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160)

내일은 더 맛있을 테고.

여기에 수현이 준비해 놓은 구운 편 마늘과 닭 넓적다리 튀김까지 얹는다면 극락 확정이다.

아직 안 먹어 봤어도 뻔히 보였다.

다만 여기서 또 추가되는 문제가 토핑할 편 마늘은 1kg이고 닭은 3팩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널 많이 사랑하긴 하지만 이건 다 못 먹어.”

그러니 제발 그만하라고 현규가 수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 순간 멈칫했다.

“열나잖아.”

“……네?”

“이마 뜨거워.”

이마를 짚은 현규는 걱정스러운 듯 수현을 내려다봤지만, 정작 장본인인 수현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냥 평소랑 똑같은 기분인데, 라고 수현이 중얼거리자 현규가 정확한 증상을 설명해 준다.

“지난번처럼 몸이 후끈해.”

“어……그렇게 말하니까 좀 나른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멍했나 보네.”

어쩐지 집에 돌아온 이후로 애가 좀 멍해 보이긴 했다. 기운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지만 뇌를 쉬게 하기 위해 멍 때리는 중이라고 하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이상 증세였다.

병원에서는 별말 없었는데 역시 오랜만에 외출한 게 문제였나, 아니면 나흘 내 벗겨 둔 게 문제였던 걸까?

아니, 그래도 상의는 입혀 놨는데…….

갑자기 머릿속을 도는 복잡한 생각들에 일단 수현을 데리고 침실로 들어간 현규는 사이드 테이블 서랍에서 체온계를 찾아 수현의 체온을 쟀다.

역시나 36도 8분.

미묘하다. 열이 안 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난다고 하기도 모호하다.

이것도 지난번과 비슷하다.

“오늘 피곤했나 보네.”

“아니요. 잘 먹고 편하게 다녀서 피곤하진 않아요.”

“발정기가 끝난 지 얼마 안 됐잖아.”

나흘 내내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 섹스만 했으니 지칠 만도 하다고 현규는 조금 미안해했지만 수현은 그 부분에서는 의외로 쿨했다.

“그 정도야 뭐…….”

한 달 넘게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고 작업에만 매달릴 때도 있는데, 이쯤은 별거 아니었다.

솔직히 수현도 이번에 깨달은 거지만 자신의 기초 체력은 아주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몸이 나른하긴 해 이불 속으로 파고들자 현규가 뺨을 만져 준다.

“쉬고 있어. 배는 안 고파? 밥 먹고 쉴래?”

“아뇨, 그냥 좀 잘래요. 자고 나면 저번처럼 괜찮을 거예요.”

“그래.”

말을 마친 뒤 이불을 꼭꼭 덮어 준 현규는 조용히 침실을 나가 문을 닫았다. 그러곤 곧 식탁 위에 올려 둔 휴대폰을 손에 들고 창가 쪽에 서서 해준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게 이상해 다시 한번 전화를 했지만, 역시나 몇 번인가 통화음이 울리다 대기음으로 넘어가는 걸 보니 통화를 거부한 모양이었다.

[지금 연락 주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본의는 아니지만 지금 연락 안 하면 큰일 날 거라는 협박조의 메시지를 보낸 뒤 잠시 기다리자 역시나 해준 형 쪽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런 면에서는 성실한 사람이긴 하다.

나라면 즉시 착신 거부했을 텐데…….

- 또 왜?

난 너희 둘이 잘 살라고 간섭도 잔소리도 없이 충실하게 방치 플레이를 행하는 중인데 왜 너흰 사람을 가만두지를 않냐는 푸념이었다, 그건.

그걸로 현규는 알아챘다.

해준이 주영이와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던 중이라 연락을 무시했다는 사실을.

데이트를 하든, 집 안에 있든.

하지만 그건 현규가 알 바 아니었다. 이쪽 일이 더 급하다.

“수현이가 아파요.”

- 응?

“또 열이 나는데요.”

- 오늘 병원 다녀왔다며?

“네. 병원에서는 괜찮았어요. 점심도 잘 먹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 뒤로 몸이 안 좋은가 봐요.”

- …….

“지난번처럼 애매하게 미열이 있는데 해열제를 먹일까요?”

그때는 안 먹고 넘어갔지만 그래도 되냐는 현규의 걱정에 해준이 재빨리 그를 막는다.

- 아냐. 약은 먹이지 마.

“왜요?”

- ……임신일 수도 있어.

확실하지 않아 조심스러웠지만 혹시 몰라 해준이 그렇게 말을 던진 순간 현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임신이요?”

순간 너무 커진 자신의 성량에 현규 본인이 아차 해 입을 다문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 침실 쪽을 봤지만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수현이 깨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현규는 서둘러 대화를 이었다.

“설마, 벌써 임신일 리가요…….”

- 진짜 그렇게 생각해?

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내가 수현이 발정기 때 네 아랫도리를 두 눈으로 봤는데, 라는 해준의 책망을 듣던 현규는 입을 딱 다물었다.

순간 해준이 그 보라는 듯 혀를 찬다.

- 발정기 중에 콘돔을 썼을 리도 없고, 넌 원래도 안 쓸 것 같으니까…… 타율이 높았겠지. 특히 강 대표님 생각하면…….

진정한 짐승의 왕이자 정자 왕, 다산의 상징인 네 부친을 떠올려 보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현규 역시 더는 해준의 가설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솔직히 어느 정도 기대는 했었다.

임신까지 하면 완벽하다고.

그래서인지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내리며 모른 척 물었다.

“그런데 임신하면 열이 나나요?”

- 임신 초기에는 컨디션이 오락가락해. 윤겸 형도 그랬어. 형은 수현이 가졌을 때 딱 미열 나니까 임신인 거 알아서 정현 형부터 죽여 버린다고 했지만.

“……그럼 병원에 가야 할까요?”

- 아니. 아직 확실하진 않으니까 일단 기다려. 너, 나흘 내내 애 벗겨 뒀을 거 아냐?

역시나 이번에도 뜨끔한 그 지적에 현규가 묵비권을 행사하자 해준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 지금은 너무 짚이는 게 많아 원인이 뭔지 정확히 모르니까, 일단 보일러 온도 올리고 당분간은 지켜봐. 내가 본가에 연락해서 쌍화탕 내려 놓은 거 보내라고 할 테니 열이 계속 오른다 싶으면 먹이고.

“그건 먹어도 되는 건가요?”

- 어차피 몸살감기 약은 수현이 기준으로 지은 거야. 다른 녀석들은 어지간하면 먹고 안 죽을 테니까.

수현 외의 다른 형제들에게는 가차 없었다, 해준도. 그런데 그건 현규도 이해가 갔다.

그 집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안 죽을 것 같긴 하다.

“그럼, 괜찮을까요?”

- 오늘 오전에 병원 갔을 때는 괜찮았다며? 병원에서 특별한 말 없었으면 괜찮을 거야.

“다음 주에 한 번 더 내원하라고는 했습니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고.”

그제야 나온 자세한 설명에 해준이 땅이 꺼져라 숨을 내뱉었다.

이건 이미 진단 나온 거다.

- ……임신 맞네…….

수화부 너머에서 “수현아…….”라는 탄식이 들려온 순간 현규 역시 아차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상황에서 다시 병원에 오라고 할 이유가 달리 없다. 워낙에 수현의 케이스가 특이하다 해도 이미 발현까지 한 상황이라면, 추가 검진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뿐이다.

“아…….”

- 초기에는 원래 혈액 검사 결과로 잘 아는데 아마 극초기라 정확하지 않으니까 얘기 안 했을 거야. 그래서 일주일 후쯤에 다시 한번 검사해 보라고 한 거고.

“그냥 내일 가면 안 나오나요?”

막상 임신이 현실로 다가오자 몸이 단 듯 현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당황함과 기쁨, 놀라움과 조급함이 복합적으로 배어나는 그 반응에 해준은 기가 찬다는 듯 웃었다.

- 나오겠냐?

오늘 안 나온 결과가 내일은 퍽이나 나오겠다고 해준은 굉장히 현규를 한심해했다.

그리고 현규 역시 그러한 기색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냥 모른 척하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아기다.

“그럼, 꼭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고요?”

- 응.

“다른 검사는요?”

MRI, CT, 초음파, 뭐 그런 거 없냐는 현규의 재촉에 해준은 마치 개를 훈련하듯 목소리 톤을 낮췄다.

- 안 돼. 기다려. 확실해질 때까지 수현이나 잘 돌봐 줘.

“내일, 우리 재단 쪽 병원으로 데려가겠습니다.”

- 그래 봐야 소용없다니까. 수현이는 지금 막 첫 발정기가 끝난 상태라 변수가 많아. 일단 기다려. 그리고 수현이한테도 아는 척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알리지 마. 확실해질 때까지는. 수현이한테는 지금 안정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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