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직접 만나 보고 말해.”
- 직접 만나면 뭐가 다른데?
“네 관점이 바뀔 거야. 그럼 알아들었다고 생각할게. 자나 깨나 입조심. 잠꼬대도 조심. 네 입은 뇌 영역에 있지 않고 근육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고 늘 조심해.”
- 알았다고…….
“그리고 그 녀석한테 연락 오면 무조건 바쁘다고 하고 끊어. 그리고 나에 대해 뭘 캐내려고 하면 모른다고 해. 만에 하나라도 더 정보가 흘러나가면…….”
거기까지 말한 순간 지수가 더는 듣기 싫다는 듯 말을 자른다.
- 알았어, 알았다고! 조심한다고!
“당분간 지켜볼 거야, 너.”
- 아, 진짜! 왜 너까지 그래? 집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라 짜증 나는데!
“그러게, 왜 그럴까?”
그걸 모르니까 네가 문제인 거라는 현규의 다정한 답에 지수가 욱해 대꾸한다.
- 그래도 너보다는 내가 인성은 낫지.
“응. 아냐. 끊어.”
가족이니, 닥치라는 말을 상냥하게 돌려 한 뒤 서둘러 통화를 마친 현규는 휴대폰에 남은 알림을 확인했다.
쓸데없는 연락은 아예 안 받으려고 전부 착신 거부를 한 상태라 새 알림은 거의 없었다.
팀원들의 연락이 몇 개 있었지만 그건 천천히 답해도 되는 일이라 막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다시 화면이 환해졌다.
또 볼드모트다.
내가 아무리 급했어도 얘 번호를 착신 거부 해제하는 게 아니었는데, 라고 후회해 봐야 이미 늦은 일이다.
[나중에 연락해. 바빠.]
받은 게 있으니 빚은 갚아야겠지만 지금 통화하기는 싫어 메시지만 보낸 뒤 서둘러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만두전골을 보다, 찐만두를 하나 입에 넣고는 밖을 바라보던 수현은 막 가게로 돌아온 현규를 보곤 반색했다.
“형, 다 익었어요.”
“그래.”
“지수 형하고 통화 잘했어요?”
“응. 당분간 연락 안 할 거야.”
“지수 형이요?”
“응.”
당연하다는 현규의 답에 수현은 놀란 듯 눈을 한 번 껌뻑이곤 중얼거렸다.
“……우리 형이, 형 진짜 무서워하나 봐요.”
“그 녀석도 생존 본능은 강하니까.”
진심으로 현규를 존경하는 듯한 수현의 눈빛에 현규는 으쓱한 기분으로 앞접시에 만두와 칼국수를 가득 담아 수현에게 건넸다.
“먹어.”
“네.”
앞으로 당분간은 큰형만 상대하면 된다고 안도하며 수현은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러곤 곧 맛있게 겉절이와 칼국수를 먹는 모습에 본인 그릇을 채우던 현규가 수현을 힐끔거린다.
마치 탐색하듯, 조심스럽게.
“……맛있어?”
“네.”
“다행이네. 그리고 혹시, 최근 주변에서 이상한 사람 본 적 없어?”
맥락 없이 이어진 질문에 막 겉절이를 집던 수현이 눈을 껌뻑인다.
“최근 나간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요…….”
우문현답이다.
오늘 오전까지 나흘간 집, 아니 그것도 침실에만 처박혀 있었는데 그런 걸 왜 물으시나요, 라는 수현의 눈빛에 현규는 아차 한다.
그렇지, 얘 어제까지 발정기였지…….
너무 당황해 깜박했다.
“내가 출장 중일 때 있었나 싶어 물어본 거야. 아버지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형 출장 중에야 이상한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그건 이미 다 말했는데요.”
그래, 그랬다.
전화로 다 말하긴 했다.
“그 외엔 없었어?”
뭐든 떠올려 보라며 현규가 재촉하자 겉절이를 든 채 잠시 기억을 더듬던 수현이 고개를 내젓는다.
“……제 기억에는 없어요. 애초에, 제가 사람을 만날 일이 그다지 없어서…….”
심지어 사내에서도 다른 팀 직원 만날 일이 거의 없다는 수현의 고백에 현규는 쓰게 웃고 말았다.
확실히 수현의 생활권은 심하게 좁은 편이었다.
집, 회사, 집.
그나마 집과 회사 사이도 20미터 남짓밖에 안 되는 거리라 수현이 만나는 사람들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낯선 이와 접촉했다면 모를 수가 없다.
무엇보다 수현의 기억력이 귀찮을 정도로 좋은 편이라…….
“그래, 그렇겠지……. 그래도 혹시 주변에 이상한 사람이 접근하면 곧장 나한테 전화해. 그리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받지 말고 나한테 먼저 연락하고.”
“왜요?”
거리에 미친놈이 돌아다니니까, 라고 하려다 현규는 단어를 바꿨다.
자꾸 입이 저렴해지려 하고 있다.
“선생님도 그러셨잖아. 당분간 조심하라고. 이성과 상식이 있는 알파라면 절대 접근 안 하겠지만 세상은 넓고 미…… 매너 없는 놈은 많으니 경계해야지. 이젠 알파 알아볼 수 있지?”
“……제가 발현 후에 본 사람이 형뿐이라 그건 확신 못 하겠는데요.”
병원에서 검사할 때 알파가 있었다는데 그것도 몰랐다고, 수현은 솔직히 답했다.
그리고 현규는 바로 수긍했다. 발현 초기에는 아직 페로몬 반응에 익숙하지 않아 잘 모를 수 있다.
폐쇄되고 좁은 공간에 갇히지 않는 한은.
“그럼 그냥 외워. 눈에 띄는 엄청난 미인인데 눈이 좀 돈 것 같은 녀석이 나타나서 말을 걸 거나 빤히 쳐다보면 절대 상대하지 말고 도망가.”
지나치게 구체적인 설명에 막 만두 위에 버섯을 쌓고, 그 위에 겉절이까지 얹어 입에 넣으려던 수현이 현규를 빤히 바라봤다.
순간 수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챈 현규는 국자를 세게 쥐었다.
국자를 든 현규의 손등에 심줄까지 서는 걸 본 수현은 입을 벙긋하려다 곧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얌전히 숟가락을 입에 넣었지만 수현의 건방진 눈빛은 이미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내뱉은 후였다.
‘그건 형 몽타주 수준인데요, 특히 눈이 돌았다는 부분에서.’라고.
하지만 이젠 제법 눈치가 생긴 수현이 다시 부지런히 만두를 먹는 모습에 현규는 국자를 내려놓은 뒤 겉절이 접시를 수현의 앞으로 밀었다.
“저녁은 곱창 먹고 싶다고?”
“……네.”
“다니는 가게 있어?”
“집 근처에 곱창 잘하는 데 있어요.”
“그래, 많이 먹어. 후식은 뭐 먹을래?”
“커피요. 라테.”
우리 오피스텔 1층, 이라고 수현이 콕 찝어 데이트 장소까지 정하자 현규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살 많이 빠졌으니 당도 높은 것도 먹어.”
슬슬 현규도 본격적으로 식사하기 위해 막 젓가락을 쥐는데 수현이 의심스러워하는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그 시선이 아주 불손했다.
“……표정이 왜 또 그따위지?”
나한테 불만 있냐는 의미의 반문에 수현이 다시 젓가락을 움직이며 작게 웅얼거린다.
“……왜 자꾸 먹이려고 하나 해서요…….”
또 뭘 하려고, 라는 의심 가득한 수현의 눈빛을 보며 마주 보며, 현규는 싱긋 웃었다.
“친절하게 대해 주는데도 불만이라면 막 대해 줄까?”
“그게 형답기는 해요.”
형이 친절하면 무서우니까요, 라고 안 해도 되는 말을 더한 수현은 겉절이에 손을 뻗었다.
순간 짜증이 나 수현이 막 집으려던 겉절이를 빼앗자 수현이 바로 이거라는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린다.
“형은 이런 게 더 어울려요.”
순간 현규의 손이 멈칫했다.
본인이 보기에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 본인과 어울린다는 수현의 반응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너한테 내가 이런 이미지라고?”
“네.”
“……내가 너한테 못되게 군 적이 있었나?”
“애초에, 그 정도로 가까이 접촉한 적이 없을걸요.”
2살 차이다 보니 중·고등학생 시절 각 1년씩만 같이 다녔는데 그 시절 1학년과 3학년은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일단 덩치부터가 다르고 교사(校舍)도 멀리 떨어져 접점이 없다.
그러고 보니 진짜 서로 10미터 근방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이상할 정도로 두 사람이 자주 부딪쳤던 거다.
“그럼, 어렸을 때 왜 그렇게 나만 보면 피해 다녔는데?”
“형이 무서워서요.”
“그러니까 왜?”
“무서우니까요.”
“그러니까, 뭐가 무서운데?”
“형은 존재 자체가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