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깨비를 만나다(2)
나는 도깨비를 만나고 처음으로 표정이 바뀌었다.
무서워 떨던 표정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 나를 보며 도깨비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저와 내기를 해 볼까요?”
“내기요?”
“네, 제가 내기를 좋아하거든요. 만약 서준 씨가 제게 이기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선물로 줄게요. 물론 제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요. 어때요? 도전해 볼 생각이 있어요?”
물론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가 걱정되었다.
“혹시 지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제 여, 영혼을 가져가는 뭐 그런 무서운 벌칙 같은 건 어, 없나요?”
내 말을 들은 도깨비는 다시 박장대소했다.
“하하하, 그건 물 건너 저쪽 애들 중 어두운 곳에 사는 애들이 좋아하는 거고요. 전 그런 변태 같은 취미는 없어요. 그러니 제게 지더라도 서준 씨에게 안 좋은 일은 전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돼요. 참고로 한마디 덧붙이면 도깨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조금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못 먹어도 손해가 전혀 없으니 ‘고’를 외쳐도 될 듯했다.
“무슨 내기죠?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처럼 씨름인가요?”
“하하, 씨름은 아주 오래전 취미입니다. 최근에는 수수께끼에 푹 빠져 있답니다. 그러니 수수께끼로 내기를 하죠. 제가 낸 수수께끼를 서준 씨가 맞추시면 서준 씨가 이기는 규칙입니다. 그럼 하실래요?”
수수께끼라…….
생소한 분야라서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최소한 씨름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로 할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어차피 다른 내기는 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사실상 내기는 처음부터 수수께끼로 정했었다는 말이죠. 자, 그럼 문제를 내겠습니다.”
꿀꺽.
긴장감으로 인해 목울대가 저절로 움직였다.
“솔밭 아래 마당, 마당 아래 송충이, 송충이 아래 깜빡이, 깜빡이 아래 훌쩍이, 훌쩍이 아래 쩝쩝이, 쩝쩝이 아래 낭떠러지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엉?
예상했던 수수께끼와 완전히 다른 유형의 수수께끼였다.
나름 머리가 좋다는 말을 듣고 살았던 나인데, 전혀 감조차 오질 않았다.
솔밭, 마당, 송충이, 깜빡이 등등 이해 안 가는 단어들이 잔뜩 등장하는 문제였다.
송충이라면 뭘 지칭하는 말일까?
벌레, 혹은 눈썹… 어, 송충이 눈썹!
그때, 번뜩이며 답이 한 가지 생각났다.
“혹시 얼굴 아닌가요?”
“네, 정답입니다. 하하하.”
도깨비는 내가 정답을 맞힌 것이 기분이 좋은지 호탕하게 웃었다.
내기에 내가 이겨 자신은 지게 되었는데 그게 기분이 좋은 일인가?
혹시 옛날이야기 속 도깨비처럼 내기하며 노는 것이 즐거워서 그런가 보다.
자, 그럼 이제 도깨비로부터 선물을 받아 볼까?
“서준 씨가 저와의 내기에 이기셨으니 약속대로 선물을 드리도록 하지요. 오늘은 특별히 최대한 원하는 선물을 드리도록 하죠. 혹시 갖고 싶은 것이 뭔가요?”
“…어렵네요.”
난 갑자기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도깨비는 그런 나를 돕기 위해 예까지 들어 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예전에 내기에 진 대가로 금을 준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갖고 싶은 집을 지어 준 적도 있고요. 제가 한 건축 합니다. 아니면 돈이 많은 사람으로 바꿔 드릴 수도 있지요. 서준 씨는 혹시 부자가 되고 싶진 않나요?”
도깨비의 말대로 부자가 되게 건물을 달라고 할까?
조물주보다도 위에 있는 존재라는 건물주로 살면 평생 돈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도 되겠지?
그러나, 어느 대답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것들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내 입을 통해 나온 대답은 나의 꿈이었다.
“혹시 음악을 잘하게 해 줄 수는 없나요?”
“그게 서준 씨가 원하는 건가요?”
“네, 음악을 잘하고 싶어요. 제 꿈이거든요.”
“예전에 만났던 누군가의 소원과 닮았군요. 아, 서준 씨도 혹부리 영감 이야기는 들어 보셨죠?”
“네, 당연히 알죠.”
“그거 진짜 있었던 일이에요. 근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와 사실은 완전히 달라요. 전 노래를 잘하고 싶어 그의 거짓말에 속아 혹을 제거해 준 것이 아니거든요.”
“그럼 실제 이야기는 뭐예요?”
“노래를 아주 잘하는 명창인 사내가 있었는데, 그 사내는 얼굴에 큰 혹이 있었죠. 보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여서 사람들은 사내의 얼굴 때문에 그의 노래를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죠.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던 그 남자는 제게 소원을 빌었어요. 얼굴에 붙은 혹을 제거해 달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의 소원을 들어줬죠.”
동화책에 실린 이야기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아마 구전되다가 변형이 되었나 보다.
도깨비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내게 전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실 줄 알았는데… 편하게 사는 것보다 꿈을 좇겠다는 당신의 열정에 조금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원하시는 것보다 조금 더 쓰겠습니다.”
뭘 쓰겠다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이해하면 더 준다는 뜻이니 기분 좋은 말이었다.
도깨비의 손에는 어느새 표주박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그걸 내밀며 말했다.
“마시세요.”
무턱대고 마시라는 그의 말에 무엇인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뭔가요?”
“당신이 원하는 바를 들어줄 마법의 묘약입니다. 특별히 하늘나라에서 몇 개 없는 걸 어렵게 구해 가지고 왔어요. 사실 세상에 몇 번 등장한 적이 있는 하늘의 묘약이기도 하지요. 전 이걸 마신 사람 중 베토벤만 알고 있어요.”
“베토벤요?”
“네, 당신보다 먼저 태어나 이걸 마신 사람 중 하나이지요.”
자그마치 베토벤이란 이름의 그의 입 밖으로 나온 순간 내 눈에는 탐욕이란 감정이 생겨났다.
악성 베토벤도 저걸 마시고 위대한 음악가가 된 모양이다.
“그냥 마시면 되나요?”
“네, 한 방울도 남기지 마시고 다 드세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표주박을 입에 물었다.
맛은 물맛과 비슷한 맛이었다.
양은 많지 않았다.
다 마시고 난 후 도깨비에게 다시 물었다.
궁금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어떤 효능에 제게…….”
꽈당.
나는 질문을 다 마치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도깨비 지우는 다정한 시선으로 쓰러진 이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절해서 들을 수 없는 그를 위한 마지막 말을 전했다.
“앞으로 당신은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때로는 위로해 주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겁니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만큼 어둠도 큰 법이죠. 부디 남들과 다른 거대한 운명에 지지 말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시길 바랄게요. 그럼 안녕…….”
* * *
띠리리링♪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충전 중인 스마트폰이 울렸다.
머리를 탈탈 털던 나는 그 모습 그대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고, 발신자를 확인한 후 전화를 받았다.
“네, 이서준입니다.”
[Yo~ 브로, 뭐 하냐?]
전화를 건 사람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싱어송라이터 유도훈 형이었다.
“산속을 헤매다 이제 집에 왔어요.”
[갑자기 산속은 왜? 혹시 작곡 때려치우고 심마니로 전직한 거야?]
“재미없어요.”
[그래? 흐흐, 오늘 저녁에는 뭐 해?]
“집에서 쉬려고요. 산속을 헤맨 덕분에 체력이 거의 바닥이에요.”
[특별한 스케줄은 없다는 말이군. 그럼 잘됐네. 저녁에 내 작업실로 와서 형 좀 도와줘라.]
“…….”
분명 쉴 거라고 말했는데, 그걸 이렇게 해석하다니 나름 신선했고, 동시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뭘 도와달라는 거예요?”
[오늘 내 너튜브 채널에 올릴 노래 녹음하는데, 와서 좀 봐줘. 내 노랠 듣고 디렉팅도 좀 봐주고…….]
도훈 형은 많이 알려진 걸그룹 노래도 작곡한 적이 있는 실력 있는 작곡가였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 곡 이후로 초이스 받은 곡이 더는 없었지만, 그런 곡도 하나 없는 내 입장에는 분명 대단한 작곡가였다.
형은 지금은 너튜브에서 유명한 곡을 커버해 올리는 일을 주로 하고 있었다.
편곡도 직접 했고, 노래도 직접 했다.
그 일을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솔직한 내 마음은 죄송하다는 말로 정중히 거절한 후 집에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작곡을 하게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도훈 형이었기에, 스승과 같은 그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내겐 힘든 일이었다.
“…네, 바로 갈게요.”
[그래, 기다릴게. 일 마치면 형이 삼겹살까지 풀코스로 쏠 테니 기대해.]
“네, 형.”
통화가 끝나고 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제는 길을 잃고 산속에서 하루를 지새웠고, 다시 집으로 겨우 돌아오니 쉬지도 못하고 다시 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
파란만장한 어제와 오늘이기에 다른 날보다 유난히 긴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오늘 아침의 일도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분명 생생한데, 모두 꿈이라니…….’
아침부터 들려오는 새소리에 눈을 떠 보니 난 폐가 안에 누워 있었다.
길을 찾아 헤맨다고 너무 피곤해서 깜빡 잠이 들었던 거 같다.
분명 도깨비를 만나고 이야기도 나눈 기억이 생생했지만,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니 다 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도깨비를 만난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장춘몽이라더니… 기분 좋은 꿈인데, 꿈이라도 오래 꾸게 해 주지. 도깨비의 선물 덕분에 히트곡 쭉쭉 뽑아내서 유명해지는 장면은 못 보고 끝나 버렸네. 꿈에서라도 더 행복하고 싶은데, 아쉽다.”
성공해서 유명해지는 장면을 꾸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아쉬움을 달래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날이 밝은 덕분에 길을 찾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더 생각해 봐야 뭐 하냐? 현실은 꿈과 완전히 다른데… 서둘러 나가자. 형이 목이 빠져라 기다릴 테니까.”
생각은 다시 지금 현재로 돌아왔다.
그리고 형이 기다린다는 생각에 서둘러 외출 채비를 갖춘 후 집을 나섰다.
* * *
도훈 형의 작업실은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허름한 외관의 건물 지하에 있었다.
작업실은 나름대로 공들인 인테리어 덕분에 나쁘지 않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도훈 형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형은 나의 등장에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나를 반겼다.
“헤이, 쭌이 왔어?”
“네. 근데 방금 연습하던 노래가 오늘 부를 노래예요?”
“응.”
“그럼 혹시 오늘 바람의 기억을 부르실 건가요?”
“그렇지. 선곡 죽이지?”
순간 걱정부터 들었다.
“선곡이 안 좋은 거 같은데…….”
“왜? 내가 한 고음 하잖아. 그래서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려고 고른 노래야. 구독자 팍팍 늘게 말이야.”
형의 말을 들은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저 얘기는 작곡하는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닌데…….’
도훈 형에게 실망했다는 말이다.
음악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말하든 다르게 말하든 간에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