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로 전화하는 가족이 누가 있냐?
“……갑자기 왜 회사로 전화를 해?”
물론 진원 형이라면 회사로 전화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휴대폰이 꺼진 것도 아닌데 왜, 라고 묻자 진원이 웃는다.
너 말 잘했다고.
- 왜일 것 같아?
“왜…… 어…….”
그러고 보니 내가 전화를 안 받았다. 오후 내내 들떠 현규 형 연락만 기다리느라 깜빡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엔 열 번 정도 휴대폰으로 전화하다 안 받으면 회사로 전화했는데 형도 나름 진화한 모양이다.
이젠 휴대폰에 열 번이나 전화할 필요 없이 한 번 만에 안 받으면 회사에 전화하는 쪽으로.
그렇다는 건 앞으로는 무조건 한 번에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거다.
큰일 났다.
“내가 저녁때 전화한다고 했잖아.”
- 퍽이나 하겠다. 요즘 너랑 현규 정신 빼놓고 다닌다며? 퇴근길에 사내에서 애정 행각하다 사내 게시판 스타 되고. 어제 오전에는 이혼설 돌더니 오후에는 사내 진상 커플 소리 듣고, 오늘은 또 뭐? 임신?
원래도 이상하던 두 놈이 붙어 다니면서 진짜 가지가지로 사고 친다고 형이 혀를 찬 순간 저도 모르게 헉 하니 숨을 삼키고 말았다.
어떻게 그게 그새 큰형 귀에까지 들어간 거냐?
소문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우리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얘긴데, 라고 의아해하자 형이 기가 찬 듯 웃는다.
- 모르겠냐? 그 난리가 났는데?
“……우리 회사 전기팀은 남의 회사 사내 게시판도 모니터링해?”
- 남의 회사 사내 게시판을 왜 모니터링해? 다른 게시판에서 걸린 거야. 내용이 하도 구체적이라 혹시나 해서 캐 들어가다 보니 너희 사내 게시판이 나온 거고.
퇴근 시간에 1층 로비에서 키스하고 난리를 쳤다며? 그간 둘이 떨어져서는 어떻게 살았냐? 너, 장래 희망이 취미 많은 독거 노인이라더니, 퍽이나 독거 노인을 했겠다. 내가 너희 때문에 창피해서 살 수가 없다. 기타 등등. etc.
끊임없이,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큰형의 잔소리에 수현은 나 죽었소 하는 태도로 입술을 꾹 다물고 귀를 닫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많이 과장돼 소문이 퍼져 억울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잘못한 건 맞다.
“……어제는, 좀 그럴 일이 있었어. 사내 게시판은 나도 확인하고 조심하는 중이고……. 그리고 이혼설 떠드는 게시판은 원래 날조와 선동의 장이야. 신경 쓰지 마.”
-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으니 문제지.
“안 쓰면 되지.”
- 안 돼. 아버지가 신경 쓰셔.
“아버지가 왜?”
- 그 게시판에 아버지가 강 대표님하고 매일 싸우는 이유가 강 대표님한테 첫사랑을 빼앗겨서 그런 거라는 글이 제일 처음 올라왔어. 그래서 거기 언젠가는 터트리고 말겠다고 수시로 들어가서 확인하시는데 어제 너희 얘기 뜬 걸 보시고 가만히 있으시겠냐?
처음 듣는 그 이야기에 수현은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자면 비슷하긴 한데 주체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부분에서는 완전히 틀린 루머였다.
그러니까 큰 줄기는 같은데 디테일은 완전히 다르다.
그제야 뭔지 감이 왔다.
어쩐지 저 게시판에서 도는 소문들이 다 틀리기는 한데 가만히 들어 보면 또 아예 없는 말을 하는 건 아니라 그간 이상하다 했는데…… 그게 뭔가를 아는 사람이 대충 내뱉은 진실 1%에 상상력 99%를 더해 루머를 만들어 낸 탓인 듯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강 대표님의 경우처럼 아예 주체가 바뀌는 이상한 루머가 도는 것 같다.
“원래 거긴 루머의 원산지야. 어차피 아무도 안 믿는데 왜 신경을 써?”
- 안 믿긴 누가 안 믿어? 거기 맹신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이트에 올라오는 소식들을 종교처럼 믿는다고.
“그 말을 믿는 바보들이 있다고?”
-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으니까 믿는 척하는 거지. 자기들도 말 안 되는 거 알지만 개미들이 주식 정보 얻을 데가 거기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또 이해가 가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온갖 루머와 어그로가 판치는 게시판을 믿는 사람이 있다니 그 자체가 신기했다.
빅데이터용 모니터링 시스템에 들어가는 사이트와 SNS들은 대부분 홍보팀과 전기팀에서 선별해 추가를 요청했는데 그 게시판만은 유일하게 법무팀이 모니터링을 요청한 게시판이었다.
어디서 이상한 소문이 퍼져서 캐 보면 대부분의 루머가 그 게시판발이니 아예 모니터링에 걸리게 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거기서 쓰는 회사에 대한 멸칭과 은어들을 검색에 걸리게 하느라 눈과 손이 썩는 줄 알았다.
- 그런 이유로, 너희 결혼식 날짜 정해졌어.
“……응?”
- 다음 주 주말이야.
“응?”
분명 귀로 듣고도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싶어 되묻자 형이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을 이어 간다.
- 다음 주 토요일 오후 1시야. 식장은 우리 회사 양평 쪽 연수원 야외에서 할 거야.
“야외? 이 날씨에?”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10월 말에 야외 결혼식이 웬 말이냐고 항의하려 했지만 역시나 형은 이쪽의 의견을 들을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 식사는 실내에서 할 거니까 문제없어. 오늘부터 청첩장 찍을 거야. 그리고 예복은 쇼퍼들한테 사이즈 맞춰서 준비하라고 할 테니 와서 입기만 하면 돼. 시간도 없는데 번거롭게 옷 맞추고 어쩌고 할 필요 없어. 결혼반지는 이미 끼고 다니는 반지 있으니 그걸로 대충 때우고 예물은 반년 정도 기다리라고 해. 강 대표님이 우리 아들 결혼인데 아무 예물이나 받을 수 없다고 하셔서 미룬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아니, 아니, 형. 예물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빠르잖아.”
- 토 달지 마. 너희가 여기저기 사고치고 다니는 바람에 급하게 정한 거야.
“그래도…….”
다음 주 토요일이면 열흘도 안 남은 거 아니냐고 하려는데 갑자기 형이 대화의 방향을 튼다.
-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 벌써 임신한 건 아니지?
“……응?”
- 오늘의 증권가에서 오늘은 임신설이 돌고 있던데, 아닌 거 확실하지? 거기서 도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확인해 주는 건 곤란해. 그쪽 회원들이 그 게시판을 맹신하는 이유가 백 개 중에 하나 얻어걸린 걸 보고 맞는 것도 있다고 주장하는 거니까.
“…….”
- ……수현아?
설마, 혹시나 하는 형의 질문에 식은땀만 흘리고 있는데 책상 위에 둔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곧 도착해. 옥상에 가 있어.]
“형! 그만 끊어! 나 급히 가 봐야 할 데가 생겼어.”
- 가긴 어딜 가? 내 얘기 다 안 끝났어. 너 임신 안 한 거 맞지? 그렇지?
“…….”
- 이수현!
왜 나는 이럴 때도 거짓말을 못 하는 걸까, 하고 수현은 쓸데없이 정직한 자신의 주둥아리를 저주했다.
현규 형이 너는 얼굴로 다 자백하는 타입이라고 하길래, 그럼 얼굴만 안 보이면 거짓말을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순발력의 문제다.
다급한 순간에 방향 전환을 못 한다, 자신은.
이럴 때는 무조건 대화를 끊는 게 최선이다.
“형, 나 지금 급해. 나중에,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어차피 형도 곧 알아야 할 일이 있으니까 퇴근 후에 곧장 전화할게. 그럼, 이만! 바이바이!”
형의 기백에 밀려 얼결에 있는 대로 솔직하게 다 내뱉기 전에, 수현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휴대폰만 손에 든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간식 사 올게요.”
“그래, 가서 퇴근 시간 때쯤 돌아와.”
수현이 지금 누굴 만나러 가는지 뻔했지만 윤 팀장은 그냥 모르는 척해 주기로 했다.
사무실에 있어 봐야 다른 직원들에게 방해만 되니 잘 숨어서만 만나면 된다.
그러니 어서 꺼지라는 듯 윤 팀장이 훠이훠이 손을 내젓는 사이 수현은 재빨리 사무실을 빠져나와 복도로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위기는 넘겼다.
10초만 늦었어도 들켰을 텐데 다행히 들키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수현의 생각에는 그러했다.
삼촌은 절대 먼저 큰형에게 얘기할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방금 온 메시지에 답문을 보냈다.
[저 지금 올라가요. 정자로 오세요.]
라고.
그러자 곧 새 메시지가 도착한다.
[난 10분 정도 걸릴 거야.]
그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마치 두 발이 지면에서 붕 뜬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서어서, 라고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까지 잘 참아 왔는데 막상 10분 남았다고 생각하니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근무 시간이었고 이 시간에 이동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덕분에 총 여섯 기의 엘리베이터는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현은 그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전혀 급할 게 없는데도 초조하고 다급했다.
마음만은 벌써 옥상에 가 있는 채였다.
어서 빨리 형을 만나 말해 주고 싶은 게 있었다.
자신의 입이 다른 사람에게 그 사실을 먼저 떠들어 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