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9화 (9/189)

9. 못 다루는 악기가 없네

내 말을 들은 은진 누나는 아주 황당하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뭐? 나보고 연주를 하라고? 너 갑자기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은진 누나는 내 뜬금없는 부탁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 누나의 모습에 난 서둘러 설명을 보탰다.

“노래에 첼로 소리를 넣고 싶어졌어요. 그러니 누나가 좀 도와줘요.”

“당연히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고 싶지. 근데 뭘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야? 밑도 끝도 없이 도와달라고만 하니까 너무 당황스럽잖아.”

당황스럽다는 누나의 말을 듣고 나는 내 잘못을 깨달았다.

첼로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난 너무 앞만 보고 달린 것이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누나 입장에는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다.

실책을 깨달은 나는 얼른 제대로 사과했다.

“누나 미안해요. 제가 너무 들떠서 정신없게 굴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널 혼내려고 한 소리는 아닌데… 그냥 한 소리에 왜 그렇게 민감하게 굴어.”

내 사과 덕분에 더 당황하게 된 누나는 무안한 듯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일단 급하게나마 사과했으니 다음으로 미리 사정을 설명하지 못한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할 차례였다.

“녹음을 듣고 있는데, 노래에 첼로 소리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더라고요. 그 바람에 제가 정신없이 굴었어요. 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여기 계신 PD님이나 정희 누나와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은데, 제대로 의논하려면 실제로 들려드리는 게 가장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누나가 첼로를 전공하고 작업실에 첼로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그냥 무턱대고 누나에게 뛰어간 거예요.”

전보다 자세한 설명을 들은 누나는 그제야 어떻게 돌아가는 판국인지 이해가 되는 듯 보였다.

“아, 그래서 나보고 첼로 연주 좀 해 달라고? 근데 내가 네가 원하는 첼로 연주를 할 수 있을까? 난 솔직히 자신이 없는데…….”

누나는 예상과 달리 난색을 표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내가 원하는 소리를 입으로 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런 느낌이 나게만 연주해 주세요. ♪지이잉 징 지이이이잉♪…….”

난 열심히 입으로 소리를 내 가며 누나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누나는 내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서준아, 미안한데… 지금 내 실력으로는 그 정도 설명만으로 부족해. 솔직히 악보 보고도 자신 없어. 사실 내가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했어도, 1학년 마치고 바로 자퇴한 케이스라 연주 실력이 많이 부족하거든. 작곡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로는 내가 피아노로만 일한 거 너도 잘 알잖아.”

누나의 설명에 나는 난감해졌다.

누나만 믿고 벌인 일인데, 본인이 힘들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대단한 분들을 모셔 놓고 쓸데없는 짓을 벌인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른 첼로 소리를 그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계속 내 본능은 어서 머릿속 소리를 실제로 연주해 보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덕분에 마음이 답답해진 나는 누나에게 첼로를 넘겨받았다.

직접 연주할 생각으로 첼로를 든 것이다.

그런 내 모습에 은진 누나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너 첼로도 연주할 수 있어?”

“조금요… 되든 안 되든 그냥 한번 해 볼게요.”

어릴 때 다닌 피아노 학원 원장님 동생이 첼리스트였다.

그래서 가끔 피아노 학원에 놀러 오신 날 학원생들에게 재미로 첼로 연주 방법과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신 적이 있는데, 나도 그때 친구들과 함께 배웠었다.

물론 당연히 그때 배운 것이 다인지라 함부로 남 앞에서 연주할 실력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활을 잡고 있었다.

정말 대책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막연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쓸쓸한 느낌으로 연주한 소리를 후렴 부분에 넣고 싶어요.”

나는 연주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어릴 때 잠깐 동안 배운 게 전부인 첼로인데도 제법 능숙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나는 점점 내가 연주한 첼로 소리에 빠져들며 연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을 첼로 소리에 흠뻑 빠져 열심히 연주했다.

머릿속에 떠올랐던 멜로디를 모두 토해 내듯 연주한 나는, 드디어 연주를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녹음실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때요? 제가 어떤 생각으로 첼로 소리를 넣고 싶었는지 조금이라도 느껴지세요?”

“…….”

그러나 녹음실 안 사람 중 아무도 내 물음에 답을 해 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당황한 표정의 김용철 PD님이 먼저 녹음실 안의 침묵을 깨 주셨다.

“와… 너무 좋다.”

자신의 감상을 솔직하게 말한 그는, 서둘러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방금 너무 좋지 않았어?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가?”

김영환 PD님도 마치 마비가 풀린 사람처럼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 아니 형 말이 맞아. 진짜 너무 좋다. 우리 정희 누님이 듣기에는 어떠셨어요?”

김영환 PD님의 질문을 받은 이정희 누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나도 그래. 너무 좋았어. 서준 작곡가님 오늘 처음 봤는데… 우리 작곡가님 앞으로 정말 대단하실 것 같아.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겠네.”

“맞아. 이서준 너 정말 대단해.”

“너 소변 좀 받아와라. 아무래도 약물 검사 좀 해 봐야겠다. 너 완전히 미친 음악 천재 모드야. 이건 정상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 약물 검사 해야지.”

김영환 PD님과 이정희 누나까지 다 마음에 든다고 하시니 그제야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은진 누나는 또 다른 부분에서 놀랐는지 다른 사람과 다른 질문을 던졌다.

“너 첼로는 언제 또 연습한 거야? 하루 이틀 연주한 실력이 아닌데… 지금 장면만 보면 첼로 전공자는 내가 아니고 너야.”

“아, 어릴 때 배운 적 있어요.”

“야, 이게 어릴 때 배웠다는 사실 하나로 설명이 가능한 일이야? 너 방금 첼로 연주 완전 찢었어. 웬만한 첼리스트들은 네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겠더라.”

물으면 물을수록 내가 곤란해지는 질문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그게 중요한 순간이 아니었으니 대충 얼버무리며 누나의 궁금증을 차단했다.

“누나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일단 녹음 중이니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 하잖아.”

“그건 그렇지…….”

나는 서둘러 김영환 PD님과 함께 편곡 방향에 대해 구체적인 의논에 들어갔다.

잠시 후 녹음실 안은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토론 주제는 첼로를 어떻게 적절히 섞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였다.

내가 첼로를 들고 다시 연주하면서 사람들의 의견을 구했고, 사람들은 내 연주를 듣고 자신들의 생각을 덧붙이는 형식의 토론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의논한 뒤 나는 다시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손에는 첼로가 들려져 있었다.

녹음 부스 안으로 김영환 PD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의논한 대로 편하게 연주해 봐. 일단 네 연주를 가이드 삼을 생각이니까 틀려도 돼. 알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내 느낌대로 녹음해 보기로 했다.

녹음 후 괜찮으면 전문 연주자를 불러 가다듬은 후 제대로 녹음할 생각이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다시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 ♪♬♬

아름다운 첼로의 선율이 녹음 부스 안에 가득했다.

그렇게 한참을 연주한 후 내 손은 멈추었다.

“오케이, 좋았어. 나와도 될 거 같아.”

오케이 신호를 받은 나는 기쁜 얼굴로 녹음 부스 밖으로 나갔고, 잠깐 편집한 후 하나로 합쳐진 기타와 첼로 반주를 들었다.

녹음실 안의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감은 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애절하게 들려오던 연주 소리가 드디어 멈추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김영환 PD님이었다.

“첼로가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닮은 악기라더니… 그렇게 표현한 이유를 확실히 알겠어.”

“맞아. 나도 동감이야. 그리고 악기 하나가 추가됐을 뿐인데, 곡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더 애절해졌어.”

은진 누나는 자신의 눈가를 손으로 닦으며 소감을 말했다.

“이거 연주만 들어도 충분히 눈물이 날 정도예요. 여기에 이정희 선생님의 목소리가 더해지면… 와 상상만 해도 온몸에 전기가 오네요.”

조용히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이정희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김영환 PD님에게 의욕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가만히 못 있겠어. 들어가 노래해도 되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김영환 PD님은 흐뭇한 표정으로 말하셨다.

“오랜만에 누님이 의욕적으로 노래하려는 모습을 보게 되니 너무 보기 좋습니다.”

“이런 연주를 듣고도 노래하고 싶지 않으면 가수 그만해야지. 나 들어간다.”

“네.”

이정희는 녹음 부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걱정이 들어 PD님께 물었다.

“아직 제대로 된 편곡과 연주가 완료된 것도 아닌데… 그냥 이대로 녹음하셔도 될까요? 이러면 재녹음해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PD님은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맹한 소리를 하는 네가 이렇게 좋은 노래를 만들고 연주까지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드는 내가 이상한 거니? 아니면 이상한 질문을 해 대는 네가 이상한 거니?”

“…제가 이상한 질문을 한 건가요?”

“그래, 아주 황당한 질문을 한 거지. 정희 누님이 이대로 녹음하겠다는 것은 더 이상 손댈 게 없다는 뜻이야. 그야말로 연주, 편곡 등이 다 완성이 됐다는 뜻이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미쳤다고 누님보고 녹음하라고 하겠어?”

김영환 PD님의 말은 내 연주과 편곡이 완벽했다는 소리였다.

기분 좋은 소리였다.

“정말요?”

“그래. 너 말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다 그렇게 알아들었어. 당사자만 너만 눈치를 못 채고 있었던 거고… 이제 지금 상황이 이해했으면 저리로 가 소파에나 앉아 있어. 나 일 좀 하게.”

“…네.”

나는 멋쩍은 얼굴로 소파에 앉아야 했다.

녹음 부스 안에서 감정을 잡고 있던 이정희는 준비가 끝났는지 PD님께 신호를 보냈다.

“자, 그럼 시작합시다.”

그렇게 다시 녹음이 시작되었다.

* * *

녹음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녹음을 마치고 나온 이정희는 내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좋은 노래 부르게 해 줘서 고마워, 서준 작곡가님.”

“아닙니다. 누님이 제 노래를 불러 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김용철 PD님은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너 운 좋은 거다. 우리 누님이 그렇게 한가한 분이 아니거든. 시간이 안 맞았으면 어쩔 뻔했어?”

김용철 PD님의 말에 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이정희 누님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PD님께 말했다.

“너 잘못 알고 있구나. 나 시간 없었어. 이 노래 녹음하려고 억지로 시간 조정한 거야. 너 정말 몰랐니?”

PD님은 정말 몰랐다는 듯이 놀라며 되물었다.

“누님 진짜요? 그냥 시간 되셔서 하신다고 한 거 아니었어요?”

이정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최희애가 따로 전화해서 너보다 먼저 부탁하더라. 이번 드라마에 정말 중요한 노랜데 자기 마음에 너무 든다고 하면서 나보고 불러 달라고 부탁하더라. 그래서 내가 하겠다고 한 거야. 내가 희애랑 많이 친하잖아.”

“최희애 씨가요?”

어쩐지 섭외가 그렇게 힘들다던 이정희가 어떻게 우리 회사 녹음실에 올 수 있었는지가 의문이었는데, 그 의문이 이제 풀리었다.

하긴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없다면 이런 거물급 가수가 이렇게 간단히 섭외될 리 없었다.

몰랐던 썰까지 풀어 주신 이정희 누님은 다시 내게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 후 녹음실을 떠나셨다.

“나 조금 있으면 3년 만에 컴백 앨범 작업에 들어갈 거야. 그때 우리 꼭 다시 봤으면 좋겠다. 어때 우리 작곡가님은 그럴 생각 있어?”

“저야 그저 영광이죠.”

“후후, 그럼 약속한 거다.”

다소 유치할 수도 있는 새끼손가락 걸기까지 끝낸 후 그녀는 홀연히 녹음실을 떠났다.

PD님은 내 어깨를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게 노래의 힘이야. 좋은 노래가 이정희도 섭외해 준 거지. 오늘 일을 잊지 말고 계속 이런 노래 만들어라.”

“…네. 열심히 할게요.”

갑자기 눈물이 날 거 같아 입술을 깨문 후 힘겹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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