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걸그룹 타이틀곡 도전하기(1)
내가 만든 노래를 처음으로 녹음했던 다음 날이 되었다.
아직도 감동의 늪에 빠져 기분 좋게 허우적거리고 있어야 할 내가, 어울리지 않게도 지금 작업실에 나와 있었다.
내가 쉬지도 않고 작업실로 직행한 이유는, 곧바로 작업해야 할 노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우리 작곡팀에게는 회사에서 공통 과제가 하나 내려진 상태였다.
과제는 다름 아니라 회사 소속 가수인 ‘워너비 걸즈’의 컴백 타이틀곡을 만드는 거였다.
‘워너비 걸즈’는 걸그룹 대표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우리 JYK의 걸그룹 계보를 잇는 차세대 주자이다.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룹인 만큼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해 키우고 있는 그룹이었다.
회사에서는 일단 소속 작곡가들이 만든 곡을 모아서 자체 평가를 통해 후보곡을 추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외부 작곡가 중 그녀들에게 곡을 주고 싶은 작곡가의 곡들도 받아 또 후보곡을 추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최종 후보곡이 선정되면, 다시 회사에서는 회사 내 타이틀곡 선정 회의를 열어 열띤 논의 끝에 타이틀곡을 선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선정되는 타이틀곡에 나 역시 도전장을 던질 생각이었다.
“시간이 없어. 빨리 만들어야 해.”
사실 시간적으로 여유는 없었다.
이미 공지된 제출 시간이 3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렇게 안 되더니… 지금은 술술 풀리네.”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지리산에 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타이틀곡 공모전에 낼 노래를 만드는 일이었다.
열심히 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만들어진 결과물을 객관적으로 들어 보고 실의에 빠졌다.
내가 생각해도 많이 부족한 노래였기에 난 작곡가는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근데 도깨비를 만나는 신비한 일을 겪고 나서 다시 곡을 만들어 보니 완전 격세지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대충 가이드 라인은 잡은 거 같은데… 일단 녹음을 바로 해 볼까?”
일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워너비 걸즈에게 주고 싶은 곡에 대한 스케치가 대강 끝이 나 버렸다.
대략적이긴 하지만 일단 곡의 뼈대만 만드는 작업이 끝이 났으니 다시 작곡을 시작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곡을 완성하는 과정의 60% 정도가 이미 완료가 되었다.
나 스스로도 많이 놀라게 되는 경험이었다.
‘하긴 좋은 노래는 거의 10분 안에 다 만든다고 하던데…….’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노래들은 대부분 아주 빠른 시간에 만들어진다고 한다.
지금 내가 경험하는 것도 그와 비슷한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단 악기 녹음부터 진행하기 위해 엔지니어 조상철 형을 불렀다.
그와 함께 곡의 뼈대를 바로 완성할 생각이었다.
“상철이 형, 나 드럼부터 쳐 볼게요.”
“드럼? 네가 치게?”
“네, 그냥 제가 쳐 볼게요.”
“너 드럼도 칠 줄 알아?”
“조금요. 잘 치진 못해요. 그냥 가이드니 상관없잖아요.”
난 사실 드럼을 제대로 연주할 줄 모른다.
그러나 이상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내가 연주할 수 있을 거라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깨비가 주신 고마운 능력이라면 분명 드럼도 연주할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이왕 얻은 능력이니 제대로 사용해야지.’
어제의 첼로 연주를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난 도깨비에게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 확실했다.
그게 아니면 내가 어설프게 연주만 할 수 있던 기타와 첼로를, 갑자기 전문 연주자처럼 훌륭하게 연주한 게 된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생각 덕분에 자신감을 가지고 드럼 스틱을 들 수 있었다.
녹음 부스 안에 설치된 드럼을 앞에 두고 앉은 나는, 곧바로 드럼 스틱을 들고 드럼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녹음 부스 안은 내가 만들어 낸 리듬으로 가득 찼다.
♪두그두그 둥둥 치익♪ 치익 둥두둥둥 치익♪
경쾌하고 빠른 리듬이었다.
이 드럼 소리는 앞으로 내가 만들 노래의 중심을 잡아 줄 리듬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연주하고 난 후, 나는 부스 밖으로 나와 내가 연주한 드럼 소리를 듣고 편집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일렉 기타를 손에 들었다.
“기타도 네가 연주할 거야?”
“네. 그냥 간단히 뼈대만 잡는 일이라 느낌만 보는 거예요.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전문 세션 불러서 재녹음할 거예요.”
놀란 얼굴의 상철 형을 뒤로한 채 난 다시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헤드셋에 들리는 드럼 소리에 맞춰서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그렇게 베이스까지 녹음을 끝냈을 때, 은진 누나가 녹음실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이서준, 녹음해?”
반가운 누나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악기 녹음 중이에요.”
“그래? 무슨 곡인데?”
“이번에 회사에서 내려온 숙제 있잖아요. 워너비 걸즈 타이틀곡 공모에 저도 도전해 보려고요.”
“진짜? 이거 막강한 라이벌의 등장이네.”
“라이벌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다른 사람이 들으면 웃으니까 그런 소리는 제발 사양해 주십시오.”
누나 역시 이번 타이틀곡 공모전에 도전하는 작곡자 중 한 명이었다.
사실 작곡 팀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회사 소속 작곡가 대다수가 이 공모전에 도전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일은 다 끝나 가?”
“네, 오늘 할 일은 거의 끝마쳤어요.”
“그래? 그럼 오늘 맥주나 한잔할까? 번개로 모두 같이 모여 한잔하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가자.”
누구나 열심히 일하다 보면, 저절로 스트레스가 쌓인다.
특히 우리처럼 창작이 주된 일인 사람들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매우 큰 편이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놀며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많았는데, 1차로 바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2차로 클럽으로 가 노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근에 도움을 많이 받았던 누나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네, 누나. 저 바로 정리하고 나갈게요.”
“오케이. 한 시간 뒤에 출발할 거니까 알아서 시간 맞춰서 나와.”
“네.”
오랜만에 마실 시원한 맥주 생각에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다.
* * *
회사 근처의 단골 펍.
이곳은 우리들의 아지트와 같은 가게이다.
흥겨운 음악과 가득 찬 손님들로 인해 가게 안은 무척 시끄러웠다.
“자, 다 같이 건배 한번 할까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은진 누나의 선창에 이곳에 모인 모두는 자신 앞에 놓인 맥주병을 집어 들었다.
시원한 맥주가 목을 넘어가는 느낌은 정말 짜릿했다.
난 마시던 맥주병을 내려놓고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회사에서 자주 마주치던 사람들도 있었고, 어디 짱박혀 작업하는지 도통 알 수 없던 형님들도 어떻게 알고 함께 자리를 빛내 주고 있었다.
“서준아, 축하해. 이번에 드라마 OST 녹음했다며?”
“네, 감사합니다.”
동료들은 나만 보면 축하한다는 말을 던졌다.
내가 쓴 곡이 드라마 OST로 뽑혔다는 얘기가 이미 회사 안을 휘젓고 돌아다닌 덕분이었다.
“너희 아직 못 들어 봤지? 완전 끝내줘. 서준이가 이번에 제대로 큰 사고 친 거지. 그리고 더 대단한 건 기타랑 첼로도 다 서준이가 직접 연주했다는 거야. 거기다가 편곡까지 그냥 한 번에 해 버렸으니, 자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 버린 거지. 정말 대단하지 않냐?”
은진 누나는 마치 내 일이 자기 일인 것처럼 신이 나서 자랑했다.
덕분에 난 누나 옆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얼굴을 붉히고 있어야만 했다.
누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나보고 잘했다고 하면서 대견해하는 눈빛을 보냈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절치부심하며 노력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기에 보낼 수 있는 눈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회사에는 어떻게 이런 좋은 사람들만 가득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이 여럿 모인 곳에 항상 좋은 사람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서준이는 회사를 옮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갑작스러운 퇴사 권유에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는 우리 회사 작곡가이자, 나와 같이 입사하고 하필 나이도 동갑인 제임스 권이 앉아 있었다.
제임스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국적은 미국이었다.
법률적으로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 미국 사람인 것이다.
아마 미국에서 태어나서 학창 시절의 대부분도 미국에서 보냈기에 국적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인 모양이다.
그의 아버지는 국내에서 유명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한다.
그래서 그의 이런 특이한 이력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가 왜 자신의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지 않고 JYK에서 일하고 있는지 저절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떠들고 다니는 말에 따르면,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면 직원들이 오너 아들이라 불편하게 대할까 봐 JYK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회사 사람 모두가 그런 사정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이면 내가 매우 싫어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그래서 가급적 부딪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아까와 다르게 조금 딱딱하게 변한 얼굴로 은진 누나가 물었다.
“아니 생각해 보세요. 그전까지 제대로 된 성과 한 번 못 내던 서준이가 갑자기 막장 드라마 OST를 떡하니 만들어 냈잖아요. 이것만 봐도 느껴지는 거 없으세요?”
“난 전혀 느껴지는 게 없는데.”
“에이, 바로 느낌이 오잖아요. 서준이는 처음부터 우리 회사와 맞지 않았던 거에요. 아줌마들 눈물샘이나 자극하는 그런 류의 노래나 만드는 게 본인의 적성에 딱 맞았던 거죠.”
꿈틀.
여러 가지 포인트에서 화가 났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내가 만약 화를 낸다면 좋은 회식 분위기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참은 것이다.
만약 우리 둘만 있었으면 바로 따지고 들 말이었다.
특히 걸렸던 말은 ‘그런 류의 노래’라는 말이었다.
그런 류라는 말의 뉘앙스는 내가 만든 노래의 장르는 하급 장르로 규정하는 말이지 않은가?
작곡을 한다는 놈이 저런 편협한 시각으로 어떻게 좋은 노래를 만들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저 녀석은 항상 저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던 덕분에 회사에서 인기가 없었다.
쥴리어스 음대를 나왔다는 멋진 커리어에, 작곡가로 데뷔하자마자 회사 소속 가수 데이블랙의 타이틀곡을 작곡해 내었다는 자신감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말을 서슴없이 해 대는 재수 없는 캐릭터의 사람이었다.
녀석은 오늘도 본인의 캐릭터대로 재수 없는 소리를 해 대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입니까? 세계에서 알아주는 대한민국 K팝의 선두 주자 아닙니까? 그래서 주로 다루는 음악도 어떤 장르인가요? 팝과 힙합, 그리고 음악 시장을 선도할 주류 음악을 하고 있죠. 근데 서준이가 작곡한 노래는 TV 속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올 법한 옛날 포크 음악 아닙니까?”
“아? 그래서 우리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다?”
은진 누나가 녀석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러나 누나의 표정을 보아하니 녀석의 말이 옳다고 맞장구치는 것이 아니라, 그래 뭐라고 하는지 일단 들어나 보자는 식의 화난 표정이었다.
회식 분위기는 점점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