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5화 (155/160)

너무 기분이 좋아서.

“아니에요.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래요.”

“좋은 일 있으셨어요?”

“네.”

말과 동시에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수현의 손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저 정도면 말하는 것보다 치는 게 빠르다 싶을 정도의 속도였다.

그 어마어마한 속도에 다들 수현의 눈치를 보다 뒤쪽의 윤 팀장에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 시선을 보냈지만 윤 팀장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사실 식사 내내 수현은 이상했다.

정확히는 식사 시작 전, 그러니까 삼촌과 통화하고 내려온 뒤부터 이상했다.

밥을 하도 먹어 무슨 일 있냐고 묻기도 했지만 아무 일도 없다면서 웃기만 할 뿐이었다.

나쁜 일도 아니라 좋은 일이 있다는데 더 캐묻기도 이상할 것 같아, 윤 팀장은 다른 직원들에게 어서 일이나 하라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마치 개를 내쫓는 것처럼.

그사이에도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던 수현은 이번엔 휴대폰을 손에 들고는 빠르게 메시지를 적어 넣었다.

[형, 언제 들어오세요?]

두근두근하기도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해서 어쩐지 한 군데에 집중을 못 하고 이거 하다 저거 하기를 반복하던 수현은 메시지 발송 후 이번엔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책상 위에 놓인 건 대형 모니터와 키보드, 그리고 태블릿과 컵뿐이라고 봐야 했다.

연필꽂이에도 검은 펜 하나와 유성 매직 하나, 그리고 포스트잇만 있는 책상이었다.

정리할 거리도 없는 곳을 부산스레 정리한 수현은 이내 디카페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이번엔 또 휴대폰을 바라봤다.

그새 메시지가 왔나 뚫어져라 화면을 바라보는데 마침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4시 넘어서. 왜?]

짤막한 답에 근무 시간이라는 것도 잊은 채 수현은 대놓고 두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답문을 보냈다.

[오시면 옥상으로 오실 수 있어요?]

[왜?]

[형 보고 싶어서요. 할 말도 있고.]

[그런데 왜 옥상?]

[사내 게시판에 글 올라와서 당분간 조심하려고요. 옥상에 우리 오피스텔 건물 방향으로 미로처럼 만든 정자가 있는데 거기 제일 왼쪽 구석으로 들어가면 사람들 눈에 안 띄어요.]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핸드폰 문자판을 다다다다 누르자 모두가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며 목을 빼고 수현을 구경했다.

하지만 수현은 그들의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누가 뭐라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도착하면 메시지 주세요. 기다릴게요.]

빠르게 답문을 보낸 뒤 휴대폰을 옆에 곱게 내려놓은 수현은 환하게 웃으며 키보드 위에 손은 얹었다.

그러곤 막 코딩을 시작하려는데 무선 충전기 위의 휴대폰 화면이 환해지며 진동이 울려왔다.

현규 형인가 하며 휙 하니 휴대폰을 내려다본 순간 화면 위에서 번쩍거리는 세 글자가 수현의 시야를 채워 왔다.

스토커

큰형이다.

그 순간 수현은 진심으로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큰형이라면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 텐데…… 지금은 받기 싫다.

아버지가 결혼에 정력적으로 달려든 이상 결국 큰형도 아버지랑 같이 신이 나 일을 벌이고 있을 게 뻔한데, 그런 큰형의 용건이라면 100% 결혼식 관련 일일 가능성이 크다.

날짜와 식장, 청첩장과 예물, 그리고 집과 예복 기타 등등.

물론 그걸 자신과 의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미 형이 정한 것들에 대해 통보하기 위한 전화라는 건 알지만 별로 받고 싶지 않다, 지금은.

지금 형과 통화하면 무슨 말을 떠들어 댈지 몰라, 재빨리 거부 버튼을 누른 뒤 메시지를 보냈다.

[회의 중이야. 저녁 때 전화할게.]

……라고.

물론 회의 중은 아니지만 지금은 전화할 타이밍이 아니라 그렇게 상황을 마무리한 뒤 시선을 다시 모니터에 고정한 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다른 날보다도 빠르게, 그리고 경쾌하게.

* * *

4시가 되기 10분 전, 두근두근하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휴대폰을 확인한 수현은 아직 잠잠한 휴대폰에 실망하며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

그리고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기를 잠시, 1분도 안 돼 울리지도 않은 휴대폰을 또다시 내려다본 수현은 고요한 휴대폰에 실망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러곤 축 처진 채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그를 보다 못한 윤 팀장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수현을 부른다.

“이 대리…….”

“네?”

“그렇게 집중 못 할 거면 나가서 간식이라도 사 와.”

하필 수현의 바로 뒷자리라 계속해서 수현의 뒤통수를 바라봐야 하는 윤 팀장은 참다 참다, 차라리 나가서 놀라는 대담한 발언을 내뱉었다.

고개를 휙휙 돌리며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키보드를 더 시끄럽게 두드리는 수현 때문에 정신 사나워서 일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오늘도 역시 하늘은 더없이 높고 바람도 시원한 게 날이 마침 끝내주게 좋으니, 계속 민폐 끼칠 거면 나가서 쿠키나 좀 사 오라고 했지만 수현은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가야 할 때가 되면 제가 알아서 나갈게요.”

그건 나가긴 나간다는 소리였다.

아마도 메시지가 오면.

“왜? 그냥 나가.”

나가서 놀면서 기다리라고, 팀장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했지만 수현의 태도는 단호했다.

“싫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수현은 손으로는 계속해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눈으로는 휴대폰을 살폈다.

완벽한 자아 분열의 장이었다.

은근히 집중력이 좋은 듯 안 좋다.

멀티플레이가 되는 건 좋지만 하나만 해 줬으면 좋겠다.

너무 정신없다.

쟤가 오늘은 또 왜 저러나 싶어 윤 팀장이 근심 어린 시선으로 수현을 바라보던 사이, 수현의 바로 앞자리 직원이 수현을 부른다.

“이 대리님, 전화 받아 보세요.”

그 말에 요란하게 울리던 키보드 소리가 멈췄다.

“몇 번이요?”

“4번이요.”

그 말에 곧장 수화기를 든 수현은 무심히 기계적인 인사말을 내뱉었다.

“시스템 개발팀 이수현 대리입니다.”

- 너희 대체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거야?

수화부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오는 진원의 목소리에 수현은 잠깐 수화기를 귀에서 떼곤 눈을 껌뻑였다.

왜 갑자기 여기서 형이 튀어나오나 해서였다.

그래서 물었다.

“……형?”

형이 맞냐고.

- 이제 형 목소리도 못 알아들어?

당연히,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었다. 목소리까지 갈 것도 없이 전화를 받자마자 무작정 화부터 내는 걸로 봐선 분명 우리 큰형이 맞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너무 황당하니 확인해 본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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