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160)

“어디로 가는데? 나도 어차피 나갈 건데 내가 태워다 줄게.”

- 아니에요. 가까워요. 택시 타면 3분이면 돼요.

3분 거리라면…….

“해준 형 만나는 거야? 아니면 주영이?”

- 아뇨. 삼촌하고는 아까 통화했어요. 그냥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무슨 볼일?”

- 그냥, 뭐 살 게 있어요.

“그럼, 사람 시켜. 그러지 않아도 너한테 비서 붙여 주려고 했는데……. 쇼핑이나 소소한 일들 처리해 주고 필요할 때 같이 식사도 해 주고 운전도 해 주면 좋으니까.”

따로 기사를 붙일까 했지만 그러기엔 수현의 생활권이 너무 좁다.

그러니까 아예 전반적인 일을 봐주는 비서가 붙는 쪽이 낫다. 어차피 수현이 멀리 나갈 일은 드무니까 오늘 같은 경우 잠깐씩 운전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혹은 아예 대신 필요한 물건들을 쇼핑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곧 몸도 무거워질 테니 필요하긴 하다.

“연상? 연하? 아니면 동갑이 나으려나? 아니면 혹시 너희 집에서 관리해 주던 사람 있어? 그럼, 우리 쪽으로 스카우트할게.”

- 아뇨. 형 걱정하는 건 알지만 그건 싫어요. 전 제 공간 안에 타인이 있는 거 싫어해요.

“왜?”

- 그냥, 전 제 공간 안에는 저랑 편한 사람들만 있는 게 좋아요. 그러니까…….

거기까지 말한 뒤 수현은 주변 눈치를 살피는 듯 잠시 말을 끊었다, 이었다.

- 그러니까, 형만 있으면 좋겠어요.

아주 작게 조금 수줍은 듯 조곤거리는 음성에 저도 모르게 벽을 손으로 치고 말았다.

얘 때문에 진짜 미칠 것 같다.

- ……형?

내가 갑자기 죽으면 얘 때문에 죽은 거다.

귀여워 미치겠다는 생각에 거친 숨을 몰아쉬던 현규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침착하게 물었다.

“너 지금 어디야?”

- 사무실요.

“잠깐 나와.”

- 어…… 저도 이제 나가야 하는데요?

“나도 나가야 돼. 그러니까 잠깐만 봐. 수면실로 와.”

- ……또 왜요?

무슨 짓을 하려고, 라는 말투에 현규는 재빨리 말을 더했다.

“다른 짓 할 시간 없어. 얼굴만 볼 거야.”

미팅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점심시간이라 차가 막힐 걸 감안해도 약속 장소까지는 15분이면 충분하다.

그럼 남는 시간은 15분인데, 주차장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10분 정도 여유가 있다.

누구는 10분이면 충분하다 할지 몰라도, 10분 안에 뭘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은 빠르지 않다.

그리고 한 번으로 끝낼 자신도 없다.

- ……진짜요?

“그래.”

- 그럼, 지금 갈게요.

“나도 내려갈게.”

마음이 급해 시각을 확인하며 사무실로 돌아와 겉옷과 가방을 챙긴 현규는 팀원들에게 10분 후에 지하 주차장에서 보자는 말을 남긴 뒤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19층에서 내려섰다.

보통 수면실은 왼쪽 복도 끝에 위치해 있다.

마음이 급해, 빠른 걸음으로 왼쪽 복도를 가로지르는데 얼마 가지 않아 구석에 붙은 작은 팻말이 보였다.

수면실

여기가 문제의 19층 수면실이었다.

온 김에 주변을 확인해 보니, 마침 왼쪽은 탕비실이고 오른쪽은 서버실이다.

나름 수면실이라 가장 조용한 구석에 배치한 모양인데 나쁜 짓을 하기 최적이다.

문까지 잠긴다면 더욱.

수현이 알면 질색할 생각을 하며 훑듯이 주변을 확인한 현규는 이내 주변 파악을 끝내곤 문고리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문이 열리며 그 안에 있던 수현이 열린 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오셨어요?”

4시간 만의 조우가 반가운지 빼꼼히 고개만 내민 수현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말갛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하얀 얼굴에 더는 참지 못하고, 벌컥 문을 연 현규는 수면실 안으로 들어가 가방과 옷을 소파 위에 대충 집어 던졌다.

그러곤 곧 회계팀 팀장의 조언대로 미닫이문을 들어 닫자 탁, 하고 뭔가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로 알았다. 벽 안쪽의 레일에 뭔가 튀어나와 있다는 걸.

그래서 문을 들어 닫으면 거기에 걸려 잠기는 듯했다.

확실하게 문이 잠긴 걸 확인한 순간 현규는 망설임 없이 수현을 안고 입을 맞췄다.

벽에 밀어붙인 채 다소 거칠게, 아침에 하지 못했던 만큼 길고 진하게 계속되는 키스에 수현 역시 팔을 뻗어 현규의 목을 끌어안았다.

얽혀 오는 숨결은 거칠지만 달콤했고, 코끝을 스치는 냄새는 부드럽고 상쾌했다.

너무나 좋아하는 냄새와 감촉에 정신없이 입을 맞추며 몸을 더듬던 사이, 현규가 먼저 입술을 뗐다.

수현을 더 만지고 싶었지만 이 이상은 위험하다.

이 이상 하면 오늘 미팅은 무단 펑크다. 그사실을 되새기며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부여잡은 현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수현을 내려다봤다. 그러곤 곧 손을 뻗어 흘러내린 수현의 앞머리를 쓸어 넘겨 줬다.

이렇게 보면 눈이 예쁘다.

진짜 강아지 같다.

그래, 말 안 들을 때도 강아지 같다. “왜요?”만 반복하며 아래에서 위를 쳐다볼 때는 딱 말 안 듣는 강아지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니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때 눈동자를 굴리는 것도 딱이다.

굳이 말하자면 레트리버, 아니면 사모예드? 그것도 아니면 비글?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양육 난도는 높은데 환장하게 귀엽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4시간 만인데요?”

“4시간도 길지.”

어제까지는 종일 붙어 있었으니까, 라며 현규가 슬쩍 수현의 허벅지 사이로 다리를 넣어 누르자 수현이 놀라 아래를 내려다본다.

“……형, 섰어요.”

그건 안다. 키스하는 순간 섰다.

필사적인 인내심으로 참고 있긴 하지만 사실 아침부터 아슬아슬했다.

“좀 있으면 가라앉을 거야.”

아마도, 어쩌면, 이라는 자신 없는 답을 덧붙인 뒤 현규가 다시 수현의 이마에 입을 맞추자 수현이 작게 중얼거린다.

“형, 이제 안 서는 줄 알았어요.”

“응?”

“아침에 그냥 가서…….”

평소의 현규라면 오늘 아침 같은 상황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았을 거다. 삽입이 시간상 무리라면 성기를 대고 비비거나, 허벅지 사이에 문지르기라도 했을 텐데, 옷만 벗겨 놓고 손도 안 대고 물러서서 발기 부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제대로 서는 걸 보니 다행이라고, 수현은 아래를 빤히 바라보며 안도했다.

오전 내 그게 신경 쓰였는데.

“그건 날 너무 우습게 본 것 같은데? 난 종일도 발기할 수 있어.”

“그럼 큰일 나요.”

형이 아니라 내가, 라며 드디어 안심한 듯 웃던 수현은 다시 자신의 아랫배 위에 닿은 딱딱한 성기의 감촉에 살짝 입술을 달싹였다.

“잠깐이면, 해도 되는데…….”

넣는 건 힘들어도 만지기만 하는 거면, 이라며 수현이 중얼거리는 순간 아랫배를 누르는 압박감이 더 커졌다.

지나치게 적나라한 그 감촉에 수현은 언제나와 같이 필터 없이 말을 내뱉었다.

“어? 더 커졌다.”

계속되는 수현의 생중계에 현규는 서둘러 수현을 품에 끌어안았다. 그러곤 다소 거친 호흡으로 작게 수현을 불렀다.

“수현아…….”

“네?”

“……좀 닥쳐.”

네 목소리 들으면 더 선다는 현규의 타박에 수현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대신 손을 들어 현규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기를 잠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현규의 성기에 손목시계로 시각을 확인하던 수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형, 이거 안 가라앉을 것 같은데요.”

“조금만 더 참아 보고.”

“그냥 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시간이 빡빡해. 그리고 지금 하면 절대 한 번으로 안 끝날 거야.”

시간도 시간이지만 지금 하면 다정하게 할 자신이 없어 현규는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 아버지나, 이지수, 그리고 해준 형이나…… 백해경 같은 거…….

마지막 얼굴이 떠오른 순간 빠르게 열기가 식었다.

놀라운 효과였다.

백해경을 극도로 혐오하긴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상상 이상으로 자신이 그 녀석을 싫어했던 모양이다.

어쩐지 그 녀석 이름만 들어도 식욕이 떨어지더라.

“……어?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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