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4화 (4/189)

4. 바람의 기억

한국 최고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인 이나얼이 부른 바람의 기억은 고음으로 유명해진 노래지만, 그것보다 이 노래가 대단한 이유는 노래에 담긴 감성 때문이다.

보통 이런 감성을 ‘소울’이라고도 하는데, 이나얼은 가장 흑인과 비슷한 ‘소울’을 가지고 있는 가수였다.

그러니 이 노래는 고음이 올라간다고 함부로 도전할 곡이 아니었다.

“형, 고음도 중요하지만, 원곡을 부른 이나얼 씨 보컬 때문에 맛을 살리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이나얼이 부른 버전과 바로 비교될 텐데, 비교 대상이 너무 막강해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걸 부르면 사람들이 우와 하고 놀라는 것도 사실이잖아.”

“그건 그렇죠.”

이 노래는 최고 높은 음이 3옥타브 레보다 반음이나 더 높다.

원곡자도 실수로 한 키 올려 부르는 바람에 잘못된 키 그대로 앨범에 실렸을 정도로 높은 음을 자랑하는 노래였다.

더욱 이 노래가 부르기 힘든 이유는 고음도 고음이지만, 3옥타브가 넘는 고음을 무려 1분 이상 소화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부르기 어려운 헬 곡 중에 최고로 꼽히는 곡이 바로 ‘바람의 기억’이란 곡이었다.

도훈 형의 생각은 알 수 있었다.

넘사벽에 가까운 이 노래를 소화함으로써, 늘지 않는 형 채널의 구독자 수를 늘려 보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생각대로 안 될 거 같은데…….’

노래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이라면 들으면 바로 안다.

이 노래의 진정한 감동이 어디서부터 만들어지는지 다 안다는 말이다.

이나얼의 보컬이 대단한 이유는 한국인답지 않는 진한 소울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에 담긴 감성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니 도훈 형의 노래 실력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 반대를 하려다가 그냥 포기했다.

형의 황소고집을 잘 알기 때문이다.

원래 음악 한다고 설치는 사람들 모두가 한 고집 한다.

그리고 음악 활동 자체가 주관적인 측면이 크기 때문에 무조건 내 생각은 옳고 형의 생각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도 옳은 것은 아니다.

예술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의 문제이다.

“그럼, 녹음할 테니 잘 듣고 고칠 점도 말해 줘.”

“네.”

형은 MR 준비가 끝난 후 노래를 시작했다.

일단 원래 버전 그대로 가는 듯 보였다.

“♪바람이 분다~♪”

노래가 시작되었다.

아주 긴 노래이기 때문에 나는 제법 긴 시간 동안 묵묵히 형의 노래를 들어야만 했다.

듣다 보니 왜 형이 이 노래를 고집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음 연습을 많이 한 모양이네.’

전보다 높은 음을 잘 내는 듯 보였다.

제법 그럴싸하게 소화한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실망이었다.

‘무리한 음역대의 고음을 소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억지로 틀어서 변형했네. 형의 원래 목소리보다도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야. 그리고 노래의 담긴 감성은… 생각했던 거보다 더 최악이다.’

이게 바로 솔직한 내 감상평이었다.

도훈 형은 작곡가답지 않게 노래의 가사나 그 가사에 담긴 감성 전달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이건 프로 작곡가가 할 짓이 아니었다.

노래를 끝낸 형이 땀을 닦으며 내게 물었다.

“후아~ 힘들다. 어땠어?”

형은 내 소감부터 물었다.

난 솔직하기 힘들었다.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솔직한 감상을 그대로 전할 수 없었기에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그러나 나에 대해 잘 아는 형은 내 이상한 반응에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사실을 알아챘다.

“너 솔직히 말해. 너 거짓말하면 눈 피하는 거 다 알아. 그러니 솔직히 말해.”

“솔직히요?”

“그래, 솔직히.”

형의 말에도 난 솔직한 감상을 전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악평을 들려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수위상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형은 집요했고, 결국 난 손을 들고 말았다.

“솔직히 별로였어요. 고음부터 다 플랫이었고요. 소리도 억지로 쥐어짜며 낸 소리라서 그런지 듣기 불편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감정은 하나도 실리지 않았고요.”

“…….”

그래도 조금 순화해서 내 솔직한 감상평을 전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말을 들은 형이 아무런 말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형의 얼굴을 바라보니 순간적으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훈 형은 완전히 삐친 상태였다.

이래서 내가 솔직히 말하는 것을 주저했었다.

원래부터 도훈 형은 잘 삐치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삐친 얼굴의 형은 딱딱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그러면 네가 한번 불러 줘.”

“네?”

“네가 시범으로 불러 달라고. 내 노래에 빠진 감정이 어떤 건지 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시범을 보여 달라고.”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는 내 말이 제일 듣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저런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노래를 시키고 있었다.

“제가 어떻게 불러요?”

“왜? 너도 한 노래 하잖아. 그리고 네 꿈도 싱어송라이터 아니냐? 네가 만든 노래를 네가 직접 부르는 게 네 꿈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었잖아.”

“전 그런 높은 음 못 내요.”

“안 올라가면 가성으로 불러. 어차피 네가 고음이 올라가나 보려는 것이 아니라 네가 말한 감정이 무엇인지 보려는 거잖아. 지금은 고음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주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우리 둘은 한참을 실랑이를 벌였고, 그러다 보니 나도 조금 화가 났다.

그리고 솔직히 형보다 잘할 자신은 있었다.

“…알았어요. 고음은 가성으로 처리할 테니 그렇게 아세요.”

“그래, 가성이든 진성이든 네 마음대로 해. 다만 감정은 제대로 표현하고. 내가 제대로 배우게 말이야.”

형의 비꼬는 말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왕 부르기로 했으면 제대로 부를 생각이었다.

난 눈을 감았다.

감정을 잡기 위한 행동이었다.

‘바람의 기억’은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곡이다.

원곡자도 성경을 읽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 때문에 만든 노래라고 한다.

이나얼이라는 가수 자체가 독실한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그의 노래에 담긴 감성은 가스펠적 소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난 크리스천이 아니니 그와 비슷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바람의 기억’은 내 노래가 된다.

그러니 내 감성대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 표현 방식이 될 것이고, 그것은 바로 이서준만의 ‘소울’이 될 것이다.

이나얼은 듣는 사람을 치유해 주는 느낌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물론 그의 치유는 종교적 의미의 치유였다.

내게도 그런 따뜻한 존재가 있다.

그건 바로 돌아가신 내 할머니이다.

난 눈을 감고 할머니를 떠올렸다.

부모님 모두 맞벌이를 하셨기에 어린 나는 할머니의 손에 자랄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따뜻했다.

배가 아프면 할머니를 불렀고, 넘어져서 무릎에 피가 나도 울면서 할머니를 불렀다.

그러니 내 소울의 원천은 바로 할머니였다.

지금 나는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걸었던 집 뒷산으로 이동해 있었다.

할머니는 가끔 내 손을 잡고 약수터로 놀러 가곤 하셨는데, 약수터로 향하는 오솔길에는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난 지금 그때 그 바람을 맞으면 할머니와 함께 걸었던 행복했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음악 주세요.”

내 말을 들은 도훈 형은 바로 MR을 틀었다.

유명한 전주 부분에서 아일리쉬 휘슬이 들리고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람이 분다~♪”

스으윽.

이서준의 노래를 듣던 유도훈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이한 경험을 하였다.

이서준이 부르는 노래는 첫 소절만으로도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원곡 가수인 이나얼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노래가 계속될수록 유도훈은 점점 크게 놀라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삐친 마음에 듣기 시작한 노래기에 인정하긴 정말 싫지만, 분명 제대로 된 감정이 실리고 있었다.

왠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부르는 향수 섞인 감정이었다.

노래를 듣던 어느새, 그는 어린 시절 풋풋한 첫사랑 상대인 중학교 동창 김민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걔는 뭐 하고 살고 있으려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답게 자신의 첫사랑 역시 짝사랑으로 끝이 났다.

그녀는 자신보다 1년 선배인 학교 밴드부 기타리스트에게 빠져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가 지금까지 음악을 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 된 사건이었다.

유도훈은 이서준의 노래로 인해 과거의 추억에 흠뻑 빠져 버렸다.

노래는 이제 절정 부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

이서준은 처음의 말과 다르게 고음을 진성으로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 어려운 고음들을 정확한 음정으로 부르고 있단 사실이다.

플랫이 되는 구절도 없었고, 힘든 고음의 연속인데도 피치가 달리는 부분도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완벽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엄청난 노래였다.

그리고 진심으로 인정하기 싫지만, 이서준이 부르는 ‘바람의 기억’은 그동안 이 곡을 커버했던 많은 사람과 다르게, 이나얼을 흉내 낸 ‘바람의 기억’이 아니라 자신만의 ‘바람의 기억’이었다.

어느새 5분이 넘는 긴 노래가 끝이 났다.

난 한동안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내 눈에는 참았던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할머니…….’

지금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도훈이 형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입을 벌리며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급해졌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창작의 욕구가 용솟음치듯 샘솟고 있었다.

나는 멍한 표정의 형에게 급하게 부탁했다.

“형, 피아노 좀 쳐도 되지?”

“어, 피, 피아노? 어, 쳐도 돼.”

나는 서둘러 피아노 앞에 앉았고, 곧 정신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바람의 기억’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원곡과 다른 편곡 버전이었다.

원곡의 꽉 찬 사운드와 다르게 심플한 피아노 악기 하나로 표현한 나만의 편곡 버전이었다.

그냥 문득 이렇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난 미친 듯이 내 머릿속의 음표들을 손가락으로 토해 내고 있었다.

그렇게 내 두 번째 노래가 시작되었다.

* * *

“저 갈게요.”

이서준은 두 번의 노래가 끝나자 서둘러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서둘러 갈 곳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서준이 나간 후 한참 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던 유도훈은 그제야 녹화 중이던 스마트폰의 스톱 버튼을 눌렀다.

자신도 모르게 이서준의 피아노 편곡 버전을 모두 녹화했다.

그리고 유도훈은 다음 날 날이 밝을 때까지 이서준이 부른 두 가지 버전의 ‘바람의 기억’을 번갈아 가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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