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160)

“……이번에 결혼하셨다고요?”

점심 식사를 겸한 미팅 자리에서 늙은 구렁이 같은 영감이 건넨 질문에 현규는 또 기어 나오려는 성질을 간신히 참았다.

일 때문에 만나서 왜 이런 걸 묻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수현과의 결혼 이야기라 애써 담담히 답했다.

“네. 최근에요.”

“파트너분이 한성 막내시라던데요?”

이미 기사로도 나간, 모두가 다 아는 일을 굳이 묻는 부분에서 그의 의도가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어, 사적인 정보를 끌어내려는 거다.

친목을 위해서든, 충족을 위해서든.

친목은 필요하지만 이런 탐색은 불편하다.

솔직히 귀찮다.

“일 얘기부터 하실까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는 말을 돌려 한 순간, 가방 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짧게 한 번. 메시지 알림이다.

그 신호를 알아채자마자 먼저 상대에게 양해를 구한 현규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화면을 켠 순간 바로 위에 떠오른 메시지에 인상을 찌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보통 때라면 그런 메시지는 무시했겠지만 그럴 수 없던 건 알림 창에 뜬 이미지가 이상하게 눈에 익은 탓이었다.

작지만 아주 익숙하다.

특히 저 말 더럽게 안 들을 것 같이 생긴 이마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급한 마음에 일단 양해를 구한 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떠났다.

하지만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를 써도 손이 부들거리고 있었다.

분해서인지 놀라서인지 계속해서 떨려 오는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서 꽂은 채 설정 화면으로 들어가 걸어 놓은 착신 거부를 모두 풀었다.

정신없이 바쁜데 지수와 아버지가 하도 전화를 해 대는 바람에 가족 그룹을 전부 착신 거부해 뒀는데 거기에 해준 형도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다.

의도치 않은 상황에 초조한 손길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곤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데 정확히 신호음이 두 번 울린 뒤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그걸로 금세 알아챘다.

지금 자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착신 거부라는 걸 당했다는 사실을.

“젠장…….”

* * *

[주문하신 상품 재고 확인했습니다. 사이즈 확정해 주시면 곧 픽업 가능하게 준비하겠습니다.]

나른한 오후, 카페인이 부족해서인지 졸린 눈을 비비던 수현은 점심시간에 주문한 상품의 재고가 확보됐다는 메시지에 곧장 답장을 보냈다.

[곧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답장을 적어 발송 버튼을 누른 수현은 다시 보고 있던 애플리케이션을 켜 검색 페이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허탕이다. 오후 내내 검색창을 붙들고 있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는 정보는 없었다.

그냥 직접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또 잠깐 멍해졌다.

졸리다. 그리고 나른하다.

플라세보 효과를 노렸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디카페인은 디카페인이다.

카페인이 안 되면 타우린은 어떨까, 고민했지만 잠시 그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 깨닫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각성제를 끊으려는 건데 카페인 대신 타우린을 섭취하면 무슨 소용이냐?

몸이 카페인을 잊는 데 한 달이 걸린다니 딱 한 달만 참자.

그렇게 다짐하며 쭈욱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드는데 바로 앞에 앉은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바로 그 순간 너무 눈에 띄게 휙 하니 고개를 숙인 직원이 뭣도 없는 책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최근엔 서류도 전부 전자 서류라 뭐 뒤질 것도 없는데 마우스와 키보드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아함이 들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정확히는 꺼림칙했다.

그러고 보니 다들 너무 조용하다.

지금쯤이면 여기저기서 키보드 소리가 울려야 하는데…….

평소와 다른 사무실 분위기에 기지개를 켠 자세 그대로 천천히 사무실 안을 돌아봤다.

사무실 내의 직원은, 팀장님을 제외하고 아홉 명이었다.

그런데, 사무실을 돌아보는 사이 그중 세 명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들 모두 자신과 눈만 마주치면 갑자기 책상을 정리하거나 부산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려 댔다.

그 부분에서 강력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분명,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아마…….

순간 훅 하니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에 이번엔 아예 의자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팀장님이 후다닥 시선을 피한다.

그러곤 예외 없이 노트북과 태블릿뿐인 책상 위를 정리하며 수선을 피우기 시작했다.

“거기 아무것도 없어요…….”

원래 거기 있어야 하는 것들 다 내 책상에 떠넘기지 않았냐고, 모니터와 책상 위에 붙은 포스트잇을 툭툭 두드리자 양심은 있는지 움직임을 멈춘다.

대신 이번엔 아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잠깐 인사팀에 간다는 걸 깜빡했네. 그럼, 다들 수고. 일 없다고 놀지 말고. 그리고 이 대리.”

그렇게 호명한 후 윤 팀장은 턱으로 문을 가리켰다.

그건 같이 가자는 의미였다.

인사팀에 가는데 저는 왜요, 나 이직 안 하는데, 라는 말을 줄여 입 모양으로 “왜요?”라고 묻자 윤 팀장이 손을 들어 본인 입을 가로로 찍 긋더니 다시 문을 가리킨다.

그냥 좀 닥치고 따라오라는 뜻이다.

“저도 잠깐 서버실에 다녀오겠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모두 그 수신호를 봤지만 모른 척해 줬다. 그래서 자신도 아닌 척 인사를 남기곤 휴대폰만 손에 든 채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러곤 먼저 나간 윤 팀장님을 따라 사무실을 나오는데 먼저 나와 있던 윤 팀장님이 말없이 손끝으로 서버실을 가리킨다.

그쪽으로 오라는 제스처에 일단 그쪽으로 따라가 안으로 들어서자,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 든 윤팀장이 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그러더니 수현의 휴대폰을 손으로 가리킨다.

“메시지 확인해.”

“왜요?”

그냥 말로 하지, 라고 하면서도 휴대폰을 확인한 수현은 메시지 창에 뜬 URL을 눌렀다.

순간 화면에 뜬 건 ‘오늘의 증권가’라는 익명 게시판이었다.

모 그룹 최대 주주 와이프 이직 썰.

“응?”

이걸 왜 나한테, 라는 의문을 갖고 일단 읽어 보니 내용은 간단했다.

얼마 전 요란하게 최대 주주랑 결혼한 평사원의 이직설이 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 이거 저예요?”

“응.”

“……저 이직 안 하는데요?”

이직 이야기가 나온 엘리베이터에서도 절대 이직 안 한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건 무슨 소리냐 싶어 보니 아래로 몇 개의 댓글들이 달려 있다.

Noname 1

이직은 이직이지. 재벌가로 이직. ㅋㅋㅋㅋ

Noname 2

애 낳으러 가나 보지.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는 내용들이라 별생각 없이 쭈욱 스크롤을 내리는데 갑자기 분위기를 전환하는 댓글이 하나 보였다.

Noname 18

결혼하고 이직하는 거면 딱 세 가지 경우지. 계열사 쪽으로 영전하거나, 미술관 관리 같은 일로 빠지거나, 아니면 이혼 각.

Nonam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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