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화 (146/160)

“야! 강현규!”

“뭐? 백해경!”

격해진 감정만큼 점점 높아지던 목소리가 한 번 크게 화장실 안을 울린 다음 순간, 기묘한 정적이 찾아왔다.

고요한 공기 속에 흐르는 긴장감에 아주 잠깐 두 사람이 서로를 응시한 채 침묵하는 동안 그 사이로 작은 목소리가 울려왔다.

“……동생이요?”

재킷 아래서 꿈틀거리며 지금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있었다, 수현은.

순간 현규는 아차 했다. 재킷으로 감쌌다고 안 들리는 게 아니었는데 순간 욱해 실수했다.

“얘도 알아야지. 내가 누군지.”

언제까지 숨길 거냐는 해경의 물음에 수현이 꼬물거리며 재킷을 내리고 엉망이 된 머리를 한 채 현규와 해경을 번갈아 본다.

낭패라는 생각에 현규는 시선을 피했지만 해경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서, 어쩔 거냐는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이분이…… 동생 백해경…….”

이라고 중얼거리던 수현은 잠시 그 이름을 곱씹다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백해경이요?”

“아, 우리 통성명 안 했나?”

“네.”

상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 통성명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묻지 않았다.

“아, 그랬나?”

내가 이름을 안 알려 줬던가 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남자를 본 수현은 다시 한번 확인하듯 그에게 물었다.

“진짜, 백해경 씨 맞으세요?”

바로, 당신이, 문제의 그 백해경이 맞냐는 수현의 물음에 그가 왜 자꾸 그걸 묻냐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맞는데…… 뭐 문제 있어?”

문제가 있냐고 한다면, 전혀 없다.

그저, 자신이 놀란 것뿐이었다. 지금까지 ‘백해경’과 기억 속의 이 남자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을 본 건 5년 전 먼 발치에서였고, ‘백해경’이라는 이름은 최근 지수 형에게서 처음 들었기에 두 사람을 연결할 단서가 없었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었구나…….”

“……같은 사람?”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따져 묻는 해경의 태도에 수현은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아니에요, 아무것도. 제가 좀 착각을 했어요.”

“무슨 착각?”

그쪽이 현규 형의 전 애인인 줄 알았어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수현은 필사적으로 그 말을 그 아래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그 말을 하면 현규가 화낼 것 같아서였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현규 형이 이 사람이라면 진저리를 친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기에, 그 생각은 영원히 자신의 머릿속에만 묻어 두기로 했다.

그리고 이 사람과 형이 성격이나 말투가 많이 닮았다는 것도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기로 했다.

동족 혐오란 무서우니까……. 우리 아버지랑 강 대표님처럼.

……하지만 그래도 둘이 너무 닮긴 했다.

말투나 표정뿐 아니라 약간 돈 것 같은 눈빛이나, 기분이 나빠지면 입술 끝을 올려 웃으며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 비꼬는 것까지, 너무 비슷했다.

외형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 안의 본질이 많이 닮아 있었다. 흔히 말하는 결이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냄새가…….

“아!”

“또 뭐?”

말을 해, 이 자식아, 라는 해경의 짜증에도 수현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방금 떠오른 사실을 바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냄새가 너무 비슷해서 혹시나 했는데…… 형제라 그랬나 봐요.”

솔직히 비슷해도 너무 비슷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두 사람의 냄새는 오리지널 향수와 카피 향수 같았다.

모든 향료가 같으니 당연히 탑노트까지는 같은 향수인 것 같지만 근원적인 향료의 질 차이로 인해, 미들노트와 베이스노트에서는 결국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향이 진해진 순간 토한 것 같다.

“가족끼리는 페로몬도 비슷하다더니 진짜인가 봐요.”

친형제도 아닌 이복형제가 이 정도로 비슷한 페로몬을 가진 건 드문 일이지만, 가끔 사촌끼리도 쌍둥이처럼 닮은 경우를 봐서인지 그 자체는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그냥, 이복형제였구나, 하고 납득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입매가 풀리며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심장에 봄바람이 부는 듯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냥 기분이 너무 좋았다.

행복한 것도 같았다.

“일단 나가자. 나가서 다 얘기해 줄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현규는 우선 이곳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더는 해경과 수현을 같이 있게 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가려 수현의 팔을 잡아끄는데, 해경이 현규를 부른다.

“야, 나랑 얘기 끝내고 가야지.”

“…….”

“야!”

이젠 아예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너랑 말도 섞기 싫다는 현규의 완고한 태도에 해경은 재빨리 타깃을 바꿨다.

“야, 너 아까 5년 전에 강현규 화병 난 건 모른다고 했지?”

갑자기 자신을 향해 날아온 화살에 수현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네?”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수현의 물음에 해경이 웃는다.

악동처럼 눈을 빛내며.

그 미소에서 불길함을 감지한 현규는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거냐고 비난하는 눈빛으로 해경을 노려봤다.

하지만 살기 어린 그 시선에도 해경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런 시선이 아주 익숙하다는 태도였다.

“5년 전에 네가 얘 바람맞혔잖아. 그때 얘 장난 아니었거든. 진짜 미친놈처럼 사방에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리고 발작해서 다들 피해 다녔거든. 저 새끼 진짜 돌았다고. 진짜 화병이었지. 제 성질을 못 이긴.”

화병이라니, 처음 듣는 이야기에 수현이 눈을 껌뻑이는 모습에 현규는 초조한 듯 해경의 입을 막으려 했다.

“그만해, 백해경.”

“얘도 이젠 다 알아야지. 얘가 성질이 더럽기는 한데, 그래도 그때는 그럴 만하긴 했어. 내가 다 봤거든. 얘가 서주영 협박해서 학교 안내 자기가 하기로 한 것까지. 상식적으로 학생이 시험 시간을 착각했다는 게 말이 되냐? 넌 그런 생각 안 해 봤어?”

본인의 일이 아닌데도 너무 흥미로워서 그날 일을 페이스북에 기록까지 해뒀다며 웃는 해경을 보며 수현은 곰곰이 5년 전 일을 떠올려 봤다.

그래, 그날 갑자기 안내자가 바뀐 건 주영이 시험 시간을 착각했다고 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그건 주영답지 않은 일이긴 했다.

주영은 기본적으로 꼼꼼한 성격이었다.

무엇보다 같이 공부하던 같은 과의 친구들이 있는데, 그런 실수를 했다는 건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이 녀석이 자존심 다 버리고 그렇게까지 했는데 바람맞았으니 그날은 빡칠 만했어. 그 추위에 8시간이나 도서관 앞에서 기다렸으니까.”

역시나 이번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날 자신과 연락이 끊긴 뒤 현규는 기다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고 들었다.

8시간을, 그것도 외부에서 기다렸다는 건 전해 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다지 미안해하지 않았던 건데…….

순간 수현은 옆에 선 현규를 돌아봤다.

그 한겨울에 진짜 8시간을 기다렸던 거냐고 묻는 그 시선에 현규가 난감한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자백의 제스처였다.

그게 사실이라는.

“진짜, 기다렸어요? 8시간을?”

“……온다고 했으니까.”

“왜요?”

그 추위에,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동생을 위해서 왜 8시간을 실내도 아닌, 실외에서 기다린 거냐고, 수현은 순수한 의문을 드러냈다.

하지만 현규는 그 물음에 선뜻 답할 수 없었다.

그건 좀 더 나중에, 준비된 상황에서 해야 할 이야기였다.

그래서 결국 말을 돌렸다.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

제발 이 화장실에서 좀 나가자고 현규가 수현의 팔을 잡아당기자 세면대에 기대선 채 두 사람을 구경하던 해경이 비아냥거리듯 말을 던졌다.

“그 자식 자존심 때문에 절대 먼저 얘기 안 할걸? 차라리 궁금하면 나한테 물어봐. 뭐든 알려 줄 테니. 대신, 계산은 정확하게. 알지? 뭐든 기브 앤드 테이크니까.”

난 강현규의 유학 시절을 모두 알고 있다며 해경은 자신만만하게 수현을 유혹했다. 네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걸 난 알고 있다는 듯이.

하지만 수현은 현규의 유학 시절에는 조금도 관심 없었다.

지금 수현이 관심 있는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형, 저 좋아하세요?”

조금의 커브도 없이 정직하게 스트라이크존에 날아와 박힌 직구에 현규는 탄식했다.

안타까움과 난감함이 뒤섞인 한숨이었다.

고백을 화장실 같은 데서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 이상 말을 끄는 건 무리였다.

수현은 이 화장실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바로 지금 답을 원하고 있었다.

지금 답을 해주지 않으면 답을 해 줄 때까지 저 예쁜 눈으로 빤히 쳐다볼 게 뻔해 현규는 근사한 고백 장면은 포기하기로 했다.

가을밤, 바닷가 한복판의 요트 위에서 멀리서 터지는 불꽃놀이를 배경 삼아 고백하겠다는 계획은 이제 접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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