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45/160)

남자의 고함과 동시에 쾅 하는 굉음이 울려왔다. 그와 동시에 박력 있게 열린 문으로 들어선 현규가 우뚝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잠시,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현규는 처음엔 수현을 보곤 입술을 달싹였다.

앞머리를 넘기고 예쁘게 차려입은 수현은 사진에서보다 더 예뻤다.

너무 취향인 외모에 역시 얘는 미치게 귀엽다고 떠올리던 중 문득 수현을 가두고 있는 남자의 팔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끌어안듯이 허리를 숙여 수현을 안고 있는 그 팔에 잠깐 풀어지려던 현규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다 이내 다시 웃기 시작했다.

흐드러지듯 예쁘게, 안광을 빛내며.

도끼만 안 든 연쇄 살인마처럼.

“치워.”

여유롭게 웃으며 그 팔 잘라 버리기 전에 당장 치우라고 현규가 오른손을 들어 검지를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남자는 그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도 중요한 대화 중이라.”

싱긋 웃으며 살살 약을 올리는 남자의 말투에 현규가 한 번 더 웃는다. 그리고 여전히 웃는 낯으로 열린 문을 걷어찼다.

순간 다시 한번 쾅 하는 소음이 울려오며 닫힌 문이 위쪽 경첩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아래는 떨어졌다.

“두 번 말할까?”

그 뒷일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현규의 물음에 남자가 그제야 두 손을 들고 물러선다.

“폭력 반대.”

“네가 맞을 짓만 안 하면 되겠지?”

“맞을 짓 한 기억은 없는데.”

“네 존재 자체가 맞을 짓이야. 이리 와, 수현아.”

빨리 그 지지한테서 떨어지라는 듯 현규가 손짓하자 한 박자 느리게 상황을 알아챈 수현이 재빨리 현규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곤 폭삭하니 현규의 품에 안겨 마치 냄새를 맡으려는 듯 킁킁거리며 허리에 매달려 오는 모습에 현규 역시 수현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여전히 시원하고 순한 향이었다.

기분이 거지 같았는데 수현의 냄새를 맡자 그나마 기분이 좋아졌다.

“괜찮아?”

혹시라도 저 정신 나간 놈이 해코지라도 했냐는 물음에 세 걸음 정도 떨어져 있는 세면대 앞에 선 남자가 혀를 찬다.

“손가락 하나 안 댔어. 그 녀석은 내 취향도 아니고.”

넌 닥치고 가만히 찌그러져 있으라는 현규의 흉흉한 눈빛에 남자가 결국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다물자 이번엔 수현이 답한다.

“괜찮아요. 잠깐 대화하면서 형 기다렸어요.”

“저 녀석이 이상한 짓 하지 않았어?”

“이상한 짓이요?”

수현은 뒤를 돌아 거울 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의 존재 자체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이상한 짓을 했냐고 한다면…….

“안 한 것 같은데요…….”

확신은 못 하겠지만 일단 그는 자신의 기준 안에서 이상한 짓이라고 정의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상한 짓을 한 건 자신이었다.

“진짜 대화만 한 거야?”

“네. 약간의 신체적 접촉이 있긴 했지만 위협은 없었어요.”

“……무슨 접촉?”

“어깨동무 정도요.”

그러다 토했지만요, 라는 답에 현규가 시선을 들어 세면대 앞에 선 남자를 바라본다.

저 새끼 어깨를 빼 버리겠다는 의지에 가득 찬 얼굴로.

“그래, 그럼 됐어. 그보다 방금 토했다며?”

카페에서 그 얘기 듣고 놀라 달려왔다며 현규는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수현의 뺨을 매만졌다.

토해서 그런지 그새 살이 빠진 것 같다. 점심시간에 식사도 제대로 못 했을 텐데 이상한 놈에게 끌려와 고생이다.

저런 놈하고 만나게 한 게 미안하고 안쓰럽지만 또 툭 튀어나온 이마는 귀여워 현규가 복잡한 얼굴로 수현을 바라보고 있자 남자가 현규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다.

너는 누구세요, 라는 얼굴로.

“속이 좀 뒤집히긴 했는데 이젠 괜찮아졌어요.”

“……또 울렁거리진 않아? 어지럽거나?”

“형 냄새 맡으니까 괜찮아졌어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며 수현이 현규의 품에 안겨 강아지처럼 얼굴을 비비자 현규 역시 안도한 듯 길게 숨을 내뱉으며 수현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저 녀석을 아예 치워 버릴 테니까, 라는 말을 입 안으로 곱씹으며 수현의 눈가에 입을 맞춘 현규는 살짝 시선만 들어 앞에 선 남자를 바라봤다.

수현을 볼 때와는 달리 흉흉하다 못해 살기 등등한 그 눈빛에도 남자는 그래서 어쩔 거냐는 듯 웃고 있었다.

여전히 뻔뻔하고 제멋대로인 그 태도에 작게 혀를 찬 현규는 재빨리 재킷을 벗어 수현의 머리에 뒤집어씌웠다.

“잠깐 그러고 있어.”

“……숨 막히는데요.”

“잠깐이면 돼. 저런 게 자꾸 보면 몸에 안 좋아.”

저 녀석은 방사능 같은 녀석이니까.

할 수만 있다면 지하 깊은 곳에 파묻고 시멘트를 퍼부어 가둬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사람을 병균 취급하면 안 되지.”

“넌 병균 그 자체야.”

대충 끓여도 잘 죽지도 않는 노로바이러스 같은 거라고 현규가 웃자 남자 역시 따라 웃는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섭섭하지. 네 파트너 토사물까지 옷으로 받아 줬는데.”

엄연한 의미에서 이 모든 상황의 피해자는 나라는 주장에 현규가 싱긋 웃는다.

“저런, 직접 얼굴에 대고 토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수현이가 키가 작아서 얼굴에 못 토한 게 아쉽다는 현규의 빈정거림을 남자가 그대로 받아친다.

“그럼 나한테 미안해해야지.”

“전혀. 넌 자해 공갈단 같은 녀석이니까.”

“형, 저 답답한데요…….”

두 사람의 대화 중 현규가 꼭 끌어안고 있던 수현이 좀 놔달라는 말을 돌려 하자 현규가 그런 수현을 달랜다.

“조금만 참아. 저것 좀 치우고 벗겨 줄게.”

저게 보는 것도 안 좋지만 저런 걸 보면 눈이 썩는다고 현규가 재킷 위로 수현의 동글동글한 머리통에 입을 맞췄다.

자신을 바라볼 때와는 달리 현규의 다정한 시선과 부드러운 손길에 그들을 빤히 바라보던 남자는 못 볼 걸 본 듯 인상을 구겼다.

진짜, 꼴 보기 싫다.

“제대로 돌았네, 강현규. 각인까지 하고?”

이 상황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드는지 남자가 대놓고 비아냥거리자 현규가 수현을 꼭 끌어안으며 웃으며 받아친다.

“늘 돌아 있는 너보다는 낫지.”

“늘 돌아 있다니. 네 파트너나 너나 너무 무례하네.”

“너한테는 얼마든지 무례해도 돼. 더 이상 무례한 게 싫으면 이만 닥치고 꺼져. 그리고 다시는 수현이 앞에 나타날 생각도 하지 말고.”

“나야 걔 볼 일 없지, 사실. 네가 연락만 잘되면.”

“변호사 통해서 연락해. 내 변호사 연락처는 알지?”

“나랑 정산할 거 있잖아.”

“그것도 변호사를 통해야겠지?”

“진짜 변호사를 통해도 되겠어?”

내가 뭘 요구할지 알면서 말이 새어 나가면 그거 감당할 수 있겠냐는 남자의 물음에 현규가 바로 받아친다.

“그건 처음부터 분명히 안 된다고 못 받았을 텐데?”

“왜 안 되는데?”

“그 이유를 모른다면 뇌 MRI나 한 번 찍어봐. 있어야 할 거 다 있나. 수현아, 가자.”

더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수현의 어깨를 안은 현규가 돌아서려 하자 그가 다급히 달려와 현규의 팔을 잡는다.

셔츠 위에 닿은 그의 손길에 현규는 질색하며 그 손을 내려다봤다.

“치워.”

“내가 인터뷰까지 해 줬으면 너도 그만큼 돌려줘야지.”

“그거 말고 다 해 준다고 분명히 말했고 너도 오케이했어. 통화 녹음본도 있는데 들려줘?”

“그냥 만나게만 해 달라고.”

“꿈도 꾸지 마.”

“왜 안 되는데?”

조금 높아진 남자의 목소리에 현규가 그걸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냐는 얼굴로 남자를 바라본다.

황당함과 동시에 혐오가 깃든 얼굴이었다.

“병원에나 가.”

가서 뇌 검사 좀 제발 하라며 현규가 그의 팔을 뿌리친 채 수현을 질질 끌며 걸음을 옮기자 그가 다시 다급하게 현규의 뒤를 따른다.

“그냥 잠깐 만나서 대화만 하게 해 달라고! 오해는 풀어야 할 거 아냐?”

“풀 오해가 있었던가? 모두 정확히 진실만 알고 있는데?”

“그건 맞지만…… 그래도 변명할 기회는 줘야지!”

“내가 왜?”

“나, 네 동생이잖아!”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남자의 외침에 막 너덜거리는 문을 열려던 현규가 짜증스러운 듯 뒤를 돌아본다.

“내 가족관계 증명서엔 네 이름 없어. 내 동생은 강주환 하나뿐이야.”

“그러니까 그 동생 좀 만나게 해 달라고!”

“미쳤냐? 이복동생을 동복동생하고 만나게 해 주게?”

“그냥 만나기만 한다고!”

“네 과거를 돌아봐. 주환이 옆에 얼씬도 하지 마. 상대도 하지 않겠지만.”

“이번엔 진심이라고 했잖아!”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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