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160)

결혼한 지 얼마 됐다고?

Noname 18

급하게 결혼했으니 이혼도 급하게 하나 보지. 그 최대 주주 한국 들어온 지 일주일만에 결혼했다며?

Noname 16

노노. 평사원 아님. 그 사원도 재벌 3세임. 그것도 그 집안 애지중지 막둥이. 애초에 최대 주주랑 결혼하려고 그 회사 입사한 거임. 아마 유학도 같이 했을걸. 신데렐라 썰은 홍보용으로 제작한 거고. 같은 회사에서 사랑에 빠지고 보니 재벌가, 뭐 그런 거임. 어차피 쟤들도 자기 수준에 맞는 애들 만나게 돼 있거든.

Noname 18

그럼 더 문제 아니냐? 그러면서 웬 이직?

이쪽은 이직 이야기를 한 적도 없는데 어느새 이야기가 이혼설로까지 발전해 있었다.

전형적인 침소봉대다.

“……이건 뭐예요?”

“우리 대화를 누가 들었나 봐.”

“엘리베이터 앞에서 얘기했으니 당연히 다들 들었겠지만, 전 이직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요?”

“이직까지만 듣고 소설 쓴 거야.”

아니면 다 들었어도 못 들은 척하는 거거나, 라는 윤 팀장의 뼈 있는 의견에 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가 보죠.”

“홍보팀에서 곧 삭제 조치 할 거야. 그런데 SNS로도 꽤 퍼져서…….”

“SNS요?”

“응. 이런 거 주로 다루는 계정들이 있거든.”

SNS의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다양해 온갖 루머와 불법들이 판치는 곳이었다. 게시판은 관리자를 통해 즉시 삭제가 가능하지만 SNS는 그것도 쉽지 않다.

“뭐…… 이미 퍼진 거 어쩔 수 없죠.”

“미안하네. 내가 괜히 이상한 소리 해서.”

“미안한 줄 알면 나중에 밥 사 주세요.”

“사 줄게. 그런데 강 팀장은 연락 없어? 전기팀에도 보고 들어갔을 텐데?”

“오늘 외근이에요. 완전히 헛소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 있어야 신경이라도 쓰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픽션이라 별 감흥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게 있다.

“팀장님.”

“응?”

“잠깐 제가 팀장님 손 좀 써도 될까요?”

“응?”

“잠시만요.”

말과 동시에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머리에 얹은 수현은 아리송해하는 얼굴로 인상을 썼다.

“이 정도면 비슷한 것 같은데…….”

“뭐가?”

윤 팀장의 물음에도, 멋대로 남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수현은 그의 왼손 약지를 보곤 물었다.

“팀장님, 반지 사이즈 몇이에요?”

“……에 대한 답은 일주일 내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무표정한 얼굴을 한 현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침착하게 미팅을 마무리했다.

동요를 감춘 채, 마지막까지 우아하고 차분하게.

미팅 내내 시선과 손이 자꾸만 휴대폰을 찾으려 해 곤혹스러웠지만, 다행히도 그 위기의 순간들을 잘 극복했다.

그리고 지금도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그 충동을 참아 내는 중이었다.

마치 도박 중독자가 카드 앞에서 욕망을 억누르듯.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휴대폰과 가방을 챙겨 들곤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 현규는 느긋한 걸음으로 미팅룸을 빠져나갔다.

오후 4시.

점심시간에 갑자기 메시지가 날아온 직후, 곧장 미팅이 시작된 탓에 아직도 해준과 연락이 안 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문제의 메시지를 보낸 남자와도 연락이 불가했다.

양쪽 다 착신 거부에 걸렸으니까.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해 그 번호의 소유주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라고 연락한 뒤 수현에게 전화하려 했지만 바로 미팅이 시작되는 바람에 통화를 못 했다.

메시지라도 보내려 했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다.

초조함에 자꾸만 방정맞게 움직이는 손을 꽉 쥔 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잠시 기다리자 곧 눈앞의 문이 열렸다.

바로 뒤따라온 직원들과 함께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선 현규는 문이 완전히 닫힌 순간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곧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역시 아무 메시지도 없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미팅 내내 휴대폰을 힐끔거리고 있었는데 그사이 도착한 메시지는 없었다.

순간 현규는 짜증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넘겼다.

2시간이면 상대가 누군지 충분히 찾아냈을 시간이다.

불법적인 방법을 쓰라는 것도 아니고 동창들을 물색해 번호를 알아보라고 한 건데, 너무 느리다.

“젠장…….”

엘리베이터 안에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잇새로 욕설을 내뱉으며 현규는 곧장 수현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묘한 긴장감에 가방을 든 손끝으로 손잡이를 툭툭 두드리며 통화 연결을 기다리는데 바로 옆에 선 직원이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팀장님, 잠깐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나중에.”

“지금 들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다급한 직원의 요청에도 현규는 손을 들어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통화가 연결됐다.

- 네, 형.

분명 상당히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도, 낭랑한 수현의 목소리를 듣자 바로 기분이 풀렸다.

나도 참 쉬운 인간이라는 생각에 현규는 쓰게 웃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어디야?”

- 사무실이요.

“점심은?”

- 대충 때웠어요. 형은요?

“나도 식사하고 지금 미팅 끝났어.”

- 미팅은 잘됐어요?

“대충. 오늘은 그냥 협의니까.”

- 다행이에요. 아, 그리고 저 커피 디카페인으로 마셨어요.

이럴 때 수현은 아주 똑똑하다.

대화를 나눌 때는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어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게 답답하고 짜증 나지만 본인이 납득만 하면 그 뒤에는 똘똘하게 알아서 잘하는 편이라 걱정이 없다.

해준 형의 말대로 손을 대려 하면 한없이 손이 가지만, 손을 안 대면 또 전혀 손이 안 간다.

“잘했어. 앞으로도 디카페인으로 마셔.”

- 그런데 디카페인 마셨더니 엄청 나른해요. 자꾸 멍해지고 졸음이 와요.

그건 어떻게 봐도 임신 증상이다. 물론, 아직 그럴 때는 아니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럼, 수면실 가서 자. 억지로 깨 있지 마.”

- 근무 시간에 어떻게 자요?

“자도 돼. 아니면 그냥 반차 내고 집에 가서 쉬어. 절대 무리하지 마. 임…… 아니, 발정기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몸에 부담이 많이 갈 거야.”

- 이제 퇴근 2시간 남았는데요, 뭐.

사실 4시면 현규 입장에선 퇴근까지 한참 남은 거지만 일이 마무리된 시스템개발팀은 2시간 후면 칼퇴근을 하게 될 거다.

그런 건 좋다.

“나, 지금 들어갈 건데 잠깐 얼굴 볼까?”

맛있는 거 사 줄게, 라고 아이 앞에서 사탕을 흔들며 유혹하는 나쁜 어른이 된 느낌으로 현규가 말을 던진 순간, 뜻밖의 답이 나왔다.

- 어…… 그게…… 안 될 것…… 같은데요.

“응?”

- 그게…….

……라며 말을 질질 끄는 수현의 목소리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수현의 최고의 장점이자 단점이 필터링 없이 말을 하기 때문에 대답이 빠르다는 건데 이런 식으로 말을 끈다는 건 절대 수현답지 않았다.

“왜? 잠깐만 보면 되는데?”

어쩐지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분에 조금 가시 돋친 말투로 묻자 수현이 여전히 어물거린다.

- 어…… 제가 이따 좀, 나가 봐야 해서요.

“근무 중에?”

- 네…… 아! 비품이요. 비품 사야 해서요.

순간 바로 옆에서 ‘비품’이라고 말해 주는 게 들렸다.

담배는 전혀 안 피우지만 골초같이 걸걸한 그 목소리는 분명 윤 팀장님의 것이었다.

둘이 또 뭘 하는 거냐?

“비품은 총무팀에 말해야지.”

- ……그게…… 서버실 하드랑 팬들 교체 좀 하려고요.

“그건 납품 업체가 따로 있을 텐데?”

우리 자회사, 라고 현규가 딱 잘라 말하자 수현이 다시 더듬더듬 어색하게 말을 잇는다.

- 그냥…… 팀장님하고 같이 장비 좀 돌아보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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