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상의를 벗은 채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남자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는 말에 바로 옆에서 입을 헹구고 고개를 든 수현은 진심을 다해 성심성의껏 사과의 말을 건넸다.
“……죄송해요…….”
“당연히 죄송해해야지! 사람 면전에 대고 토한다니!”
그 문제에 대해서는 수현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현 역시 조금 억울하긴 했다.
“저기, 그 일은 진짜 죄송하긴 한데요…… 제가 토할 것 같다고 비켜 달라고 했는데 안 비키셨잖아요.”
그러니까 그쪽도 약간의 책임은 있는 거라고 수현은 넌지시 쌍방과실을 주장했지만 남자의 입장은 확고했다.
“그렇다고 내 옷을 잡고 토해?”
어떻게 작정한 듯 셔츠를 당겨 그 위에 토할 수 있냐는 남자의 비난에 수현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남의 영업장에 토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건 너무 민폐니까, 라고 수현이 덧붙인 순간 막 핸드타월로 손을 닦던 남자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거울을 통해 옆에 선 수현을 바라본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그럼 남의 영업장에는 토하면 안 되고 내 옷에는 토해도 된다는 소리냐, 그게 얼마짜린데, 다시 사기도 힘든 한정판 니트 셔츠를 네가 어떻게 보상할 건데, 라는 아우성이 그의 얼굴 위로 드러났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가 지금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수현은 이번에는 토 달지 않고 얌전히 사과만 하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야?”
“뭐든 원하시는 대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사이즈 알려 주시면 편의점에서 급히 입으실 셔츠라도 사 올게요.”
말과 함께 맨살 위에 재킷을 걸쳐 입은 남자를, 수현은 연신 힐끔거리고 있었다. 조금 불편한 듯한 그 시선에 남자가 짜증스러운 시선으로 수현을 바라본다.
나한테 그따위 옷을 입으라는 거냐는 눈빛이었다.
“됐어. 필요 없어.”
“하지만, 그러고 나갈 수는 없잖아요.”
“안 될 거 있나?”
꽉 짜인 가슴근육과 복근을 드러낸 남자를 보며 수현은 뭐라고 입을 벙긋하다 다시 다물었다.
할 말은 있는데 차마 예의상 내뱉지 못하는 듯한 그 반응에 남자가 너 지금 뭐라고 하려고 했냐, 라는 눈빛으로 수현을 응시하자 수현이 또 입술을 달싹인다.
“그…….”
“뭐?”
“……그…….”
“그냥 말해.”
눈치 보면서 말을 질질 끄는 게 더 짜증 나니 빨리 뭐든 지껄이라는 남자의 기백에 계속해서 입술을 달싹이던 수현이 겨우 마음을 정한 듯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제가 자꾸 초면에 계속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한데요…….”
“……죄송한데?”
“……변태 같아요.”
쭈뻣거리며 “신고당할 것 같아요.”라고 덧붙인 말에 남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변태 같다고?”
“……네.”
“내가?”
“네.”
“너 눈 어떻게 됐지? 내가 어딜 봐서 변태 같은데?”
감히 나에게 어떻게 그런 단어를 쓰는 거냐고 분노한 남자에게서는 약간의 오만함과 큰 나르시시즘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건 말하지 않기로 하고 수현은 침착하게 말을 골랐다.
“옷차림 때문이니까, 옷만 입으시면 그 문제는 해결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금방 옷 사 올게요, 라며 수현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려는데 그의 팔이 앞을 막았다.
바로 등 뒤의 벽을 손으로 짚어 퇴로를 차단한 그의 팔에 수현은 눈을 껌벅이며 그를 올려다봤다.
“저기, 저 또 토할 수도 있는데요…….”
다행히 아까처럼 역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거북한 냄새에 수현은 두 번째 비극을 막기 위해 어서 팔을 치워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토할 거면 토해 보라는 태도였다.
결국, 네 업보만 쌓일 테니.
“너, 나한테 미안하지?”
‘이 대리님’에서 ‘너’로 순식간에 추락한 호칭에서 남자의 태도 변화가 느껴졌다.
이제 그가 우위에 섰다고 느끼고 있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맞다.
“……미안……하죠.”
얼굴에 대고 토했으니까, 라고 수현이 순순히 답하자 그가 다시 표정을 풀고 웃는다.
그 답은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
“말로만?”
“……진심으로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반성과 사죄의 의미로 그만한 보상을 해야겠지?”
“……옷은 제가 똑같은 걸로 변상해 드릴게요…….”
“옷은 됐고 진심으로 나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현규 불러. 지금 당장, 여기로.”
“……화장실로요?”
만나려면 카페에서 만나지 뭐 하러 화장실에서, 라는 수현의 답에 남자는 단전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깊은 짜증을 잠시 느꼈다. 하지만 이내 그 감정을 잘 내리눌렀다.
오래 대화한 건 아니지만 얘랑은 말이 잘 안 통한다는 걸, 여실히 느낀 탓이었다.
이런 아이와는 관습적 표현이나 숙어로 대화하면 안 된다.
하나하나 짚어 줘야 된다.
“그래, 화장실은 좀 그렇지. 그럼, 그냥 너희 집으로 가도 좋아. 너희 신혼집 바로 옆이지? 그래, 거기 가서 샤워하고 옷도 빌려 입으면 되겠네. 현규 옷이면 대충 사이즈 맞을 테니까.”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저희 집은 집 안에 아무나 들여놓지 않는 게 가풍이에요.”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삼촌의 스토커 사건 이후 신원 확인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누구도 집에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게 집안의 가풍이 되었다.
그러니 그쪽도 신원 확인이 되기 전에는 집에 들일 수 없다고 하자 남자가 조금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쉽지 않네, 라는 느낌이었다.
현규 형이 자신을 꼬드기려다 마음대로 안 됐을 때 짓는, 딱 그 표정이었다.
“내가 아무나는 아닐 텐데? 알고 싶지 않아? 내가 왜 현규 페로몬을 뒤집어쓰고 있는지?”
“…….”
“나라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을 텐데? 대체 왜 저렇게 냄새가 묻어 있을까, 둘이 뭘 한 걸까, 하고. 지금 너한테서도 나랑 같은 냄새가 날 테니까…….”
말이 끝난 순간 남자는 허리를 숙여 바로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수현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곤 은밀하게 속삭였다.
“어제 오후에 현규가 누굴 만났는지 궁금하지 않아?”
“…….”
“딱 한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을 텐데? 그 시간에 현규가 누굴 만나서 뭘 했을까, 궁금하지 않아? 그 시간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시간이잖아? 이런 화장실에서도.”
바로 눈앞에서 의뭉스러운 미소를 짓는 그를 보며, 수현은 손을 들어 올려 그의 얼굴을 가렸다.
그의 얼굴이 너무 가까워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냄새가 안 좋았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는 알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니 못 들은 걸로 할게요.”
그리고 일단 얼굴을 좀 치워달라는 수현의 요청에도, 남자는 꼼짝하지 않은 채 눈을 휘며 웃었다.
가소롭다는 듯.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건, 생물학적 메커니즘상 불가능해요.”
“어째서?”
“제가 방금 토했잖아요.”
“그게 뭐……?”
뭐가 문제냐고 하려던 남자는 순간 뭔가 떠오른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인상을 쓴 채 수현을 바라보다, 이내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듯 경악했다.
그러면서도 설마 하는 얼굴로 수현을 응시하는 남자의 얼굴에는 “그게 사실이냐?”라는 의문문이 쓰여 있었다.
생각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남자의 반응에 수현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러자 그가 이번엔 표정이 아니라 입으로 묻는다.
“……맞다고?”
이번엔 수현도 입으로 답했다.
“네.”
그러자, 갑자기 남자의 눈이 무서워졌다.
은은한 광기가 아니라 진짜 분노가 실린 눈빛이었다.
그 시선에 수현이 움찔하자 몸을 더 숙여 아예 수현을 팔 안에 가둔 그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위협하듯 묻는다.
“너, 사실대로 말해. 진짜 각인했다고?”
“네.”
“강현규가?”
“네…….”
“왜?”
귓가를 때리는 박력 있는 그의 질문에 수현은 순간 말을 멈췄다.
그렇게 물으니 그제야 새삼 “왜?”라는 의문이 떠올라서였다.
어제 진단을 받으면서도, 그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각인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은 있지만 그중 증명된 건 없고, 그 전에 언제 각인이 된 건지도 알 수 없으니 음펨바 효과(Mpemba effect) 같은, 아직 설명되지 않은 현상으로 이해하고 넘겼는데 그 물음을 받으니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게요. 왜일까요?”
“그걸,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알아야지.”
당사자니까, 라는 말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각인에 대해서는 아직 증명된 게 없어서, 모르겠는데요.”
“각인은 알파들이 자기 소유권을 주장하는 거야. 내가 죽어도, 그리고 상대가 죽어도 이건 내 거라고, 말 그대로 이마에 내 도장 찍는 거라고. 그러면서 본인도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는 거야. 그래서 바로 그 각인까지 가려면, 알파가 완전히 돌아야 한다고.”
“……돌아요?”
왜 도냐는 물음에 남자가 짜증 난 듯 소리친다.
“오메가한테 돌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