생존본능이 강한 타입이었다, 수현은.

“……진짜, 눈치가 많이 늘었네.”

“제가 학습을 잘해요.”

먹고 싶은 소맥을 못 먹게 된 건 상관없이 현규의 트릭을 알아챈 자신을 칭찬해 달라는 듯 뿌듯해하는 수현의 눈빛에 현규는 싱긋 웃었다.

혼자 먹을 게 아니라 어차피 같이 먹을 건데 네가 앞에서 소맥을 말면 퍽이나 안 먹겠다 싶어서였다.

혼인 신고한 날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보곤 침을 삼키며 미어캣처럼 목을 빼던 수현을, 현규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현은 절대 그 유혹을 못 떨친다.

얘도 은근히 주당이다.

“그러든가…….”

넌 어차피 먹게 돼 있다고 웃던 현규는 문득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의 화면이 환해진 걸 보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느긋하고 우아하게, 점심시간에 누가 전화질이야, 라는 시선으로.

하지만 그 여유는 1초도 가지 못했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본 순간 마하의 속도로 휴대폰을 엎은 현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앞을 돌아봤다.

최대한 침착하고 차분하게.

하지만 어쩐지 그답지 않게 격렬하게 흔들리는 눈동자에 수현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전화 온 거 아니에요?”

“아니.”

“……백해경이라는 이름 봤는데요.”

검은 화면을 가득 채운 이름과 그 옆에 ‘볼드모트’라고 쓰인 것도 봤는데, 라고 수현이 눈을 깜빡이자 현규가 모처럼 자상하게 웃는다.

“잘못 본 거야.”

“……저 시력 양쪽 다 1.5인데요.”

“그래도 잘못 본 거야. 백해경이라는 사람은 내 전화번호 리스트에 없어.”

“어? 하지만 둘째 형이 형 아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고 수현이 반박하자 현규가 이를 악문다.

“……이지수가?”

“네.”

“언제?”

“형하고 제가 사귄다고 한 날 전화해서 백해경 씨 피하려고 저랑 사귀는 척하는 거라고 했는데요…….”

순간 물이 가득 찬 물잔을 탕 하고 내려놓은 현규가 팔짱을 끼며 느긋하게 수현에게 묻는다.

“……이지수가 그래?”

내가 백해경 피하느라 너랑 사귀는 거라고,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 뒷말은 내뱉을 수 없었다.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도 싫어서였다. 떠올리기만 해도 진저리가 쳐지는 존재에 현규는 애써 웃으며 어서 답해 보라는 듯 고압적인 시선으로 수현을 내려다봤다.

잔뜩 화가 난 게 분명한 그 눈빛에 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다른 사람은?”

“네?”

“다른 사람은 얘기한 적 없냐고, 백, 해……경에 대해.”

서주영이나, 해준 형이나, 진원 형이나, 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수현도 이건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형이 말하는 ‘다른 사람’은 그와 유학 시기가 겹친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걸.

그것도 지수가 백해경이 돌아왔다고 한 부분에서 추론한 거다.

유학 시절에 알던 사이라고.

“아뇨. 들은 기억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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