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첫 녹음
나는 지금 심장이 터질 거같이 뛰고 있었다.
왜냐하면, 오늘 드디어 내가 만든 노래를 처음으로 녹음하기 때문이다.
계약이 완료된 후 나머지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드라마 방영 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빠르게 녹음을 진행해 주길 바랐다.
그들의 간곡한 부탁에 우리 회사에서도 일을 서둘러야 했다.
미완성이던 노랫말은 그냥 내가 처음에 만든 그대로 가기로 했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이 또한 따로 부탁했다.
그냥 내가 생각나는 대로 적어 봤던 가사가 그대로 사용되게 될 줄은 정말 몰랐기에 그 소식을 듣고 정말 많이 놀랐었다.
덕분에 가사를 완성하는 시간은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걱정되었던 가수 섭외도 허탈할 정도로 쉽게 되었다.
때마침 이정희가 한국에 들어와 있었기에 운 좋게 섭외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 회사 김용철 PD님과 개인적 친분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아마 김 PD님의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녹음실 소파에 앉아 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우리 회사 최고 프로듀서인 김영환 PD님이 같은 소파에 앉아 본격적인 녹음에 앞서 마지막으로 내가 작곡한 노래를 다시 듣고 있었다.
녹음을 어떻게 진행할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다 들은 형은 날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좋다. 이거 정말 네가 만든 노래가 맞아?”
PD님의 칭찬 섞인 질문에 난 머쓱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이야, 네가 딱 1년 만에 꽃을 피우는구나. 그것도 아주 제대로 핀 장미꽃으로.”
내 노래를 장미꽃으로 비유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자, 그럼 기타 세션 녹음해 볼까?”
악기도 애초의 내 구상대로 기타 반주 하나로 가기로 하였다.
그런 결정 덕분에 녹음 준비 과정이 매우 간소화해졌다.
다양한 악기가 들어가는 다른 곡과 비교해서 기타 연주 하나만 녹음하면 되었다.
“처음 네가 만들던 느낌 그대로만 해. 알았지?”
“네.”
기타 연주도 내가 맡기로 했다.
전문 세션에 연주를 부탁해도 되지만, 김영환 PD님은 내 기타 연주에 담긴 느낌이 제일 좋다며 나에게 연주를 해 보라고 한 것이다.
뭐 해 보고 전문 세션의 연주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바로 부르면 되는 일이라 부담이 적었다.
녹음 부스에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조금 긴장되었지만, 긴장감을 누르며 혼자 중얼거렸다.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그때, 녹음실 안으로 PD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됐어?”
“1분만 주십시오.”
난 감정을 잡기 위해 시간을 요구했다.
“네, 드릴게요.”
허락을 얻은 후 나는 심호흡을 천천히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후 내가 그렸던 여주인공을 머릿속으로 다시 소환했다.
그러자 감정이 잡히기 시작했다.
눈을 뜬 나는 부스 밖에 앉아 있는 김 PD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녹음을 시작했다.
그렇게 난 연주에 몰두했고 얼마 뒤 녹음은 끝이 났다.
“나와도 돼.”
단 세 번 만에 오케이 신호가 떨어졌다.
몇십 번을 각오하고 녹음에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나 약간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김영환 PD님은 내 얼굴을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앞으로 굶어 죽을 염려는 없겠다.”
“네?”
그의 뜬금없는 소리에 난 무슨 의미의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하, 지금처럼 연주하면 네 기타 소리를 음악 하는 사람들이 엄청 찾을 거야. 그럼 세션비만 받아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 아니야. 안 그래?”
“아~”
연주가 좋았다는 칭찬이었다.
“근데 너 원래 이 정도로 연주했어? 이 정도 기타를 만졌으면 이 바닥에서 소문이 안 날 리가 없는데…….”
약간 뜨끔한 질문에 나도 모르게 말을 조금 더듬었다.
“그, 그냥 혼자서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래 엄청나게 연습하지 않았으면 이런 소리가 나오지 않겠지. 그런데 연습으로 안 되는 것이 더 많아. 원래 음악이라는 게 그렇잖아. 네 기타는 이상하게 블루스 느낌이 담겨 있어. 혹시 어릴 때 미국에서 산 적 있어?”
“없습니다.”
“그래? 거 참 신기하네. 완전 제대론데… 그런 감성을 접하지도 못했는데 그런 소리가 난다고?”
“많이 들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뭐… 그럴 수도 있겠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역시나 어색했다.
그리고 속으로 도깨비에게 감사했다.
음악을 잘하고 싶다는 내 소원을 이렇게 완벽하게 들어주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중에 그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고사라도 지내야 하나?
김영환 PD님이 내 기타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녹음실 문이 열렸다.
드디어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이 회사 녹음실로 직접 와 주신 거다.
김용철 PD님과 함께 등장한 사람은 바로 이 노래를 부를 주인공인 가수 이정희였다.
이정희는 김영환 PD님과도 안면이 있는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고, 정희 누나! 이 누추한 곳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기가 지금 대한민국 최고인데, 뭐가 누추해? 그렇게 말하면 네 회사보다 영세한 우리 회사는 뭐가 되냐?”
“헤헤, 누님이 오셔서 기쁘다는 뜻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다리 아프신데 어서 이리와 앉으세요. 우리 국민 가수 누님 다리가 아프면 안 되죠.”
“하하, 너 넉살은 여전하구나.”
“누님, 사람 변하면 죽습니다. 하하하.”
두 사람은 농담 섞인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누었고, 이윽고 이정희는 웃으며 녹음실 안 소파에 앉았다.
김용철 PD님은 곧바로 옆에 뻘쭘하게 서 있던 나를 그녀에게 소개했다.
“누나, 이 친구가 이번 노래 만든 작곡가예요. 아주 당돌하게 누나를 직접 픽한 당사자이기도 하죠. 서준아 인사드려.”
PD님 소개에 난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숙이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작곡가 이서준입니다. 반갑습니다.”
마치 군대 이등병이 사단장을 만난 것처럼 군기가 팍 들어간 인사였다.
그런 내 모습 때문인지 이정희 씨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가 더 반가워요. 날 잊지 않고 언급해 준 덕분에 이런 좋은 노래를 부르게 되었으니 내가 우리 작곡가님에게 고마워해야 맞는 거 같네요.”
이 바닥에서 들려오는 소문처럼 고급스러운 품격이 느껴지는 말과 행동이었다.
“누나, 컨디션은 어떠세요?”
“항상 노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관리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에이, 누나 짬이 얼만데 제가 그런 걱정을 하겠습니까? 다만 요즘 몸은 건강하신지 궁금해서 여쭤본 거죠.”
“그렇게 말하니 내가 할머니 같잖아. 우리 좀 더 젊은 사람들처럼 영한 느낌으로 대화하면 안 될까? 안 그래도 요즘 나이 들었단 생각이 들어 울적하다고.”
“하하, 그럼 요즘 애들처럼 안부 인사는 SNS로 물을까요?”
“그래, 그게 차라리 낫겠다.”
약간의 사담이 더 오간 후 이정희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녹음실에 왔으니 녹음부터 해야지. 그럼 시작해 볼까?”
그녀의 말에 녹음실 안은 곧바로 작업 분위기로 바뀌었다.
김영환 PD님도 어느새 장난꾸러기처럼 웃던 얼굴에서 진지한 프로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그가 이정희에게 물었다.
“노래는 다 익히셨어요?”
“응. 많이 들어서 바로 녹음해도 돼. 가이드 녹음을 잘해서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
“좋네요. 그럼 바로 가실까요?”
“그러자.”
프로들만 모여서 그런지 한치의 지체함도 없이 곧바로 녹음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내가 연주한 기타 소리가 들리며 이정희의 입이 천천히 열리었다.
♪찢어진 내 심장이 아파서 우는 게 아니에요.♪
…….
이정희는 첫 녹음부터 놀랍게도 원 테이크로 그냥 한 번에 완곡해 버렸다.
그녀의 첫 노래가 끝이 나자, 녹음실 안 사람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와… 미쳤다…….”
나 역시 온몸에 소름이 돋은 상태였다.
이정희는 내가 원하던 보컬, 그 이상의 보컬을 보여 주었다.
왜 그녀가 3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수로 활동할 수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김영환 PD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마이크를 켰다.
“누님, 그냥 그만하실래요? 괜히 누님 기분 좋으시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그냥 이대로 녹음 끝내도 될 거 같아요. 너무 좋습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김영환 PD의 입에서 나올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방금 노래는 그 정도로 완벽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이정희도 프로듀서의 칭찬에는 기분이 좋은지 밝게 미소 지은 채 대답했다.
“처음 부분이 조금 마음에 안 들어. 그리고 마지막에 허밍도 넣었으면 좋겠는데… 어때?”
“아, 그것도 좋겠네요. 그럼 일단 다시 녹음해 보고 들어 볼까요?”
“오케이.”
그렇게 두 번째 녹음이 시작되었다.
그때 갑자기 내 머릿속에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황급히 옆에 있는 김용철 PD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첼로 연주를 넣어 보면 어떨까요?”
“첼로? 갑자기 첼로는 왜?”
그는 난데없는 나의 첼로 타령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지금 사운드도 충분히 괜찮기는 한데, 문득 몇 군데 첼로 소리가 들어가 주면 더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떤 식으로?”
“그러니까… 잠시만요.”
말로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웠기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황급히 녹음실을 빠져나왔다.
직접 첼로와 연주자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였다.
난 그대로 은진 누나에게 돌진하듯 뛰어갔다.
누나가 작업실에 첼로를 가져다 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나가 대학 때 첼로를 전공했단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을 향해 뛰어온 나를 보고 은진 누나는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어?”
나는 숨을 헐떡이며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첼로 있죠? 그리고 잠시만 나랑 같이 좀 가요. 아주 잠시면 돼요.”
“갑자기 어디를 가자는 거야?”
“녹음실요.”
“녹음실?”
은진 누나는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내게 끌려왔다.
그리고 내 어깨에는 누나의 첼로가 매어져 있었다.
녹음실에 다시 들어가니 어느새 1차 녹음이 끝이 났는지 이정희가 부스 밖에 나와 있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김영환 PD님은 나의 소란스러운 등장에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너 지금 어깨에 메고 있는 거 첼로 아냐?”
“네, 맞습니다.”
“그건 갑자기 왜 들고 와? 어, 그리고 은진이도 왔네.”
김영환 PD님의 말에 은진 누나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전 그냥 얘한테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어요.”
순간 녹음실 안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 내가 소란을 떤 이유를 설명할 시간이었다.
“아까 선생님 녹음하시는 걸 듣고 있다가…….”
“누나.”
이정희는 갑자기 내 말을 끊으며 호칭을 정정했다.
“누나라고 불러. 선생님이 뭐야?”
웃으며 말하는 이정희로 인해 나는 정정된 호칭으로 부르며 말을 이어야만 했다.
“이정희 누… 나가 노래를 부르시는 걸 듣다가 불현듯 첼로 소리를 집어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말에 김영환 PD님이 호기심을 보였다.
“어떤 식으로?”
“그러니까 일단 들려드릴게요.”
나는 직접 시연할 생각으로 은진 누나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누나, 연주 좀 부탁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